성별이라는 경계

가끔 남자로 오해받는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청소노동자한테 대걸레 자루로 맞은 적도 있다. 짧은 머리, 체격, 차림새 같은 것 때문이겠거니 하고 넘겨왔다. 나라도 남자가 들어오면 놀랐을 테니, 당신이 나를 향해 소리 지르는 통에 내가 더 놀랐더라도, 공감이 앞섰다. 지금은 다르다. 
수영을 하고 샤워실에서 씻던 중이었다.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가씨야?" 당황했다. 질문이 해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내 몸이 여성의 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어디가? 어떻게? "아가씨냐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심지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지만 탈출해야 했다. "저한테 뭘 물어보시는 걸까요?" 수군거리던 한 분이 말을 던졌다. "아가씬지 아줌만지 물어보시는 것 같은데?" 그제서야 숨을 쉴 것 같았다. 할머니는 출산 경험이 있는 몸인지 없는 몸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이때 이후 나는 남자로 오해받는 경험이 덜 흥미롭고 더 불편해졌다. 십 초나 흘렀을 짧은 시간 동안 느꼈던 감정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선명한, 공포. 누군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자격을 따지는데 내게는 대답할 말이 없는 상황. 무서웠다. 오해야 언제든 있을 수 있지만, 오해를 낳는 질문-남자냐 여자냐-이 나를 보호하는 질문이기도 하다는 환상은 깨졌다.  
나도, 여성만 있는 공간에서, 편안하다. 씻거나 쉬거나 자거나 하는 사적인 활동을 위한 공간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내가 겪은 일은, 화장실이든 수영장이든 여성만 있(어야 하)는 공간에서 벌어졌고 외부-남성의 침입과 무관한 일이었다. 이것은 성별 분리 공간에 내재한 불-안전의 정체를 보여준다. 여성만 있는 내부가 외부에 있는 남성으로부터 보호된다고 상정될수록, '남성이 언제든 내부로 침입할 수 있다'는 보호의 필요성과 보호의 실패가능성이 동시에 구성되기 때문이다. 성별이 분리된 공간에서도 모든 여성은 동등하게 안전해질 수 없다. 
성별 분리를 모두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갈 생각은 없다. 그보다 다시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다. 성별 분리 자체가 편안함의 기원이 아니었다면 나는 왜 분리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꼈을까? 적어도 분리된 공간 안에서는 일방적인 폭력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그래서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내가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감각이 아니었나. 우리를 둘러싼 폭력의 현실-가부장제-을 고려할 때, 여성만 있는 공간이나 관계에서 이런 조건을 만들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전자나 생물학이 이런 조건을 구성하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이따금, 만약 내가 트랜스여성이었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상상해본다. 더 당황할 수도, 덜 당황할 수도, 더 단호할 수도, 더 모호할 수도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내가 섣불리 짐작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는 동안, 성별 분리가 명확한 수영장에 가는 일이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여기서 트랜스여성의 처지나 조건을 헤아려보자고 감히 제안할 의도는 없다. 다만,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하는 성별 구분의 제도와 습속이 여성을 위한 것이라 포장하는 건 멈추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그저 부딪치며 머뭇거리며 무모하게 덤벼보면서 성별이라는 경계를 함께 겪을 수 있을 뿐이다. 
트랜스여성의 여군 복역이나 여대 입학을 두고 트랜스여성은 남성일 뿐이라며 적대를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 트랜스여성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기필코 가르려는 질문에 대해, 트랜스여성도 여성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호르몬요법, 성전환수술, 생식력 제거 등을 요구하며 기필코 '트랜스'를 지운 '여성'에 고착시키려는 국가와 다르게, '트랜스'도 소중한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되묻고 싶다.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질문이 당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성패가 달려있는, 그렇게 절박한 질문인지. 
우리가 만들어갈 세계에 트랜스젠더의 입장을 불허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거니와, 여성이 동등한 존재로서 이 세계에서 투쟁하고 쟁취해야 할 수많은 목표의 성패가 달려있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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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8 20:04 2020/02/1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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