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머찐 그녀들

* 이 글은 여우비님의 [[퍼옴]이 시대 최후의 식민지, 어머니]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장소 : 수영장

시간 : 여성과 아동회원만 강습하는 시간대.

 

어느날 새로운 수영강사가 왔다. 키크고 몸좋고 얼굴도 잘 생겼다.(는 평이 중론이다.) 강습을 받는 여성회원들은 30대에서 60대에 폭넓게 포진해있는데 특히 4-50대가 많다. 강사는 20대 후반인데 어찌나 말을 귀엽게 하는지 첫날 강습에서 '어머님'들을 까무라치게 했다.

 



여1 : 새로 온 수영강사가 그렇게 멋지다면서~?

여2 : 말을 어찌나 이쁘게 하는지...

여3 : 저 언니도 몇 주 안 나오다가 그 강사 보러 나왔대잖아~.

...

강사에 대한 칭찬과 호들갑이 이어진다. 뭘 물어봤는데 이렇게 대답을 했다느니, 수영복이 죽인다느니, 뭐, 듣는 나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그날의 압권.

 

여7 : 난 오늘 며느리가 아침에 나가면서 아이 아프다고 병원 데려가달라고 부탁한 걸, 그 강사 한번 볼라고 해열제 먹이고 애 재워서 나온 거라니까...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그 '남자' 얘기를 끊임없이 들어야 해서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솔직하고 시원하다. 모든 욕망이 소통될 수 있는 공간. 수영장 탈의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들이 '어머니'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 이 생각날 때마다 몇 번 뵌 적 있는 시설관리노조 고대지부 아주머니들이 생각난다. 욕망, 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쓰지는 말아야겠다는, 그리고 사회경제적 조건의 차이들이 어떻게 여성의 욕망을 차별화하는지, 어떻게 여성의 욕망이 '여성의 욕망'으로 만날 수 있는지... 인권위 진정받을 때 들었던 생각들을 짧게라도 정리해봐야겠다.

 

* 공선옥의 '멋진 한세상'의 '그녀'들도 생각난다. 특히, 매일 슈퍼에서 아이를 위해 우유 500ml 짜리 한 팩을 사면서 자신을 위한 디스 한갑을 빠트리지 않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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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10:53 2004/11/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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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pool 2004/11/12 12: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제 어머니의 경우에는 천상 '여자'라서...음..그런데 그걸 본인이 잘 잊어버리시는 것 같아요. "내가 엄마지 니 친구냐"고 항상 하시는 걸 보면..
    제가 문젠가..헤헤 웃고는 "그래서..?"하면 이야기를 계속하시지요.

  2. 미류 2004/11/12 16: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제 어머니도...사실, 떨어져 산 지 오래돼서 울엄마 생각은 별로 못해봤네요. ㅡ.ㅡ 어머님이 "엄마지 니 친구냐"하시는 걸 보니 서로 정말 친구처럼 지내시나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