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치레도롱뇽님~

(081024)

 

지리산을 다니면서 반야봉은 들러본 적이 없어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고 하던 참에 하루 일정으로 반야봉을 들렀다. 반야봉에 살던 마고 할미는 딸만 여덟 명을 낳아 키웠다고 한다. 딸만 여덟 명이라, 마음에 들어... 지리산이 포근한 흙산이기는 하지만 반야봉은 더욱 포근한 느낌이었다. 오르는 길에 추워서 너무 고생했지만 천천히 어울렁더울렁 다녀왔다.

 

전날 순천시내의 서점에서 급하게 야생화 책을 샀다. 산에 다니면서 언젠가부터 내가 만나는 생명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냥 걷고 또 걸으면서 쉬고 또 쉬면서 무언가를 만난다는 느낌만으로도 알 수 없는 충만감이 찾아들지만, 조금 더 알고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싶은 것이었다. '쉽게 찾는 우리꽃' 정도를 사려고 들어갔는데 마침 그 책이 없었고 '야생화 쉽게 찾기'라는 책이 괜찮아 보여 샀다. 책은 들고 다니기 조금 두껍고 무거웠지만 마침 자켓 주머니가 꽤 커서 쏙 들어갔다. 책은 매우 괜찮다. 적어도 '쉽게 찾는 우리꽃'보다는 꽃을 만나는 데 유용했다.

 

산에는 꽃이 별로 없었다. 이미 10월말이니 그렇겠기도 하겠지만 채 시들지도 못한 채 말라버린 꽃송이들을 보니 올해 가뭄 탓도 있겠거니 싶었다. 게다가 이틀 동안 내린 '반가운' 비에 많이들 떨어지기도 했겠다. 쑥부쟁이나 취꽃 등 몇 포기를 산아래께에서 본 걸 제외하고는 만나지 못했다. 지리산에 자라는 정영엉겅퀴는 흰색 꽃이 핀다는데 말라버린 엉겅퀴를 보며 그냥 분홍색 꽃을 연상하고 지나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다.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왔다. 피아골로 올라 뱀사골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함께 가는 이들 중에는 산행이 처음인 이도 있고 나도 오른쪽 무릎이 은근히 걱정되어 성삼재로 무난, 편안하게 올라갔다. 뱀사골 계곡의 단풍 보면서, 맑은 물 소리 들으면서 내려왔다. 오르는 길이 워낙 쉬워서인지 내려가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많이 놀면서 올라가서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그래도 밍기적대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책 산 게 아까워 더욱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도 했다.

 

앞에 가던 이가 갑자기 부른다. "야, 야, 여기 와봐. 도마뱀이야. 얼렁 와봐." 호기심 어린 목소리에 서둘러 가면서도, 도마뱀 가지고 뭘 그러나 싶었다. 그이들이 바라보고 있던 곳은 이끼가 곱게 바위를 덮은 벽 면의 한 틈, 노란 낙엽들 사이로 도마뱀처럼 생긴 것이 긴장한 듯 서(누워?) 있다. 도롱뇽이었다. 그이가 흥분해 잘못 말한 것인지, 내가 어리버리 잘못 들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눈 앞에 있는 것은 꼬리치레도롱뇽이었다. 천성산에 산다는, 지율스님이 오랜 시간 동안 더불어 살려고 애셨다는 그 꼬리치레도롱뇽 말이다. 나중에야 지리산에도 그이들이 산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때는, 워낙 기대도 하지 않았던 데다가, 뭔가 매우 보기 힘든 이를 만났다는 생각에 나도 어찌나 흥분이 됐던지, 핸드폰을 허겁지겁 꺼내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어댔다. 도롱뇽은 의외로 금새 사라지지 않았고 제자리를 지키다가 낙엽들 아래 더 깊은 바위틈으로 들어가셨다. 이끼바위에서는, 갑자기 성스러워보이는 물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물을 정신없이 손으로 받으면서 도롱뇽님에게 빌었다. 도롱뇽님, 여드름 안 나게 해주세요. ㅜ,ㅜ 정신없는 손으로 물을 얼굴에 묻히면서 순간 그런 말이 나왔다. 큭.

 

사진이나 뉴스로 만나게 되는 생명들을 직접 마주하니 매우 설렜다. 그건 아마도 매우 특별한 시간, 특별한 장소에 내가 있다는 느낌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용이나 봉황을 떠올리거나 마주하며 받았을 느낌? 그걸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살아왔던 생명을 만나며 호들갑스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야생화 이름을 알겠다고 책을 사서 뒤적거리는 것은, 책에서 보던 무언가를 직접 만나 설레는 것은, 어떤 욕심일까. 욕심일까.

 

지리산에 들어가는 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예년 기온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추워지니 힘들기는 했다. 그런데 예년 기온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열병을 앓았던 땅은, 공기는, 물은 어땠을까. 그이들에게는 그게 체온일 텐데. 욕심을 부리는 것은 사람밖에 없는 것 같아 씁쓸했다. 나도 사람이라...

 

 

* 핸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잘 안 보이지만, 잘 보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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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8 14:55 2008/10/2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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