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진다'는 말

이사갈 집을 구했는데 전에 살던 집보다 방이 좁다. 쓰던 장농을 들고 갈까, 재활용센터에 내놓고 갈까, 고민을 한동안 했더랬다. 아무래도 장농이 있는 게 깔끔하다, 서랍장 위에 이불 쌓아놓으면 초라해보이더라, 길에서 주은 거면 이번 기회에 다시 길에 내놓고 가라,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는 상품들이 많이 나와서 장농 없어도 된다, 등등. 주위의 조언을 한참 듣고, 결국 장농을 들고 왔다. 미리 줄자로 재어봤던 터라 예상했지만 장농 문이 다 열리지 않았다. 괜히 속상하기는 하더라.

 

이사하려고 집을 구하고 계약을 하고 실제로 짐을 옮기는 동안, 또 주위의 친구들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비슷한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집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 자기의 경험과 우리는 모르는 또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떤 노동자의 아내가, 아마도 장기투쟁사업장이었던 듯, 전세에서 월세로 집을 옮기는데, 옥탑방 천장이 낮아, 결혼하면서 장만한 장농의 윗부분을 잘라내야 했고, 끝내 서러워 이사온 첫날밤을 울다가 잠들었다는 얘기가, 문이 열리지 않는 장농을 보며 문득 생각났다. 

 

다행히도 나는 이사를 다니면서, 살던 곳보다 많이 안 좋은 곳으로 이사가본 경험은 많지 않다. 서울 올라온 후로도, '집'에서 사는 느낌을 별로 모르던 대학 초년 시절을 빼고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집주인이 재건축하는 걸 속이고 집을 빼라고 요구해 나온 걸 제외하면, 원치 않는 때에 이사를 해야 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다행이다. 천만 원으로 시작한 전세가,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로 뛰어올랐지만, 다행히도, 엄마가 도와주시고 있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엄마나 나에게 무슨 일이 갑자기 생겨서, 전세금을 빼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혹시 많이 허름하고 불편한, 또는 좁고 낮은, 또는 다시 반지하로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어떤 마음이 들까. 가난하게 살아가자고 생각하며, 서러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도 문득 눈물이 찔끔 흐르는 때가 있지 않을까. 처음 전세로 구한 집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건물의 반을 돌아서 화장실이 있었고, 욕실이 따로 없어 물부엌에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반지하라도 창이 넓고 해가 잘 들어 좋았지만 불편한 점도 많았다. 그때는 그게 서러워 울어본 적 없지만, 만약 병원비가 필요하거나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해 지금 살던 집 보증금을 빼서 이사를 가야 했던 거라면, 난 분명히 울었을 거다.

 

장농은 큰 불편함 없이 쓰고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겠지만 있으니 있는 대로 잘 쓰고 있다. 새로 이사온 집에 자잘자잘한 불만들이 있었지만 이것저것 손보기도 하고 박박 문질러 닦기도 했더니 한 달도 안돼 금새 익숙해지고 정이 붙는다. 사는 데 불편한 것들은 조금 손을 보거나, 다시 새로운 습관을 들이면 된다. 지금 사는 집이 전에 살던 집보다 안 좋은 것은 아니다. 그냥 익숙해지는 내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밖으로 화장실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뭐 가끔 눈물이야 찔끔거리겠지만, 다시 즐겁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정말 이것도 집이라고, 사람 살라고 만들어놓은 집일까 싶은 집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누군가는, 가끔 서러워 눈물 흘리더라도, 정 붙이고 살아가기도 할 테다. 그러나 이게 당연한 걸까. 내가 상상해보는 상황에서 나는 다시 즐겁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상황은 절대로 즐거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없거나 사라져 갑작스러운 주거하향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당연한 걸까. 그게 누구이든, 어떤 상황이든,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는 건 소득이나 재산이나 어떤 이유로도 주거하향을 경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기준 이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회적 연대의 힘으로 주거 수준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저주거기준이라고 만들어놓은 것도 그런 기준의 일종일 테다. 기준은 만들어놓고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 통계는 내지만 현실을 바꾸는 건 개인의 몫인 게다. 각자 돈 벌어서, 적어도 있는 돈 잘 간수해서, 아니 아프지도 말고 대학 다닐 자식도 없고 노후에 생활비 나올 구석도 있어서,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아홉 평에서 열다섯 평으로 나아가라는 게다. 그리고 다 자기 가진 만큼에서 '살아진다'는 말. 맞다. 살아진다.

 

그러나 '살아진다'는 건 소득이나 재산에 따른 주거불평등이나 주거하향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만큼 집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손때로 가치가 생긴다는 증거이며 그래서 집이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거나 삶을 옥죄서는 안된다는 증거다. 그러니 세입자라고 함부로 내쫓아서는 안되며, '살아진다'고 해서 동시대의 사람들보다 명백히 열악한 환경에 방치해서는 안되며, 그러나 대책이랍시며 동네를 밀어버리는 개발만 내세워서는 안된다. '살아진다'는 말은 당신들의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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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22:09 2009/11/2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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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루 2009/11/29 22: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결혼할 때 엄마가 장롱은 꼭 해가야한다고 해서 샀는데 신혼집이 지하라 천정이 낮아서 장롱문을 좀 잘라야했었는데... ^^ 그래서인지 지금도 문이 잘 안닫혀요.

    오늘 김장하러 가셨어요? 저는 가고 싶었지만 토, 일은 항상 아이들을 봐야해서 어디 못 다녀서.... 고생했어요~

  2. 미류 2009/11/30 19: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가끔 속상하기도 하겠네용. 김장하러 다녀왔어요. 근데 재료가 다 오지 않아서 절반도 못했어용.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