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

#

집이다. 현관 입구에 둔 마삭줄은 가지 끝마다 새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방에 배낭을 부리고, 물을 끓여서 커피를 한 잔 타고, 서울을 떠나기 전 선물로 쟁취한 말과 양 토기인형을 포장에서 꺼내 적당한 자리에 앉혀주었다. 베란다에 있던 식물들도 모두 안녕한 듯. 천량금은 줄기마다 여린 새잎이 올라왔고, 신종 고무나무들도 곧 잎을 하나 펼쳐낼 것처럼 순이 올라와있다. 의외로 쑥쑥 자라지 않는 벵갈고무나무는 조금 목 마른 듯 바삭거리고 남천도 조금 기운이 없어보인다. 다른 애들도, 잘 지낸 듯해 다행이다.

기침을 콜록콜록 달고 떠났는데 더 심해지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여전히 기침은 심한데, 그래도 이제 슬슬 내 몸을 떠나려는 것 같다. 용산참사 3주기 북콘서트에 갔다가 산, 어쿠스틱밴드 신나는 섬을 틀어놓고, 사무실 이사하는 통에 얻어온 책상 앞에 앉았다. 여전히 마무리해야 할 것이 남은 원고의 마지막 수정을 위해 앉았는데, 이렇게 앉아있는 게 그새 참 어색해졌다. 안식년의 시작으로는 더없이 적당했던 것 같은, 지금까지 다녔던 어떤 여행들과도 사뭇 달랐던, 출발할 때 계획했던 일정과는 전혀 달랐던, 5일간의 어떤 여행. 

 

금요일은 떠나자, 가능하면 목요일에 서울을 뜨자고 생각했는데 월요일부터 기침이 심하다. 사무실 이사하는 날도 나가보지를 못했다. 도저히 미안해서 목요일에는 사무실 짐 정리를 했고, 콜트콜텍 야단법석을 못 갔다. 속상했다. 부끄럽게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에, 2월 중에는 꼭 가야지 했는데. 금요일에도 이것저것 하느라 시간이 흘러갔다. 기침이 이렇게 심한데 집을 나서는 게 맞나 고민도 하다가, 무작정 짐을 쌌다. 마침 대구에서 올라온 활동가와 평택을 들르기로 했다. 급행열차 시간을 알아보고 시간을 맞춰갔더니, 잘못된 정보였다. 전철을 타고 희망텐트촌까지 갔더니 막 촛불문화제가 끝나 참가자들이 둘러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조금 재밌기도 하고. 아마 '활동'의 하나로 왔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저녁을 먹고 가라 해서 염치 없이 들어갔다. 쌍차지부 동지들은 마침 조문을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우르르 떠났다. 돌아올 때까지 있으라는 얘기에 밤에 대구로 떠나야 하는 친구와 수원으로 가기로 했던 나는 어쩔까 고민. 희망뚜벅이 때도 하루도 걷지 못하고 오랜만에 왔는데 그냥 떠나기도 서운해 대구로 가야 할 활동가를 붙잡고 텐트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다들 무언가로 바빠 보이는 지부 사무실에서 어정쩡하게 있는 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조금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책도 보다가 인터넷도 하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술 한 잔 시작하게 됐다. 마침 다음날 같이 선자령으로 떠나기로 했던 친구가 몸이 안 좋다며 연락이 왔다. 바리바리 싸온 배낭을 들고 다시 서울로 가기도 우습고 이참에 대구를 가기로 했다. 

 

#

조문 갔던 동지들이 돌아왔다. 평택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폐계닭'도 도착했다. 술이 도는데 기타를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 할 수는 있는데, 하며 기타를 받았더니 줄이 다 맞다. 든 김에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는데, 코드를 아는 게 없어서, 행복의 나라로 불렀다. 뭔가 뻘쭘해서 그냥저냥 불렀는데, 쌍차 동지들이 이용석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쇳밥' 공연을 했다. 77일간의 투쟁 이야기로 만든 노래다. 엠알을 틀고 공연을 하는데, 아, 나 너무 감동. 갑자기 막 뭔가가 가슴을 채우며 솟아오르는데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고, 푹 빠져들고 말았다. 사람들도 막 좋고 술도 막 맛있고 뭐 그런 거. 이어서 지부장의 노래와 사람들의 이야기와 또 노래들. 기타 줄을 맞출 수 있냐고 물어봤던 건 일종의 '수작'이었던 건데 눈치도 못 채고 어리버리했던 게 아쉬워, 마음을 다해 노래를 다시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마침 답가를 하라고 찔러주길래 무인도를. 워낙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막 차오를 때 부르고 싶어지는 노래이기도 한. 1차 희망의 버스 뒷풀이 때, 전국 HIV/AIDS 감염인 네트워크 발족식 때, 그렇게 불렀던 노래다. 전교조 충남지부에서 왔다는 분들과 같이 또 이어지는 이야기와 노래들. 그렇게 깊어가는 밤. 그렇게 환해지는 마음. 극진한 환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쌍차 동지들은 또 지부 사무실에서 이렇게 즐겁게 노래부르면서 술 마셔본 적이 없다며 좋아라 하신다. 천일이 넘은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그게 아마 좋기만 한 마음은 아닐 것 같은데, 그래도 같이 있어서 따뜻하고 즐거워지는 어떤 시간, 고맙기만 한 사람들. 

 

#

주말이라 기차는 자리가 없었다. 못 잔 잠을 자려던 건 포기. 텐트 안에 전기 장판을 깔아서 새해 첫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따뜻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아스팔트를 달리는 차 소리에, 낑낑대는 개 소리에, 잠을 별로 못 잤다. 대구 가서 좀 누워야지 했는데, 기차 안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도 참 신기한 인연. 장애인 교육권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과 정보인권 운동을 하는 활동가를 우연히 탄 기차 안에서 만나다니. 덕분에 한 시간 넘게 앉을 수도 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대구까지 즐겁게 갔다.

대구 가서는 자원활동을 하다가 직장과 집을 대구로 옮긴 이를 만나서 사는 이야기 주고받으며 맛난 커피 한 잔. 이가체프와, 순박한 시골 맛이라는 코스타리카. 사랑방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참 고마운 사람이다 싶었다. 돌아보면 자원활동가들과 진득한 관계를 만들 여유를 못 찾고 일만 해왔던 것 같은데, 마음이 닿았나 싶기도 하고. 사랑방이 정말 괜찮은 조직인가 싶다가도, 그런 얘기 하는 이들은 다 워낙 멋진 사람들이었다는 걸 깨닫고 부끄러워지고. 다른 곳에서 다르게 만나는 색다른 느낌에 기분이 또 좋아졌다. 

 

#

한 달에 한 번 한다는 좋은모임회가 마침 있어서 슬쩍 끼었다. 모이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오래동안 이어오는 것 자체가 너무 존경스럽다. 벌써 몇 년인가. 한 달에 한 번 시간 내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찾아오는 건 다 활동가들의 힘일 게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다 들어내고 함께 겪어내는 자리에 늘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2012년의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조금은 과해 보이는, 그리고 어려운 말들이 적혀 있는 안건에 걱정도 들었지만, 말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니 모인 분들끼리 이야기를 잘 끌어가신다. 금융피해자들이 파산 판정 이후로 겪어야 하는 문제들을 바꿔보자는 의지가 스물스물 모이더니 어느 순간 기운이 뻗어나온다.

회의 끝나고 저녁 먹는 자리까지 쫓아갔다. 서로 안부를 묻고 걱정해주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금융피해자들이 겪는 일은, 사실 잘 모른다. 살짝살짝 엿보게 되는 이야기들에서 또 세상을 보고 또 어딘가에서 만나고. 최근에는 젊은 분이 찾아오셨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학습지 교사 일을 하다가 빚을 지게 되고 돌려막기를 하다가 파산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말도 들었다. 학습지 교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재능지부 동지들이 떠오르고. 아주 다르지도 않고, 하지만 아주 다르기도 한 삶들. 

 

#

회를 사주겠다고 해서 갔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지역 활동가들이 서울에 올라올 때와 서울 활동가들이 지역에 갈 때가 참 다르다. 지역에서 더 열악한 조건에서, 더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이것저것 챙겨주면 많이 미안하다. 인권운동연대는 상근하는 활동가가 세 명인데, 활동비는 한 명한테만 지급한다. 다른 두 명은 각자 생계를 해결한다. 그 한 명의 활동비도 사랑방보다는 적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온갖 사안들을 다 함께 책임져야 한다. 지역에서 영역을 넘나들며 여러 단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조건에서 늘 쳇바퀴 도는 느낌도 없지 않을 듯하다. 그런 이들에게 사랑방에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서 좋다거나 원칙을 지켜서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민망하다. 사랑방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누리는 게 많다. 그게 문제인 건 아니지만, 그렇게 누리는 만큼 나누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다. 그이들의 몫이 있다.

기침을 독하게 해대는 걸 보고 집에서 오미자차도 한 잔 끓여줬다. 따뜻한 밤. 내일은 창원으로 바로 안 가고 밀양에 들르기로. 

 

#

운문사와 우포늪을 놓고 고민하다가 우포늪으로 결정. 운문산은 밀양 쪽에서 오르기 시작하는 게 더 좋다는 얘기가 있길래 다음으로 미룬다.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 혹은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곳. 어쨌든 우포늪으로.

큰길에서 우포늪으로 들어가는 길 이름이 서울길. 어처구니가 없어. 람사르 총회를 열 때 서울시에서 길을 내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창녕에 있는 서울길이라, 이 서울의 오만.

우포늪은 꽤나 넓고 목포, 사지포 등 늪도 하나가 아니어서 다 걸으려면 네 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걸 인터넷에서 보고 갔다. 밀양 가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어떻게 하나, 걸을까 자전거를 탈까 고민했는데, 안내소에서는 두 시간밖에 안 걸린단다. 가방을 맡기러 에코누리 사무실에 갔더니 또 거기에서는, 다 걸으려면 하루 잡아야 하고, 코스를 잡기 나름이래서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 걷기 시작했다.

날이 조금 흐렸는데 겨울의 늪과 어울렸다. 희끄무레한, 조금 스산한 분위기. 초록은 찾아보기 어려운. 그러고보니 나는 겨울에 여행을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익숙해서인지 편안한 분위기. 숲길을 걷다가 제방길을 걷다가 들길을 걷다가 하면서 늪을 돌았다. 처음에는 흰새 검은새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큰고니도 보이고 청둥오리, 큰부리큰기러기, 왜가리도 보인다. 오리 종류는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워. 언젠가 우포늪에서 쌍안경으로 새 똥꼬를 봤다며 좋아라 하던 친구 생각도 나고. 싱거운 이야기 나누면서 같이 걷는 것도 좋고. 버스 터미널에서 화장실 다녀온다며 떡이랑 계란을 사온 이 덕분에 찬 바람을 맞는 배를 따뜻하게 불리고. 물 밑에서 바지런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을 새들마저도 다 여유로워보이는 고즈넉한 늪. 평화로워지는 마음. 

 

#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우포늪에서 택시를 타고 나왔다. 버스표를 사러 달려가고, 버스를 붙잡아달라고 다른 이에게 부탁하고 버스에 올랐다. 우포늪에서 먹지 못한 계란을 쥐어주며 가져가라고, 버스가 떠나는데 길에서 손 흔들어주던 이들. 누군가를 환대할 수 있는 능력-말 그대로 능력 또는 역량-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건 아닌 듯.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나. 쑥스러워서,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잘 못하는데. 너무 호들갑스럽게 반기는 사람은, 또 별로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것과는 다른 어떤 느낌이 있다. 내가 배우고 익혀야 할 어떤 역량. 

 

밀양은 처음 가보는 도시. 시청 앞에 있다는 분향소를 찾아간다. 이번 여행은 스마트폰 덕을 톡톡히 봤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시청을 지도를 보며 찾아간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 영정 사진을 모시고 향을 피워올리고 있다. 밀양에서 뵙기로 했던 분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에서 만난 활동가들 몫까지, 향을 세 개 올린다. 어떻게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하면서 몇 가지 슬쩍 물어봤다. 마을마다 돌아가면서 하루씩 나온다고 한다. 이날은 표충사가 있는 근처 마을이라고.

이미 한참 전에 시작한 싸움이었던 걸, 전혀 몰랐다.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한 게 2002년쯤이었던 것 같고, 마을 주민들이 항의를 하고 집회를 하고 땅을 지키기 시작한 것도 2006년쯤이라고 한다. 이치우 님이 분신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된 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

송전탑을 세우겠다며 끊임없이 주민들을 분열시키는 한전. 송전탑이 지나는 경로를 협상의 대상인 것처럼 만들어놓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자리를 옮기며 주민들을 우롱한다. 주민들이 '경로'에 신경을 쓰는 것도 당연하다. 한평생 살아온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절박함이다. 탈핵은, 참 멀다.

앉아있던 분들 중 남성 한 분이 말을 꺼내기 시작하더니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농민들에게는 땅이 퇴직금이라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정리해고'가 머리를 스친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일구고 가꿔온 땅이 퇴직금이기만 할 리는 없다. 하지만 퇴직금은 현실이다. 농사만 지어서 자식들 뒷바라지에 노후까지 다 할 수 없는 조건에서, 가장 나중에 팔기라도 할 땅이 있어야 하고, 제값에 팔려야 한다. 송전탑이 그 모든 걸 망쳐놓는 거다. '보상'이 쟁점이 될수록 싸움은 쇠락하지만, '보상'은 중요하다. 어떤 보상을 요구해야 할지, 도시재개발에서도 그렇듯, 오히려 그걸 찾아야 한다. 물론 불필요한 송전탑을 백지화하는 것만이 답인 이 싸움의 과제는 아니지만, 난 가끔 "우리는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라는 말이 반만 진실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나 '운동권'이 그럴수록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속내들이 내쳐진다는 생각.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

밀양 두레기금 너른마당 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역시나, 마침. 급하게 창원으로 갈까 하다가, 총회도 슬쩍 엿보고 싶고, 저녁에 김익중 교수의 탈핵 강의도 있다 해서, 밀양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날마다 계획이 바뀐다. 울릉도 가려다가 파도 때문에 포항에서 하루를 자고, 나리분지에 갔다가 눈 때문에 이틀 갇히고,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흥미진진함. 

총회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서 영남루에 갔다. 시원하게 누각에 담긴 풍경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열어줬다. 밀양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이 영남루 앞에서 한 굽이를 돈다. 여의도처럼 강 안에 섬처럼 있는 동네가 보인다. 사흘째 돼서야 아해한테 사진을 한 장 찍어보낸다. 참 바쁘게 다니기도 했다. 물이 흐르는 걸 한참 쳐다봤다. 바람이 분다.

 

#

문득 4대강 생각이 났다. 강의 '원래' 모습이 이런 게 아니었겠구나 싶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한강과 달리, 좋아 보이기도 한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 낚시하는 사람들, 드문드문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원래' 모습만 지키는 게 답은 아닐 수도. 물론 4대강 같은 미친 짓은 좀 말고. 집 떠나면서 가볍게 읽으려고 들고나온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에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던 듯. 사람이 집을 지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든 '반자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악인 것만은 아니라는. 그러게. 그러면 강을 끼고 자리잡은 도시는, 어떻게 자연과 만나면 좋을까. 

 

#

영남루까지 타고 온 택시의 운전사 분이, 아랑 설화가 밀양에서 시작된 거라고 얘기해줬다. 아랑각도 여기 있다고 내려주셨다. 찾아갔다. 영남루의 아래, 강 기슭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 아랑각이 있었다. 입구의 설명문에는, 죽음으로써 순결을 지킨 여성이라고 적혀 있다. 새로 부임하는 사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서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밀양에 한 사람이 자원해서 왔더니, 성폭력을 당하고 원통하게 죽은 여인이 밤마다 나타난 것이었다는, 그래서 그 여인을 죽인 남성을 벌하고 더이상 귀신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게 아랑설화다. 장화홍련전의 원형이기도 하고, 많은 설화들에서 반복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걸 어떻게 죽음으로써 순결을 지킨 거라고 설명하니. 죽어서도 싸운 성폭력 피해여성이라고, 그래서 죽은 후에야 '살' 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작은 사당에는 영정 그림이 걸려 있었다. 다부지면서도 은은한 느낌의 얼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밀양시 여행 안내책자를 보니 육영수 여사가 봉안한 거란다. 그러고 나니 왜 그 얼굴이 박근혜 닮아보이니, 그것 참 아쉽게시리. 

영남루 옆에는 작곡가 박시춘 생가도 있다. 인터넷을 보면 일제 강점기 민중들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라는 소개도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는 사람이다. 어쨌든 애수의 소야곡이나 봄날은 간다는 완전 좋아하는 노랜데...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

총회 시간에 맞춰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너른마당은, 2008년 밀양에서 촛불을 들고 모였던 사람들, 밀양에서 꾸준히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만든 협동조합 성격의 조직. 자세히는 모르고, 밀양에서 만나기로 했던 이가 몇 번 뿌듯해하며 이야기한 기억이 있어 궁금했던 터. 아무래도 지역 현안이 있다 보니 송전탑 문제를 다룬 영상 상영으로 시작한다. 2011년 사업과 회계 보고, 2012년 사업 계획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회의는 격식을 따지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의견을 모으며 이어진다. 작년 운영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올해 어떻게 다르게 해볼까 의견을 모은다. 우연찮게도, 대구에서 들은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들이 있다.

자발성. 사람들이 모임에 더 자주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 '자발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돌아오고, 그래서 다시 어떻게 '자발성'을 만들어낼지 이야기가 돌아간다. 자발성을 '독려'할 방법을 찾는다는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어쨌든 '자발성'이라는 말은 언제나 '비자발적'이라고 가정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는데. 저마다 가진 삶의 전략을 읽어내지 못하면 '기대되는 자발성'을 만나기란 어려울 것. 이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그래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더 가깝게 사람들을 만나고 '잘' 만나는 것 같아 부럽기도. 창원에서 친구와 나눈 '전략조직화'에 대한 고민도 겹친다. 약간은 장소와 인권 깔때기로 이어지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날 것인가, 에 대한 고민. 

또 하나는 공부방. 밀양 너른마당이 운영하는 시끌벅적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만화 그리기, 연극, 이런 수업을 한다. "다르게 키우자는 거니까." 대구에서는 이제 '과외'를 시작하려고 한다. 서울에서 같이 내려간 이는, 그게 영 내키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지도 못할 테고, 아이들에게 성적을 올리는 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는 게 싫은 거다. 하지만 그이들이 과외'라도' 하려고 하는 건 그 아이들이, 혹은 그 부/모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 아들 한 명을 혼자 벌어서 키우는 한 어머니는 교재비를 대느라 월세를 세 달 밀렸다고 한다. 몸이 좋지 않지만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 그게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조건. 과외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하는 걸 늘 빚진 마음으로 안고 살게 되는 사람들과, 다른 걸 가르쳐줄 수 있어 뿌듯해하는 사람들. 맞거나 틀리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는 낙관을 갖는 수밖에.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낙관. 

 

#

이어진 탈핵 강의는 완전 대박. 아주 쉽고 친절한 설명에, 약간의 연극적 요소까지 가미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시더라. 탈핵이 얼마나 중요한 시대적 과제인지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허랑하게나마 녹색당 가입한 게 뿌듯해지고. 아주 약간은, 핵 이야기를 할 때 주요한 논점인 안전/위험에 대해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일단 위험하니 탈핵해야. 밀양에 들르길 잘했다는 생각에 또 기분이 실실 좋아져. 

기억에 남는, 아니 기억에 남기려고 메모해둔 두 가지 이야기. 후쿠시마 발전소가 그렇듯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도 위험한 일일수록 불안정 노동자들이 맡고 있어. 용역업체를 통해 들어오거나, 일용직처럼 계약. 이를테면 원전 설비를 보수하거나 하는 일들. 이들은 여기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을 따라 돌아다니다 보니 피폭량 추적도 어렵다는 거. 당연히, 조직도 어렵겠지. 어설프게 '인권'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 어쨌든, 인간이 처한 위험을 말할 때 쉽게 놓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선뜻 동일시하지 않는 이야기. 아주 오래 전부터 '위험'을 살아냈던 사람들. 

탈핵이 필요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 원자력국가들은 원자력 발전의 성격상 전기를 낭비하는 구조에 길들어 있어서 전기를 절약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용 부담도 필요하단다. 이런 부담은 누구나 기꺼이 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건강보험료 인상 논의가 그랬듯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 

 

#

밀양에서 만나기로 했던 이는, 강연이 끝나고 무슨 회의를 할 게 있었나 보다. 잠깐 기다리려다가 얘기가 길어질 듯도 해서 도서관 1층으로 내려왔다. 오랜만에 신문을 읽고-안 읽으면 안 궁금한데, 읽으면 또 재밌다 큭-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다시 들어가서 신문을 읽다가 다시 나와서 엄마랑 통화 하고, 뭐 이렇게 시간이 흘러 열한 시가 되어가는데 소식이 없어 전화를 했다. 사람들과 긴히 이야기할 게 있어서 벌써 다른 데로 자리를 옮겼단다. 허걱. 너른마당으로 갔다. 송전탑 대책위 일이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인가 보다 싶어 막기차를 타고 창원에 갈까 하다가 그냥 가기는 아쉽기도 하고, 그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들어갔더니 너다섯 분이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어렴풋이 짐작되는 상황이고, 그 전장에 여행 다닌답시고 엉거주춤 앉아있기가 죄송하기도 하고. 앉아서 이야기 들으면서 이런저런 고민 얻었지만 여기에다가 풀어놓기는 좀 애매하고, 어쨌든 따땃한 방 구들에서 새우깡이랑 먹는 맥주는 맛있었다. 자리를 옮겨 두어 시간 더 이야기도 듣고, 내게 궁금하다 물으시는 거 얘기도 하다가, 직접 지었다는 그이의 집에서 짐을 풀었다. 기침이 더 심해지는 듯도 하고 조금 걱정. 그래도 여기저기에서 반가운 사람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지는 게 참 좋다. 

 

#

하루 늦긴 했지만 유일하게 예정돼 있던 창원으로. 밀양에서 무궁화호로 30분. 아기 낳고 육아휴가 받고 잠시 내려와있는 친구를 만났다. 서울에서 알게 되고 늘 서울에서 만나던 친구를 창원에서 만나니까 그것도 참 새롭. 편하게 만나던 친군데 얘가 맛난 거 사준다고 맛집도 검색해서 찾아뒀다. 애 낳았을 때 한 번 보고 오랜만이긴 하지만, 그새 사람이 달라졌을 것 같진 않고, 장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가 싶었다. 큭. 그런데 그게 또 신기하게, 창원에서 만나니까, 활동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아니라 고향 친구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되더라. 오가는 이야기도 그렇고, 이야기의 느낌도 그렇고, 참 반가웠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내가 짐작하고 헤아리기는 어렵겠지만, 힘든 시간들이었을 테고 앞으로도 꽤나 오래동안 그럴 거라, 응원해주고 싶었는데, 친구는 어땠을라나 모르겠다.

이야기를 나누며 든 생각.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24시간씩 365일 이상을 늘 함께 있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러니 그 관계가 어떻게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루에도 수십 갈래의 마음이 오가는 게 당연하지. 이른바 '모성애'라고 부르는 것은 그 마음을 '핏줄'을 나눈 사람의 관계로 너무 쉽게 치환해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말려들어가면서 생기는 문제들도 많은 듯. 흠, 어쨌든 즐겁게 아이랑 지내기를 바라게 되고, 문득 임신한 동생 생각도 나고, 용지못을 한 바퀴 돌면서, 오랜 친구와 풋풋한 시간. 

 

#

창원시청 앞에서 나를 넘겨받은 이는 1999년(맞나? 맞겠지?)에 처음 만난 이. 벌써 10년도 더 됐는데, 아마 그 사이에 만난 건 열 번이 분명히 안된다. 열 번? 다섯 번도 안될 거다. 그때도 나는 대우조선을 갔으니 다른 조였을 테고. 그런데도 그때부터 쭉 뭔가 이어져오는 듯한 느낌. 그이가 워낙 사람들한테 따뜻한, 정이 많은 사람이라 그럴 거다. 아주 가끔 만나도 쭉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챙겨주는 분. 이번에도 덕분에, 창원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장복산 길을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아 저기 이상관 열사가 일하던 공장, 처음으로 그곳을 봤고, 안민고개를 넘어 진해시내를 보면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 그때 그 사람들 이야기 주워듣고, 다시 내려와 주남저수지를 같이 걷고, 덕분에 재두루미를 제대로 보고, 잉어찜도 처음 먹어보고.

그리고 또 듣게 된 이야기.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지만, 그가 마음을 아주 많이 다쳤을 거라는 짐작은 됐다. "그냥 놀다가" 창원 와서 공장 입사해 한참 어린 동생들이 열심히 사는 것 보고 반성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산재 처리를 제대로 안 해주니까 싸우기 시작해서, 줄곧 활동을 했던 사람, 그리고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니까. 나도 그이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잉어찜을 열심히 먹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 

 

#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는 역시 같은 해 알게 된 친구. 집에 들어가니까, 여행 마치고 내 집에 온 것 같은. 그러나 역시 만난 횟수로 따지면 얼마 안 된다. 그이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농성할 때 준 회색 인형, 쥐라고도 하고 곰이라고도 하고 물개라고도 했던 인형, 아직 잘 있다. 아해가 이이를 한동안 무서워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난 한 번도 무섭다는 생각 안해봤는데. 아해는, 둘 다 무서운 사람이라 그렇다고 놀렸다. 그런지도 몰라. 나보다, 당연하겠지만, 조금 더 단단한 사람, 나한테는 참 소중한 친구다. 근데 언제부터 친구가 됐을까. 나이도 한참 많은데 내가 맘대로 친구라고 부른다. 큭. 

프레스에 두 손이 잘린, 기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 상태로 한 시간을 있었다는, 네팔에서 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녹산공단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선전전하면서 들었다는 생각들, 멀리 보며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이야기, 거제의 작은 조선소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리저리 오가는 이야기들 들으면서, 나 역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고, 해바라기차에, 보드카 카푸치노라는 알콜음료와, 캔맥주 하나를 비우고, 잠을 청했다. 낮에 만났던 친구가 한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되겠냐고, 절반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한 사람을 아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아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들은 이야기들은 어디쯤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나는 이제 또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이렇게 잠들면 또 하루가 이어지겠지. 

 

#

나도, 친구도 아침을 안 먹는데, 한 끼 대접할 기회를 주기로 하고 굴국밥을 먹으러 갔다. 역시나 우연히 서울에서 내려온 활동가들을 만나 반갑게 안부 나눴다. 나에게 안식년을 선포하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저기 알리게 됐다. 흐흐. 오전에 시작되는 교육 일정을 준비하는 친구와 인사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안식년에 어울리지 않게, 케이티엑스를 탔다. 무궁화호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흑흑. 

돌아와 책상 앞에서 이제, 여행이 끝난 듯. 여행의 흔적은, 콜록대는 나를 보고 친구가 붙여준, 목과 명치에 붙어있는 침(스티커 같은). 하지만 감기는 내 몸을 떠나실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 기침이 더 심해진 걸 보니, 쉬어서 감기 걸린 거라던 친구 말이 맞는 건가 덜컥 겁도 난다. 하지만 정말 이제 안식년 시작이다. 닷새 간의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환대, 내가 배워야 할 것들 다시 기억하면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안식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하면서, 하하, 끝이다. 스티커 세 개의 두께만큼은 자란 여행이기를. 이제 진짜 마감 원고 넘겨야지. 큭. 근데 아무리 그래도 매일같이 밤이 이슥하도록 술 마시면서 다닌 건 좀 그렇다. 큭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2/28 19:54 2012/02/28 19:54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aumilieu/trackback/80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