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100402 터키

미류님의 [걷다 -100401 터키] 에 관련된 글.

 

# 새벽부터 열기구를 타러 나섰다. 열기구 회사는 꽤나 많은 듯했다. 사람들도 진짜 많았다. 여기저기서 열기구 풍선에 바람을, 바람이라기보다는 불을 쬐어 부풀리기 시작했다. 무지개색 알록달록한 이쁜 게 우리가 타는 거였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랐는데 우리가 타게 된 건 그냥 빨간색과 하얀색 띠가 번갈아 있는 줄무늬였다. 풍선이 불룩해졌다. 사람들이 바구니에 들어가 섰고, 날아가지 않도록 차에 붙들어맨 끈을 풀었다. 설렜다. 그런데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열기구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우리가 탄 건 미적거린다. 말도 안 통하니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기다렸다. 슬슬 올라가다가 하늘 높이 한 번 올랐다. 아, 카파도키아의 넓은 땅이 눈에 들어온다. 편평한 대지가 마치 찢어진 것처럼 벌어진 틈이 계곡이라고 부르는 곳들이고, 거기서 조금씩 떨어져나오면서 바람에 패인 것들이 이런저런 이름이 붙은 바위가 된 것들이었다. 며칠 묵는 일정으로 오는 사람들은 그 계곡을 따라 트래킹을 하기도 한다는데 그것도 참 해볼만하겠다 싶었다. 그 광경은 충분히 사람을 압도한다. 그러다가 슬슬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곡의 절벽들 가까이에서 슬슬 바람을 타며 움직인다. 땅에서는 꽤나 높은 곳인데 옆에서 지나치며 보는 풍경은 또 다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좀 가다가 별로 움직이지 않고 계속 비슷한 곳을 맴돌고, 너무 낮게 움직여 땅에서 보는 것과 별 차이도 없는 듯한 풍경으로 바뀐다. 열기구를 운행하는 사람은 무전기를 통해 뭔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상황을 대략 짐작해보건대 가스가 부족해 널따란 바닥으로 움직여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던 듯하다. 다행히 땅바닥까지 내려오기는 했다. 솔직히 좀 돈 아까웠다.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거라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몇몇 열기구들은 아주 먼 거리를 다니면서도 고도를 조절하고 그러던데(특히 카파도니아발룬이라는 회사의 열기구가 가장 부드럽게 움직이고 먼 거리를 날아왔다.) 우리가 탄 건 한 번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온 게 끝인 셈. 사실 타고 있는 동안 다른 열기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더 눈이 갔다. 워낙 우리가 탄 기구가 별 움직임이 없어 그렇기도 했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일 뿐만 아니라 맛있어보이는 게 어쩔 수 없어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후회가 더 컸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마도 안 타고서 하는 후회보다는 작은 후회일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 터키에 간다면 나는 추천을 할 듯하기는 하다. 다만, 그 열기구가 얼마나 잘 날아올라 움직여다닐지는 타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걸 감수해야 한다는 정보와 함께. 참, 내가 탔던 열기구 회사는 아나톨리아발룬. 뭐, 인샬라.

 

# 아침 먹고 앙카라로 출발. 버스에서 주로 <터키의 유혹>을 보다가 잠깐 <프렌즈 터키 편>을 봤는데, 지은이의 인사말에 풀꽃평화연구소에 전하는 감사 인사가 보였다. 갑자가 책이 조금 달리 보이고 신뢰도도 올라가는, 이 편견은 어쩌면 좋을까.

 

# 버스 안에서 들은 가이드의 말들 중 기억나는 것. 터키에서는 1년차 은행직원의 월급이 천 달러 정도인데 대통령 월급은 3천 달러 정도라는. 이스탄불 역시 임대료가 꽤나 비싸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은 더욱 그렇고. 그런데 최근 들어 시 외곽에 주택들이 지어지면서-터키의 토지주택공사 같은 TOKI가 짓는 공공주택인 듯- 도심에 빈집들이 많이 생기고, 그래서 임대료 인상이 주춤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은 1년 정도 임대하고 나면 5~10% 임대료 인상이 일반적이었다는데 요즘은 집주인들이 올리겠다는 말을 안 꺼낸다고. 서울은 시 외곽에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미분양 아파트들이 생기고 그래도 임대료가 주춤한 적은 별로 없는데, 주거와 관련된 정책들이 더 궁금해졌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아타투르크는 나라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쩝)의 이야기를 한참 들려주다가 중간에 어떤 맥락에서인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북핵에 찬성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런 생각은 아주 드문 생각은 아닌데, 그래도 마주한 사람에게서 직접 들으니 약간 놀라웠다.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진다.

 

# 앙카라는 카파도키아에서 이스탄불까지 한 번에 가기는 너무 먼 길이라 중간에 들르는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터키의 수도이기도 하니 충분히 들러볼 만하다고. 그런데 원래 상품의 일정 중 앙카라에서 하는 건 한국공원 방문밖에 없었다. 굳이 한국공원을 가보고 싶지도 않고, 대충 낮 시간에 앙카라에 떨어지면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가보고 싶다고 따로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전날 가이드에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단체일정이고 무슨 사고가 생길지 모르니 좀 어렵겠다고, 하지만 좀 고민은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아침에 버스에서는 다같이 박물관에 간다면 가고 아니면 아타투르크묘소를 일정에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역시나 일행 중에 박물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부부 한 팀이 손을 들까말까 고민하는 정도. 아무래도 박물관은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고 봐서는 뭐가 뭔가 싶은 곳이기도 하고, 그건 나나 엄마도 마찬가지일 테고, 하지만, 흑흑. 초대 대통령을 기리는 거대한 묘소에도 굳이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따로는 안된다니 다만 일찍 일정이 끝나 자유시간이 좀 생기기만을 기대했다.

 

# 아타투르크 묘역은 엄청나게 넓은 대지에 마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건물-안에 대리석 관이 있고 천장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는-과 아타투르크가 썼던 담배케이스와 키우던 개의 박제까지 전시되어 있는 꽤나 큰 전시관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어느 나라나 역대 왕이나 대통령 중 널리 존경받는(존경되도록 교육받는) 이들이 있고 그이들을 위한 장소들이 있으나, 직접 가본 적은 없으니 비교는 못하겠고, 다만 역겨웠다. 특히나 엄청난 무게의 대리석 관 하나를 놓아두고는 엄청난 높이의 기둥들을 올려 금칠한 천장을 얹어놓는 곳은 화가 날 정도였다. 이걸 만들기 위한 기금은 모두 국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조성됐다는데 한국에서 평화의 댐 만든다고 사람들 돈 뜯어간 거랑 다를까 싶었다. 자발적이라는 말은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설령 정말정말 자발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사용하는 방식이 이렇게나 인물 중심인 건 문제가 있고, 정말정말 자발적으로 돈이 모일 정도로 무스타파 케말이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그는 절대로 그 돈이 이렇게 쓰이는 걸 바라지 않았을 게다. 게다가 그 묘역에서 내려다보이는 앙카라의 시가지 풍경에는 오밀조밀 산을 타고 힘겹게 앉아있는 판자촌들도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짓들인지. 너무 화났다. 게다가 전시관이 예상보다 컸고 중간에 나올 수 있는 길도 없어서 시간이 꽤나 늘어졌고 결국 자유시간은 생기지 않아서 더더욱 화났다.

 

# 한국공원은 정말 손바닥만한 곳이었다. 지나가면서 보는 것과 내려서 보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는. 세상에 이 일정 하나였다니. 내려서 간단히 묵념을 했다. 나는 머쓱했지만, 모든 전쟁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같이 묵념했다. 뭔가 뻘쭘하다. 다른 일행들은 어떤 마음으로 묵념했을까. 한국을 위해 싸워줘서 고맙다는 마음, 터키와 한국은 진정한 형제라는 인식 또는 관념은 꽤나 익숙한 것인 듯하다. 하지만 터키와 미국이 싸운다면(국제정세로 보면 그리 현실성 없는 가정이지만) 한국은 터키군과 함께 할까. 물론 그때의 의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두 옛일. 그렇다고 터키 편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 아니다. 그저 국가와 국가, 전쟁과 전쟁,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경계들이 문득 무겁게 다가왔다.

 

# 앙카라의 숙소 도착. (일단 여기까지 쓰고 내일 다시) (다시) 앙카라의 숙소는 구시가지의 한복판에 있었다. 매우 번잡한 곳이었고 호텔 앞은 4차선 도로였는데 차가 엄청나게 많이 다녀 시끄럽기도 하고 공기도 혼탁했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서 키벨레여신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황소상을 못 만난 게 못내 속상하기도 했고 아타튀르크 묘역에서 쌓인 짜증 때문에 잠시 산책이나 할까 하고 혼자 호텔을 나섰다. 호텔 바로 옆골목을 따라 걷는데 약간 음침한 분위기(돌아보면 대충 서울시청 뒷골목 정도의 느낌이기도 한데)가 돌고 약간 뒷쪽으로는 판자촌으로 보이는 밀집거주지역도 언뜻 보였다. 여행객 티를 안 내려고 가방도 안 둘러메고 나왔는데 숨길 수 없는 얼굴이 너무 뻔하기도 하고 들고 간 겉옷이라고는 등산용밖에 없어 티가 안 날 수는 없었다. 그냥, 그냥 걷는 건데 몸이 굳는 느낌이 든다. 어느 여행 안내서나 그럴 듯하지만,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당부는 강력했다. 그냥 퇴근하는 사람들일 텐데 잠재적 소매치기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도 어떤 차이가 드러났는데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나 수더분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스쳐 지날 때와, 조금 껄렁한 자세나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지나칠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옷차림이나 생김새에 대한 편견은 이토록 강력한 건가 싶었다. 동시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 역시 나처럼, 말이 안 통하는 한국인들이 잠재적 소매치기로 보고 있을까 싶어 섬찟하기도 했다. 필요 이상의 부적절한 긴장을 어떻게 봐야 할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동안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읽었는데, 앨리스가 체스판을 돌아다니다가 아기사슴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름을 잃는 숲에서 아기사슴을 만나게 되고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숲을 헤매다 어느 순간 숲을 벗어나 이름을 찾게 되고 그때 앨리스와 아기사슴은 서로 사람 아이와 아기사슴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동시에 아기사슴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이걸 읽는데 앙카라에서 느꼈던 긴장이 다시 떠올랐다.)

 

# 좀 걷다가 다시 돌아왔다. 담배를 한 대 피워서 냄새가 났는지, 엄마가 "그렇게 나갈 때마다 담배 피우는 거냐?"고 묻는다. 하루에 한 두 대밖에 안 피운다고 항변했는데, 어쨌든 공식화되어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혹시 괜시리 짜증이 나곤 했던 이유는, 뭔가 엄마에게 숨길 것이 있었기 때문이거나 엄마와 함께 있어 늘 하던 걸 못하게 된 불편함 때문이거나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으나, 그 정도까지야. (이 후로 엄마한테 말하고 담배 피웠다. 흐.) 엄마랑 같이 다시 나가 거리를 좀 걸었다. 공기가 텁텁한 데다가 빗방울도 간간히 떨어져 멀리 가지는 못했다. 반대편으로 좀 걸어가니 울루스 광장이 나왔다. 역시나 아타투르크 동상이 있다. 몇몇 표지판들을 눈여겨본 결과 숙소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알게 됐다. 숙소에서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까지 걸어서 20분 거리라는 걸 알게 되니 다시 또 속상해졌다. 밥 시간 맞춰 돌아왔다.

 

# 시간이 참 길다. 사무실에서의 일주일이나, 안식주라도 그냥 책이나 읽으면서 보내는 일주일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일주일의 차이가 크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살아내는 느낌이다. 시간을 달리 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 하나는, 몸을 바삐 움직인다는 것, 천천히 걷더라도 멀리 움직인다는 것이다. 공간이 넓어지는 만큼 시간도 길어지는 것, 묘한 기분. 몸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 숙소는 쫌 많이 별로였다. 침대 하나 들어갈 정도의 방에 좁은 침대 두 개를 밀어넣고, 트렁크를 바닥에 펼쳐놓을 정도의 공간도 나지 않는, 침대 위에는 군용 모포 같은 것 한 장이 이불이라고 놓여있는, 약간 당혹스러운 느낌이 드는 방. 못 묵을 정도의 방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른 일행들의 방은 그렇게 좁지도 않고 이불도 면커버로 쌓여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갑자기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우습다. 열기구도 그렇고, 자꾸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내가 그렇다는 얘기.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뭐 이런저런 불편함 때문이었는지 꿈에 사무실이 나왔다. 누가 나더러 소식지에 실을 글을 쓰라고 했는데, 영 쓰기 싫었는데 별 말을 못하다가 문득 내가 안식주 중이라는 걸 깨닫고 "나 지금 안식주인데.." 라고 말하곤 약간 안도하면서 잠을 깼다. 꿈이 너무 선명했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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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23:54 2010/04/0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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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걷다 -100403 터키

    2010/04/07 13:04

    미류님의 [걷다 -100402 터키] 에 관련된 글. #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로 넘어오는 동안 가이드는 이스탄불의 역사, 주로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에 앞서 청동기와 철기 시대까지를 포함한 터키 서부의 역사도 설명해줬다.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를 하며 청동보다 강한 철이 싸워서 이겼다는 내용. 들으며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검 생각이 났다. 청동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나 철은 녹슬어 부스러진 채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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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7 01: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정말 궁금한데요....여행 중에 미리 써놓으셨는지? 아니면 이 많은 여행기를 지금 막 생산(!)하신 건지? 후자라면 이게 사람이 하는 일이란 말입니까...

    • 미류 2010/04/07 10:20 고유주소 고치기

      ㅎ 버스타고 움직이는 동안 몇 가지 단어들 메모해두었다가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쓰고 있는 거예요. 기억이 많이 남아있을 때 이렇게라도 정리해두는 게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함. ^^

  2. 초코 2010/04/15 11:5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정말 대단한 걸.. 몇 가지 단어를 메모해 이 많은 기억들을 되 살려냈다는 게^^

    그나저나 거기가서까지 사무실 꿈을 꾸다니 ㅋ ㅋ

    • 미류 2010/04/16 09:38 고유주소 고치기

      메모해두면 기억들이 저절로 살아나서 꿈틀거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여행 다니면서 남긴 메모들은 그런 듯. 물론 바로 봐야지만 ㅎ 그나저나 난 왜 그런대니?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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