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100401 터키

미류님의 [걷다 -100331 터키] 에 관련된 글.

# 아침 기상 시간이 조금 여유로웠다. 평소대로 일어난 엄마랑 나는 호텔 뒷편의 공사장(아마도)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걸었다. 나긋나긋한 느낌의 땅. 푹신푹신했다. 이럴 때 엄마 팔짱 꼭 끼고 이쁘게 산책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카파도키아로 가는 날이다. 터키의 관광 명소 3위 안에 꼽히는, 보통 1위인 곳이라고 한다. 매우 넓은 내륙의 지대인데, 바다속에서 쌓인 사암층 위로 일반적인 땅이 만들어지고 그 위로 용암이 흘러 굳은 지층이 생긴 지대다. 석회층이 많아 지하 도시도 많고 땅 안에 자리잡은 교회와 거주지들이 남은 곳. 그리고 매우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곳. 스타워즈를 촬영한 곳이 이 곳이라고 한다. 근처로 가면서 엿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곳.

 

# 데린구유는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그 전부터 사람들은 살았던 듯하고, 어쨌든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대에 기독교도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하 20층 정도의 규모이고 공간도 매우 잘 만들어져있다. 지하 가장 밑까지 환기가 가능하도록 파놓은 우물이 인상적이었다. 아주 깊은 곳까지 햇살이 스밀 수 있도록, 시원한 공기가 다가갈 수 있도록.

 

# 우치히사르 요새는 역시나 이 곳 지형을 이용해 만들어진 요새. 가는 길에 버스 세워놓고 그냥 사진 찍으란다. 요새의 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 있고, 그 곳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파도키아의 모습이 장관이라는 책 소개에 엄청 기대했는데 실망. 아침에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 나와도 걸어가볼 수 있는 곳일 텐데 아쉬웠다. 미리 알았더라면 제안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점심 먹고 일찍 나와 휘리릭 올라가 보았는데 근처도 못 가봤다.

 

# 점심은 항아리 케밥을 먹었다. 나가는 길에 또 쇼핑 일정이었다. 카파도키아는 이 근방에서만 나는 터키석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터키석은 터키에서만 나는 게 아닌데, 지역마다 빛깔이 다르다고 한다. 이걸 한국말로 설명하더군. 또 이런 쇼핑 일정에 약간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쨌든 이 근방에 나는 건 앤틱 터키석이라고, 파란색보다는 카키색 또는 옥색 등 녹색 계열의 색과 흙색이 적당히 섞이며 마블링 같은 무늬를 가진 것이었다. 이뻤다. 물론 비쌌다.

 

# 괴레메 야외박물관은 카파도키아의 지형을 이용해 교회들이 모여있는 곳. 괴레메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교회들 안에는 저마다 특징이 있는 프레스코화들이 있어 그것에 맞춰 이름들이 붙어있다. 성상 숭배를 반대하는 성화 파괴 운동이 한창일 때 많이 파괴되어 잘 남아있지는 않았고, 사람의 모습에서 눈이 실질적인 힘이 있는 부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주로 눈을 공격해 프레스코화를 파괴한 바람에,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르바라라는 여성(기독교로 개종)의 기적을 기리는 성 바르바라 교회, 젖가슴이 불룩 나와 있으나 얼굴에는 수염이 있고 음부는 가려진 여성이 그려져있는 일란르 교회가 기억에 남는다. 일란르 교회에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의 어머니가 십자가를 쥐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묘하게 아름다웠다. 한 군데를 안 들른다 싶었는데 나중에 책을 보니 입장료를 따로 받는 교회라고 한다. 유명한 그림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카란륵교회라고 한다. 따로 내더라도 가보면 좋지 않나 싶기도 한데. 박물관을 나와 내려가는 길에 토칼리 교회도 들렀다. 우치히사르에서 아쉬운 게 있어서 미리 가이드에게 토칼리 교회도 들르냐고 슬쩍 물어봤더니,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들를 수 있었다. 버스를 타러 주차장 내려가는 길인데 원래 계획에 없었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고마웠다. 이 곳의 프레스코화는 파란 색이 많이 사용되어 다른 교회와 느낌이 다르고 규모도 다른 교회보다 훨신 크다. 교회는 이전 양식인 십자형 돔 양식과 일자형 원통 묘양 지붕 양식이 합쳐진 모습이었다. 예수의 일대기가 거의 그려져있다는데 예수를 모르니 그냥 그림만 보다가. 쩝.

 

# 이어서 들른 파샤바, 데브란트 계곡은 모두 카파도키아의 지형에 따른 기암괴석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유명한 버섯바위가 있는 곳이 파샤바 계곡이고 낙타바위 등 다양한 모양으로 볼 수 있는 바위들이 있는 곳이 데브란트 계곡. 이 지대가 바람에 깎여 침식을 받는데 용암보다 다른 층들이 먼저 깎이다 보니 만들어진 기암들이다.

 

# 파샤바계곡 근처가 관광상품을 조금 싸게 파는 편이라길래, 나자르 본죽을 샀다. 터키의 부적이라는 파란 눈. 예전에 터키와 이집트 등을 다녀온 후배가 기념품이라고 줘서 받았던 기억이 있다. 가이드는 받아도 별 쓸모없는, 그게 핸드폰 고리이든 열쇠고리이든, 기념품이니 그걸 사려거든 차라리 한국에서 밥을 한 끼 사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받았던 걸 처음에는 서랍에 걸어두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른다. 그래도 뭐라도 사가야 할 것 같아서 굳이 샀다. (나중에 냉장고에 붙일 수 있는 자석으로 만들어진 걸 발견했는데 그게 핸드폰 고리보다 훨씬 쓸모있을 듯해 아쉬웠다.) 또다른 가게에서는 헐렁한 면 바지가 이쁜 게 있어서, 며칠 전 샀던 옷이랑 같이 입으면 어울리겠다 싶어 한참 들여다봤다. 가격을 물어볼까 하고 꺼내들었는데, made in nepal 이라고 붙어있다. 헉. 그냥 다시 내려놓았다. 충동구매를 자제시키려는 하늘의 뜻이었을 게다. 인샬라. 이 시장에는 골동품 가게도 몇 군데 있어서, 아마 길가메쉬의 얼굴인 것으로 기억되는 석상들도 있었다. 보는 순간 선물하고 싶은 이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골동품도 아닌 듯하고 그닥 포스도 느껴지지 않아, 또 다니다 보면 다시 보게 되겠지 싶어 말았다.

 

# 열기구를 타러 나갔다가 바람이 너무 세서 못 탔다. 빨간 풍선을 몇 번 날려보더니 오늘은 안되겠다는 눈치다. 내일 새벽을 기약하며 다시 숙소로. 한국에서 나오기 전에는 열기구를 타지 않을 작정이었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한국 돈으로 25만 원 정도다. 한 시간 구경을 위해 그 돈을 쓰는 건, 아무리 다시 없는 기회라지만 적절한 건 아닌 듯했다. 가이드가 열기구 신청을 받은 건 이틀 전쯤. 적극 추천했다. 가이드뿐만 아니라 들고간 여행 안내서도 모두 하나같이 카파도키아에 왔다면 열기구는 타야 한다는 분위기다. 생각할수록 안 타면 후회할 것 같고, 다니면서 돈 쓸 일도 별로 없는데 그냥 타보자는 생각이 들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경험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들이 귓가를 맴돌아, 신청했다. 하루지만 카파도키아 지역을 돌아보고 나니 열기구 신청한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더욱 기다려지는.

 

#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엄마랑 숙소 근처를 돌아다녔다. 여기도 관광도시인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함직한 가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골동품 가게에서 아주 작은 컵(? 잔?)을 샀다. 소주나 한 잔? 흐흐. (돌아와서 씼었는데 녹이 그대로다. 뭘 담아 먹는 건 불가능할 듯. 흑흑)

 

# 밤에는 밸리댄스와 세마 춤, 그리고 민속춤(책에 호론과 할라이라고 소개된 춤을 공연용으로,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에서 하는 꼭두각시 춤처럼 만든 게 아닐까 나중에 추측)을 보여주는 곳에 갔다. 음, 전반적으로 별로. 밸리댄스는 그리 풍부하지 않았고, 메블라나 세마 춤은 -당연하겠지만- 종교적이지 않았고, 민속춤은 흥미롭기는 했으나 못 봐서 아쉬울 정도는 아닌. 어디 지나는 길에 동네에서 잔치하면서 추는 걸 보면 같이 손잡고 스텝도 밟아보고 싶어질 듯도 한데. (이 춤은 책에 따르면, 동부 지역의 춤이라고 한다. 우리 일정은 터키의 서쪽 반 정도를 훑는 여행이니 볼 가능성은 없었다.) 공연을 보면 술은 공짜로 나온다니, 공연료가 얼마일지, 이 역시 여행사 상품에 아쉬운 것. 유일하게 좋았던 건, 라키를 물에 타니 정말 하얀색이 된다는 걸 확인했고, 희석해 마시니 향도 은은해지고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라 괜찮다는 거. 돌아갈 때 하나 사갈까 말까 고민. 전에 사무실에서 마실 때 반응이 그리 좋았던 게 아니라서,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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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23:26 2010/04/0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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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걷다 -100402 터키

    2010/04/07 00:45

    미류님의 [걷다 -100401 터키] 에 관련된 글.   # 새벽부터 열기구를 타러 나섰다. 열기구 회사는 꽤나 많은 듯했다. 사람들도 진짜 많았다. 여기저기서 열기구 풍선에 바람을, 바람이라기보다는 불을 쬐어 부풀리기 시작했다. 무지개색 알록달록한 이쁜 게 우리가 타는 거였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랐는데 우리가 타게 된 건 그냥 빨간색과 하얀색 띠가 번갈아 있는 줄무늬였다. 풍선이 불룩해졌다. 사람들이 바구니에 들어가 섰고, 날아가지 않도록 차에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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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우스 2010/04/07 00:1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어머나? 터키 가셨어요?
    맨 마지막줄 라키 고민하시는 것에 대해 그냥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사오세요~ 대환영!" ㅋㅎ

    • 미류 2010/04/07 00:49 고유주소 고치기

      ㅎ 지금은 다녀와서 정리하고 있는 중이어요. 결과적으로 라키는 사왔고 내일 사무실에 갖다놓게 될 듯요. 라키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면 작은 거라도 한 병 더 사올 걸, 달랑 한 병만 사왔네용.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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