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이 한 건물을 사서 원래 장사하던 사람을 내보내려다가 여론에서 호되게 욕을 먹었나 보다. 며칠전 리쌍의 해명글까지 포함해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봤다. 건물을 사용하려고 샀고 그래서 비워달라고 했는데 '갑'의 횡포라는 비난에 휩싸이니 리쌍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을 제한하는 조항이다. 보증금 및 임대료가 일정액을 넘어서는 사람은 법이 제공하는 보호-계약갱신으로 임차기간 보장-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보증금 얼마간의 차이로 장사를 계속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갈리니 임차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다. 

 

그런데 설령 보증금이 법의 적용범위 안에 있다고 해도 장사를 계속 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가 철거나 재건축을 하겠다고 말하기만 하면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싸웠던 두리반이 바로 그 조항 때문에 1년 넘게 싸워야 했다. 최근 강서구 방화동의 카페 '그'는 장사를 시작하고 1년도 채 안돼 가게를 비우라며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걸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사실 이 모든 조항들은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조항들이다. 이미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만도 서너 개가 된다. 법이 개정되면 사라질 문제일까. 임차인이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기간이 5년이 적당할지, 7년이 적당할지, 10년은 넘어야 할지를 정하는 것은 가능할까. 용산4구역에서 장사를 했던 이들은 기간이 다양하다. 2년도 안 된 이도 있고, 10년이 넘은 이도 있었다. 계약이 어찌했든 개발을 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중지되었다. 

 

그래서 용산참사 당시에 '권리금'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도 했다.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권리금의 액수는 가게의 위치나 업종 등에 따라 다양하지마나 절대로 적은 액수가 아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된 관행인지 알 수 없으나 관행이라는 이유로 견고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권리금을 보상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건물을 비우도록 하려면 피해에 대해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보상은 상가임대차나 개발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평택에 미군기지를 확장하기 위해 농사 짓던 주민들을 내쫓을 때, 4대강 사업을 한다며 주위 마을의 주민들을 내쫓을 때에도 '충분한 보상'이 문제였다. 그들이 임차인인 것만은 아니다. 땅 주인이든 집 주인이든 국가가 토지를 수용하고 보상금을 공탁하기만 하면 그 땅은 국가의 땅이 되어버린다. 물론 '충분한 보상'은 언제나 쫓아내는 자들이 정했다. 

 

이 모든 것이 강제퇴거다. 쫓아내는 '갑'의 횡포와 쫓겨나는 '을'들의 억울함. 그런데 '갑'이 횡포를 부리기 때문에 강제퇴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갑'이 횡포를 부리냐 참느냐에 따라 '을'의 삶이 달라진다는 점이야말로 횡포의 본질이다. 사람들을 갑-을의 관계로 밀어넣는 구조를 이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다.

 

리쌍은 뭔가를 하려고 건물을 구할 때 왜 비어 있는 건물을 사지 않았을까. 혹은 원래 장사를 하던 사람들에게 건물을 사려는데 나가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건물의 주인만 되면 무엇이든지 맘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 때문이다. 거기에 사회는 '재산권'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리쌍이 빚을 냈든 벌어놓은 돈으로 샀든 건물의 주인만 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건물의 주인이든 땅의 주인이든 국가가 '공익사업'이라고 정한 사업을 하려들면 언제라도 그것을 앗아갈 수 있다. 건설회사들이 돈을 쓸어가는 개발 사업 역시 국가가 정한 '공익사업'이다.

 

강제퇴거금지법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핵심 내용은 "재산권 침해 우려"와 "공익사업 추진의 어려움"이다. '재산권'이나 '공익사업'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라고 인정해버리고 만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며 '경영상의 이유'를 말할 때에도 사람들은 기업의 '재산권'을 걱정하고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공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자신의 권리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번번히 '을'들을 내쫓는다. 국가가 '재산권'을 말할 때 그것은 통장에 찍혀 있는 잔고나 금고에 쳐박아둔 돈다발이나 자신의 명의로 등기되어 있는 어떤 건물 따위가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불평등을 보호하는 권리일 따름이다. 국가의 '공익'은 언제나 불평등의 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한 화법이다. 

 

남의 집 얻어사는 게 그렇지, 남의 돈 벌어 먹고 사는 게 쉽나, 남의 땅에서 장사하려면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들을 '남의 것'으로 설명하곤 한다. '을'들이 일하면서 흘린 땀은 먹고살기 위해 누려야 할 '재산'이 되지 않고 남의 '재산권'이 된다.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키는 힘"이 '재산권'으로 보호되는 한 '을'들은 삶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그 힘은 언제나 '을'들로부터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힘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 

 

누구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장소가 필요하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삶을 나눈다. 어떤 장소에서 내쫓긴다는 것은 단순히 피해를 입는다거나 먹고살기 어려워진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온 한 세계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인정하고 굴복하라는 요구다. 우리가 서로 근본적으로 동등한 인간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부당한 요구다. 그래서 강제퇴거는 인권의 문제다.

 

강제퇴거가 용인되는 동안 우리는 갑-을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이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주택임대차보호법, 토지보상법, 각종 개발법들의 개정이든, 땅과 건물에 대한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를 위한 법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함부로 내쫓을 수 있는 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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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5 17:02 2013/05/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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