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랜디존슨(미디어스 베이스볼 오타쿠)

2010/01/14 13:33

한국시간으로 6일 오전 9시.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를 접속하니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Big Unit officially ends 22-years career'(빅 유닛이 공식적으로 22년의 경력을 마감한다.)

 

랜들 데이비드 존슨(Randall David Johnson) 우리에게 랜디 존슨 또는 빅 유닛으로 알려져 있는 이 괴물이 한국시간으로 1월 6일 은퇴를 선언하였다. 5,000천 탈삼진에 125개를 남겨둔 채로 말이다.

 

그는 통산 300승을 기록한 스물네 번째 투수였고 불혹에 최고령 퍼펙트게임을 기록하기도 했다. 양대 리그에 싸이 영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내셔널 리그의 경우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접했고 커트 실링(2008년 은퇴)과 함께 공동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수능 준비생 시절 자율 학습시간에 하는 한국 프로야구 경기를 접하기 힘들었다. 대신 재방송으로나마 방과 후에 접할 수 있었던 메이저리그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시기 리그를 평정했고 김병현 선수 덕분에 집중적으로 중계했던 팀의 에이스로서 그의 강력했던 모습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다른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은퇴보다 더 많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더불어 격세지감까지.)

 

이에 이번 『베이스볼 오타쿠』에서는 랜디 존슨을 들으며 연상되는 장면들을 이야기하며 그에 대한 존경을 조금이나마 표현해 보고자 한다. 랜디 존슨의 이야기에 따르면 코치로 계속해서 활동할 것이며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접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일을 시작할 것이라 한다. 앞으로 그가 걷는 길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Randy Johnson, I will miss you.

 

(공이) 사람을 향합니다

 

메이저리그 매니아들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고 많은 야구팬들도 최근 기사들을 통해 접했겠지만 선수 초기 랜디 존슨의 제구력은 최악이었다. 풀타임 선발로 뛰기 시작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내준 볼넷이 120-152-144개였으며 그가 몬트리올 엑스포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자료화면은 공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장면이 대부분일 정도였다. 이후 랜디 존슨은 놀란 라이언이란 귀인을 만난다. 존슨은 그에게 기술과 심리에 대해 조언을 받았고 그 조언빨이 1993 시즌부터 적중했다는 것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서울말을 잘해도 조금만 당황하면 나오는 사투리처럼 한번 씩 그의 강속구는  포수 미트가 아닌 타자를 향하였다. 1993년 올스타전에서는 존 크룩(당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머리로 공이 가며 크룩의 얼을 쏙 빼먹은 적이 있었고 1997년 스프링캠프에서 J.T 스노우(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눈을 맞추기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올스타전에서 래리 워커를 상대하다 던진 공이 워커의 등 뒤로 향하게 되었다. 당시 불곰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래리 워커는 생명의 위험을 느껴(?) 헬멧을 거꾸로 쓴 채 오른 쪽 타자의 타석으로 옮기며 체면을 구겼다.  

 

빛났던 2001년 포스트 시즌

 

랜디 존슨은 포스트 시즌에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뛰던 199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과 맞붙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마이크 무시나와의 에이스 대결에 두 번다 패배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듬 해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우승의 필요조건인 에이스를 얻기 위해 팀 내 유망주였던 프레디 가르시아, 카를로스 기옌을 보내고 랜디 존슨을 영입하였다. 존슨은 정규 시즌 계속된 호투를 선보이며 팀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 시켰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케빈 브라운과의 에이스 대결에 또 다시 패배한 것. 이후 팀이 1승 3패로 디비전 시리즈에 탈락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3년 후.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회가 랜디 존슨을 찾아 왔다. 소속팀이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서부지구 1위에 오르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것. 조건도 이전보다 좋았다. 동료 커트 실링이 최고의 시즌을 보냈기에 에이스로서의 부담감도 줄일 수 있었다.

 

시작은 좋지 못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 출전했지만 당시 신인이던 알버트 푸홀스에게 홈런을 맞는 등 8이닝 3실점으로 패전을 기록했다. 포스트 시즌 7연패였다. 디비전 시리즈는 투구 내용도 팀 기여도도 1,5차전 승리투수였던 커트 실링에게 밀리는 모습이었다. 

 

그의 활약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NLCS부터 시작 되었다. 1차전 그렉 매덕스와의 맞대결에서 3안타 11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기록 했던 것.(그렉 매덕스는 7이닝 2실점) 포스트 시즌 연패기록을 깨는 경기였다. 봉인이 풀린 랜디 존슨은 5차전에서 7이닝 8삼진 2실점으로 또 다시 승리투수가 되었다.

 

뉴욕 양키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커트 실링, 김병현(부정적으로) 과 함께 두고두고 회자될 플레이를 선보인다. 2차전에서 앤디 페티트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11삼진 완봉승을 거두웠다. 6차전 앤디 페티트와의 리턴매치에서 7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김병현 선수의 계속된 블론 세이브로 인해 내려앉았던 팀 분위기에 불을 지피기도 하였다. 그리고 7차전 2:1로 지고 있던 8회 초 구원 등판하여 무실점으로 막으며 팀 우승과 함께 최종전 승리투수와 이틀 연속 승리투수 그리고 월드시리즈 공동 MVP라는 영광을 얻는다.

 

구대성이 안겨준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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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그 날의 장면. 사실 이 플레이는 구대성 선수에게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이 때 얻은 부상으로 한 동안 부상자 명단에 있어야 했고 그가 팀에서 방출되는 데 일정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이 이야기는 랜디 존슨이 주인공도 아니고 그에게 있어서는 굴욕적인 사건이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구대성이었기에 기억이 남는 장면인 거 같다.

 

2005년 5월 17일 신시네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구대성 선수가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할 정도로 홈플레이트에 떨어져 있는 거 아닌가. 서서 삼진을 당하기까지 해 셰이 스타디움에 있었던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4일 후 구대성은 뉴욕 양키즈와 의  대결에서 또 다시 타석에 서게 되었다. 7회 말 2:0으로 뉴욕 메츠가 이기고 있는 상황. 상대 투수는 랜디 존슨. 첫 타석의 에피소드를 알고 있었는지 랜디 존슨은 1,2구 다 146~8Km의 직구만 던졌다. 그리고 운명의 세 번째 공. 146Km의 직구를 던졌는데 구대성선수가 그걸 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중간 깊숙한 곳으로 치며 2루타를 말이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셰이 스타디움에 있었던 선수들과 관중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곳에 있던 사람 중에 이게 끝이 아닌 걸 안 사람은 몇이나 됐을까? 다음 타자 호세 레이예즈의 보내기 번트에 홈까지 쇄도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세이프.(화면상으로는 아웃이었다. 심판 욕 좀 먹었을 듯.) 이후 충격 먹은 랜디 존슨은 미구엘 카이로에게 홈런까지 허용하며 강판당하고 만다.

 

(랜디 존슨과 다른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인연은 별로 없는 거 같다. 김병현 선수야 같은 팀 메이트였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박찬호 선수의 2001년 첫 등판이 원래 랜디 존슨과의 선발 대결로 예정되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다행히 팀 에이스였던 케빈 브라운이 부상당해 개막전 선발로 나서게 되었고 동양인으로서 두 번째 개막전 승리투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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