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것도 펌이래지만 함께 함 ^^..

중구동구관통산업도로원천무효!!

http://cafe.daum.net/vaedari  인천동구의 소리 -주민대책위원회

http://cafe.naver.com/vaedari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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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많을 땐 못 찍음;;; 작업하니라 바빠서. 즐거워서. 아까비!

  

                                                                                                                      정작

작업을 한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띄엄띄엄 기억을 더듬어 가며 작업하던 그 3일 동안의 밤을 그려본다. 바쁜 일상에 묻혀 잊고 지내던 것들이 다시 가슴속에서 꿈틀 거린다.


금창동 산업도로반대 주민대책위 사무실 컨테이너를 ‘눈에 잘 띄도록 미술로 어떠한 장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주민대책위 깨독스(최기수) 사무국장의 제안으로 금창동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버젓이 살고 있는 동네에 산업도로를 뚫고, 역사가 오래된 배다리 헌책방골목도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하니 얼마 전 인천개발에 관한 토론회를 통해 느꼈던 ‘사람의 삶이 제외된 개발 논리’ 딱 그것이었다.

도원역에서 우각로를 지나 금창동 주민대책위 사무실로 오는 동안은,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래되고 낡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지만 집 앞에 손수 꾸민 화단을 보며 사람의 향기를 느꼈다.

 



산업도로공사현장을 좀 더 잘 볼 수 있다고 해서 ‘문화사우나’ 건물로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본 산업도로의 현장을 보자마자 ‘정말 말이 안 된다!’ 는 말이 절로 나왔다.

흥분 잘하는 정윤희는 그 순간 주먹을 불끈 쥐며 ‘이것은 막아야 한다.’ 다짐했다.

(사실 주민대책위사무실 미술 작업하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지만…)


컨테이너가 놓인 곳을 가보니 차도와는 조금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있었다. 컨테이너의 위치를 잡기 전에 한번 들른 적이 있었는데, 예상 위치보다는 큰길가에 가까워 졌다. 건너편에서 보고, 옆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아무리 봐도 조그만 회색상자 같은 컨테이너는 눈에 띄지 않았다. 천을 휘감아 버릴까, 색칠할까 고민을 하다가 떠오른 것이 분홍색이었다. 개인적으로 분홍색 매니아이기도 했지만, 황량해 보이는 먼지 덮인 회색빛 건물 사이에서 분홍색은 이질적이며 시선을 잡아 끌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혼자 이러쿵저러쿵 고민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해 우리 ‘노동미술굿’팀과 논의하기로 했다.


작업 첫째 날

팀 멤버인 보풀(김하연)과 작업하기로 했다.

보풀에게 컨테이너 바탕색을 분홍색으로 작업하는 것에 대해 제안 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여주어 나는 개인적으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둘 다 낮에는 다른 일정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저녁 6시쯤 모여서 3일 간 작업했다.

작업 첫날은 페인트를 칠했다. 밤이라 너무 어두워져 분홍색으로 기본작업을 한 것을 보며 눈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주민대책위 분들과 커피를 마신 후 깨독스의 일상복을 작업복으로 빌리고 페인트를 샀다. 둘이서 밤늦게 로울러를 들고 미친 듯이 칠했다. 가끔씩 동네 분 들이 와서 유심히 보고 지나갔다. 밤이라 술 취한 사람들이 시비 걸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다만 그날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날이 밝아지면 얼룩덜룩한 페인트 자국이 선명해질까봐 걱정됐다.



작업 둘째날

가는 길에 도원역에서 노동미술굿 팀 ‘김재석’ 선배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컨테이너에 도착한 후, 동양화가 특유의 섬세한 필체의 스케치를 부탁드렸다.

컨테이너 하단에 마을을 그리기로 했다. 반대 표시의 아이콘도 넣기로 했다. 반대표시의 아이콘은 사루(이기태)군이 맡았다. ‘언덕을 오르는 길’의 지경과 아이들도 함께 그림을 그렸다. 김영택, 최기수, 유광식은 글을 쓰기로 했다.

작업을 하는 중에 주민대책위 아주머니 분들이 오셔서 커피도 끓여 주시고 라면과 김치도 내어주셨다.

정말 시끌벅적 즐겁게 작업한 날이었다.

현재가 어떤 상황이던 간에 함께 모여 무언가 하는 일이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작업 셋째날

‘주민대책위 개소식’ 하루 전날이라 마무리가 급했다.

다른 일정을 미뤄두고 일찍 컨테이너사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 혼자 사무실을 지키게 되었다. 사무실 외부에 그림과 내용이 있으니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건넸다. 그러한 사람들의 관심을 원했던 바라 기뻤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나가던 아저씨는 주차하는데 방해된다고 핀잔을 하고, 경찰은 혹 무슨 일 벌이지 않을까 유심히 보고 갔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동네 아주머니들이 ‘왜 이제 와서 반대하느냐’, ‘힘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며 화를 냈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화를 내는 아주머니들에게 소리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왜 지레 상황을 포기 하세요? 자기가 낸 세금으로 생활이 위협받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아시잖아요. 되던 안 되던 잘못된 일은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세요. 부당한 정책에 물러나지 마세요…“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돈 받고 하는 것 아니냐‘, ’지시하는 사람이 누구냐?‘, ’여기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아라‘, ’산업도로반대가 이뤄지면 여기 있는 사람들(주민대책위)은 한자리씩 하게 될 것이다‘ 등등의 말을 남기고 갔다.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을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나는 눈물이 났다.

자신의 생활을 제쳐두고 삶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주민대책위분들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마음, 돈의 힘에 떠밀려 살아와, 그렇게 밖에 얘기할 수 없는 아주머니들의 마음,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 잘못된 일에 한 가지라도 발언하자는 나의 ‘작가적 양심’ 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동들 자위적인 행동… 이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크게는 내가 그렇게 아주머니들에게 소리 지를 수 있었던 건, 이 상황의 결과가 직접적으로 나의 일차적인 생존과 연관된 문제가 아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도 마무리 작업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늘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해주시는 주민대책위분들, 성효숙선배님, 주호, 사루, 영경씨, 깨독스...

많은 생각을 했던 하루였다.   


컨테이너사무실의 작업이 시각적으로 조금 부족해보이기도 하지만, 작업하는 과정에서 함께했던 의미, 이 공간이 앞으로 담게 될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작업을 한 후 바쁘다는 핑계로 사무실에 들르지 못했다.

앞으로 일정상 그곳에 자주 갈 예정이다. .‘충남사’ 아주머니가 타주시는 블랙커피를 자주마실 수 있길 기대하며 더운 여름이 되기 전 그 공간이 주민들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해본다.


최근 나는 대추리 만수동 향촌 철거촌 등, 조금씩 다른 맥락이지만 개발로 사람의 삶이 밀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때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때는 어떤 성과 없이 자위적인 부분도 채우지 못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은 찾지 못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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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01:51 2007/08/07 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