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 두조각

2010/04/07 16:31

 

 

일요일 낮

통닭을 먹고 싶다며 헤롱거리는 동생을 놓고

두번째 일정을 완수하기 위해 밖에 나왔지만

일정이 파토나면서 다시 집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린 오자마자 통닭을 시켜먹었더랬다.

조.선.치.킨.

홍길동의 후예라는 영화를 컴터로 보면서 둘이서 낄낄대며 먹다보니

어설프게도 통닭 두조각이 남았다.

 

아빠 드릴까?

이제서야 생각난 듯 물어보는 동생에게

굉장히 빈약한 두조각을 보면서

괜찮아.. 그냥 먹어 나중에 같이 시켜먹음 되지~.................

라고 답한 난,

 

 

지금 매우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감사를 한창 준비하며 야근을 하던 월요일 저녁

다정한 목소리의 아빠는 일찍들어오느냐며 같이 통닭을 시켜먹자고 했다.

우리가 먹은 껍데기를 보고 말씀하시는가보구나 싶기도 하고

일이 많아서 그냥 내 몫만 남겨두라고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 동생의 다급한 전화한통.

아빠가 매우 화가 나셨다는 것이다.

 

그럴지 몰랐다며

우리 가족들은 그러지 않을거라고 믿었는데

정신이 썩었다며

등등등

황당함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감사로 인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튀김을 사가지고 들어갔지만 이미 아빠는 주무시고 계신 상황이었다.

그리고

3일째에 접어든 오늘 아침

머리속이 썩어 문드러졌다며 소리를 지르고 나가시는 아빠의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새벽 2시에 잤음에도 6시반에 울리는 아빠의 말소리에 정신이 너무 또렷하게 돌아왔다.

 

통닭 두어조각으로 인해

머릿속이 썩어문드러진 사람이 되버린 나는 눈도 떠지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도 화가 나버렸다.

씩쌕씩쌕

엄마에게 한풀이를 하며

왜저러냐고!

엄마말씀하시길

갈때가 되서 그런다..맛난거 많이 드려라

헉....

그래서 부모 모시고 사는게 어려운거다.

 

 

 

아빠의 분노상황으로 인해

집안이 온통 스트레스 덩어리로 변한 와중에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시는 울 엄마는 어제 머리를 새로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실 땐 꼭 머리를 자르더라.

그런 상황에서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면 불쌍하더라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뭐랄까 그게 그렇게 타당성이 떨어지게 느껴지지는 않았단 말이지.

늙어서 서운한 것도 많아지고 왜 사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그래서 자식들에게 작은거에도 마음좋게 웃고 넘어갈 수 없는게

사실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는 말로 들어나니

나도 눈물이 나서

아직 젊잖아!

니 아빠 늙었어~ 관심받고 싶어서 그래.

....

14000원짜리 통닭 두조각에 머릿속이 썩어문드러졌다는 소리를 들어야하겠냐고!

애가 말귀를 못알아 먹네 니네 아빠 눈치보기도 힘들어 죽겠고만! 갈때가 가까워서 그런다니까! 이거 농담아니다. 니네아빠 당뇨야!  

...........

깔깔깔깔

엄마 못됐어!

깔깔깔깔

훌쩍훌쩍

깔깔깔깔

훌쩍..

 

이걸 보고

농담 반 진담 반이라고 하던가.

 

신나게 웃고 울었더니

왠지 마음이 개운해져

아빠에게 다시한번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4000원짜리 통닭 한마리도 자식들과 함께가 아니라면

사먹기를 망설이시는 아빠이기에

왜 그렇게 미련하냐고 말하고 속좁다고 말하기 이전에

그리고 너무 막말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다치고 상한 마음 그대로 용서를 빌자 마음먹었다.

 

 

통닭 두조각이 날 울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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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달성생 2010/04/07 17:32

    어른들 빼놓고 맛난거 먹지 마라. 많이 삐친다. 맛난걸 못먹었다는 것 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을 놓쳤다는 것에 삐친다. 우리도 큰 애기 때문에 매일 전쟁. 아이 다루듯 끝없는 애정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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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캔디 2010/04/09 13:42

      드디어 어제 풀렸어... ;; 생리통때문에 반 죽어가는걸 보더니 풀리시더라고..ㅎㅎ

  2. 인선 2010/04/08 14:10

    헐헐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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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4/08 14:46

    큰 애기...... 일러야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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