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엄마아빠와 두릅따러가는 일정이 파토나고(내고)
선정이의 제안을 외면하고
1시에 집회가는 것으로 정리한 뒤
늦잠을 잤다.
찬 듯 하면서도 여름의 활기가 뭍어나는 공기
따뜻한 이불 속
평화로운 오후
마음껏 게을러도 되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
108배도 괴롭지 않다.
늘어져있다가 느릿느릿 일어나 이불을 펴고
한자리 한자리 절을 올린다.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용서도 빌고
참회도 하고
생명의 숨소리를 듣기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도 하고
나와 주변의 모든 것들의 평화도 기원하고
나 때문에 어지러워진 인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애써보고
모든 아름다운 것(따뜻한 이불 속,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 여유있는 오전, 집에서 가족들이 내는 잔소음)
들에 감사도 하고
살아있음에 너무너무 감사하며 108배를 맞쳤다.
..............................
아빠는 새벽 음식물수거 일을 하면서 민주노총 평등지부에 가입하셨다.
두릅따러 가기로 해놓고
3시까지는 꼭 와야 된다고 이야기를 해 약속이 깨져버렸다.
그랬더니 아빠 왈
내일(오늘) 1시 대모나 가야겠다~하신다.
우리 힘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니 가야겠다고
엄마는 등산을 가신다 하시고 아빠는 대모를 가신다 하시고
에엥?
완전 어떨떨해진 나는
사람들에게 두릅따는 일정 때문에 1시 집회는 힘들겠다고 말하고 왔었는데
아빠가 거길 가신다니
그럼 나도 아빠랑 같이 집회나 가야겠다~ 해버렸다.
아빠는 어디서 알았냐고 추궁하시고
난 눈길을 피하며 대충 둘러대고
'아빠 사실은 낼 아빠가 이야기하는 대모를 하루종일 하려고 3시까지 와야 된다고 했던 거였어요~'
라고 할 순 없고
그래서 어떨결에 아빠랑 같이 집회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딸래미가 대모하고 다닌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계셨지만
대놓고 같이 가려니
마음이 묘하게 불편하고 걱정된다.
완전히 까발려질거란(?!) 두려움?
그러면서도
노조가입하고 서너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집회를 참여하신다는 아빠의 판단이 놀라웠다.
예전에는 그렇게 사장들 편만 들더니
이제 '노동자'임을 '우리'임을 인정하신 모양이다.
아빠 성질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는데
사실 벌써부터 소위 '강성'활동가가 될까봐 걱정이 된다.
이상한 마음.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노조에서 잘 이끌어줬으면 하는 마음.
복잡하다 복잡해.
아빠랑 처음으로 함께가는 집회.
자꾸 '빌리 엘리언트'에서 아빠와 아들의 갈등이 떠오른다.
정치적 논쟁을 하고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같이 집회를 참석하고 고민을 나누고
그러니까
그런게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인가!
왠지 무섭고 두려운 기분?
나를 강하게 하는 시련에 감사하래잖아.
(일본 애니메이션 버전 : 거대한 위기!!!!!!!!!라고 왜? 나도몰라!!!!!!!!!!!)
쿨하게~
아빠 집회 같이 가요~!
;;;
Comments
우와~~~ 아빠랑 집회를!!!!
사실 큰일은 없었어요. ㅎㅎ 생각보다 일상적이었다는
오늘 부모님을 만났더니, 부모님이 나 때문에 요즘 진보신당 지켜보고 있다고 그러시네.. 흠... 염경석 후보 찍으려고 생각하신대..;; 정작 난 한 번도 투표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어쨋든 얘기하다 보면 조금씩 만나지는 것도 같고.. 그만큼 멀리 있는 것도 같고..
먼저 살아왔던 사람과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경험해 왔던 환경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다른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 특히 서민으로 살아온다는 것 자체가 그리 만만한 삶은 아니였을거란 생각이 들어. 그래서 더 보수적인 것이겠지. 그런 분들과 가끔 혹은 조금씩이라도 만나진다는 게 너무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 ㅎㅎㅎ
와~ 짱이에요!
별일은 없었답니다.ㅎㅎ 아빠는 아직도 '동지'니 '투쟁'이니 이런단어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동지랑 투쟁이 난무하고 조금 과잉되어있는 곳이여서(사실 지키지도 못할 과격한 언사라고 전 생각합니다. 무슨 위원장쯤 되면 여기저기 목숨을 걸어놓고 다니잖아요;;)불편하셨을꺼에요. 좀있다가 가시더라구요. ㅎㅎ 그냥 같이 집회에 나왔다는 것에 의미를 두려구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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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그거 왜 두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