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당신이 여기에 있었으면

Name  
   류은숙  (2005-01-04 15:16:19, Hit : 159, Vote : 23)
Subject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국경없는 친구들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당신이 여기에 있었으면  
Shine Shan

매일 매일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반면 긴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다고 말한 게 당신이었지요? 이번에 Mae Sarieng에 여행 다녀오면서 나는 줄곧 내 삶에 대해 그리고 당신에 대해 생각했어요.

Ching Mai에서 출발한 버스는 만원이었어요.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가 기어갈 때 다른 승객들과 엉켜서 5시간을 서있어야 했어요. CD 플레이어로 듣는 음악만이 절 위로해줬죠. 그때, Cranerries의 친숙한 노래가 들렸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건 진실이야.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보호하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을 내가 보호할 수 있을까 항상 의심스러워"

이 노래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지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면전에 정신나갔다고 질러대는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노래예요.

당신이 나를 사람들의 고통에서 행복을 찾는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내 삶을 난민들의 우울한 세계에 결부시키면서 나는 한때 내가 정말 그 일을 좋아하는지 자문해봤어요. 나는 난민들의 운명에 절망했었고, 난민들을 방임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기 보다 해를 끼치는 타이 사회에 대해 무력감을 느꼈어요. 이런 일들로 나는 인간애에 대한 모든 신념을 거의 잃을 뻔했고, 모든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수 없는 작은 보트에 불과한 나 자신을 증오했어요. 내가 큰 배였으면 하고 바랬어요.

하지만 그때, Htoo Klie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신은 그를 만나본 적이 없죠? 그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을 거예요. 내가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되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어요. 내가 동정을 느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나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그 사람을 더 일찍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여전히 겁쟁이일 테고 당신을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나 또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Htoo Klie는 밤늦게 여기서 내 곁에 앉아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내 동무가 돼주었어요. Mae Sarieng의 황혼은 어둠과 침묵뿐이었어요. 경찰차가 근처에 멈추는 것을 봤어요. 그들은 틀림없이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을 검색하고 있는 거예요. 이주법이 얼마나 혹독하게 소수민족이나 이주노동자, 난민들을 다루는지에 대해 들어봤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Htoo Klie는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여행을 하고 있어요. 검문소가 가까워질 때 Htoo Klie의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나는 몰라요.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런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그가 믿는 바를 실천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Htoo Kle는 버마에서 태어났어요. 전쟁 때문에 그의 가족은 여기 저기로 도망다녀야 했어요. 11살에 그는 엄청난 공포에 대해 알게 됐어요. 밀림 속에서 버마군으로부터 숨는 일은 기침소리도 숨소리도 내서는 안되는 것이었어요. 닭이나 개들마저 어떤 소리라도 낸다면 즉각 죽음을 맞게 됐어요.

당신은 그런 공포에 맞닥뜨려본 적이 있나요? 나는 결코 없어요. 그리고 다른 누구도 그런 공포를 느끼지 않기를 바래요.

11년전에 Htoo Klie와 그 친구들은 Karen족 난민들을 위한 원조사업과 발전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그는 국제법에 대해 해박하지만 풀뿌리 사회에서 변화를 일궈내는 노력에 더 힘을 기울여요. 서류를 만들고 국제적 옹호활동을 하기보다는 풀뿌리 공동체를 조직화하는 것이 인간존엄성과 함께 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일굴 수 있는 민중들의 힘을 만드는 열쇠라고 생각해요. 지난 몇 년 동안 버마군대는 전체 국경지대를 점령할 목적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왔어요. 그 때문에 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고, Htoo Klie의 조직이 난민들에게 접근하기도 더 어려워졌어요. 하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속에서도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한, Htoo Klie가 하던 일을 포기할리는 없어요.

버마의 정치는 "한 걸음 전진하며, 두 걸음 후퇴한다"라고들 말해요. 하지만 Htoo Klie는 또다른 정치적 경로를 내게 보여줬어요. 그 길은 민중들은 결코 뒷걸음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비록 느린 걸음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 길에는 희망이 있어요.

자정 무렵에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어요. 나는 Htoo Klie에게 작별인사를 했지요. 내가 Ching Mai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녘이었지만, Htoo Klie의 이야기는 이미 내 맘속에 빛을 밝혔어요.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나는 내 삶과 당신을 생각했어요. 나는 방금 Pat과 Earn Martin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이 세상에 절망이란 없다. 우리 주변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우리 자신이 거절하지 말고, 그들이 우리를 움직이고 사랑하고 행동하게 하라."

그래서 나는 당신이 여기에 있었으면 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년 1월 후원금송금내역

Name  
   류은숙  (2005-01-03 16:21:43, Hit : 180, Vote : 29)
Subject  
   1월 3일 후원금 송금 내역
1월 1,2일이 휴일이라 3일에 송금했습니다. 아래는 후원내역입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이름의 일부는 지웠습니다. 12월 보다 50달러를 더 송금할 수 있었습니다. 만원계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2월 1일 김태* 1만
12월 1일 유해* 1만
12월 10일 조대* 1만
12월 23일 김재* 1만
12월 27일 강성* 5만
12월 28일 류재* 3만
12월 28일 황수* 1만 5천
12월 30일 강대* 1만
12월 31일 구태* 1만
12월 31일 신명* 1만
12월 31일 류은* 1만
---------------
17만 5천원

2004년 12월 이월 잔액 -2,179원
2005년 1월 3일 송금 150달러(161,801원) 잔액 11,020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해이군요

Name  
   류은숙  (2005-01-01 22:00:45, Hit : 167, Vote : 17)
Subject  
   새해이군요
저는 달력에 빨간 날마다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새해의 기분을 느낄 일 없이 1월 1일이 지나갔습니다.

작년 11월에 만들었으니 만원계가 2달이 됐군요. 만원계가 1살, 2살 먹을 때마다 더 많고 깊은 연대의 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만원계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 힘찬 계획 많이 세우시고 꼭 해보고 싶으셨던 일에 도전하시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 한마리가

Name  
   류은숙  (2004-12-24 11:42:08, Hit : 236, Vote : 31)
Subject  
   새 한마리가
'국경없는 친구들' 2004년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쓴 사람의 이름은 Chana Damnoen 이네요. 모든 분들에게 흐뭇한 연말과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큰 새 한 마리가 조약돌 하나를 물어서 땅에 떨어뜨렸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모래 한 알을 그 위에 얹었다.
큰 새는 날아서 하나씩 하나씩 조약돌을 날랐다.
작은 새는 하나씩 하나씩 모래알을 날랐다.

큰 새는 성이 차지 않아 실망감으로 땅을 내려다봤다.
큰 새는 조약돌, 조약돌, 또 조약돌을 봤고
그리고 나서 모래알을 봤다
작은 새는 웃는 눈으로 내려다 봤다.
작은 새는 모래와 조약돌이 어우러진 더미를 봤고, 그 더미가 우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봤다.
작은 새는 크고 작은 새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마시려 모여드는 것을 봤다.
사슴, 소, 코끼리, 여러 야생동물들이 거기서 갈증을 푸는 것을 봤다.

큰 새는 날개를 접고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지만,
작은 새는 날고
또 날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가입인사-김재춘

Name  
   김재춘  (2004-12-23 15:40:53, Hit : 274, Vote : 34)
Link #1  
   http://www.beautifulstore.org
Subject  
   가입 사유 : 그냥 이름이 좋네요.

안녕하십니까.
신규회원인 김재춘 입니다. 별칭은 밝은 별입니다.
동남아쪽 언어로는 'tala(타라)'라고 하니 혹시나
뵐 날이 있으면 '타라'라고 불러 주시면 좋지요.

저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평화, 복지, 인권, 환경, 명상 등등에 관심은 많지만
별로 실천하는 것 없는 '주둥아리로만 활동가'이지요.

만원계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권유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취지와 방식이 너무 맘에 듭니다. 주변에 권유해서
회원늘리는데 힘 써볼 생각입니다.

국경없는 친구들.

인권 사각지대의 그들에게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조금 떨어져 있는 세상 어딘가에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작은 마음이 있다는 사실 뿐이네요...
중무장한 마음으로 그들 옆에서 손 잡으며 현장을 누빌
그날을 기약하겠습니다.

선배 회원님들께도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앞으로 열심히 참가하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계원 여러분께

Name  
   류은숙  (2004-12-16 14:06:06, Hit : 301, Vote : 38)
Subject  
   계원 여러분께-식구가 한분 더 늘었습니다
'국경없는 친구들'과 연대하는 모임에 한분이 더 가입하셔서 11분이 됐습니다.  새로 가입하신 계원께 계원 전부를 대신해서 환영의 인사를 전합니다. 가입인사 같은 것을 게시판에 남겨주시면 더 좋을 텐데요.

이제 12월도 절반을 넘어섰으니 본격적인 송년 분위기가 시작됐군요.
계원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알찬 송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연말이면 더 바쁘고 그런데 일손은 잘 잡히지 않고 그렇쟎아요. 가슴을 쫙 펴고 보내자고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여성인권을 위한 활동가와의 인터뷰

Name  
   류은숙  (2004-12-16 13:59:16, Hit : 1191, Vote : 52)
Subject  
   여성인권을 위한 활동가와의 인터뷰
'국경없는 친구들' 2004년 3-4월호

인권활동가 Myo와의 인터뷰
(Rangoon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던 Myo는 88년에 버마-타이 국경을 넘었다. 현재는 버마인권교육연구소를 세워 활동하고 있다.)

"전세계 여성은 성에 대한 편견으로 차별받고 있다. 버마 출신 여성들은 군사정권의 문화로 인해 더욱 억압받고 있다. 또한 난민 여성은 난민이라는 지위 때문에 더욱 주변부화된다"

나에게 Myo는 난민이라는 것 이상이다. 7년 전에 방콕의 이주자 수용시설 앞에서 그를 처음 만난 이후로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 Myo는 88년에 결성된 버마학생민주주의전선 출신의 학생활동가였다. Myo는 국제 행사에서 버마 전통 춤을 잘 추는 댄서여서 박수갈채를 받곤 한다. 현재 그는 여성을 위한 인권활동가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유형의 활동가...

2000년에 Myo는 '버마인권교육연구소'를 세웠다. 인권교육가를 위한 훈련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인권교육훈련을 하는 조직이다. 최근에, 이 조직은 성문제, 여성의 권리, 평화건설에서의 여성의 역할 등에 관한 여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모든 것이고 나머지 식구들은 아버지를 따라야 한다. 다른 가족들이나 학교나 대학, 일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그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몰랐다. 단지 뭔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나는 권위주의 체제 속에 성차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당연하다는 듯이 성차별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인권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면, 성인지적 관점을 갖고 해야만 한다. 우리가 인권침해나 권력남용에 대해 얘기할 때면 그것은 당연히 권력자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차별은 한 집단의 권력을 강화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권력을 박탈하는 구조를 만든다."

"우리가 조직하는 어떤 인권교육훈련에서이든지 성문제와 여성의 권리는 필수사항이어야 한다. 더욱이 적어도 40%의 여성 참가자들이 참여해야만 한다. 여성이 남성만큼 자질을 갖추고 있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남성이 대개는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가졌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여성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의사결정을 할 힘을 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상당수 남성참가자들이 이렇게 생각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할 권력을 전부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미신이다. 실제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것은 공동의 협력이다. 사실상, 성인지적 관점은 남성과 여성이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증진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남성 탓으로 돌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아니다. 나는 성차별이 문화나 종교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화나 종교가 본래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을 불행하게 만드는 관습을 볼 때면 문제삼아야 한다. 일부 문화적 관습 속에 있는 성차별의 진정한 요인은 사회의 신념 체계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성의 총명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여성은 보통 약하고, 감정적이고, 지적이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나는 여성에게 단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침묵을 강요받았다. 여성들은 가슴으로 생각하고 거기서 일상을 배우고 살아간다. 그래서 여성은 매우 실천적이다. 반면에 남성은 머리-즉 지식-을 우선에 둔다. 남성이 더 많이 알지 모르나 실천하려는 동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종종 나는 인권문제에 대해 남성보다 여성들이 훨씬 더 잘 대처하는 것을 본다. 여성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나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해, 버마가 살만한 곳이 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우리는 여성의 권리가 제외된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를 건설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목표하는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참여를 의미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평화, 인권을 먼저 얘기하고 나중에 여성을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모두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체가 하나의 이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손님에게 가장 극진한 나라?

Name  
   류은숙  (2004-12-15 13:29:49, Hit : 233, Vote : 30)
Subject  
   손님에게 가장 극진한 나라?
손님에게 가장 극진한 나라?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인기 있는 곳이 어딜까에 대한 Lonely Planet의 2004년 조사에 따르면, 타이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이자 "손님에게 가장 극진한 나라"로 뽑혔습니다.

타이 정부가 자랑스러워하는게 당연하겠지요. 왜냐하면 타이 정부는 관광산업을 부양하기 위해 난리였으니까요. 타이 국민들 또한 "은밀한 타이"로 가는 여행을 할 것을 장려 받고 있습니다.

Tak 지방에서 정말로 '은밀한'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은밀한'이라는 말이 정말로 의미하는 바가 그 은밀한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더 잘 알게되고, 우리가 겉핧기식으로만 방문하는 곳들을 더 자세히 살펴본다는 뜻을 내포한다면 말입니다.

Mae Sot에서 1085번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만 달리면, 대나무집으로 촘촘히 구성된 장엄한 공간에 이르게 됩니다. 담장과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은밀한' 타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타이 사람이 아닙니다. 일부 청소년들은 거기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들은 버마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버마군사정권과 카렌족연맹과의 내전을 피해 도망나온 카렌족 난민입니다. 1984년에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을 때, 마을 주민들은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고 국경을 넘어 타이로 왔습니다. 이곳은 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타이내의 가장 큰 난민캠프입니다. 현재 이런 캠프가 타이-버마 국경지대에 9개가 있습니다. 전체 인구는 10만명이 넘습니다. 난민의 대부분은 카렌족과 카레니족입니다.

타이 정부는 난민들을 제한된 지역에 머물게 하면서 식량을 기다리게 했고, 교육과 의료 지원은 국제 NGOs들이 시행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타이 정부는 이들더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내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고향'은 평화롭지 않고 빠른 시일내에 평화를 찾을 것 같지 않습니다. 승리를 위해 버마군부는 전체 마을을 불지르고, 사람들을 강제노동에 내몰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주민들을 고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타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외화를 가져오거나 타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관광객이 아니라고 해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환영도 받을 걸 기대해서는 안된다면, 타이 정부는 "손님에게 가장 극진한 나라"라는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해온 것일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주노동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Name  
   류은숙  (2004-12-11 12:46:39, Hit : 242, Vote : 32)
Subject  
   이주노동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2004년 2월 6일

어머니,
오늘은 우리 선조를 기념하는 날이네요. 고향에 있었다면, 자랑스럽게 오늘을 Mon National Day라고 했을텐데요. 하지만, 태국에서는 종교의식조차 조직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해요. 어머니도 아시듯이, 우리는 오늘날 고향을 잃은 사람들로서 여기서는 불법 노동자랍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수백년전 오늘 세웠던 Hongsawdi 제국의 Mon국을 자랑스러워 할 수 없어요. 우리는 버마의 동등한 '시민'으로조차 여겨지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어머니, 저는 Mon족의 피와 영혼과 존엄성이 제 속에 있음을 느껴요. 오늘, 저는 소녀들이 순백의 윗도리에 Mon족의 허리천을 감고,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를 떠올려요. 이날은 1년 중 유일하게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선언할 수 있는 날이고, Mon족의 음식을 먹고, Mon족의 노래를 부르고, 두려움 없이 Mon족의 언어로 얘기할 수 있는 날이랍니다.

어머니, 이곳에 수천명의 Mon족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아시지요? 이들 대부분이 우리 고향이 Rey에서 왔어요. 휴전된 후 8년간 많은 마을이 거의 텅비어버렸지요. 어머니가 너무 걱정돼요. 논에 나가려면 그들에게 허가를 받으셔야 하나요? 버마군이 막아서 추수할 것을 거의 다 잃으셨나요?

어머니, 제가 보내드린 돈이 어머니가 그들의 짐꾼이 되는 일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했기를 바래요. 운좋게도 여동생과 조카가 여기 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그들이 어찌 살아가는지 몰랐을 거예요. 군인들이 마을에 머무를 때 소녀들을 데려가 동침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그래서 소녀들이 비참하고 수치스러워서 태국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들었어요. 날마다 우리 고향과 Dai Peng에서 오는 사람들이 여기 도착해요. 휴전지역에서 더 이상 처형은 없다지만, 먹고 살수가 없다고 해요. 조그만 산촌에 수만명이 넘는 귀환 난민에다 버마군통치지역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모여드니 농사지을 땅이 없다고 해요.

어머니, 저에게 돌아와서는 절대 안된다고 여러차례 소식을 보내주셨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저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셨어요. Mon 지역에서 4년, 태국에서 6년, 그 날들을 헤아려왔어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 10년이예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여기 와서 고생하시는 것을 볼 수는 없어요. 여성들이 생선관련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이 훨씬 쉽기는 해요. 하지만 무례하게 말하는 고용주들 아래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야 하고, 경찰이 무서워서 거리를 걸을 때마다 두려워해야 해요. 어머니가 그곳(Rey)에서도 많은 고통을 겪고 계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머니가 항상 제게 깨우쳐 주셨듯이, 그곳은 우리의 선조들이 태어나 농사를 짓던 땅이예요. 저는 어머니가 여기와서 고생하면서 사장앞을 지날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원치 않아요. 단지 당신이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적국인', "불법체류자', '범죄자', '개새끼들' 등 듣기 고통스러운 이름으로 불러요. 제 친구가 태국신문을 제게 읽어주었어요. 몽족의 여성들이 여기 체류하기 위해서 태국인 남편을 필사적으로 얻으려 하고, 이주 여성들은 아주 좋은 '번식자'들이어서 태국에 너무 많은 이주아동을 낳아놓고 있다는 기사였어요. 저는 이런 얘길 듣는 걸 견딜 수가 없어요. 어머니.

한 여성을 병원에 데려다 준적이 있어요. 그녀는 낙태로 인해 출혈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그녀가 이틀 결근했다고 해서 바로 해고되었고, 4,000바트(약 12만원)짜리 노동허가증이 종결돼버렸어요. 이주여성은 공장에서 너무 힘들게 일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도 아이들을 돌보고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일부 여성은 저녁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해야 해요. 일을 마치고 나면 버마에서 그랬듯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집으로 걸어가야 해요. 어떤 사람들은 태국법이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가 경찰서로 가면, 그들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우리를 체포하고 추방하는 거예요.

Rey에서 새로 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 요즘은 힘들어요. 일거리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태국 정부가 새로오는 사람들에게는 노동허가를 주지 않아요. 때때로 저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기운을 잃어요. 하지만 오늘 힘이 다시 생겼어요. 어머니, 조부모님들이 그랬듯이 우리가 춤추는 것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Mon족의 음식과 간식거리, 전통 허리천을 팔고 있어요. 어머니가 만일 이 자리에 계시다면, 저는 어머니를 부엌으로 모시고가 다른 분들과 함께 Mon족의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졸랐을 거예요. 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어요.

어머니, 정치란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어요. 특히 휴전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집단은 학교와 성인들을 위한 글자교육, 직업훈련 같은 것에 열심입니다. 우리들 또한 여기서 곤란한 지경의 Mon족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쓰고 있어요. 병원에 데려가고, 고용주와 협상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서로를 보호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 제 마음 속에 모든 것이 건재하며 어떤 것도 전혀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어머니, Mon National Day인 오늘, 이 생애에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는 제게 Mon족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는 제 속의 정체성입니다.

어머니의 아들, Soe가 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높이 날아 새로운 세계로

Name  
   류은숙  (2004-12-11 10:18:53, Hit : 288, Vote : 48)
Subject  
   높이 날아 새로운 세계로
나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굶주림을 봅니다.
군사령관의 딸은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구요
노동자의 딸은 규칙적으로 먹을 수가 없어요
나는 둘 다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비교해요;
상점점원의 아들의 얼굴과
군사령관 아들의 비싼 신발을 비교해봐요.

그 돈은 아들의 학위를 위해 필요해요.
그 돈은 딸의 학교 수업료를 위해 필요해요.
그 돈은 엄마의 약을 위해 필요해요.
사람들이 있어요,
분노하고,
울고,
절규하고,
머물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요.

늙은 여인이 울고 있었어요.
이제는 쓸모 없게된 25 차트(버마의 옛 화폐단위) 지폐를 바라보며,

행진이 있던 날 저녁에
빛나는 별이 G-3 총탄에 떨어졌어요.
그리고 나서
하늘위로 빛나는 별들은  
높이 나는 새들이 되었어요
학생 저항군이 되었어요

높이 나는 새들의 소리가 들리면
주의깊게 들으세요!
그리고 결정하세요!

"높이 날아 새로운 세계로"의 일부분
1988년 Mi Suu Pyin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