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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난민(2)

Name  
   류은숙  (2005-02-07 16:44:27, Hit : 290, Vote : 26)
Subject  
   무국적난민(2)
무국적 난민(2)
글쓴이 Chana Damn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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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여기에 친절한 왕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래서 여기 왔어요"라고 Charlie가 말했다.

Charlie의 부모는 단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임시적인 피난처를 찾으러 동쪽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도망은 자식들을 위해 새로운 땅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것이었다. 수십년이 흘렀고, 불안한 마음도 조금은 잠잠해졌다. Paw Paw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가축을 기르고 바나나 잎사귀를 모았다. 일부 사람들은 작은 바나나 정원을 갖고 모자를 만들려고 잎사귀를 수확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작은 가게라도 차릴 수 있을 때까지 행상인으로 일했다.

"우리는 여기 살아요. 마을에는 불교도도 있고, 기독교인도 이슬람교도도 있어요. 마을 촌장은 기독교인이고요, 그의 측근은 불교도예요. 그들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해요. 마을 행정에서는 어떤 차별도 없어요. 우리는 형제와 자매들처럼 살아요."

"나는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살아요. 어쩔때는 내가 난민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있지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떤 신분도 없기 때문에 나는 난민이예요. 당국이 와서 언제든지 우리를 쫓아낼 수 있어요."

이사람 저사람에게 서로 물어보고 나서,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신분서류도 갖고 있지 않은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오렌지 색으로 된 "버마에서 온 이주자" 카드를 갖고 있거나 청색의 "고산지대 거주자" 카드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10km를 벗어나면 경찰이 어디에서나 체포할까봐 너무 겁이 나요. 특히 단속이 심할 때 그래요. 도저히 어디갈 엄두가 안나요. 몇 달동안 여기에 죽 있었죠." Htoo Wa 삼촌은 긴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우리 애들은 출생증명서가 없어요. 애들이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Paw Paw 할머니가 말했다.

이 때, 스무살 쯤 된 Swe Poe가 얘기에 끼어들었다. "10학년이 됐을 때, 친구들처럼 주니어 군사 훈련을 받으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가진 건 청색 카드였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죠. 너무 창피했어요. 선거가 있을 때, 18세가 넘은 모든 학생들이 등록을 하려고 줄을 섰는데, 나 혼자 교실에서 기다려야 했어요. 또한 나는 학교 체육 선수였는데, 지역 차원의 대회가 있을 때 나갈 수 없었어요. 나에게 신분서류가 없었기 때문이죠. 정말 창피했어요."

그들이 가진 청색카드에는 "고산지대인이 아닌 버마 소수민족"이란 소인이 찍혀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타이 시민권을 얻는데는 문제가 있을테니 고산지대인이 돼야 한다고 했어요." Swe Poe의 눈에는 많은 질문이 담겨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카렌족이라 생각하는데 타이인들은 그런 우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 버마인들은 우리가 버마인이 아니라고 했어요. 우리가 인도인이나 방글라데시인에게 가서 요청한데도 역시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어떤 소수민족에 속해야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가 오직 알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언제쯤 돼야 우리를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놔둘 건 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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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Name  
   이남윤  (2005-02-03 09:33:13, Hit : 287, Vote : 35)
Subject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이곳에 들렀고 바로 가입을 했습니다.
전 지금 중국에 있습니다. 일을 하고 있어요.
평소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마음 한편으로 그곳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만원계의 취지와 맞는것 같습니다.
만원계에 가입을 하면 만원을 내야하는 거죠?
한달에 한번씩인가요?
그럼...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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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1일 후원금 송금내역

Name  
   류은숙  (2005-02-01 12:07:10, Hit : 251, Vote : 28)
Subject  
   2005년 2월 1일 후원금 송금내역
1월에 모아진 후원금 150달러를 오늘 송금했습니다. 지난번과 같이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이름의 일부를 지웠습니다. 그리고 매달 내는 것이 번거롭다고 몇달치를 한꺼번에 주신 분들이 계셔서 매달 보내는 송금액의 편차가 클까하여 평균수준이 될 150달러에 맞춰 송금했기 때문에 잔액이 생긴 것입니다. '국경없는 친구들'과 함께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역

2004년 12월 잔액 11,020원
1월 3일 김태* 1만
          유해* 1만
1월 4일 최은*  6만
1월 10일 조대* 1만
1월 14일 김예* 2만
1월 25일 이민* 1만
1월 26일 황수* 1만5천
            이민* 1만
1월 31일 류재* 2만
            구태* 1만
            강대* 1만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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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020원

2005년 2월 1일 송금 150달러(160,185원)

잔액: 45,83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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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난민(1)

Name  
   류은숙  (2005-01-26 11:41:17, Hit : 236, Vote : 28)
Subject  
   무국적 난민(1)
무국적 난민
Chana Damnem

머리말
서쪽 국경. 수십만명의 난민들의 캠프. 생명과 인간 존엄성이 위협받았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도망쳐 온 사람들이다.

국제법에서 "난민"이란 용어의 뜻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인간으로서 난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제한될 수 없다. 난민 자신들은 평화로운 삶을 강탈당했고, 그래서 도망쳐야 했으며, 식량이나 의약품을 찾아서라기보다는 새롭고 평화로운 삶을 찾아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새롭고 평화로운 삶이 영원할 수 없다하더라도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난민캠프 바깥. 무수한 난민이 국경변 마을속에 숨어있다. 일부는 대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운명을 버텨내고 있거나, 또 일부는 고향의 미래를 위해 재정상황이 어려운 사무실에서 지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불법 이주자로 분류된다. 그들 중 일부에게는 소멸 날짜가 적힌 갖은 종류의 서류에 적혀 있듯이 단지 일시적으로만 머물 것이 허락된다.  

작년에, 우리에게는 캠프 바깥에 사는 난민들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생활에 대해, 문제와 희망에 대해 얘기했다. 이어지는 얘기는 국경을 여행하면서 있었던 얘기의 일부이다. 그들의 신변을 위해 이름과 장소는 모두 바꾸었다.

1. 지난 여름. 큰 나무집 아래, 노령의 여성-Naw Paw Paw-이 친구들을 데려왔고, 우리는 둥글게 둘러앉았다.

Paw Paw 할머니는 타이에 34년간 살았고, 다른 사람들은 약 20년동안 여기 정착해 살았다. 일부는 가족들과 함께 왔는데 나머지 가족들은 아직 젊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어떤 국가에게도 시민권을 청구할 수도 없고, 하나의 민족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드러낼 수도 없다. 이들에게는 사람들이 시빗거리로 삼을 수 있는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있을 뿐이다.

"내 언어요?" Charlie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없지요. 나는 카렌어를 말해요. 타이 사람을 만나면 타이어를 말하고요. 우리 선조들은 모두 버마에서 돌아가셨어요. 내 할아버지는 인도나 방글라데시 출신일 것예요. 하지만 나머지 선조들은 카렌족이예요."

"하지만 우리는 인도나 방글라데시에 대해 전혀 몰라요. 거기에 친척이 있는지도 모르죠." 다른 사람들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들이 이주한 이유는 국경지대 캠프내의 다른 난민들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일부는 다른 Kawthoolei족과 함께 도망쳤고, 일부는 독자적으로 타이에 있는 친척들을 찾아왔다. 일부는 마을에 정착하기 전에 임시적으로 난민캠프에서 보냈고, 일부는 10여 년을 국경지대를 떠돌고 나서야 살아도 좋다고 하는 지역에 정착했다.
그들의 고향에서 무슬림은 버마인의 신분증을 얻기 위해서는 십만 차트(버마의 화폐단위)가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국가 공무원들은 일단 그들이 무슬림이란 것을 알기만 하면 어느 소수민족에 속하느냐에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따로 취급했다.

"무슬림은 학교 졸업증을 받으려면 별도의 돈을 내야만 했어요. 결혼을 하더라도 허가를 요청해야 했고, 1-2십만 차트의 돈을 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강제로 신부와 동참하거나 체포하려 했어요."

"어떤 평화도 없었기 때문에 떠날수밖에요." Charlie는 회상했다. "우리 마을에는 버마군과 Kawthoolei족 군인들이 다 있었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와서 항상 물건들을 가져갔어요. 버마군쪽이 더 지독했죠. 빼앗을 식량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를 묶어놓고 때리거나 죽였어요. 전투가 벌어지면 짐꾼을 데리러 왔는데, 남성이 없으면 여성을 데려갔어요."

"버마군들에게 강간은 일상적인 일이었어요", Bo Bo라는 사람이 말했다.

이들은 카렌족 지역에서도 소수자에 속했기 때문에, 어느 편에서나 억압을 당했다. 버마정부는 무슬림을 공격할 때는 어떤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다. Kqwthoole족 군대는 무슬림을 같은 종족으로 보지 않았기에 이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버마에는, 엄청난 불신과 적대감이 있어요. 전단에는 무슬림은 버마인이 아니며 넓게 퍼지기 전에 뿌리뽑아버려야 한다고 적혀있어요." Bo Bo가 말했다.

"이걸 얘기하지요" Paw Paw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물건들을 운반했고 매를 맞았어요. 내 땅에 농사 지으러 가면 체포됐어요. 내가 키우는 것은 뭐든지 빼앗겼어요. 버마군은 나에게 닭을 사오라고 말하고, Kawthoolei 족 군인들은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나는 양쪽 군인들이 다 무서웠지요.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들은 고향을 떠났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길어서 다음번에 마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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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 이주노동열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Name  
   류은숙  (2005-01-21 16:01:07, Hit : 272, Vote : 37)
Subject  
   초국적 이주노동열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초국적 이주노동자 열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on board Transnational Migrants Train)
Saithan Salween이 쓴 글

감시당하고, 추적 당하는 생활, 그런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련돼온 나는 보다 명확하고 생생하게 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내 상상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내가 상상해낸 그림은 기차를 탄 내 모습이다. 나는 기차에 앉아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은 에어컨디셔너가 작동되는 1등석에서부터 붐비고, 냄새나고, 허리가 아픈 의자로 이뤄진 3등칸에까지 앉아있거나 누워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자기 목적지에 닿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 열차에 올라탄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희망은 결국 만사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꿈이 실현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본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 꿈 때문에 사람들은 이 열차에 올라타거나 기차 뒤에 매달리거나 혹은 죽는다.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이 기차의 지붕에 올라가거나 승강계단에 앉아있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국가"라는 차장에게 잡힌다. 어떤 사람들은 잡힐까봐 무서워서 냄새나는 화장실을 포함하여 숨는 방법을 택한다.

슬픈 아이러니는 이런 것이다. "국민-국가"라는 차장이 이들 3등칸이나 입석승객들을 나쁘고 진부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취급을 받은 승객들이 "국민-국가"의 주 수입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승객들 상당수가 종착역에서 말해주는 바는 그들의 삶이 예전과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가끔은 돈은 모을 수 있는 좋은 때가 있겠지만, 철도 경찰에게 아무런 도움도 없지 못한 채 강도나 도둑에게 간단히 빼앗길 수 있다.

내가 어느날 이 기차를 타야 한다면, 나는 좋은 좌석에 앉기를 바랠 것이다. 완전한 티켓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갖고 친절한 승무원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차에 타는 모든 승객들은 틀림없이 나와 똑같은 소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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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노동자들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Name  
   류은숙  (2005-01-17 17:22:18, Hit : 592, Vote : 31)
Subject  
   타이 노동자들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타이 노동자들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인권하루소식> 2005년 1월 15일자 기사


"단속추방이 일으킨 재앙"

이주노동자 8명 전원, 하반신 마비…치료는커녕 귀국조치


화성시에 있는 한 회사가 안전장비도 없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켜, 8명 전원이 화약약품에 중독돼 일명 앉은뱅이병인 '다발성 신경장애'를 앓고 있다.

이들이 2004년 8월부터 일을 했던 곳은 (주)동화디지털로 엘씨디, 디브이디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말헥산'이라는 세척 약품으로 생산된 제품을 깨끗이 닦아 출고시키는 일을 해왔다. '노말헥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대상유해물질'로서 안전장비를 하지 않을 경우 호흡기를 통해 신경조직으로 독성이 침투해 신경장애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유해물질에 대한 경고표시와 안전교육, 직접노출을 막기 위한 보호 장비 등을 쓰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을 방문해 조사를 벌인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아래 외노센터)는 "세척 공정에는 이주노동자들만이 일을 해왔다"며 "마스크는 가끔 착용하거나 장갑도 면장갑을 끼고 일을 하는 게 보호장비의 전부였다"고 전했다. 또한 이들은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점심 1시간과 저녁 30분의 식사시간 외에 아무런 휴식시간도 없이 하루 평균 14시간씩 대부분 서서 일을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지난해 11월 무릎에 힘이 없고, 걷다가 자주 넘어지는 등 하반신 마비 증상이 나타났고, 12월 19일 외노센터로 옮겨질 때에는 업고 옮겨야 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돼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해고가 두려워 말도 하지 못했다. 외노센터 이해령 상담위원은 "아프다고 하면 태국으로 쫓아 낼까봐 고국에서 가족들이 보내준 약만 먹으면서 참고 일해 왔다"며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증세가 악화되면서 일을 못하게 되자, 회사는 이들을 치료해주기는커녕 귀국을 종용, 급기야 12월 11일 씨리난 씨 등 노동자 3명을 귀국시켰다.

또 다른 문제는 회사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해 왔다는 것. 한 달에 고작 하루 정도 쉬면서 평균 160시간의 잔업과 총 400시간의 노동을 했지만 이들의 손에 쥐어지는 임금은 100만 원을 조금 넘을 정도였다. 이 상담위원은 "임금체불, 산재 등의 피해자가 오히려 강제 추방당하는 것이 '코리안 드림'의 실상"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도 13일 성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무차별 단속과 강제추방 정책이 회사 내에서 불법·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게 한 직접적 원인"이라며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전원 사면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4일 외노센터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으며, 최저임금과 보건조치 위반 등으로 (주)동아디지털을 수원지방노동사무소에 신고한 상태다. 왈리 씨 등 5명은 현재 안산중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거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외노센터는 태국으로 돌아간 3명의 노동자들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완치 될 때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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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서 온 새해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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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5-01-13 11:14:09, Hit : 227, Vote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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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에서 온 새해 인사
타이에서 온 새해 인사

지난 몇 달 동안 "전혀 새롭지 않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호주와 미국의 선거 같은 거죠. 둘 다 똑같이 낡은 사상을 가진 오래된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버마 수상의 축출 또한 절대권력이 여전히 똑같은 군부세력의 손아귀에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서 저는 또 똑같은 인기 프로그램이 인질 사건을 열띠게 보도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러한 "전혀 새롭지 않은" 일들에 대해 저는 한때 낙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TV 프로그램의 아나운서는 누구에게나, 심지어 냉혈한 부패 공무원에게조차 매우 공손하지만, 오늘은 끊임없이 인질범을 가르켜 "it"이라고 했습니다. 그 인질범은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고, 아내를 집으로 되돌려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저는 인질이 된 어린 소년과 그 부모들이 경험한 폭력적인 위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욱 경악한 것은 뉴스 보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보도는 차가운 감탄사를 포함하여, "그게 인간인가?"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이어서 화난 군중이 그 범죄자에게 달겨드는 광경이 열심히 방영됐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 프로그램에서 아주 많이 보여졌습니다. 그리고 한 유괴범이 틀린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잡히게 됐다고 비아냥거리는 내용의 광고물을 뉴스가 쉬는 동안 방영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당신아이였다면, 당신의 느낌이 어땠을까요?"라고 물었던 인질이 된 아이의 어머니에게 공감을 느낍니다. 그건 그 어머니가 끔찍하고 수용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그 사람을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저는 경찰공무원이 수행해야 하는 인간존중적인 일과 머리를 써야 하는 일 중 어느것이 "뉴스"의 초점이 돼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협상에 임하면서 생명의 손실 없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경찰은 그 "사람(human)"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경찰이 그 인질범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신뢰하고,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소년을 살려두는 것이 불가능할겁니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분석을 하기보다는 정서적 폭력을 자극하는 것이 아마도 더 쉽고 더 재밌는 일일 겁니다. 빠른 뉴스의 세례를 받으면서, 우리는 사회가, 경제가, 정치가 우리 민중들에게 무엇을 하는지,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폭력의 사용을 받아들이고, 더욱더 "국가"라는 말에 사로잡히고, 더욱더 사람들을 흑백, "우리"와 "적들"로 나누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폭력의 사용을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폭력을 신선하고 생동하는 것으로 느낀다면 우리의 "새해"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하지만, 국경없는 친구들은 언제나, 새로운 순간, 새로운 날, 새로운 해에 희망을 가질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변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단순한 청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이 주연배우이자 방송작가로서 우리는 줄거리를 새로운 영역으로 밀고 갈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조명을 비추고 어떤 인물이 무대를 떠나야 하는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새해에, 전 세계의 지도자들은 유엔의 정책과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권고를 토론해야 할 겁니다. 개혁된 구조는 열강이 아닌 나라들의 목소리와 참여를 통해 세계 민중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호하는데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둠을 보고"있지만 "빛을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뉴스가 우리가 희망하는 바를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보통 사람들의 힘이 매일매일을 "새로운" 날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존엄성을 신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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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 들어왔습니다

Name  
   이민정  (2005-01-10 11:13:28, Hit : 243, Vote : 31)
Subject  
   얄리 들어왔습니다.
서울은 추위가 매섭다고 하는데 제주도는 그래도 따듯한 남쪽 나라라 그런지 조금은 덜 춥네요 ..

멀리 제주도에서 얄리가 인사 드립니다.

그 동안 정신없이 연말을 보내느라 ..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

제주도에서 나름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 ㅋㅋ

앞으로 자주 찾아 오겠습니다. 그럼 다들 평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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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흔적을 남겨 봅니다

Name  
   조대환  (2005-01-07 10:37:34, Hit : 227, Vote : 31)
Subject  
   처음으로 흔적을 남겨 봅니다
어쩌다 들러서 읽고만 가다가 오늘은 한번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한사람 이름만 도배된다고 불평하는 어떤 분을 위해서라도......

만원계에 합류하게 된지는 얼마 안됩니다. 이렇게 조그만 마음이지만 우리의 뜻이 모이면 커다란 힘이될거라고 확신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이렇게 작지만 계속 모아지는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하게된 모든 분들께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자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05년 새해도 벌써 1주일이 흘렀습니다.

남아시아에서 일어난 대 재앙의 아픔이 빨리 치유되길 바라며 첫 흔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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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픈 소식

Name  
   류은숙  (2005-01-06 14:47:15, Hit : 225, Vote : 23)
Subject  
   가슴아픈 소식
핌에게서 메일을 받았는데 이번에 동남아에 일어난 지진과 해일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핌과 절친했던 아체 출신의 활동가 둘이 실종됐다고 하네요. 두 사람은 지난 11월에 결혼했답니다. 두 사람은 핌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특히 아내는 '국경 없는 친구들'에서 작년에 3개월 동안 인턴을 했던 사람이랍니다. 두 사람 다 아체 출신이지만 정치적 압력 때문에 다른 곳에 살다가 결혼식 때문에 아체에 돌아갔었다고 하네요. 아체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싸워왔는데 자연재해가 네 사람(또는 세 사람) 중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정말 지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핌은 4시간을 울었다고 하네요. 사망자들을 한꺼번에 매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시신이라도 찾기를 희망하고 있답니다.
해 뜨는 시간이 조금 다를 뿐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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