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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ee와 Mi Nge 이야기(1)

Name  
   류은숙  (2005-03-18 17:09:51, Hit : 248, Vote : 18)
Subject  
  
Malee와 Mi Nge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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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ee; 24살. 타이의 북부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6학년을 마친 후 10년간 가정부로 일해왔다. 현재, 그녀는 Ratchabath 대학에서 파트타임으로 학사 취득을 하고, 전공을 살려 가르치는 일을 찾고 있다.
Mi Nge; 22살. 버마 Shan 주의 산촌에서 태어났다. 16살이 되기전에 그녀는 치앙마이(태국 북부도시)에 일자리를 주선 받아 왔으나 월급 없이 일해야 했다. 그래서 도망쳐서 식당과 옷공장에서 일했다. 현재 그녀는 결혼해서 Mae Sai지방에서 행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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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ee와 Mi Nge는 비슷한 또래의 여성입니다. 그들은 어떤 큰 집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언론의 표제나 인터넷의 의견들은 버마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을 어떤 편견과 경멸을 갖고 보게 합니다. 이주자의 삶을 언론을 통해 볼 때 그 배경이 되는 것은 민족주의 사관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그들 자신의 의견은 한마디도 없이 노동자들에 대한 선 또는 악(대개는 악으로)의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Malee와 Mi Nge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전혀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고 권선징악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단지 가정부로 일한 평범한 소녀들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매일 이들은 바닥을 쓸고, 설거지를 하고, 정원을 가꿉니다.


그녀의 고향은 매우 달라요. 실제로 그녀의 종족 사람들은 땅을 갖고 있었지만, 경작해낸 건 뭐든지 버마군인들에게 넘겨야했어요. 농작물을 넘기지 않으면, 군부는 그냥 땅을 몰수했을 테니까요. 세금 또한 아주 높았어요. 그리고 댓가를 못받고 군부를 위해 일해야 했어요. 나는 버마가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Mi Nge는 한번 팔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돈도 못받고 강제로 일해야 했지요.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있기도 했어요. 그때 줄곧 울기만 했다고 Mi Nge가 말했어요. 그때 집주인이 그녀를 다시 데리러 왔대요. 그녀가 그 집에서 도망친 후에는 어떤 친구가 그녀를 똑같은 종류의 일하는 데로 데리고 갔대요. 곤란한 일이 많았대요.
공장에서 일할 때는 밤낮으로 일해야 했고,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도 쉴 수 없었대요.

나는 신문에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나쁜 얘기를 많이 읽지만,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일자리를 뺐는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타이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을 싫어해요. 일부 집주인들이 돈을 잘 준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가정부보다는 공장에서 일하는 걸 더 좋아해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이 너무 외롭고, 너무 자유가 없고, 고정된 노동시간도 없다고들 말해요. 이 지역의 가정부들은 대개 버마에서 왔어요. 그들은 너무 부지런해요. 일부 집주인들은 형편없는 음식에 고된 일로 함부로 대할 때가 있어요. 이주노동자에 대해 욕을 하는 그런 사람들은 Mi Nge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다른 사람을 해쳤나요 아니면 그녀가 해침을 당한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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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연합(2)

Name  
   류은숙  (2005-03-12 01:31:10, Hit : 677, Vote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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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로운 연합(2)
Shwe: 나는 이런식으로 얘기해보겠다. 버마에는 오직 두 개의 사회계층만이 있다. 군부냐 군부가 아니냐 뿐이다. 나는 정부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군인은 그 서열이 어떠하든 간에 아무 때든지 나에게 호통을 칠 수 있다. 나는 심지어 짐꾼으로 잡혀가기도 했다. 국경지대의 소수민족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어떤 사회계층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억압받고 차별받고 기회를 박탈당할 뿐이다. 심지어 우리 모두가 난민이 되었음에도, 어떤 행사, 훈련, 세미나에 참여할 기회는 으레 좋은 교육을 받은 버마인들이 주로 운영하는 단체들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인권, 발전, 정치 등과 같은 주제를 배울 수 있는 우리 자신의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

Lwi: 그리고 그런 교육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지식의 측면에서나 버마어의 측면에서나. 이제 우리는 버마 젊은이들과 동등하게 참여하거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다.

Shwe: Shan족과 Karenni 족 젊은이들이 4년전에 시작한 워크샵 시리즈 참여자들이 포럼을 조직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젊은 소수민족간에 협력과 우정을 건설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올해 우리는 자연자원 운영과 구조분석에 대한 워크샵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의제를 토론하는 청년 교환 포럼이 준비되고 있다.
우리의 장기 목표는 젊은이들이 작은 공동체에서나 전국적 차원에서나 잘 준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행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전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Lwi: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젊은이들간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공동의 기반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Shwe: 우리가 여기에 평화를 찾아 왔으며 어떤 문제도 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이 친구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고향에는 인권침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머무르는 것이고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타이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여기 머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인이나 타이 젊은이들의 네트워크와 협력해야 하는데 나는 타이말을 할 줄 모른다. 어쨌든 노력중이다. 우리가 만들려 하는 소수민족 연합은 새로운 사회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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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연합(1)

Name  
   류은숙  (2005-03-08 01:11:43, Hit : 307, Vote : 28)
Subject  
   다채로운 연합(1)
* 긴 글이라 우선 절반만 번역했습니다. 다음에 이어서 올릴께요.


다채로운 연합

독재권력은 국가의 '통합'을 강제하면서 선주민들을 억압해왔고 수백만명이 버마를 떠나도록 했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람이 Shan 주 출신의 Paluang 여성 Lwi와 Karenni 주 출신의 Kayan 남성인 Shwe이다. 오늘 나는 이 둘을 방문하여 차를 마치며, 젊은 인종적 소수민족간에 새로운 의미의 "통합"을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얘기 나눌 기회를 가졌다.

Lwi: 어렸을 때, 정부 학교에 다녔어요. 그 당시에는 버마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동시에 나는 혼란스러웠어요. 문제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어쨌든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거든요. Paluang이 군사정권과 휴전협정을 맺은 후에, 버마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머물렀고, 군인들은 마을에서 씻을 수 있는데 우리는 정글 속으로 씻으러 가야만 했어요. 마을에서 물을 조금 썼다고 내 친구와 나는 거의 죽을뻔했죠. 난 겨우 12살이었어요.

Shwe: 내 두눈으로 봤어요. 술취한 버마 군인이 Karenni 족 짐꾼의 입에 칼을 쑤셔넣었어요. 그는 단지 재미로 그런 것인데, 짐꾼의 목구멍 근처까지 칼을 휘저어댔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죠. 국경지대의 Karenni 저항그룹과 함께 살기 전까지는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나서 분명해졌죠. 인간으로서,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말이죠. 나는 무장투쟁의 원인과 민족 분쟁의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버마에서의 주요 문제가 민족 갈등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민족 갈등이 군부 독재 체제와 얽혀있어요. 유엔 결의안은 버마정권과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소수민족 삼자간 대화를 지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들 소수민족인가요? 수십여개의 정치 집단이 있는데, 이들은 한 목소리로 합해져야 해요. 모두가 한 목소리로 같이 융화된다는 것이 이상한 생각은 아닐 거예요.

Lwi: 우리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젊은이들을 한데 모으고 싶어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해야만 하는지를 알고 있어요. 버마인들과 적이 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사회를 가질 권리가 있어요. 어떤 활동은 버마 젊은이들의 참여를 포함하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통합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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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에게서 온 편지

Name  
   류은숙  (2005-03-03 13:58:17, Hit : 297, Vote : 40)
Subject  
   핌에게서 온 편지
핌에게서 3월 3일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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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지난 몇 달 동안의 여러분의 지원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기는 여름이 오고 있고, 우리들은 매우 바쁩니다. 올해의 첫 두달 동안 정기적인 출판사업 외에도, 국경지대의 프로그램을 준비해왔습니다. 준비의 대부분은 협의를 말합니다.

지난달에 저는 Mae La 난민캠프에 있는 카렌여성단체의 친구들을 방문했습니다. 이 캠프는 타이에 있는 난민캠프중에 가장 큰 것으로 4만여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캠프는 21년 전에 세워졌고, 아주 크고 도시처럼 붐비는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회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여성단체는 가정폭력과 여성과 아동 인신매매를 현재 주요 사안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단체가 저를 초청하여 그 문제에 대처하는 일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캠프내의 난민들에게는 노동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담장 속에 살아야 하며 허가 없이는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은 탈출구를 찾으려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타이에서 성장하는 동안, 인생의 대부분을 난민으로 살아왔고 캠프내의 학교에 다녔고,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는 모두가 다닐 수 있지만 중고등학교는 훨씬 적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매일 학교에 다니는 일에 익숙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상 생활에서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밖으로 나오면, 불법 이주자이고, 타이말을 할 줄 모르고, 바깥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착취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녀와 여성들은 가정부나 성매매에 강제로 팔려갑니다. 타이 정부당국이 정보를 입수하여 그들을 구조한다할지라도, 그 여성들은 정부의 비상쉼터로 보내져 영원히 거기에 머물러야 합니다. 법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집으로 보내져야 하겠지만, 난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집조차 없습니다. 그들의 집은 버마군에 의해 불태워지고 파괴됐으니까요. 피해자들이 난민캠프로 돌아가는 일도 드뭅니다. 그들을 다루는 절차가 모든 관계 기관에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언제가 될지 모를 때까지 쉼터에 머물러야 합니다.

정책과 법규를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카렌여성단체와 우리가 함께 노력하는 것은 예방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는 몇 달동안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왔고, 이렇게 합의했습니다.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캠프 밖에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가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고 캠프탈출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녀와 여성들은 바깥 상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고, 일단 밖으로 나가게 되면 처하게 되는 사회적·법적 상황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다음달에 캠프를 다시 방문하여 관련자들과의 첫 워크샵을 어떻게 시작할지를 의논할 겁니다. 4월에 있을 워크샵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계획하는 첫 발걸음이 될 겁니다.

이 캠프에 이어 저는 또 난민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의 학교에서 우리는 아동의 인권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학교 사람들은 한국의 친구들이 비용의 일부를 지원했다는 소식에 아주 기뻐했습니다. 이 워크샵은 7개 학교의 교사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교사들 스스로가 제안한 것으로서,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아동의 인권을 증진하는 교사들의 능력향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들 교사들 대부분이 난민캠프 출신의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인생과 민중에게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국경없는 친구들'에 속한 우리들이 좌절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난민 친구들과 말하거나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의 힘을 느낄 수 있고, 우리의 내적 힘을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내일의 태양, 또 그 다음 내일의 태양을 향해 우리는 단지 서로를 격려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우 먼 곳에서 우리를 후원해주는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힘과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의 우정에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Pim Koetsa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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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3월2일 후원금 송금내역

Name  
   류은숙  (2005-03-02 15:16:47, Hit : 241, Vote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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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3월 2일 후원금 송금내역
힘찬 3월이 시작됐습니다. 요즘 부는 바람은 '봄' 바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겨울바람과  다른 향기와 기운이 느껴집니다. 만원계 회원 여러분 모두 봄기운와 더불어 상승하는 한달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과 같이 2월달에 모아진 후원금을 오늘 송금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1월 잔액 45,835원
2월 1일 김태* 1만
2월 3일 조대* 1만
2월 17일 김재* 2만
2월 18일 유해* 1만
2월 21일 황수* 1만 5천
2월 25일 이민* 1만
2월 28일 이민* 1만
            구태* 1만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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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50,835원


송금액: 150 달러(156,909원)
잔액: - 6,074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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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아픈 날

Name  
   류은숙  (2005-02-23 21:37:56, Hit : 682, Vote : 22)
Subject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아픈 날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아픈 날

글쓴이 Shine Shan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우리는 행복한 순간이 결코 끝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소중한 꿈이 땅바닥에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꿈꾸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그건 당신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내가 무너질 때마다 항상 거기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공허함을 느끼는 날마다, 내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는 곳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상기시켜줬습니다. 그곳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가 나를 사랑해주는 곳이고, 내가 아주 오랫동안 그들을 떠나 있었다할지라도 결코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곳입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아픕니다. 내 모든 신경이 타버렸고 갑자기 얼어붙었습니다. 마치 돌멩이와 모래가 가득찬 듯이 목구멍이 아픕니다. 피로감이 눈을 짓누르지만 들뜬 열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때, 나는 내가 다시 깨어날지 말 지에 개의치 않습니다. 단지 영원히 잠만 자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도 알거나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국경에서 들려온 고통스런 뉴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소식이 단지 악몽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상 Karenni 민족이 사는 곳에 어떤 전투도 없고, 군인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가족들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그 뉴스는 사실입니다. 새해가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버마군대가  Karenni 민족진보당의 기지를 포격했고, 이곳은 2만명이 넘는 난민이 있는 Mae Hong Son과 Karenni 난민캠프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이 전투 때문에 나는 Anthony와 Sebasian을 생각합니다. 2년전에 그들을 만난 이후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Anthony는 내가 처음으로 사귄 Karenni족 친구입니다. 오늘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가 '버마 내'로 들어갔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가 난민 캠프를 떠나 Karenni 주로 갔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족이 너무 그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난민캠프에서 성장한 사람이 되돌아가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버마군부는 전쟁에 이기려 하고 소수민족을 불신하기 때문에 끝없는 억압, 고문, 인권침해가 자행됩니다. Anthony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큰 전투가 시작됐기 때문에, 나는 Sebastian이 자원하여 전선에 나가지 않았을까 염려됩니다. 지금쯤 고등학교를 마쳤을 텐데, 졸업하고 나서 영어선생님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는데...다른 한편, 그는 평화가 오지 않는 한, 총을 드는 일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가 지뢰밭과 전장의 잔인함에 생명을 걸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런 위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깨고 잠들기를 반복하는 속에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나는 갑자기 종족간의 화합을 기뻐하는 갈채소리를 들었습니다. 전쟁으로 한번 찢겨졌던 땅에 평화가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난민들은 행복하게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친구들이 함게 살았던 옛시절을 재건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Anthony가 들판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Sebasian이 지역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걸 봅니다. 어떤 공포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도 거기에 있습니다. 따뜻한 햇볕아래, Karenni 주의 아름다운 농촌 풍경속에...

그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영원히 잠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병에서 벗어나서, 그런 아름다운 광경이 단지 내가 열에 들떠 꾸었던 꿈이 아닐 수 있도록 뭔가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나는 뭔가를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오래 떨어져있던 집에 돌아가는 날이 되면, 나는 이 아름다운-꿈이 아닌 현실을-가족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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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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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5-02-20 00:05:11, Hit : 249, Vote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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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부의 끝에서
주변부의 끝에서
고향, 가족, 그리고 기억...속삭임
글쓴이: Saytan Sal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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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일을 시작한 그곳에 마지막으로 가본지 꽤 오래됐다. 그곳은 내가 처음 현장 경험을 한 곳이다. 7.8년전에 그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보이는 곳이었다. 마음에 편견을 갖고서 사람들은 그곳을 걸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곳의 삶을 '느껴'보려 하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내가 일을 시작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그곳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타이에 거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수출경제지구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시선이 방콕에 가까운 이 작은 지방을 향하고 있지만,  나는 멀리서 지켜만 볼 뿐이다. 나는 단지 어느날 그곳에서 내 오랜 친구들과 예전처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도 그건 내가 엄마에게 가족을 곧 방문할 것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도 나의 이주자 친구들도 비슷한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고향에 대한 꿈을 꾸지만, 고향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오늘, 내가 처음 현장 경험을 할 때 찍었던 사진을 보니 기억들이 몰려온다. 상반된 기억이 하나씩 떠오른다. 내게 떠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사무실(이주 아동을 위한 작은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 있던 젊은 버마 교사와 어린 Mon족 소년이다.
그애의 이름은 'Oun' (뚱보라는 뜻) 이었다. 그 애는 그게 진짜 이름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애의 Mon족 이름을 물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도 '뚱보'였다. Oun의 부모님은 생선을 다루는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그들 가족은 버마의 Mon주를 떠나 6.7년전에 타이로 왔다. 다른 Mon족 가족들도 비슷했다. Oun의 아버지가 먼저 친구들과 함께 나왔고, 나중에 가족들을 데리러 되돌아갔다.

Oun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했다. "과수원하고 구멍가게가 있었는데도 가족들을 먹여살리기에 충분치 않았어요. Mon족과 버마군대가 교전 상황일 때 힘들었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Mon족 군인들이 우리를 보호해줬기 때문에 생계를 꾸릴 수가 있었어요. 나는 전투가 끝나면 상황이 좋아지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나빠졌어요. Mon족 군대가 없어지니까, 버마군대가 와서 원하는 건 뭐든지 가져갔거든요. 쌀, 고무, 도로, 다리 등등 모든 것에 세금을 거뒀어요. 최악의 일은 내 당을 몰수해버린 거죠." 내가 가족을 데려온 이유를 묻자, 그의 대답은 "걱정됐으니까요.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가요? 차라리 같이 있는게 나으니가요."

나는 타이 정부나 고용주의 관점에서 물어봤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노동력'일 뿐이다. 그러니까 타이는 이주자에게 안전하지 않다. 임시노동허가를 받을 자격이 없는 아내와 아이들은 체포, 구금, 추방당하지 않느냐고. 그러자 Oun의 엄마가 말했다. "한 여성이 자기가 밖에 나가 일하는 동안 아들을 친구에게 돌봐달라고 맡겼어요. 그런데 경찰이 갑자기 사람들을 체포하려 나타나서 아이도 데려갔어요. 그녀는 경찰서에 아들을 찾으로 갔고 결국 둘다 추방당했어요. 남편은 아내와 아들을 국경에서 찾아야 했어요. 요즘 저는 Oun을 집에 두고 나갈 자신이 없어서 애를 데리고 일하러 가요. 경찰이 온다면, 우린 같이 체포될 거예요.  

우리가 이주아동을 위한 학교를 시작했을 때,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따로 잡힐까봐 두려워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이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온다면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나는 아이들은 괜찮을 것이라 약속했다.

이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요즘 임신한 이주 노동자를 추방하는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건 아직도 우리가 사람들을 단지 '노동력'으로 볼 뿐이고, 사랑하고 가족을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갑자기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때문에 기억에서 깨어났다. 이번 나의 여행은 쓰나미로 인해 자연의 경고를 받은 땅의 슬픔에 빠져드는 일이다. 폐허가 된 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을 잃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나는 파도에 남편을 잃은 타보이족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임신상태였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같이 살자고 그녀를 데려왔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을때 그 어머니에게는 옷한벌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한다.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그녀가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기댈수 있는 어깨를 내주고 있다.

연민의 파도가 쓰나미를 거의 말려버렸다. 나는 일상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아름다운 광경을 봤다. 나는 어머니-자연에게 기도했다. 우리 인간들이 이 연민을 인류라는 대가족을 건설하는 일로 바꿔낼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이 인간가족은 오직 '우리'만으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평화가 올 것이다.  

내가 돌아오기 전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고인들의 명복을 빌 뿐이라며 고향땅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마음과 몸의 잠시동안의 휴식을 원했고 상실 후의 새 삶을 시작하길 원했다.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어머니는 항상 내게 말한다. "네가 아주 지치거든, 집에 오너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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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Name  
   김예영  (2005-02-14 21:17:44, Hit : 190, Vote : 37)
Subject  
   안녕하세요
가입한지는 좀 되었습니다만
처음으로 글을 씁니다

발렌타인데이입니다
초콜릿을 사는 돈을 보니

저 돈을 다 싹쓸이해서...
이런 생각이 마구 드네요

그럼 모두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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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잘 보내셨습니까

Name  
   류은숙  (2005-02-10 23:20:10, Hit : 262, Vote : 37)
Subject  
   설 잘 보내셨습니까
길게만 여겨지던 연휴가 갔습니다. 만원계 여러분 설 잘 보내셨습니까?

전자렌지 앞에서의 몇초가 길게 느껴지고, 잠을 자면 아침이 너무 빨리 오는 것 같고, 일할 때는 시간이 왜이리 부족할 까하고, 사람의 시간감각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연휴에는 왜 이리 시간이 안가나 하면서도 합해서 보면 정말 후딱 지나가 버린 것 같습니다.

언제나 일상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웬지 서글프게 느껴지니 '새롭게 시작한다'고 말을 해보지요. 만원계 여러분, 낡고 슬픈 기억은 지우시고 새롭고 활기찬 생각과 몸으로 다시 시작하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연휴를 사무실에서 보냈는데, 핌에게서 메일을 받았습니다. 태국에서 선거가 있었는데 그들만의 예정된 잔치로 끝나서 허무하다는 얘기, 다시 생각과 계획을 추스리면서 시작해야 겠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난민학교(제가 난민어린이들의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Ler Per Her 학교)에서 아동의 인권에 관한 6일간의 워크샵이 예정돼 있는데, 원래 지원하기로 했었던 크리스챤 조직에 내부 문제가 생기고 담당자가 관두는 바람에 지원이 취소돼서 상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워크샵 비용은 1,000달러(약 100만원)라고 하는군요. 저희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감당하기엔 큰 비용이라 저혼자 고민하다가 그냥 고민이라도 함께 나누는 것이 좋을 듯 해서 이렇게 얘기하게 됐습니다. 어딘가 길이 있겠지요?

한 해 동안 모든 분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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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난민(3)

Name  
   류은숙  (2005-02-08 14:15:55, Hit : 272, Vote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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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국적 난민(3)
무국적 난민(3)
글쓴이 Chana Damn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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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이들은 희망한다. 언젠가는 자신들이 밟고 있는 이 땅이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오리라고, 방랑의 세월을 끝내고 굳건하게 번성하며 정착할 수 있는 진정한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10여 년 전에, 이들은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청색카드를 소지한 남자는 징발될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버마 군인들로 인한 악몽은 여전히 이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시민권이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전혀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또 한번의 신분증을 얻을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 Miyazawa 펀드가 착수한 연구 프로젝트였는데, 이것은 또다른 유형의 서류작업, 소위 그린-레드 카드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공무원들은 제한된 시간 때문이 이들이 사는 지역을 조사하지 않고 돌아가버렸다.

"어떤 종류의 서류가 됐던 괜찮아요. 우리가 그걸 이용할 수만 있다면요", 라고 BoBo는 온갖 색깔의 카드를 손에 쥐고 흔들면서 말했다.  "물론, 이상적인 것은 타이 시민권이겠지요. 우리도 마을 촌장이나 지역구 선거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투표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우리도 여기 살고 있는 주민이니까요. 어떤 종류의 카드가 됐던 우리가 보통 사람들처럼 살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나는 벌써 내 생애 절반을 넘게 살았어요."

"나는 내 애들에게 버마에서 있었던 잔인한 일들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아요. 그건 이미 나에게 지나간 일이예요."라고 Charlie는 말했다.

"버마에서 일어나는 어떤 변화도 내 미래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고 Swe Poe가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도 난민캠프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도망 나왔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이곳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이 마을에 정착하게된 이유예요. 캠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국에 평화가 와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이 마을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세웠고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우리가 나쁜 건가요?"

Paw Paw 할머니라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어찌됐던, 나는 여기서 살고, 여기서 먹고, 여기서 죽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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