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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느 촛불의 푸념

촛불에서 멀어져야 할 날이 다가옵니다.

 

제 마음이 어떨지 아실까요...

말 안해도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거... 이거야 말로 연인들마저 싸우게 만드는 이유 1순위라죠... ^^

 

 

작년 한해동안 촛불 열심히 들었습니다.

뭘 이만큼 열심히 해본적이 없었다 싶을만큼, 막 뛰어들고 내던져가면서요.

 

저는 많은 걸 바랬습니다.

처음엔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했지만,

저 개인의 마음에 품었던 목표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지요.

우리가 언제 한번 이루어보지 못했던, 사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피 보지 않고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혈 혁명. 아니, 어쩌면 혁명이라는 말 조차 낡은 것으로 치부될, 인류의 진보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꿈꿨습니다.

(장르로 치면 거의 판타지죠... ㅋ)

그래서 6월 10일날, 인파에 낑겨가지고 뒷사람이 든 촛불에 머리카락 타면서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꿈을 꾸는 대가로 제가 본 것, 겪은 것들은 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상처'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즉각 떠오르는 이 생각들이 만들어지기 까지,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저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2008년을 너무나 소중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요.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사람들.

행동함으로써 저에게 배울 것을 만들어주시는 분들.

꾹꾹 참고 있던 눈물도 그 앞에서는 맘껏 터뜨릴 수 있게

온 마음을 다 열고 안아주시는 분들.

어디서 뭘 하며 사시다가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할 뿐인... 그런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디서 뭘 하고 있든, 이분들과의 대화와 경험이 제 행동과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거라는 직감이 듭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 어느때보다도 나약해져 있습니다.

 

촛불 든 이유가 무엇이냐, 고 누가 묻는다면 제가 대답할

일차적인 목적들은 아직까지 모두 좌절되었거든요.

천사들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지만,

천사들을 만나기 위해 촛불 든건... 사실 아니었으니까요.

 

이제 잠시 촛불을 내려놓아야함을 받아들이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 현실 위에서, 이 나약한 인간이, 돈과 출세의 가치관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역사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외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점점, 직접행동의 광장에 나와서 우리가 겪는 수모는 모질어집니다.

매일, '촛불 들면서 가장 치욕적이었던 날'의 날짜가 경신됩니다.

'이제 나도 많이 독해졌구나. 이정도로는 눈물도 나지 않으니 말이야' 하고 생각한 다음날이면

또 다른 믿을 수 없는 일이 나를 압도해, 그간 쌓아온 '독한 이성'을 허물어버립니다.

 

앞으로 더 심해질텐데. 님들은 계속 이 괴로움을 겪어야 할텐데

나는 거기서 한발 물러나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요 며칠간은 생각없이 뛰어들기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까는 시민을 납치해가는 버스 앞을 막고섰는데, 아랑곳 않고 코앞까지 다가오는 버스 앞유리의 운전석을 보며

그래 그대로 지나가라 하는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버스 진로 방해한다고 경찰이 떠다밀어 넘어져서는,

위로 겹쳐넘어지는 사람들의 무게에 잠시 압사의 공포를 느꼈다가,

그도 나쁘지 않지, 란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아마 오늘처럼

내일 밤에도 저는 멀쩡히 살아있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쯤 부터 '마음의 촛불은 항상 타고 있을거다!'란 말을 스스로 경멸하며

제 인생의 한 줄기를 따라가기 시작할겁니다.

병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한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얼마나 멀어지게 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나의 인생에 급 반전을 불러올지...

지금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용산학살 전날 밤 

용산 현장 길 건너편에 깐돌아비님하고 서있다가

건물 꼭대기의 깨진 창문가에 나와서 담배 피우시던 철거민 예닐곱분한테

팔로 큰 하트모양을 만들어 응원을 했던 것이,

고작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

또다시 그 자리에 선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과연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지,

'우린 승리해야 한다' 라고 말할 순 있어도,

'우린 승리할 것이다!' 라고 큰소리 쳐도 되는건지,

그 말이 나를 아프게 하고

남을 아프게 하지 않을지

한없이 조심스러워지고

아파지는 날입니다. 

 

 

 

거의 모든 순간이 기억나는 이 특별한 한 해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고보니 저에게 필요한건 그보다는 그냥 넋두리였나보네요.

이런 영양가 없는 푸념을 해놓고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해지는 걸 보니까요... ㅎㅎㅎ

 

 

(아, 이얘기는 꼭 해야지.

저 이래놓고 다음날 또 나와도 면박주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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