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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시청-광화문

24시간 x 6일 근무지만 말이다,

요즘은 꽤 한가한 편이다.

일만 빨리 끝내놓으면 숙소에 들어와 쉴 수 있는 시간이 꽤 길다.

쉬다가 갑자기 call 이 오면 나가서 일하는데, 어제는 유난히도 없어서 계속 숙소에서 아프리카로 시청광장 scene을 틀어놓고 헤드폰을 끼고 엉덩이만 들썩들썩거리고 있었더니 내 룸메이트가

"야, 너 죽을 것 같다. 그러다 마우스 잡은 채로 굳어버릴 것 같애. 삐삐 나한테 맡기고 어디 좀 나갔다 와. "

 

친구야 ㅜ.ㅜ 고맙다.

 

나는 급히 컴퓨터를 로그아웃하고  병동에 가서 콜이 올만한 일을 찾아서 다 해치운 후 ("인턴 할 일 있어요? 또 있어요? 이게 다예요? 이제 없죠,  없죠?') 데일리까지 만들고 삐삐를 맡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부여잡고 시청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그 사이에 콜이 딱 하나 왔는데, 그것도 이미 해놓은걸 모르고 콜한거였다. Yes!!  하나님, 감사합니다. ㅜ.ㅜ)

 

시청역 출입구를 막았을까봐 종각에 내려서 걸어간 시청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넘쳐 흘러 도로까지 나와있는 상태였다. 경찰은 청와대쪽으로 난 길을 한사람 지나갈 길 빼곤 다 막아버리고, 사무라이조가 휘두르던 장봉을 등에 빗겨메고 도열해 앉아서 대기하기도 하고, 갖가지 볼거리(혹은 못볼꼴)를 제공하고 있었다.

 

'대통령 사과' 라는 따라하기도 낯부끄러운 구호에다가 뒤에는 잘 들리지도 않은 각종 '발언' 과 '공연' 이 끝나고 (이해 안가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는 배경음으로 '꺼져줄래?'가 흐르고 있었다는...) 삼사백명의 사람들이 세종로에 나가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밥먹고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그쪽으로 합류하려던 차였는데, 시청 뒤쪽에 진치고 있던 경찰이 떼거지로 우리 뒤를 따라오는거다.

' 어, 얘네 뒤에서 칠려나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에서 무아지경으로 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는 전혀 모르고 당하게 생긴거다. 그래서 난 또 '익명성'의 철가면을 쓰고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며 '뒤에서 치려고 준비중이예요' 를 외쳤다. 사람들은 '경찰 들어온대' 하는 말을 서로 퍼뜨리며 서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전경과 시위대의 대치선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사람들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뛰기 시작하는거다. 나는 앞으로 가던 터라 갑자기 벙 쪄서 거의 경찰 손에 잡힐 뻔 했다가 벗어났다.

그런데 이것들이 달려드는 기세가 진짜 열흘 굶긴 개떼같은거다. 그냥 인도로 올리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잡아 족치는게 목적인 듯 했다. 

 

(여기까지 쓰고 콜받고 병동올라갔다가 이 뒤는 6.12 에 이어서 씀)

 

나도 참 요 일년 시위에 많이 나오고 대치상황에 나대기도 많이 했나보다.

뒤돌아 뛰는 사람들에 밀리면서, 더 빨리 뛰고 싶은 사람들에 밀쳐지면서, 아... 참 익숙하다....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사람들은 서로 엉켜 넘어지고, 넘어진 사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한두명 손을 잡아 일으키다가 이미 경찰들이 내 '앞에'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아... 오늘은 잡히면 안되지...'

'오늘부터 2박 3일 닭차투어를 하면, 나는 '근무지 이탈하고 불법시위하다 잡혀가서 2박3일 근무 빵꾸낸 인턴' 이 되는거다. 이 문장이 가진 '안주'로서의 매력은 어마어마한 거다. 항상 스캔들과 루머에 목마른 선생님들과, 이런 루머의 교류에 있어서는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병원 직원들에게까지 퍼질 것이다. 게다가  이바닥이 워낙 좁고 뻔해서, 다른 병원에도... 아마 앞으로 나는 이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 시위하다 연행된거 소문나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근무시간에 나갔다는 건 스스로도 할 말이 없잖아. 소문이 나도 떳떳하게 나야지. 오늘은 안돼.'

 

(여기까지 쓰고 이 뒤는 6.13 이어서 씀 http://blog.jinbo.net/camusian/?pid=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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