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버스타기

학교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은 갈아타는 시간이 길 뿐만 아니라, 풍경이 건조해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도 아침에는 여유를 부리기가 힘들다. 언제나 지각을 아슬아슬하게 면할 정도로 자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 시간 버스에 거는 기대는, 이길 확률이 없는 사기도박에 거는 기대나 마찬가지다. 그걸 알면서 번번히 기대를 건다. 출근길 만원버스가 미쳐서 휭휭 날아가는 상상을 한다. 학교까지 가는 수많은 버스노선의 조합을 한 번 씩은 다 거쳐보고 나서야 포기한다. 버스를.

 

반면 집으로 돌아올 땐 언제나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면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50분까지 더 걸린다. 그래도 버스를 타면 기분이 좋다. 오늘처럼 햇살이 밝게 비추는 날에는 학교 정문까지 걸어가는 길도 즐겁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먼 길도 즐겁다. 살짝 졸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가끔씩 정체가 심할 때는 사람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종로 1가까지 와서 갈아타는데 자리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종로1가에서 갈아탈 때는 버스 출발역이기 때문에 항상 여유롭게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5명이 앉을 수 있는 제일 뒷자석 바로 앞 2인석. 앞쪽에 앉으면 항상 버글버글대는 사람들 신경쓰느라 맘 편히 쉬기가 어렵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아서 신경이 쓰인다. 난 항상 자리를 양보하지만 그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신경을 쓰기가 싫기 때문이다. 가끔 잠에서 깼는데 앞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서 있으면 괜히 뭔가 잘못한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쩔 때는 한참 동안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는데 잠깐 눈을 쉬게 해주려고 고개를 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로 앞에 서 있는거다. 그것도 등이 굽으셔서. 뒷쪽에 앉으면 이런 상황을 접할 일이 거의 없다.

 

오늘 탄 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특이하게 직접 마이크를 들고 다음 내릴 정류장 안내방송을 했다. 그러다 6시가 가까워오자 아저씨는 라디오 클로징 멘트처럼 다소 긴 방송을 했다.  '오늘하루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셔서 편하게 쉬십시오. 오늘 하루 쌓였던 스트레스는 잊고 조용한 저녁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버스 정차 후 손님이 내릴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드릴테니 서두르지 마시고 벨을 누른 후 버스가 완전히 정차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계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내리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 항상 밝고 즐거운 나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냥 괜히 기분이 좋아 배시시 웃었다. 이어폰을 빼고 아저씨 멘트를 끝까지 다 들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