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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2] 길은 또 여기서 시작되고..

 

 

 

여행은 끝났고, 일상이 여행처럼 바뀌는 것 아닐까 기대했지만 일상은 견고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모든 게 그 자리에 있었다. 가족은 한결 같았고, 졸업과 돈벌이에 대한 걱정은 잠시 유예된 것뿐이었고, 왕복 6차선 도로를 꽉 메운 차들은 하루 종일 매캐한 연기를 내뿜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나치게 바쁘고, 끊임없이 만능이 될 것을 요구받는 사람들은 동시에 절대 튀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리고 개그콘서트는 여전히 재밌다(마빡이 미치겠다).


 

1.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난 분명 많은 걸 기대했다. 그리고 여행은 기대이상이었다. 여행은 50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엔 충분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두드러지진 않겠지만 두고두고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예감. 무엇보다 최고의 수확은 자신감이다.(아~ 좀 식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래요-.-;;) 이 번 여행을 통해서 자전거도 배웠고, 수영도 배웠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한테는 대단했으니. 스물이 넘도록 자전거 못 배운 사람들은 이 심정 안다. 한 번 때를 놓치면 그 후엔 기회가 잘 안 온다. 쑥쓰러워서 못 배운다. 그러다 여행가기로 맘먹고 5월에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에 강화도로 예행연습을 다녀올 때만 해도 한강다리에서 가드레일 들이 받고 차도로 떨어졌는데. 아무 탈없이 여행을 마무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다. 이젠 나도 자전거 타고 여기 저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고. 수영 배운 것도 신기한 일이다. 물에 대한 공포심이 심해서 수영만은 평생 극복 못할 콤플렉스라 생각했는데 물에 뜬다는 사실이, 그래서 이제 수영장이 두렵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의 발견. 내가 참 초라해 보이고 새로운 도전이 마냥 두렵기만 할 때 여행은 나에게 작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낯선 환경으로 가득찼던 첫 번째 해외 여행이자 자전거 여행이었다.

이미 난 자전거로 사무실에 오고 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종로나 청계천을 지날 때는 유독 오토바이가 많다. 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신호를 기다리며 일렬 횡대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토바이로 가득했던 호치민 시티가 생각난다. ‘치열한 삶의 현장은 어디나 이렇게 비슷하구나.’ 다른 듯 닮아 있는 모습을 본다.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지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전태일 열사 거리도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처음봤다.


 

2.

여행을 가면 더러는 헤어지는 연인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만큼 의견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고 서로 바닥을 보게 되니까 더러 실망도 한다는 뜻. 여섯 명이서 50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갔다. 참 많이 부대끼고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많았다. 내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였다. 흔치 않은 경우다. 또 다른 사람들의 밑바닥을 봤다. 항상 사무실이나 집회 현장에서만 보던 친구들. 너무나 자주 보는 얼굴이지만 깊이 이해하려들면 전혀 잡히지 않는. 그런 친구들.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이겨냈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여행 전에는 어색했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좀 편해졌다. 사람에 대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생각한 시간이었다. 그 때 느낌처럼 섬세해질 수 있다면 일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둔해지는 건 한순간이다. 감이 떨어진다 싶을 때 그 때 느낌을 떠올려봐야지.

몸이 힘든 때도 많았다. 애초에 몸으로 때우기로 결심했던 여행이었다. 예산은 넉넉지 않았고, 계획은 완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전거에 대한 준비가 너무 미흡했다. 사전지식도 부족했고 10만원대 하이브리드 생활형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계획한 것도 무리였다. 자전거는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었고, 친구 중 한 명은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는데 손목에 금이 가서 중간에 자전거 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사고가 정말 많았다. 거짓말 안보태고 하루에 평균 한 번 이상씩 튜브에 펑크가 났다. 아, 정말 계획하고 사고를 친 것도 아닌데 영화같은 장면 많이도 찍었다.


 

상황 하나. 캠핑장은 밤 열 시에 문을 닫는다. 어렵사리 캠핑장에 도착한 게 밤 9시 조금 넘은 시간. 캠핑장 자리가 꽉 차서 더 받을 수가 없단다. 그러더니 ‘인근 숲에서 몰래 텐트를 쳐라. 단 경찰에게 들키면 우리가 가르쳐줬다고 말하지 말라’고 귀뜸해주는 캠핑장 주인. 계속되는 토론과 의견수렴. 어렵사리 캠핑장에 양해를 구해서 1유로를 내고 샤워만 해결하기로 결정. 그런데 텐트를 칠 자리 찾는 게 쉽지 않다. 날은 너무 춥고 해는 떨어져서 날은 어둡고. 그 때 기적적으로 자기집 정원에 텐트를 치라며 호의를 베푼 의사 부부. 휴...

상황 둘. 벨기에에서 프랑스를 넘어갈 때다. 100KM 가까이 달리는 장거리 코스. 벨기에 자전거 도로 상황이 너무 좋아서 페이스가 괜찮다. 그런데 프랑스로 접어들면서 상황 반전. 자전거 도로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도로 표지판이 죄다 바뀌어서 도로구조를 파악할 수가 없다. 해는 저물어가는데 비가 온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자전거 도로는 나타나지 않고, 저녁 6시가 지나면 상점이 죄다 문을 닫아 거리에 사람 찾기가 힘들다. 어렵게 행인을 붙잡고 길을 물어봐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고. 없친 데 덮친 격으로 타이어가 또 펑크. 버스 정류장에 비를 피하면 펑크를 떼우는 사이 몇몇은 숙소를 알아보러 떠난다. 결국 캠핑장을 못찾고 호스텔에서 일박. 예산에 무리가 간다.


쉴새없이 반복되는 자전거 사고는 사람들을 점점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리적으로 지쳐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졌다. 고열에 타이어가 터지는 가하면 자전거 휠을 지탱하는 가는 살들이 뽑히는 경우는 생전 처음 봤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도 일이다. 기차역에 앉아 있으니 낯선 땅의 노숙자들이 돈을 달라고 접근하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고, 예정된 시간까지 친구들이 안오니 연락할 수단도 없어 마음이 급해진다. 안트베르펜 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마치 ‘대구역’과 ‘동대구’역이 있듯 안트베르펜으로 시작하는 역이 두 개.(-.-) 아무튼 여행 내내 이랬다. 좌충우돌. 이러니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여행을 무사히 끝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처지 않을 수 있겠나?


 

이런 경험들이 결국엔 자신감으로 남았다.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 다들 여행을 가나보다. 어느새 새로운 여행이 기다려진다.







 

>> 벨기에 브뤼쥬 광장

 

 

 


 

>> 퐁네프 다리에서...날맹과

 

 

 


 

>> 세느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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