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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구색에 맞는 신문을 구할 수가 없어 계속 읽고 있는 한겨레 신문. 한겨레 수준의 주장을 갖고도 극좌파 소리를 들어야 하는 세상에서 ‘한겨레마저 없다면..’ 하는 불안감에 오늘도 나는 한겨레를 본다. 한겨레가 진보의 레테르를 지켜내기 위해 홀로 ‘유일한 진보신문’을 자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세력의 연속 집권, 민주노동당의 분전 이후로 정치면은 아예 접었고 그나마 사회면은 직업 특성상 보게 되는데(이런 식으로 신문을 보면 사실 별로 볼 게 없다), 그나마 문화면을 가장 즐겨 본다. 이유인 즉 문화면이 가장 자유롭게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외피를 두르면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다는 관념을 가장 잘 써먹는 건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메이저 신문사들인데 이들은 심지어 마이너리티 리포트 따위의 지면을 만들어 병역거부를 기사화하면서 사설란에서는 피를 튀기며 병역거부 결사반대를 외치는 자들이다. 하긴 그런 걸 꼬집어 욕하면 ‘우리는 원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대답하겠지.


한겨레 신문은 금요일마다 책과 지성이란 타블로이드판 섹션을 덤으로 발행한다. 정말 재밌고 유용하다. 특히 기획특집기사로 연재되고 있는 ‘헌책방 순례’는 그 중 최고다. 난 헌책방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적당히 낡은 책냄새도 기분 좋다. 헌책방 주인들은 나름대로 터득한 운영방식 때문인지 대체로 손님을 터치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뒤적이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친절한 점원이 들러붙지도 않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으며, 책값은 무지 싸고,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수확이 가져다주는 기쁨이 엄청나다.

2주 전, 여자친구랑 인천에 있는 헌책방엘 다녀왔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헌책방 순례’에 그 서점이 실렸다. 다음은 기사에서 발췌한 글이다.



“책은 예우받아야 합니다. 사실의 기록이기 때문이죠. 연애소설에도 시대상이 반영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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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님 또한 예우받아야 합니다. 귀한 시간을 내 자기를 찾고자 하는 분들이니까요. 책을 읽고 고르는 행위는 기도와 같아요. 이곳은 기도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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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은 소중한 두 존재가 만나는 공간입니다. 책방 주인은 그저 책을 정리해주면 그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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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 인연은 1966년 열일곱 살 때부터. 야간중학을 다니며 책을 월부로 팔았다. 당시는 전집뿐 아니라 단행본도 그랬다. <가정백과> 1500원짜리는 다섯달 끊어 한달 300원씩이었다. 걸으면서 종일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그에게 ‘책은 곧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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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모든 것이 책입니다. 책은 길보다 높지도 낮지도 않아요. 그저 삶을 알아가기 위해 디디는 것일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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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스물네 살 때 두평반 책방을 차렸다. 그만큼 알고 싶은 게 많았고, 그 결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도 되었다. 당시는 큰길에서 영화학교 정문 근처 건널목까지 헌책방이 즐비했다. 그의 책방은 골목 안쪽에서 시작해 큰길 쪽으로 차츰 진출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아벨은 가지를 뻗고 다른 책방들은 점점 사라졌다. 지금은 새책방 한 곳을 포함해 6곳이 남았다. 왜 그럴까. “책방은 죽지 않습니다. 책방 주인이 죽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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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게 어디 책방 주인뿐이겠는가. 실제 창고를 지으면서 보니 공사장에 젊은 인부가 없단다. 깨끗하고 폼나는 정보기술 쪽으로 몰려간다는 얘기다. 젊은이들한테 사는 것을 가르치지 않아서라는 진단이다. “책만 읽힌 아이는 머리 큰 귀신을 만듭니다. 설거지도 같이 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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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값은 물론 몸의 수고와 함께 먹는 양식입니다.” 인터넷으로 ‘콕 찍어먹는’ 세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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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고픈 사람들이 세상을 읽어가는 연습도 하고, 삶의 의미를 읽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살아있는 글들이 살아있는 가슴에.’ 명함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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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문을 보고 싶은 사람은 다음 싸이트를 방문해 보시라.

http://www.hani.co.kr/kisa/section-paperspcl/book/2005/11/000000000200511101855601.html



산다는 건, 생의 의지를 되새긴다는 건, 아주 단순한 일인지도 모른다. 헌책방 주인 인터뷰 읽으면서 가슴이 무지 시리고 뜨끔했다. 특히 그 날 하루 종일 이 한마디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책방은 죽지 않습니다. 책방 주인이 죽을 뿐이죠.”


그래 내가 추구해 온 유토피아적인 가치들은 죽지 않는다. 지나온 날들이 후회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 그 때는 다만 내가 죽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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