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출범 이후 나타난 여느 사건들과 같이 이번 용산 철거민 참사 역시 현 정부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발화의 위험성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설득 없이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조기 진압을 시도한 것은 현 정부가 무엇을 더 우선시 하는가를 가감없이 드러낸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여론을 보면 이번 사건 역시 찬반으로 뜨겁다.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과 여당은 철거민들의 화염병 사용을 부각시키며 부당한 폭력(심지어는 테러라고 표현하고 있다)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정당화시키고 있고, 철거민들의 사망은 안타깝지만 이는 검찰의 수사를 통해 그 원인과 책임이 규명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당과 일반 시민들은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하여 과잉진압한 경찰을 규탄하며 철거민들을 사망에 이르게 만들 만큼 시급한 진압이 필요했는지 묻고 있다. 그 바탕에는 1년 동안 쌓인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인터넷 글들을 보면 네티즌들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경찰 및 정부 옹호자들의 입장)

 

1. 대부분의 다른 철거민들은 이주를 하였는데 남은 철거민들이 돈을 더 받아내려고 생때를 부리고 있기 때문에 진압은 정당하다. 즉, 철거민들의 농성에 정당성이 없다.

2. 철거민들이 시너와 염산, 화염병을 투척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압은 불필요했다.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3. 다른 시민단체가 합류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진압을 해야 했다. 경찰은 검거한 철거민들 중에 상당수는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며 전문 시위꾼의 개입이 있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의견들을 보면 대체로 철거민들이 화염병과 염산 등을 사용한 것이 부당하며, 이것이 경찰의 논리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게 된 느낌이다. (경찰이 주장하는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든지 전문 시위꾼의 개입설 등은 논점을 흐리는 전형적인 플레이로 대다수 시민들은 이를 이미 간파하고 있는 듯 하다)

 

(철거민 옹호자들의 입장)

 

1. 그들은 생존권이 걸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정부의 뜻대로 거기서 나가게 된다면 먹고 살 일이 더욱 힘들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폭력진압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 타협을 했어야 했다.

2. 화염병 등의 사용이 옳은 건 아니지만 용역깡패와 경찰들이 그들을 내쫓기 위해 폭력을 휘두를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자위 수단으로서 인정해야 한다. 화염병을 사용했다고 그들의 싸움이 정당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어느 입장이던 간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가슴 아파하고 있다. 당연한 거 같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입장이 다른 쪽을 죽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해보면...

 

사건이 흘러가는 양상을 예측해보면, 두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다가 검찰의 조사결과가 나오고나면, 아마도 그 결과는 정부는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도의적인 유감은 표하지만 자신들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한 법집행은 반드시 필요했다란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클 거라 예상된다. (사태가 어찌되었든 검찰의 조사결과가 경찰의 과실로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두 입장 다 나름 수긍가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찬반이 갈린다. 이번에 사망자가 없었더라면 여느 철거민들의 싸움처럼 묻혔겠지만, 평소에는 경찰력의 법집행에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좀 더 많은 거 같다. 철거민은 이기적인 사람들이고 경찰은 그 사람들을 정리하는 집행자의 이미지인거다.

 

두 입장의 근거들은 나름 수긍할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 쉽게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하지만 후자의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답답하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안타깝지만, 사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설득의 여지도 없이 장기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설득이 충분했는가? 보상이 타당했는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했는가?

 

 

이 문제들도 분명하게 규명을 해야 하겠지만, 이 질문들은 핵심이 아니다.

나는 근본적인 문제는 현 정부의 사람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본다.

 

여차 하면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을 동원해 해결하겠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의 근본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다. 정부를 이끌다보면 국민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자주 부딪히게 되고 결국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된다. 선택은 그 결과가 단순히 일회적이거나, 무조건 다수를 위한 것이어서만도 안되며 정치인의 특성상 자신이 대변하는 이익집단도 대변해야 할 만큼 복잡한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결정의 근본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철학이 기본이 깔여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이 정부에는 그런 철학이 있는가?

 

나는 노무현 정부의 경우 그 정부의 성격이 어떻든 최소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파병이나 FTA추진 등 진보단체에서 보기에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어이없는 결정을 할 때도 그 결정을 하게 되기 까지 국가의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이 깔려 있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건 노 전 대통령의 평소 행실과 언변을 통해 느낄 수 있고, 그건 상당부분 진실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건 있기에).

 그리고 정치인들이 최소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있어야 국정철학을 토론하고 승부하는 민주주의의 기본틀이 마련된다고 본다. 인간중시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기 때문에 사사로운 이익을 국민의 이익인양 포장하려 하지 않고 무엇이 더 국민을 잘 살게 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유토피아를 말하고 있는건가?

 

다시 돌아와서, 이번 정부의 지난 1년간의 태도를 보면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더 화가 나는 건 말끝마다 '국민을 위해서'를 붙인다는 거다. 정치인이니 그 속성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 속에선 위선자를 볼 때의 증오가 끓어 오른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가 농성중인 철거민을 단순히 공사를 방해하는 이익집단이라는 시각을 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인간으로써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었더라면 이런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입법권과 공권력에 사법권까지 쥐고 흔드는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변명의 여지는 존재하고, 그로 인해 찬반이 갈리는 논란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우리가 그 논란에 뛰어들어 찬반을 가리는 동안 누군가는 또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죽어갈 수 있고, 누군가는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공권력에 희생될 것이다. 합의하기 어려운 찬반의 논란 속에서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했단 말인가? 그냥 설득하면서 마냥 기다리거나, 그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해 해결해야만 했나?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사실 나도 그 답이 궁금하다. 비판자가 반드시 대안을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대안 없는 비판은 언제나 공허함만은 남긴다고 믿기 때문에 반드시 생각해 볼 문제다. 좋은 대안은 찬반을 아울러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고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부분일 것이므로.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원론적인 접근만으로도 해결은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일단 의심스러운 것은 남은 철거민들이 정말 돈 한 푼 더 뜯어내려고 남았을까 하는 문제와 정부가 성심성의껏 그들의 생존권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하였는가이다.

 

그들이 법에 따라 명시된 돈만 받고 나섰을 때 그 돈으로 현재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면 형식적인 논리로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몰아부칠 수 없다고 본다. (그들이 얼마를 받게 되었는지, 다른 이들은 얼마를 받고 그곳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국가가 소득에 따라 차별적인 세금을 걷는 것과 철거민들의 삶을 돌볼 의무를 가지는 것은 상통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기대를 버린지 오래지만) 조중동과 정부 누구도 그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는지, 과연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보단 '화염병'으로 상징되는 행위에 초점을 집중시키고 있단 거다. '왜?'가 빠진 조중동의 변하지 않은 잣대는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나를 미워하는 측이 이런 잣대를 사용해 나를 평가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조중동의 의도대로 '그들이 왜 그랬을까?'란 질문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마치 왜?란 질문이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것을 모르는 양..

 

 

결론은 이렇다.

 

1. 철거민들을 이렇게 내몰게 된 원인을 철저히 파악할 것. 사람을 죽여도 정당방위라면 감안이 되듯 이들이 정말 생존권을 위해 싸운 거라면 정상참작이 되어야 한다. 법을 어겼다고 처벌하기 앞서 먹고 살 여지는 마련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국민을 죽이는 법이라면 그건 법도 아니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그 원인 제공요인(법이든 정부든)의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2. 만약 이들이 갈 곳이 충분한데도 돈 벌이를 위해 집단이기주의로 똘똘뭉친 사람들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면 그에 맞는 처벌을 하면 된다. 법조항이 없다면 만들면 되고, 동일한 원인으로 다시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공권력을 투입하면 된다. 대신 이런 조항들은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3. 궁극적으로 법과 규정을 가능한 완벽하게 갖춰 이런 분쟁의 소지가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 또한 특히 경쟁이 심한 우리나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 우선이라는 기본이념을 일깨우는 교육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겠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누가 잘못했는가에만 초점을 맞추면 머지않아 이런 사건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던가에 집중하고 그걸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 명랑사회 건설에 다가설 것임은 초딩도 아는 상식이다.

 

 

+1. 이번 참사와 관련된 내용 링크

 

현장 진입을 요구하는 현역 의원을 폭행한 경찰

 

용역깡패들의 횡포

 

경찰의 입장

 

철거민들의 비현실적인 보상금

 

'2억 들인 식당에 보상비는 5천만원'

 

2005년 오산진압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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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1 18:14 2009/01/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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