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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원해서 이런일 했겠냐’

  • 등록일
    2009/08/31 03:16
  • 수정일
    2009/08/31 03:16

토요일인 29일 시청광장에서 '용산참사해결 촉구 추모대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당일 지인의 아들 돌잔치가 있어 들렸다가 시청을 지나 대한문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추모대회는 열리지도 못하고 바로 연행되어버렸다.

사실 29일 부터 미뤄왔던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미뤄왔던 여름 휴가 일정을 잡으면서 용산의 일정이 잡힌 걸 보고서 속으로 윽 꼬였다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밀려왔다.

그리고 당일 추모대회에 참석을 결정하면서 부터 연행을 각오하고 있었다.

경찰의 원천봉쇄는 심각한 수준이다.

집회시위와 상관없는 추모행사를 막는 것, 종교행사를 막는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조차 사라진 경찰들의 행태는 추석전에 용산학살을 정리하겠다는 의지처럼 굳세보였다.

대한문 앞에는 40여명이 채 되지 못하는 인원이 모였지만 기도교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행이 시작되어 강남 수서경찰서로 나를 포함 7명이 연행되었다.

3명은 신부가 되기 위해 수행중인 '수사'이며, 한명은 신학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그리고 또 한분은 향린교회에 다니는 분이고, 또 한명은 신학대학을 다니다가 인권운동을 시작한 친구로, 나만 종교적 행사랑 전혀관계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사실뭐 그렇던지 말던지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런 저런 실랑이가 있었고, 곧 입감이 이루어져 들어간 유치장에는 나와 신학대학을 다니는 친구가 들어갔다.

그리고 체포적부심이 진행되어 나오기까지 거의 잠만 잤다.

누군가의 메세지처럼 푹쉬라는 얘기를 실행에 옮긴것이다.

잠만 잔다고 사람이 쉬는 게 아닌 것처럼 잠은 잤으나 몸이 편하진 않다.

하여튼 함께 들어간 방에는 한국 젊은 친구와 베트남 젊은 친구가 있었고, 중간 중간 잠이 깨면서 잠깐식 얘기를 나눌수 있었다.

강도 납치로 들어온 베트남 녀석은 서투른 말로 형님이라는 소리를 빼먹지 않고 은연중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고 손으로 시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반겨서 우리를 맞았다.

보통 한두명씩 들어오는 유치인이 몇명이 한번에 들어오니 많은 사람들이 당황한 듯 싶다.

절도로 들어온 친구도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앗다.

중간 중간 약간의 소란으로 잠에서 깨면 영락없이 텔레비전에 야구중계나 코메디 프로가 진행되었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잠들곤 했다.

몇 번 유치장을 다녀오다보니, 잠만자는 습관이 들어서인지, 모든 게 귀찮기만하다.

저녁을 먹고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는 도중, 강도로 들어온 베트남인과 절도로 들어온 친구가 얘기를 나누는게 들린다.

5년을 살거라는 둥, 주범이 잡혀야 한다는 둥하는 대화와중, ‘내가 한국인이면 너처럼 안산다’라는 베트남인의 말에 ‘누군 원해서 이런일 했겠냐’라는 절도로 들어온 친구의 말이 들린다.

하고픈 일을 할 수 없는 세상, 원한다고해서 할 수 없는 세상, 누구라도 세상의 끝 바닥으로 몰리면 원하지 않는 무서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세상임을 느낀다.

말이 오가는 도중, 중재를 위해 몇가지 말을 건넸다.

결코 한국이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님을, 돈과 권력, 아님 빽이라도 없으면 온전히 살기 힘든 세상임을, 그것이 용산 학살을 만들었음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꼭 원하는 일을 하진 못하더라도, 경쟁에 밀리더라도, 준비가 안되었을지라도, 그가 누군가가 되었건,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았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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