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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들겠니? 온통 세상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있으니 얼마나 아프겠니? 그러나 길태야 희망을 잃어선 안된다. 앞으로 더욱 험한 일이 닥친다해도 결코 절망해선 안된다. 역경을 딛지 않고선 진정 존재의 소중함을 알 수 없단다. 나역시 강간의 욕망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 또 누군가를 죽인고 싶은 충동을 많이도 느꼈지. 남의 물건과 돈을 훔치기도 했고 공갈,협박을 한적도 있고 사기를 치기도 했지. 때론 힘없는 사람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해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 참으로 뻔뻔스럽게,아닌척 하면서 위선자로 살아 왔단다. 지금 세상엔 뻔뻔스럽고, 가증스러운 인간들이 넘쳐난단다. 뉴스에 보면 이 나라에 나쁜 놈들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바로 확인 할 수 있지. 요즘은 너의 소식으로 집중되고 있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른들의 파렴치한 일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선 참으로 부끄럽단다. 길태야 양부모님께서야 지극정성으로 너를 보살펴 주셨겠지만 너의 방황을 나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단다. 나는 유복자로 태어나 홀어머니밑에서 살아오면서 청소년 시절 웬지 모를 저항감에 젖어 짙은 방황을 경험했어. 해서 월남전이 한참인 69년 모두가 기피하던 해병대에 지원입대해 개죽음도 불사하고픈 막연한 오기를 부리기도 했었어. 지금 저녁뉴스에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돈만을 벌고야 말겠다는 인간말종들의 온갖 살인들이 보도되고 있구나. 사실 너에게 돌을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이사회의 어른들이 얼마나 있을런지 부끄럽구나. 길태야 나는 네가 저지른 구체적 사실들을 잘 알고있진 못하지만 만약 잘못이 있다면 깊이 반성하고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깊은 참회를 해야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러운 어른들의 이중성을 따라해선 안돼. 향후 너의 위치가 어찌 될런지 알 순 없지만 가능하다면 만나서 너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 설령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다해도, 나의 뜻을 펴기에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 해도 절대 절망해선 안된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보느야에 따라,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삶을 개척하느냐에 따라 나의미래는 노력한만큼 그 대가를 돌련준단다. 그 대가라는 것을 기성세대들처럼 돈이나 명예등으로 보상받으려 하지말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찿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삶의 가치를 찿는 길일게야. 나는 너에 비해 세상을 조금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중생에 불과하단다. 아무튼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지않고 참터에서 너를 만나길 희망한다. 언젠가 만날 수 있다면 너를 안아보고 너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단다. 길태야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단다. 일진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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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리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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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태야 미안해를 읽고 내 눈이 의심되어 읽고 또 읽기를 몇번 거듭하였지만 일진선생의 진의를 알수가 없군요 요즘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손녀딸의 재롱을 보면서 이렇게 소중한 내 손녀딸이 길태와 같은 치한에 의해 그런일을 당한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일진선생과 같은 생각을 할수 있는 것인지요? 추가적인 일진선생의 참뜻을 듣고 싶습니다.부가 정보
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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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진의가 궁금하시다니 보다 구체적으로 제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생태적인 철학을 갖고 사는 것을 제 삶의 목표로 갖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생태적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유정,무정포함)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저의 생각이 법질서와 도덕조차 도외시하는 행위까지 용인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구요. 저역시 꽤나 보수적인 사람이기에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동양적인 사상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지요. 그런데 좁게 우리나라의 행형정책의 과거, 현재만을 살펴보더라도 많은 모순과 한계를 노정시켜 온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순 없습니다.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사고는 물론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무수한 최근의 끔찍했던 일들이 교화정책적인 측면에서 결코 잘 진행되고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축소는 커녕 더 빈번하고 더욱 잔인해서 차마 상상하기 조차 싫은 뉴스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사형집행에 대한 논의가 회자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인생한바퀴를 이제 막 도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무한한 책임을 통감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일만도 상당했습니다. 당사자나 일반국민의 감정을 적절히 풀어주거나 권력자들이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응보적 발상을 통한 편의주의이지요. 서구의 예를 들것도 없이 한국의 교화정책이 후진적임은 세계가 모두 알고있는 사실이지요. 제 주장의 요지는 범죄행위를 미화해서 길태와 같은 반사회적인 행위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죄값을 묻되 그 처리의 원칙이 교육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서 근원적으로 밝은 사회로 가는 빠른 길을 열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길태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 사회의, 아니 우리 주변 어른들의 역할은 적절했는지를 포함, 다각적인 시각으로 대책수립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흥분과 감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번쯤 접근방법을 바꿔봄직도 한데 여전히 뉴스거리로서, 응징을 얘기하는 것만이 최선인 것처럼 자만하는 이들에게 저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거친 표현을 쓴 감이 없지 않습니다. 계속 논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제가 급한 일이 생겨 글 내용의 검토도 못하고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이루소서. 일진 두손모음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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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태야 미안해라는 글에 이어 추가로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그동안 대성리 참터 불로그에 들려 생활에 도움이되는 좋은 글 들을 접해왔던터이라그간의 이미지를 달리하는 길태야 미안해는 의아함과 충격 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필자의 글속에 다른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것도 같으나 그래도 우리 같이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매우 벅찬 글이었습니다.
될잎은 떡잎부터 안다고 비록 양부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자식 같이 길러준 부모도 바로잡지 못한 비뚤어진 인성을 어떤 교화정책인들 그것을 바로 잡을수있겠는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물론 그렇게되기까지 내방쳐둔 사회의 매정함이 원망스럽다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불우 아동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자신을 적응시켜가며 굳건히 살아가고있음을 견주어 볼때 오직 한순간의 동물적 욕구 때문에 소중한 생명을 빼았고 그 가족들의 가슴에 평생 잊지못할 한을 남기게 한 그의 죄상은 어떤 이유로도 동정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우리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말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생각 합니다.
요즘 oo교회 교인이라면서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라도 된양 사랑을 내세워 그의 죄를 동정하는 글을 올리는 경우를 인터넷에서보곤 합니다만 이 또한 이 경우에는 합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만사가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정신만으로 해결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유감스럽게도 그럴수 없는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데 이상론을 내세워 법을 다룬다면 세상의 법도는 썩고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어야 함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 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온정적이어서도 안됩니다. 엄할때는 아주 엄해야 합니다.
흉악범이 영원히 격리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만이 우리의 소중한 생명이 더이상 피해입지 않고 보호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참터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 이상 빙그리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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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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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 잘 읽었습니다.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하여 해명을 해야겠군요. 저의 생각은 그래서 처벌을 하지말자라는 것이 아니고 처벌을 하드라도 너는 영원히 몹쓸놈이 아니고 언젠가는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비난이 아닌 애정을 갖고 이 사건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저의 판단에 부족함이 있다면 지도편달을 바라겠습니다. 일진 두손모음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