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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이주언론계의 과거 발자취를 돌아본다 (최종수정문)

필자는 2005년 초까지 동포언론단체에 활동을 하고 그 이후 이주언론 중에서 이주노동자방송국(www.migrantsinkorea.net)에 결합한터라 이주언론들의 과거사를 잘 몰랐다.

그래서 이주언론 활동을 하면서 각 이주언론인에게 왜 이렇게 이주언론이 여러 개로 제 각기 흩어져 있는 등 하는가 물어보니 생각하는바가 좀 달라 각자 시작했고 따로들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검토를 해보니 약간의 편차일 뿐 근복적인 이주인 인권 대변자 역할 수행 목표에 있어선 같은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비슷한 시기 별도로 개국한 MNTV에 대한 담론은 제쳐두더라도 추진에 있어 선두주자의 MWTV(www.mwtv.or.kr)와 후발주자 이주노동자방송국(www.migrantsinkorea.net , 약칭 이노방)을 보아아니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성향이 다른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갖기 흩어져서 고생을 하는지 궁금했다.

이주언론이 각 특색은 좀 있을 수 있으나 다 같은 진보이주언론이고, 또 소수자인 이주노동자가 우리나라에 몇 십만 약간 넘은 선인데, 이주노동자 언론이 서울에만 3개로 전국적으로 보면 동포언론보다 더 많은 등 하는데, 이는 사이트 방문객의 입장에서도 혼란스라운거며 목소리 파급력 효과에서 자칫 분산되는 오류도 있는 등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닌점이 좀 있으니 말이다.

또한 어느 이주 언론이든 검색사이트에 기사 검색이 아니 되고 기사 서비스 제공 또한 일정치 아니하니 이주인권단체 조차도 각 이주언론을 미숙하게 보고 단체 홈에 이주언론 기사보다는 메이저 기사나 포털진보언론 기사를 선호하는 양상도 있음을 보았다.

하여 각 이주언론과의 네트워크화도 부분적이고 하니, 이럴 때일수록 어떤 형태로든(통합체이든 연대체이든) 서로 힘을 모아 거국적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지난 10월 MWTV 주최 토론회에서 필자는 플로우석에서 담론차 ‘이주언론들과의 연합체(혹은 연대체) 필요성’을 가볍게 언급했고, 후 회식자리 등을 통해 몇 가지 대화를 가졌다.

MWTV 리더 등에게 이노방과의 무슨 껄끄러운 사연이 있는가 하고 질문하니, 과거에 그렇게 큰 별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면서 다만 생각하는바가 좀 달라 각자 시작했다는 답변을 제차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이주언론들이 연합체를 시도한다면 MWTV도 함께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직감하다시피 MWTV측의 생각하는바가 달라 어쩌어찌 하는 답변은 그렇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100% 답이 아닌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여 이노방 운영 팀에게 이주언론들의 과거사 중 MWTV와의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예기해 달라 하니, 분명 무슨 일이 좀 있었으나 슬픈 기억이라 예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후에 이노방 리더(박경주 대표)에게 제차 밝혀달라 부탁을 하니 그제야 옛 이야기의 말문을 열었다. 

11월 2일에서야 담소를 통해 이주언론의 과거사와 RTV의 지난 과거사 등 간략적인 사연을 비로소 좀 알게 된 것이다.

 

우선 RTV가 오래 전 독립영화협회 팀에 의해 준비되어 왔다, 방송국 개국 직후 백 이사장 팀에 의해 구조조정이 된 이후와 파장(사회적 여파)을 되돌아본다.

RTV 새 경영진이 온당치 않은 이유로 독립영화협회의 목소리 큰 PD등을 집단해고 하고 그 남은 일원들에게 박봉의 월급을 주는 등 하여 결국 많은 직원이 슬피 울며 퇴사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해고당했던 PD들은 시민방송이 퍼블릭엑세스 기능을 하려면 편성에 관해 PD들이 독립성을 갖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노조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을 들은 백 이사장은 하루 아침에 이들을 집단 해고한다.

그 후 RTV는 무늬만 시민방송 일뿐 온전한 시민참여 방송이 아니고 일반 방송국처럼 PD등이 일반적 소재를 다루어 틀고 일부 시민방송 내용을 끼여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시민은 있는데 시민사회 인권이 결여된 미디어 이다보니, 일반 시민의 운동권에 대한 갭(jap)의 장벽 허물기 효과가 미미했다. 사회 대변자로서의 미디어언론 역할의 부재에 의해 이러저러한 사회적 후유증도 발생 됐다.

그 후 불행 중 다행히도 2006년 봄부터 RTV내에 미디액트,독립영화협회,노동넷에 의해 RTV개혁 팀이 꾸려져 노동자 목소리, 이주노동자들의 방송 퍼블릭엑세스 하며 내부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때 2004년 즈음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방송국이 추진되고 있었으니, 해미니(네팔인 외노인권 활동가), 크리스티안(독일인 외노인권 활동가), 뚜라(버마행동), 마붑, 등이 이주노동자 미디어 출범을 모색하던 중 RTV 의뢰 팀으로 외부활동 중인 이병한 미술 기획자를 알게 되어 MWTV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박경주(한국인 외노 인권 문화활동가), 전민성(대안언론 기자), 쥬리아(이주노동자 인권 활동가), 수레스(이주민), 소모뚜(이주노동자 밴드), 윤혜숙(기자), 오향숙(사진가), 석성석(교육자)가 노동넷과 진보넷의 후원으로 인터넷 대안언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같은 시기에 이주미디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박경주는 MWTV 취진위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뚜라, 해미니, 마붑 등을 만나 통합을 모색했으나 후에 좋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뚜라와 마붑은 MWTV와 이주노동자방송국을 모두 하고 싶다고 전해 왔고 마붑은 이노방 준비 회의에도 1회 참여한바 있다. 뚜라도 MWTV를 하면서 동시에 이주노동자방송국 다국어 사이트 버마어가 열리면 함께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주동지 둘 모두 MWTV와 이주노동자방송국의 통합에 대해선 꺼리는 입장을 보였다. 이노방 리더는 그 이유를 추측은 하고 있으며 사석에서는 모르나 공개석상에서는 생각을 밝히는데 조심스러워 하는 등, 서로들 관계에 있어서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다.

이후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이주노동운동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MWTV와 이노방 활동가들이 왜 함께하지 못하는지 가끔 물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11월 2일 이노방 박대표와의 담소를 통해 MWTV 초창기 때 속사정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주노동자 인권에 경험이 없는 RTV에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이병한 미술 기획자가 어느날 해성처럼 이주노동자방송 추진 팀에 나타나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멤버에 참여하더니, MWTV 취진위 이주 동지들도 그의 환심에 그의 의중대로 어쩔 수 없이 움직이다 보니, 후 이주노동자방송국 팀과 함께 팀을 꾸려 방송국 여는 데에는 불가능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이병한은 처음부터 선의의 경쟁을 내게 제안했고, 첫 단추가 엇나간 데에는 Lee의 책임이 크다”며, 하나의 라이벌 의식을 보이는듯한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11월 11일 노동대회전야제에서 잠시 만난 MWTV 마붑 공동대표에게 확인차 여쭤보니, 박00가 말한 이야기 중 사실과 좀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관계를 확인할수 있었다.

“현 이병한 공동대표가 당시 RTV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한 것이 아니라 RTV와 관련 없는 외부활동가이고 단지 여기저기서 요청하면 제작을 협조해주는 관계였다.

이00 공동대표가 이주노동자 인권에 경험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의 환경으로 보건데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단체 리더를 택하는데 있어서 능력과 관심의 초점과 목표가 중요한데 이대표도 조금씩 자질을 갖춘 걸로 판단이 됐다.

또 경험을 따진다면 현 이노방 박대표 등을 추천할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주노동자가 주최가 되는 이주언론을 만드는데 제1목표로 했기 때문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 박대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좀 아닌거 같다고 판단했다.

당시 박00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그분이 MWTV 취진위와의 통합을 모색하면서 MWTV 취진위 이주동지들 보고 이주노동자방송국 직원으로 들오라는 조로 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이주인을 주체로 인식하려는 마인드의 부재함이 좀 느껴지는바 실망이었고, 하여 각 방송국과의 통합에 대해 꺼리는 입장을 보일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우리는 이주언론을 꾸려가는데 별다른 터치를 주지 않고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한국사람을 찾다가 현 이대표를 만나 그를 택한 것이지, 그가 우리에게 접근하거나 우리가 그에게 조정 받거나 하는 그런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최근 박00가 나에게 이주언론 초창기 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예기한 사실을 되도록 알리지 말고 그냥 알고 있으라면서 흘렸다”고 하였다.

마붑 공동대표는 이어 “그 예기란 바로 나에게 반문한 내용이고 그래서 내가 이와 같이 답변하였다. 뭐 이런 것은 그 당시 함께해온 사람이라면 내 말이 사실이란 건 잘 알 것이고,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무슨 숨길 이야기이던가? 무슨 할말이나 의문거리가 있다면 정정당당히 말해주시길 바란다.”

 

그날 11일 노동대회전야제때 마붑 공동대표 외에 MWTV 연대활동가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분에게도 약간의 질문을 던지었고 “우리 MWTV를 둘러보면 알겠지만 이00는 그냥 공동대표 일뿐 우리 이주민 공동대표에 비해 권한이 약하고, 심하게 말하면 한국인 리더나 활동가는 이주민 시다바리라 착각할 정도일거다.”라는 답변을 얻어 들을 수 있었다.

 

차후 MWTV 이병한 공동대표에게도 전화상으로 나마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MWTV 주최 토론회 당시 본 기자가 플로우석에서 가볍게 낸 의견 중 오해소지가 있는 한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지면을 빌어 정확히 설명하고자 한다.

“신기자가 만일 이주언론들이 연합체를 시도한다면 MWTV도 함께할 용의가 있다고 들은거 같은데 그 이주언론들과의 연합체란 네트워크를 말하는 거다. 서로 합치지 않은 상태서 상호 연락망 같은 네트워크 형성인 것이고 이것이 적절한 것이다.

내가 박00에게 선의의 경쟁을 제안한 것은 맞고, 그 이유는 MWTV 취진위 멤버들은 이주인이 주최가 되는 언론을 염원했던바 박00는 리더쉽 스타일이라 우리 이주민 팀과는 맞지 않을거라 예상했다. 고로 박00팀은 그냥 조용히 따로 꾸려나가길 바랬고, 우리 MWTV팀과는 선의의 경쟁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느냐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필자는 생각해본다.

나도 이노방 한국인 리더에 의한 좋지 않은 비슷한 경험을 당하였듯이, 그 당시 MWTV 취진위 멤버 이주민의 판단은 옳았고 현제 이주민 언론 주체로서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이점에서 이노방 한국인 리더는 좀 심사숙고하고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서로들 각자 활동에 있어 진전은 있어서 다행이나, 관계가 썩 매그럽지만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목표는 같으나 과거 이주언론 추진 당시 어떤 안타까운 일로 인해 이제 갖기 갈 길을 갈수 밖에 없는 불가항력이 되 버렸고, 연대체 형성마저 좀 신중스런 분위기이다.

아무튼 각 이주인 맴버들과는 서로 알았던 사이였으니, 당장 무엇을 함께 할 수 없는 처지라도 마음만은 서로 위하고 이슈를 서로 공유하며 향후 연대체(네트워크)를 이루어 지내기를 부탁하고 싶다.

현제 그래도 이주동지 들은 서로 벽이 없이 지내는 것을 볼 때,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된다.

 

각 이주언론 활동사항을 보면, MWTV(이주노동자의 방송 www.mwtv.or.kr)는 2004년 겨울 이후 출범하여 2005년 4월 16일부터 RTV와 퍼블릭 엑세스 하고 있고, 공중파를 통해 <다국어 이주노동자 뉴스>라는 프로그램을 위성채널 531번 및 각 지역케이블 RTV 채널에 방영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도 그 방송 방영분을 재방영하고 있는 등, 명실상부한 지상파 매체에 이르르고 있다.

 

이주노동자방송국(www.migrantsinkorea.net )은 출범 당시 이주인권을 위한 소식지 발행 및 게릴라 사이트를 생각하다 2005년 5월 18일 웹사이트을 개통하면서, 현재는 MNTV처럼 온라인 뉴스와 영상을 내보내는 기성형 지원언론에 머물고 있다.

 

한편 대구 지역에 위치한 성서공동체FM라디오방송국(www.scnfm.or.kr)은 2004년 가을부터 대구지역의 이주노동자, 시민사회단체 8곳이 결합 출범하여 2005년 3월 첫 라디오방송에 들어가는 등, 경상도 인근 지역에선 인지도가 1위이고 서울의 이주언론 못지않게 지역의 첨병 역할 수행에 이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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