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여름...

 여름이다. 그래도 비가 와서 오늘은 참으로 선선했다. 요즘 비도 자주 안오고 가뭄걱정이라는데 비가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푹푹 찌는 8월에는 태풍도 적절한 규모로 가끔 조선반도에 들러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독일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난이도는 어느새 중급으로 올라와 있다. 뭐 일단은 그렇다. 실제 실력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강의 시간이 아침 7시라서 생체시간으로는 그야말로 꼭두새벽인 5시에 일어나서 학원에 갔다.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나는 퇴근인데 다른 인민들은 모두 출근 중이었다.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모두 출근하는 사람들...그 속에 나 우두커니 퇴근하는게...내가 정말 백수인가봐아아아~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꼭두새벽에 일어난 나의 신체가 놀라서 피곤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또 잤다...;;;; 일어나니 11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잔 것 같다. 개운하긴 했는데 이런 짓을 8월까지 해야 한다니 좀 암울하다. ㅋ

 

서원 생활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는 절간 생활이 문제이다. 이제 절간이 방학을 하면 나는 친구 스님이 일하는 다른 절간에 가서 '여름불경학교' 방학보충강의를 맡을 것 같다... 가르치는 것은 힘들고 나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어찌하랴....돈은 벌어야지....그래서 절간이 방학하는 7월 중순이 되면 나는 되려 또 바빠질 것 같다.

 

공부는...그럭저럭 마치 관광열차 타듯이 느릿느릿 진행중이다. 책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만 간다. 이게 다 외국어 때문이다. 그래도 세미나라고 몇 개 하는 게 강제적으로라도 공부를 하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독일어 학원도 다니니, 이것도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생각이 든다. 모두들 뭔가를 하고 있는데 나만 왠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죽을 곳은 여기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 좀더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 화상아, 생각만 하고 앉아 있냐.....ㅜㅜ

 

이공계가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우리 주변에 나오는 얘기는 이공계가 죽어간다지만, 인문학은 이미 죽어서 관에 못을 박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 선배를 보더라도 그것은 빤히 보인다.

 

인문학을 하는 것은 누구나 말하듯이 당장 효용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돈이 되는 학문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인문학자들이 가난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마땅히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풍토는 조금 다르다. 주변 동양2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먼저 대학의 교수가 되면 마치 가난한 고학생이 고시에 합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수혜와 혜택과 명예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그 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른바 학도들과 교수 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게 조금만 좁혀지면 비록 엄청난 혜택은 사라지더라도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텐데 말이다.

 

누군가 니가 교수가 되고 싶으냐? 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아직까지는'그렇다. 아직은 대학에 다니면서 가오잡고 강의하는 말그대로의 교수는 되기가 싫다. 차라리 니 꿈이 뭐냐? 라고 묻는 다면 자랑스럽게(?) 시간강사요~라고 말하고 싶다. 허허

 

유럽의 예를 들어서 나 자신에게도 미안한데,,,특히나 진보세력들이 툭하면 우리나라 욕하면서 잘사는 유럽의 예를 들어주시는데 이게 좀 현실상 맞지 않는게 많기 때문이다. 역사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지역사회도 다르고 국제관계도 다르니 말이다. 아무개가 북한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이상한 좌파들이 '그럼 북한으로 가!'라고 하듯이, 나도 이들에게 '그럼 유럽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배울 건 배운다는 측면에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동의를 표하면서 나도 유럽의 예를 들겠다. 유럽의 교수직은 당연히도 우리나라 교수의 수보다 월등히 많다. 그리고 봉급도 많지 않아, 유럽의 노동자 수준이라고 한다. 이건 좀 괜찮은 것 같다.

 

유럽의 인문학자들이 진보적인 이유가 이러한 경제적인 토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물론 그렇다고 유럽이 교수 되는 것이 쉬우냐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교수가 되려면 '교수자격논문'이라는 것도 제출하고 시험도 본댄다. 그래서 유명한 데리다도 그 시험 많이 떨어졌단다....(이거 맞나...어쨌든^^)또한 비정규 시간강사들도 어느정도 생계를 보장해주고 말이다.. (송두율 선생도 아마 정교수는 아니라지...)

 

우리나라도 교수 수를 더 확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수를 늘리고 중고등학교 교사 수준의 봉급만 받는 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만족합니다!!) 나는 교수들이 너무나 특권화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여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망할 놈의 반골기질...

 

뭐 딱히 공부를 하고 나면 교수가 되고자 하는 생각은 없기에, 일단 목표는 학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거 끝나면 뭘하나.....그제서야 교사를 하겠다고 설레발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래, 뭔가 자신만의 일을 하면서 공부한 것을 가지고 논문도 쓰고 저술도 한다면 좋지 아니한가...뭐, 이상이겠지. 그런 짓 하는 것도 좀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에 정말로 자유로운 학문 연구는 가능할까. 이걸 생각하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우리나라에는 어느 학문이든지 아직 유명한 '사상가'는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뛰어난 사람들은 모두들 외국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말이다. 정말 자유로운 학문 연구는 자연과학 쪽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마저도 요즘 이공계가 어렵다니 암울하긴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을까. 혹은 적어도 학계의 성과가 일반 시민 사회라든가 문화계로 전파되거나 토론되거나 공생하지 못하는가. 우리나라에 과연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긴 한 것인가... 학계는 학계 따로, 사회는 사회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학문 연구라고 보기는 힘들다. 말그대로 상아탑(이말 좀 맘에 안든다. 차라리 장막 정도가 우리 현실에 맞는 말일듯..상아탑? 웃기지 않냐? 상아탑은 개뿔..학자가 뭐 잘났다고..ㅋㅋ)에서 쳐박혀 공부나 해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현실이 아직 자유로운 학문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뭔가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강정구 같은 학자가 6.25 내전설 같은 걸 주장하면 사회는 발칵 뒤집히는 것이다. 아니 왜? 그 사람 전부터 그거 주장했었는데? ㅋㅋ....

 

이러한 현실 때문에 학자는 학자대로 우리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그저 외국학자 성과 빌려서 이러쿵 저러쿵 지들끼리 노가리만 까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사회는 외면하고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분단과 직결된 문제는 아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그만큼 폭넓지가 않다는 것이다. 뭔가 말을 하려해도 이게 안되고 저게 안되고 하니 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같은 동양 2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중국 같은 경우는 요즘 동양철학분야에서 엄청나게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 정체성을 초월한 자유로운 논의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인문학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본은 엄청난 학문적 역량으로 아시아의 학자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서양의 학문성과들도 빠르게 번역이 되고, 서양에서도 유명한 성과들이 배출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일본도 전후문제와 천황제라는 금기가 존재한다는 측면이 일본의 학문역량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는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학적 성과가 일본 사회에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일본에서도 유명한 사상가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 않나? (틀리면 제보바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된 사상가가 배출되기까지는 아직 지대한 관문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사회가 변해야 학문이 발전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는 정말로 훌륭한 지성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도 만들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성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아니 우리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할일도 없는데 한번 생각해 본다.

 

1. 이성과 진리의 문제

과연 우리 사회에는 이성이 존재하고 지성이 존재하는 가? 혹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진리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사회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불가능하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이성에 대한 회의라는 측면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서양은 이미 이성의 단계를 이미 거친 이후에 이성의 문제점을 반성하는 단계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해방 이후에 치열한 좌우대립과 현재에도 지속되는 분단의 이념갈등으로 인해서 자유로운 정신이라는 것이 많이 희생된 측면이 있다. 즉, 아직 모두가 동의할 이성과 진리가 정립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서 보자면, 우리는 이성적 협의, 동의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다. 쇠고기 파동은 엄연히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냉철한 이성적 입장으로 보자면 광우병은 발생할지 말지 정말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도 부정도 유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광범위한 불안 심리가 작동하여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작년에 활개를 치고 다녔었다.

 

광우병 파동은 과장이고 거짓이고, 그야말로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순한 이들이 조장한 것인가? 이러한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광우병이 그저 '의혹'에 불과하다고 과학적 수치를 들이대며 '안심해'라고 말하고 그냥 지나가도 되는 문제였을까? 정말로 사회적으로 차분한 이성, 적어도 그러한 이성적 태도를 유지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지도층, 지식인층을 형성하고 있었다면 그 사태는 양 극단의 중간쯤이 되었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는 정부와 시민으로 대표되는 양 극단의 강한 충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결과는 흐지부지....

 

분단과 관련되어 있었던 예전의 송두율 사건, 강정구 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강정구가 말한 '만수대 정신', 혹은 6,25 내전설 등은 강정구가 간첩이라서가 아니라,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을 표방한 것인데 그것이 여타저타 말도 없이 빨갱이 마녀사냥이 진행되었다. 송두율도 마찬가지 나는 송두율 선생이 북한의 간첩이 아니라 그저 북한과 친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 사람의 학문적 입장과 저서들을 통해서 추구하는 바를 보지 못하고 그저 사회적으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내가 알고 있는 송두율은 제3세계와 제1세계를 화해시키는데에 자신의 학문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른바 안티근대를 표방하는 미국적 시각의 '적국'들에게 따뜻한 시각을 가지고 우리가 근대 혹은 현대를 극복하자는 데에 있어서 그들 제3세계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불만도 마땅히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시각을 가진 학자를 사회에서는 그저 빨갱이로 몰았다. 조선의 큰 불행이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만 보는 일이 우리 조선에서는 허다하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일들을 보면 그것이 그저 사건의 연속이었지 그게 우리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황우석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과연 우리사회에서 이성적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는가? 혹은 진리 자체가 가능한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와 입장, 방법론을 만들어내야 앞으로의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고 그저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저 외국학자들의 책이나 파고 그거 가지고 장막 속에서 학자들끼리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봤자 아무런 성과를 낼 수가 없다. (뭐, 그게 중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뭘 얘기하고 했는지 수천번 말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있는가? 스포츠 처럼 그저 지적 유희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2. 삶의 문제

우리는 왜 살아 씨발?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살아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 그럼 학원, 학교에 가래. 그래서 학교에 가. 그럼 대학에 가야 한대. 그래서 씨발 대학에 가. 그러면 취직을 하래. 씹탱 그래서 취직을 좆나게 열심히 노력해서 해. 그럼 씨발 또 결혼하래. 결혼을 해. 그래서 애를 낳아. 그래서 늙어. 그래서 뒤져. 씨부랄 개씹탱 아가리 좆나 씨댕 우라질 염병 탱탱부랄~!!!!

 

다른 나라 인민들? 학교에 가.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어. 우리나라처럼 대학 못가면 죽어!! 처럼 그런 비인간적이고 살벌한 합의가 아냐. 그럼 거기에서 인민들은 대학에 갈지, 직업을 구해서 직장을 구할지 결정을 해. 중간에 사랑하면 결혼이나 동거도 가능해. 자신의 인생 가치관에 따라 갈라지겠지.

 

자신이 어떻게 살지 다른나라 인민들은 그렇게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전 방한한 히딩크? 그 나이에 여자친구있대? 우리나라 허정무 감독이 여자친구 데리고 다니면 '미친새끼' 하겠지.

 

삶의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도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자유로운 인간을 양성할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삶의 목적이라든가 쉬운 말로 삶의 질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기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경제적 규모에 비해 복지 제도는 형편없다. 이러한 합의의 부재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파업이 일어나면 그들이 왜 파업을 일으켰는지 이해하는 태도 없이 그저 국가 경제 운운하며 나는 일하는데 너는 왜 노냐? 하면서 매도하기에 바쁘다.

 

이제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하게 살지 결정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것은 경제적 제도와도 관련이 된다. 이미 유럽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제도들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에 있어서 사회주의의 '사'자도 꺼내기가 힘든 측면이 많다. 이런 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 혹은 삶 그 자체를 반성하는 사상가가 나올 수가 없다. 자본주의도 하나의 가능태로서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우리 학자들 사이에서는 부재하지 않은가? 그저 극단적인 찬성과 반대만이 있을 뿐이다. 삶의 문제도 극단적인 국가주의적 삶, 경쟁적 삶과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삶이 우리나라에서 충돌하고 있다.

 

3. 이념의 문제

이미 다른나라에서는 정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념갈등을 겪고 있다. 극단적인 맑스레닌주의적 정파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정파의 활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정파들만 활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좌우대립만이 잠재해 있다.

이것은 좌우 이념이 무엇이 잘못되고 어떤 점에서 이것은 옳은지 합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사회주의가 상존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툭까놓고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긴 한가? 그저 말도 못하게 막고 있지 않은가? 국가보안법도 그렇다. 이것이 문제의 해결을 늦추고 있다. 사회주의에 반대하면 왜 반대하는지, 즉 스탈린 식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의 본질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의 사회주의가 가능한지 공평하게 마찬가지로 지금의 자본주의가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본질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의 대안적 자본주의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인지 합의가 부족하다.

 

그런 합의의 부재는 학문적 역량에서도 나타난다. 아직까지도 맑스, 레닌, 스탈린 사회주의 3부자의 저작이 완역되지 못하고 있다. 유명한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나 케인즈의 저작도 완역되지 못하고 주요 서적이 있다해도 절판되거나 있어봤자 매우 오래된 번역서만 있을 뿐이다. 뭔가 서로 토론하고 싸울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니 논의를 해봤자 허공만 가를 수 밖에 더 있겠는가?

 

학자간의 토론도 부재하고, 그만큼 시민들 사이에서도 웃기게도 21세기에 아직 사회주의는 금기시되어 있다. 이제 툭 까놓고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학자들의 할 일은 정해지지 않았는가? 이런 저서들을 빡세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번역해서 시민 사회의 품으로 돌려야 한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정리하지 않고 노가리만 깠다. 그냥 내 생각이다. 해야 할 일은 많다. 그래서 학자들은 고상하게 예술이나 영화나 평론하고 어려운 형이상학을 이야기하고, 생소한 학자들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더 더 한걸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거 뻘소리 아냐......쓰고나니까 제대로 뻘소리 깐듯......;;;;;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