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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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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는 이 사진처럼 하늘도 저도 잔득 흐린 한주였습니다.


비는 쉼없이 그리고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8월 중순에 수확한 참깨를 털고 겨울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그럴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나마 저희는 텃밭에 조금 심는 것이라서 큰 지장이 없지만
주변 밭들은 브로콜리를 비롯해서 겨울작물들을 한참 심어야할 때인데 큰일입니다.
비가 오면 비닐하우스 천장을 재빨리 닫고 비가 그치면 재빨리 천장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야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장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보면 빗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졍입니다.


중간에는 대장내시경 검사가 있어서 식이조절과 관장을 해야했습니다.
그 과정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더군요.
대장내시경 결과 제 대장의 상태는 아주 나쁘지도 않지만 그리 좋은편도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야 건강관리하면서 살아가라는 신호로 생각하면 되는데 문제는 아버지였습니다.
제가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날 아버니는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가서 폐암검진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정밀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진단이 나오겠지만 폐암인 것은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아버지 나이가 있어서 수술이나 항암치료 같은 방식은 어려울 것 같다고는 하는데...
폐암을 만성질환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건데 그 얘기는 삶이 몇 년 안 남았다는 얘기인지라 꿀꿀합니다.


아버지 문제로 고민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마음챙김을 의식적으로 해봅니다.
덤덤하게 지내려고 노력을 해보는데 마을에 사시는 친척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만나서 얘기를 나눴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황망했습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왕래를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던 분이었는데...
홀로 남겨진 남자삼촌이 더 황망하실텐데 제가 딱히 도와드릴게 없어서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자꾸 돌아가신 분의 얼굴이 떠올라서 마음이 서늘하더군요.


이런 와중에 태풍이 들이닥쳤습니다.
기온은 올라가서 여름날씨처럼 후덥지근하고
강력한 태풍이라는 예보에 긴장감은 높아지고
해야할 일들은 자꾸 뒤로 밀려놓아야하는 상황이었죠.
강풍소리에 새벽에 잠이 깨서 조금 힘들었지만 왠만한 태풍은 익숙해졌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아침에 주변을 둘러봤더니 입구에 텃밭개념으로 기어놓은 비닐하우스 지붕이 찢겨져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그리 큰 피해는 아니라고 위안을 하며 태풍이 할퀴고간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밀린 일들을 하려는데 또다시 비가 내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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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때로는 계획했던 일보다 그렇게 불쑥 저지르는(?)일이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구나를 경험했던 시간이었어요.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고요. 모쪼록 아버님 쾌유를 빕니다.

 


지난 방송에서 김동수씨와 김형숙씨가 왔다갔던 얘기를 했더니
김형숙씨가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니 다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는 몇 달만에 누군가와 얘기를 나눌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수다떠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불쑥 찾아온 즐거움이 이렇게 이주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행복입니다.


여러분, 일상의 작은 것들 속에 즐거움을 찾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이렇게 행복하답니다.
이건 꼰대질에 자랑질입니다. 하하하하하

 


3


읽는 라디오 ‘살자’가 오늘로 100회를 맞이했습니다.
‘죽지말고 긴장감을 가지면서 잘 살아가보자’는 뜻에서 시작한 방송입니다.
2년여를 진행하는 동안 metoo열풍에 침몰해서 잠시 휴지기를 갖기도 했었죠.
방송을 시작할 즈음에는 조그마하게 사회적 관계들이 있어서 방송에도 자꾸 사람들이 찾아왔었는데 이제는 그것마도 끊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가끔 사람의 손길이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그 작은 온기의 소중함을 간직하며 진행하고 있지요.
최근들어 조금 지친듯한 기운이 있기는 하지만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즐겁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주를 보내면서 질병과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올 수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질병과 죽음을 항상 준비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질병과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간다는 건 마음 속에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서 살아가자는 겁니다.
어느날 갑자기 내게 질병과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이죠.
앞으로 ‘읽는 라디오 살자’는 그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살자’를 100회까지 진행하면서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 고민은 ‘제가 지금 행복하다’는 겁니다.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과거의 기억들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찾아온 행복인데
제가 괴롭혔던 과거의 사람들까지도 지워버리는 행복이라는 것이 고민스럽습니다.
그리고 저를 촘촘하게 옥죄던 세상에서 한발 물러남으로서 찾아온 행복인데
아직도 그런 세상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이들에게서 한발 물러선 행복이기에 불편합니다.
아직 저로서는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방송을 계속 진행하면서 이 고민은 꼭 붙들고 있어야겠네요.


이 방송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우리 함께
죽지말고 긴장감을 가지면서 잘 살아보자고요.

 



(허클베리 핀의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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