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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26회


1


버스를 타고가는데 뒷좌석에 앉은 어떤 분이 기침을 계속 하시더군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긴장하게 되는 건 어쩔수 없었습니다.
긴장한 마음은 불안해서 자꾸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씨, 요즘 같은 때 저런 몸상태로 밖으로 나다니면 어떻하냐!”
“하필 내가 탄 버스에서...”
“지금 쓰고 있는 마스크는 삼일째인데 괜찮으려나?”
“저 사람 마스크는 쓰고 있는 거야?”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뒤로 돌아보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행동은 최악의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이 보이는 순간 부끄러워지더군요.
그래서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제 자신에게 얘기를 해봤습니다.


“저 분도 그런 몸상태로 나다닐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나처럼 여유롭다면 집에서 며칠동안 요양하며 지낼텐데 그럴수 없는 처지여서 그렇겠지.”
“남들의 따가운 시선이 몸의 병보다 더 힘든 법인데...”


그렇게 애써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 그분이 또 기침을 하더군요.
그 소리에 다시 마음이 긴장을 했습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강조하는 요즘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이 내 마음을 지배하는 속에
내 마음 속은 전쟁터가 돼버렸습니다.

 

2


경기도에 살고 있는 동생이 부모님에게 택배를 보내왔는데
그 속에 마스크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불안과 공포가 전세계를 휘감고 있고
마스크를 구하기위해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는 요즘
마스크 한 장이 얼마나 절박한데
그걸 암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보내온 겁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집안에 누워만 있는 아버지는
사실 마스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죠.
오히려 경기도에서의 확산이 더 걱정되는 상황이고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생이 더 불안할텐데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동생이 보내온 마스크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애정은 절박한 것을 나눌 수 있게 하다는 걸.
지금 나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애정이라는 걸.
그래서 또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키우기 위해 내가 할수 있는 건 뭘까?


조금이라도 더 절박한 사람들을 위해 나는 당분간 마스크를 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약국에서 면마스크를 사왔습니다.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 특정집단을 혐오하거나 비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더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소식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내 마음과 몸의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명상과 운동도 더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눈과 귀는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해 좀더 예민해지기로 했습니다.


이런 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이런 것 뿐이네요.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시간이 잠시 남아서 그 동네를 둘러봤습니다.
오래전에 친했던 친구네 집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둘러봤는데
기억 속 모습이랑 비슷하기도하고 달라져보이고도 하고 그렇더군요.
그렇게 어슬렁거리다가 주택가 한가운데서 깃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무속인의 집임을 알리는 깃발이 시내 한복판 주택가에 있는 게 의외더군요.


주변에는 아파트도 있고 2층 주택들도 많았는데 그 집만 낡고 오래된 집이었습니다.
그냥 신기한 마음에 살짝 열려있는 대문으로 안을 살펴보는데
마당에서 빗질을 하던 중년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선한 인상의 그분은 저를 보자 인사를 했고
얼떨결에 저도 가볍게 인사를 했습니다.


성민이 : 안녕하세요, 여기가 무당집인가요?
무속인 : 무당은 아니고 그냥 점도 봐주고 체걸린 사람를 체도 내려주고 그럽니다.
성민이 : 아, 그러세요. 주택가 한 복판에 깃발이 걸려 있길래 무슨 집인가 해서요...
무속인 : 잠시 오셔서 차가 한 잔 드세요.
성민이 : 아...
무속인 : 괜찮아요. 편하게 들어오세요.
성민이 : 아, 예. 그럴까요.


마루 입구에 앉아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으려니 그 분이 커피를 타들고 나오시더군요.


성민이 : 고맙습니다.
무속인 : 고맙긴요, 요즘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서 적적하던 참인데 잠시 말벗이나 하다 가세요.
성민이 : 여기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발길이 끊겼어요?
무속인 : 역병이랑은 상관없어요.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고민하러 오시는 분들은 있죠. 겨울에는 원래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도 하고, 요즘 세상에 이런 곳 찾는 사람들이 많나요.
성민이 :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여기 찾아오시는 분들은 주로 어떤 고민 때문에 오세요?
무속인 : 대부분 사람관계 때문이죠. 가족들랑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사람들이 두렵고 무서워서, 뭐 그런 이유들이에요. 주로 젊은 분들이 그런 고민들 때문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죠.
성민이 : 아, 의외내요. 할머니나 나이드신 분들이 가족들 잘되게 빌거나 아픈데 없애달라고 찾아오는줄 알았는데...
무속인 : 예전에는 주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어요.
성민이 : 그렇군요.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 고민이 저랑 크게 다르지 않네요.
무속인 : 선생님도 사람관계가 원만하지 않으세요?
성민이 : 음... 저는 사람관계가 원만하지 않은게 아니라 거의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싫어지고, 그런게 길어질수록 세상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없어지는 거죠.
무속인 : 아이고, 여기 찾아오시는 분들중에 그런 분도 많아요. 세상이 삭막해지다보니까 다들 자기만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 상처주고하다보니까 외톨이가 되가고 그렇더라고요.
성민이 :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은 저도 했어요. 이렇게 혼자서 살아가는 게 싫은 건 아닌데 점점 나혼자만 붙들고 있게 되는 게 싫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기적인 괴물로 변해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무속인 :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그분은 방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잠시 후 종이 한 장을 들고나오셨습니다.


무속인 : 이게 기도문인데요,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들여다보면서 읊조려보세요. 그냥 줄줄 읽어나가도 되는데요, 가능하면 마음 속으로 그 내용을 꼭꼭 씹으면서 읽어보시는게 더 좋겠죠. 글이 쉬워서 몇 번 읽다보면 외우게 되는데 그러면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주문처럼 한번씩 읊어보시면 좋아요. 가능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나서 조용히 읋조려보면 더 좋을 거예요.


그분이 건넨 종이에는 몇줄의 문장이 쓰여있었습니다.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그걸 가만히 읽어내려갔더니
마음 속에 온기가 살며시 전해지더군요.


성민이 : 와,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횡재했네요. 이거 복비드려야겠죠? 얼마 드리면되요?
무속인 : 복비는 복덕방에서 주는 게 복비고요, 여기서는 복채라고 합니다. 손님 받을려고 그랬던건 아닌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마음에 드셨다면 만원만 주세요.


저는 그분에게 복채로 만원을 드리고 그 종이를 받아들고 나섰습니다.
집으로 와서 벽에 그 종이를 붙여놓고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답니다.
여러분께는 제가 복채없이 그냥 공짜로 공개해들릴께요.

 


내가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내가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처럼
모든 생명들이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원합니다.


내가 편안하고 평화롭길 바랍니다.
내가 편안하고 평화롭길 바라는 것처럼
모든 생명들이 편안하고 평화롭길 기원합니다.


내게 만일 쌓인 공덕이 있다면 모든 생명에게 회향합니다.

 


(자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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