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살자 129회

 

 

1

 

 

읽는 라디오 살자 백스물아홉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4주만에 여러분에게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성민입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까 좋네요.

 

 

간단간단하게 버티던 노트북이 어느날 퍼져버려서 본의 아니게 방송을 쉬게 됐습니다.

예고도 없던 방송중단이라서 죄송했습니다.

그 사이에 큰마음을 먹고 노트북을 새로 장만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 노트북보다 성능이 좋아졌는데 아직 새로운 자판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자판을 두드리는게 조금 어색합니다.

그러다보니 제 얘기가 아주 조금 어색할지도 모르겠네요.

이것도 조만간 익숙해질테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달 가까이 방송을 쉬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조금 해봤습니다.

가뜩이나 세상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이 많아서 입이 조금 근질근질하기는 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입을 다물고 듣기만하다보니 제 마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휴지기를 조금 더 갖고 난 후에 ‘읽는 라디오 시즌4’로 새롭게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방송을 기다린다고 얘기해주신 분도 있고, 저도 방송을 진행하는 게 아직은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방송에 아주 중요한 변화를 하나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그 변화는 조금 후에 소개해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요즘 완연한 봄입니다.

미친 듯이 돌아가던 자본주의가 잠시 멈춰서니까

하늘은 맑아지고 세상은 차분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봄이 더 편안하게 다가와야 하는데

멈춰선 속에 불안과 혐오가 넘쳐나서 마음은 불편한 봄이지요.

저처럼 세상에서 반발 뒤로 물러나있는 경우는

맑고 차분한 봄이 좋기만 하지만

가만히 누워만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 마음이 사치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더 삭막한 현실이 펼쳐져있기도 하고요.

 

 

이 방송은

사치스러운 제 마음과 불안한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게 될 것 같습니다.

뭐,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까...

 

 

 

2

 

 

오래간만에 방송하는데 이곳의 봄소식을 전해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울농사를 마친 밭들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연이은 가을태풍에 유난히 따뜻한 겨울날씨에다가 코로나까지 연타를 날리는 바람에

겨울농사를 지으신 분들이 마음고생들이 많으셨는데

다 지난 일처럼 말끔하게 정리해놓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에서는 여름농사는 겨울농사만큼 많이 하지는 않지만

여름농사를 들어가는 밭은 다시 바빠지고 있습니다.

겨울농사를 마치고 제대로 쉬지 못하기는 밭도 사람도 마찬가지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희 밭에도 여름에 먹을 것들을 심기 위해 육묘장에 갔습니다.

다양한 묘종들이 펼쳐져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괜히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필요한 묘종들을 사들고 와서 밭에 심었더니 벌써 풍성한 여름이 기대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달에 몇가지 채소씨를 뿌려놓았더니 왕성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맘 때가 채소들이 자라기에 가장 조건이 좋아서 쑥쑥 자랍니다.

하루가 지나면 1cm씩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린 새싹을 뽑아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아삭한 식감과 함께 입안에 퍼지는 향기가 환상입니다.

이렇게 밥을 먹고나면 몸안에 봄기운이 번지는 걸 생생하게 느끼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몸과 마음으로 봄을 한껏 즐기고 있는데 한라산에 눈이 내렸습니다.

따뜻한 봄햇살을 만끽하면서 눈 쌓인 한라산을 바라보는 기분은 좀 묘합니다.

저의 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직도 겨울이 남아있음을 생각하라는 건지...

 

 

 

3

 

 

비닐하우스 뒤편에 공간이 조금 남아서 고사리를 심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 올라오는 고사리를 꺾는 재미가 솔솔치 않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제가 먹을 것은 나오기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 즐겁게 고사리를 꺾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고사리를 꺾으러갔더니 고사리들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새로 올라온 고사리 하나 없이 말끔하더군요.

누군가 와서 몰래 고사리를 꺾어가 버린 거였습니다.

짜증이 확 밀려오더군요.

 

 

의심이 가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몰래 고사리를 꺾어가 버리는 할머니가 있거든요.

몇 번 걸려서 화도 내보고 고사리를 건네주면서 달래도보고 했는데 계속 이러는 겁니다.

올해는 가뜩이나 고사리 수확이 좋지 않은 판인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그날은 하루 종일 화가 풀리지 않은 채 불편하게 보냈습니다.

 

 

그 할머니집을 찾아갈까 생각을 했지만 추측만으로 그러기는 심한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고사리를 꺾어가지 말라고 팻말을 붙여놓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괜히 주변사람들만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얼마 되지 않는 고사리 때문에 CCTV 같은 걸 설치하는 건 웃기는 일이고...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 채 불편한 마음만 이어졌습니다.

 

 

그후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뒤편으로 가서 누가 오지 않나 수시로 살펴보고

고사리를 꺾으면서는 평소보다 양이 줄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고

그 할머니가 사는 집앞을 지날 때면 괜히 집안을 살펴보게 되고 그러더라고요.

그럴수록 마음만 더 불편해지고 그러는 제 모습이 불쌍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제 마음을 놓아버렸습니다.

 

 

“그까짓 고사리 얼마나 된다고 며칠 동안 그거에 마음을 빼앗기냐?”

“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잖아. 기분이 나쁘잖아. 애써 키워놓은 걸 가져가는 건 절도라고!”

“다 꺾으면 한 줌 조금 넘는 양인데 그 절도범을 잡겠다고? 그러느라 며칠 동안 너만 불편해지잖아.”

“이걸 그냥 놔두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아냐.”

“야, 겨울에 꿩들이 와서 농작물 파먹으면 ‘꿩들이 배고파서 여기까지 내려왔구나’하면서 가볍게 넘기잖아. 그런데 왜 사람한테는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 거야?”

“꿩들은 본능 때문에 그러는 거고 사람은 자기 의지로 그러는 거잖아. 그리고 고사리 못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그 할머니는 그냥 자기 재미로 꺾어가는 거라고.”

“니 말대로 고사리 못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그 정도 양이면 그냥 들짐승이 꺾어갔겠거니 하고 생각해버려. 아니면 그 할머니한테 보시한다고 생각하든가.”

“그렇게 생각하면 속 편해지는 건 아는데... 속상해서 그렇지.”

 

 

마음을 놓아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놓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왕삼매론의 열 번째 구절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마음을 애써 달랬습니다.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마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4

 

 

어... 안녕하세요.

어... 저는... 음... 제 이름은 사랑이입니다.

어... 후~

무슨 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 저는 성민이랑 같이 살고 있는

음... 저는 사랑이입니다.

어... 무슨 말 해야...

성민아 도와줘.

 

 

성민이 : 야, 그냥 니가 하고 싶은 말 아무 말이나 하면 돼.

사랑이 : 무슨 말 해야할지 모르겠어.

성민이 : 프흐흐 너 마이크 울렁증이냐?

사랑이 : 당연하지, 태어나서 이런 거 처음 해보는데.

성민이 : 어제 연습한 것처럼 해봐. 어제는 잘 하더구만.

사랑이 : 아이, 그건 연습이니까 그렇지.

성민이 : 그렇게 연습처럼 해. 이건 생방송 아니거든.

사랑이 : 아이, 몰라. 나 안할래.

성민이 : 사랑이 또 그런다. 여기 너랑 나랑 단 둘 밖에 없어. 그냥 나한테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하면 돼.

사랑이 : 무슨 얘기해야할지 모르겠어.

성민이 : 음... 자 그럼 내가 몇가지 질문을 할테니까 니가 대답해봐. 사랑이는 몇 살이죠?

사랑이 : 다섯 살.

성민이 : 아니야, 너 올해 한 살 더 먹어서 여섯 살이야.

사랑이 : 아, 그렇지. 죄송합니다. 여섯 살입니다.

성민이 : 여섯 살이면 성민이랑 같이 지낸지도 육년인가요?

사랑이 : 예. 제가 새끼일 때부터 같이 지냈습니다.

성민이 : 육년 동안 같이 지내면 지겹지 않아요?

사랑이 : 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음... 그냥 어릴 때부터 성민이하고만 지내서...

성민이 : 성민이가 잘 해줍니까?

사랑이 : 예.

성민이 : 야, 그 말 진심이야?

사랑이 : 어... 뭐, 그렇지... 왜?

성민이 : 아니, 뭐... 그렇다면 됐어. 이 방송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사랑이 : 어... 뭐라고 대답해야... 사실대로 얘기해?

성민이 : 니 마음대로 해. 그냥 편하게 하면 돼.

사랑이 : 어... 이런 거 해본 적 없는데... 어... 성민이가 해보라고 해서...

성민이 : 성민이가 강요했습니까? 예를 들면 라디오 출연하지 않으면 산책을 가지 않겠다고 협박하거나, 간식을 앞에 놓고 라디오 출연하면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거나 그랬나요?

사랑이 :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냥 성민이가 해보라고 해서 하는 겁니다.

성민이 : 아, 그럼 자발적으로 하시는 건가요?

사랑이 : 어... 성민이가 해보라고 해서 하는 건데... 어... 강요는 아니지만... 음... 제가 그랬거든요. 사람들이 개가 하는 얘기에도 관심을 가져주느냐고요?

성민이 : 그래서요?

사랑이 : 어... 그러니까 성민이가... 어... 관심을 가져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어... 듣는 사람 별로 없으니까... 음... 그냥 재미로 해보자고...

성민이 : 그럼 그냥 재미로 개소리를 들려주시겠다는 거네요? 푸하하하하

사랑이 : 야! 그건 내가 한 말이잖아. 사람들이 개소리한다고 뭐라하면 어떻하냐 하면서...

성민이 : 하하하하, 지금 개소리 하는 건가요? 크흐흐흐

사랑이 : 아, 몰라. 그만할래.

성민이 : 야, 그만할 때 하더라도 끝인사는 하고 끝내야지.

사랑이 : 뭐? 정말 이렇게 방송 내보낼거야?

성민이 : 응.

사랑이 : 야, 뭐냐 이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성민이 : 장난하는 거야. 방송에서 이러면 안되나?

사랑이 : 사람들이 뭐라 하면 어떻하려고?

성민이 : 누가? 찾는 사람도 몇 명 없는 데... 아, 혹시 신천지에서 명예훼손이다뭐다 할 수는 있는데, 그건 신경쓰지마. 너는 신천지가 뭔지 모른다고만 하면 돼. 누가 물어보면 그냥 멍멍거려. ‘저는 개예요, 아무 것도 몰라요, 멍멍’ 그렇게만 하면 돼.

사랑이 : 야, 장난하지 말고.

성민이 : 야, 너 오늘 데뷔무대는 아주 재밌었어. 이 정도면 출발치곤 나쁘지 않으니까 용기내. 오늘 방송 너무 길어졌다. 빨리 마무리 인사하고 노래 틀어드려야지.

 

 

아... 저는 사랑이입니다.

음... 오늘부터 성민이가 시켜서... 아니 아니, 강제로는 아니고...

어...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음... 잘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마마무의 ‘HI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