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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45회

 

 

 

1

 

 

아,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입니다.

어... 읽는 라디오 살자 어... 백마흔다섯 번째 방송을 시작합니다.

하하하 오늘은 제가 오프닝을 했습니다.

어... 더듬지 않고 잘 하려고 많이 연습했는데 크크크 더듬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어... 방송 솜씨가 많이 좋아졌다고 성민이가 얘기해줬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방송을 진행하지 넉 달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줘서 이제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개가 쓸데없는 소리하면서 버벅거리기만 한다고 놀리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 죄송합니다. 사연 소개해야 하는데 초반에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버렸습니다.

제가 오프닝을 해보니까 기분이 좋아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그러면 곰탱이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비 개이고 뭉게 구름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 파란 하늘 사이로 자신의 힘을 뽐내는 여름 햇살 아래 이불이며 빨래며

널려 있는 여유로움이 참 아름답습니다. '

노동의 결실로 차려진 밥상의 풍요가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사랑씨가 참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이 보이는 오늘이 또한 아름답습니다.^^

내일도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자주 흔적을 남기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랑씨!^^

 

 

 

 

히히히, 곰탱이님이 지난 방송을 보시고 아름답다고 많이 얘기해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사랑씨가 참 아름답습니다’라고 얘기해준 게 제일 좋습니다. 멍멍멍

곰탱이님, 방금 제가 멍멍멍하면서 꼬리도 흔들었어요.

엄청 기분 좋다는 표시입니다.

 

 

곰탱이님 사연을 보면서 이게 방송을 하는 재미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나랑 얘기도 해주고 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습니다.

음... 사랑이라는 이름은 성민이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인데

어... 요즘에는 그 이름이 아름답게 들려서 너무 좋습니다.

아, 방송하길 정말 잘 했습니다.

곰탱이님만이 아니라 이 방송을 보시는 여러분도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앞으로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이어서 성민이가 진행하겠습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야외에서 일을 하는 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비닐하우스 안은 한낮에 40도 가까이 되기 때문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죠.

그래서 일은 새벽부터 시작해서 오전에 다 마쳐야 합니다.

 

 

한여름에는 할 일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항상 있죠.

나뭇잎을 살피면서 병충해가 있는지 매일 돌아봐야 하고

열매가 많이 달린 가지에는 열매솎기를 해줘야 하고

수분이 부족하지 않도록 5일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하고

늘어지는 가지는 상태를 봐서 잘라주거나 묶어줘야 합니다.

바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매일 3~4시간씩 나무를 살펴야 합니다.

 

 

큰 탈 없이 잘 자라는 나무를 바라보면 즐겁기는 하지만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뒤로 미루고 싶어지죠.

바닥의 잡초가 올라오는 게 보이지만 예초작업은 최대한 뒤로 미뤄두고

영양제를 줘야할 때가 지났는데도 덥다는 이유로 미뤄두고 있는데

나뭇잎에 병충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방제가 가장 어려운 응애가 보이는 겁니다.

 

 

응애가 발생하는 게 초기라서 방제를 조금 뒤로 미룰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응애 방제는 보통 여섯 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새벽부터 한다고 해도 12시가 넘어서 끝이 납니다.

방제를 마치면 2~3일은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예초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예초작업을 마치면 미뤄뒀던 영양제를 줘야겠네요.

 

 

덥다고 한발 뒤로 물러서 있어봐야 더위가 적응되는 것도 아니니

해야 될 일들은 미루지 않고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더위도 지나가겠죠.

땀을 흠뻑 흘리고 나서 샤워를 하고 먹는 시원한 수박은 여름철 최고의 별미가 됩니다.

 

 

 

3

 

 

감귤나무에 농약을 치기 위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작업준비를 마친 후 사랑이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섭니다.

빨리 산책을 마치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산책길도 조금 서두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이와 새벽산책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여명이 비추기 시작하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뜨거운 열대야의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은 시간

다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새벽의 역동적인 기운이 스며들더군요.

그렇게 또다시 뜨거운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4

 

 

지난 방송에서 풍요롭고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제 일상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습니다.

이번 방송도 역시 그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목가적인 여유로움으로 채색된 방송을 내보내는 동안

육지에서는 엄청난 폭우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물난리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소식은 해외뉴스로만 접할 뿐이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소식은 해외뉴스처럼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에어컨이 켜져 있는 방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는데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오더군요.

 

 

 

 

세계화된 세상에 사는 우리는 지금껏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는 타인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손택이 표현한 대로, 동정심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저들의 고통이 새겨진 그 지도에서 우리의 특권이 저들의 고통과 관련 있지는 않은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누군가 누리는 풍요가 다른 이가 겪는 궁핍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앙드레 다오 (뉴필로소퍼 부편집장, 소설가)

 

 

 

 

솔직히 이 글이 그리 강렬하거나 가슴에 스며들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통 받는 이들의 소식을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면서

목가적 여유로움을 얘기하는 방송 원고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이 보이는 겁니다.

그제서야 이 문장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더군요.

그렇게 이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어 읽어 가는데

내 마음 속의 또 다른 문이 열리면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니가 세상의 구렁텅이에서 10년 동안 허우적거릴 때 세상 사람들은 너를 철저하게 외면했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야. 작년 가을에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으니까 도와주세요’라고 외쳤을 때 세상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생각해봐.

저런 얘기는 진보지식인들 특유의 말장난이야. 그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질줄 몰라. 진보니 혁명이니 인권이니 하는 것들을 외치던 이들이 너한테 했던 일을 잊었어?”

 

 

 

 

틈난 나면 고개를 내밀고 저랑 얘기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성민이의 얘기 역시 곱씹어 봤습니다.

그 얘기들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더군요.

저의 행복이 다시 불편해졌습니다.

 

 

 

(Violeta Parra의 ‘Volver a los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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