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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통제 방식 갈수록 고도화

***** 작업장통제 방식 갈수록 고도화 *****
대전 한라공조, 신형 자동센서 도입

경영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인가? 작업장내 노동자 통제를 강화하는 신종 도구인가? 지난 17일 회사측이 "작업공정 개선도구로만 사용한다"는 확인서를 작성하며 일단락된 대전 '한라공조(대표 신영주) 자동센서 도입사태'가 던지는 물음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에어콘과 라디에이터를 생산하는 한라공조는 지난 9월 기존 설비가 오래된 데다 작업 진행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신형 센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라인에 묶어두겠다는 것 아니냐"며 현장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회사측은 "적기생산 방식으로 가는 현대자동차의 방침에 따라, 적기에 부품을 공급하는 비율(직행률)을 높이기 위해 자동센서는 필수적인 장치"라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사실상 감시카메라 밑에서 작업하는 상황은 견딜 수 없다. 당장 철거하라"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결국 노동조합(위원장 최세철)이 나서 협의에 들어가고, '노사협의 중에는 설치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지리한 논쟁을 거치며 확인서에 이르렀으나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상의 감시카메라" 반발

확인서는 우선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생산량 압박, 조합원간 과도한 경쟁유발, 인권침해를 않으며, 연봉제나 호봉제 등 개인평가 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조민제(30, F/S조립라인) 씨는 "어떤 항목의 정보를 수집하는 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반발한다.

설사 작업 공정과 관련된 정보만을 수집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실시간으로 어느 라인에서 어떤 제품이 몇 개 생산됐으며 불량품은 어디서 몇 개인지가 일목요연하게 화면에 뜬다면, 개인별로 따로 감시하지 않아도 작업장은 저절로 통제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실시간 공정 그래프가 현장 단말기에 뜨지 않도록 한다고 확인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경영진 컴퓨터에는 실시간 공정 그래프가 뜨고 이를 통해 작업장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회사측이 누누이 강조하듯 자동센서 도입 이유는 직행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노조 김영명 조사통계국장은 "실시간 그래프를 포기하면 뭐하러 돈 들여 이 짓을 하겠는가"고 반문한다.

수집된 정보를 지금 당장 노무관리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 그러리란 보장도 없다. 김민제 씨는 "회사측이 준 것은 합의서가 아니라 확인서다. 이게 무슨 구속력이 있는가.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노사 양측이 인정하는 실무 대표 2인이 '협의'를 한다고만 되어 있다. 처벌 조항도 없다."고 분개한다.

확인서가 나왔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강경하다. 박권종 대의원(27, 에바 조립라인)은 "집행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장노동자는 철거를 원한다"고 말한다.

경영진, 책상위에서 공정 확인

노동자들의 불만은 결국 작업장을 누가 통제하느냐와 직결되어 있다. "주간 작업시간을 10시간으로 보면, 하루 6백대 정도를 생산한다. 이걸 산술적으로 보면 1분에 한 대씩이다. 회사측은 9시 1분에 한 대, 9시 2분에 2대…, 하는 식으로 나오길 원하는 거다. 그러나, 인간이 기계인가? 늘 그 속도로 긴장해서 작업하게. 9시에서 10시 사이에는 두 배 정도 하고 10시에서 11시 사이에는 그 절반을 하며 조절할 수 있는 게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IMF 이후 자동차업계를 휩쓴 '구조조정 광풍'이 여전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완성차업계는 쓰러지고, 부품업계는 도산하고 외국기업에 팔리고 있다. 남아 있는 이들은 고용불안의 압박을 느끼며 갈수록 강화되는 노동 강도를 감내해야 했다. 자동센서 도입문제는 바로 이 불만의 정점에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 것이라 볼 수 있다.

박권종 대의원은 "라인마다 사람수가 줄어들자 조·반장 지시에 다른 말을 할 엄두를 못 냈다"며 "문제가 생기면 옆 라인에 책임을 돌리고 서로 불평한다. 삶터가 너무 삭막하다"고 한숨짓는다. 안필균(37, 생산3부 조립라인) 씨는 "센서가 들어오니 한마디로 갑갑하다. 저러다 언제 그만 두라고 하려나 하는 마음만 생기더라. 암담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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