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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탄핵, 우리의 투쟁

대중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부르조아 의회의 거추장스러운 외연을 벋어 던진지 오래된 그들은 적나라하게 그들만의 강행과 저항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지금 이 국면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서 주춤거리고 있다. 한쪽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면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 애쓰고 있고, 또 한쪽은 짐짓 울분에 휩싸인 표정을 지어보이면 국민의 불안심리를 조장하고 동원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부르조아 정치인들의 저 치열한 비타협성!
한-칠레 자유무역협정과 이라크 파병동의안 처리에 있어서는 약간의 보여주기 액션이 있었지만 저들은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확실히 깔아 뭉게면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삶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그에 죽음으로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해서는 외면과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철저히 노동자계급을 억압하라! 이 얼마나 명확한 계급적 비타협성의 모범인가!
지역주의와 패거리정치, 보수주의와 반공주의, 자본과의 음성적 거래와 비자금 정치 등을 통해서만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수구-보수세력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정말 눈물겹다. 어떠한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흔들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잠시의 혼란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정치프로들의 과감한 결단이 놀라울 뿐이다. 수구-보수세력들의 비타협성은 송두율을 처벌하라는 데서만이 아니라 탄핵에서도 이렇게 과감했다.
더 이상 깃발 꽂을 지역이 없는 개혁주의 세력들은 남의 땅을 빼앗기 위해 지역주의 청산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치부까지 과감히 드러내면서 좀더 많이 처먹은 상대를 죽이기 위해 깨끗한 정치를 외치고 있다. 결국 노동자.민중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분명히 하자면서 야당과의 어떠한 타협도 없다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다. 역시 노무현의 비타협성과 열린우리당 강경파의 비타협성은 386세대답다.

이제 저들의 비타협적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야당은 여론의 역풍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수구-보수세력들의 결집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바버둘칠 것이다. 더 이상 불안한 노무현 식의 개혁에 나라를 맡겨서는 안된다면서 엄청 떠들어대면서 선택을 안정적 세력과 불안한 세력의 대결로 몰아가서 지역주의 정치, 수구-보수정치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번 총선의 최우선 목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사수하는 것이기에 저들은 그토록 처절한 것이다.
조직적 기반의 열세를 확인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은 불안심리를 정권의 안정심리로 몰아가면서 언론과 노빠들을 이용해 대중에 직접 호소하는 포퓰리즘적 정치를 집중할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개혁의 기치 아래 전국민적 투쟁을 벌이자고 호소할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억압하고, 구수세력과의 투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적어도 하나의 룰이 있다.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면서 사회의 혼란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발전하지는 않도록 할 것!

그러나 상황은 그들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계급투쟁의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부르조아 분파들간의 투쟁이 그들만의 투쟁을 넘어서 급속히 전국적이고 전민중적 사안으로 발전해버린 것이다. 이미 사안은 한국사회의 총체적 발전방향을 놓고 벌이는 계급투쟁이 되어 버렸다.
저들은 당장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어떤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지만, 이미 저들이 벌여놓은 일은 총선에서의 승패라는 수준을 넘어서 버렸다. 이미 죽이지 않으면 죽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저들은 가능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며, 이는 정당으로 조직된 정치꾼들의 역량만이 아니라 언론의 집중적 지원사격, 각종 단체(여기에는 시민단체도 포함하여) 역량의 총동원, 사법기관에 대한 직간접 개입, 자본가들의 지지 획득, 정부기관 내부에서의 파워게임, 국제적 세력에 대한지지 획득 등 그들이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할 것이다. 사회 전체가 치열한 투쟁의 전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투쟁은 한국사회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단지 총선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가의 문제를 넘어서 버렸다.

바로 이 점이 총선에 목을 메는 이들이 넘고 싶어 하지 않는 선이다.
가장 초조하면서도 역으로 가장 조심스러운 것이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린당, 그리고 노빠와 시민운동세력들이다. 이들은 ‘전국민적 항쟁’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지금의 이 투쟁이 말 그대로 전국민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생존권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사회의 총체적 방향에 대해서 소리 높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의 승리는 정권의 유지이기 때문에 권력의 유지를 넘어서는 수준의 급진적 요구는 오히려 스스로의 발목을 잡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전국민적 항쟁’은 철저히 합법적인 수준에서 열린우리당의 총선승리라는 목표로 수렴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사회의 총체적 방향은 어정쩡한 ‘진보’도 부담스러워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개혁’이라는 안개 속으로 묻혀버리길 바라고 있다. 그래야만이 그들의 정권이 유지될 수 있고, 개혁의 약발이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좀더 급진적인 것은 야당과 수구-보수세력들이다. 이들은 사회의 총체적 방향을 좀더 우향우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야만이 이들의 기득권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념 논쟁마저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여차하면 개헌까지 몰아붙일 수도 있다는 태세다. 이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사회를 우회전 시키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중이 급진화 된 요구를 제출하면서 사회가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져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열린우리당 보다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사회의 총체적 우경화를 위해 투쟁을 벌이지만, 가능하면 자신들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수준으로 총선으로 집중했으면 하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시민운동세력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동당 같은 의회주의 세력들도 지금의 국면을 총선에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노무현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진보진영의 독자적 요구를 중심으로 진보 대 보수의 구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깨끗함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진보 대 보수‘의 구도를 만들기 위한 투쟁 보다는 선거운동과 득표활동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울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을 하고, 정규직 노동자가 자살을 하고 있는데도 이들은 자본가와 권력의 막강한 영향력에 위축되어 비타협적 투쟁을 조직하기 보다는 어정쩡한 태도 속에서 표를 계산하고 있다. 입으로는 계급투쟁을 외쳐대면서도 몸과 마음은 총선이라는 부르조아 정치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팔아먹는 더러운 의회주의자들의 작태!

이런 와중에도 노동자들은 싸움을 하고 있다. 울산은 아직도 죽어서도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이고, 파견법 확대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힘이 실리지 않고 있고,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장기화되면서 힘겨워지고 있고, 산재노동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탄핵국면에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완강하게 계속되고 있지만 그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러겠지만 부르조아 정치꾼들과는 다른 세상의 일일 뿐이다.
사회 전체가 들썩이는 계급투쟁의 국면에서 우리는 부르조아 정치세력들의 들러리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투쟁 속에서 사회적 총체적 방향을 좌선회 시킬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지원하고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얘기들을 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노동자계급 스스로가 이 사회의 방향을 주장해야 한다. 그리기 위해서라도 총선에 메달려 투쟁을 팔아먹는 의회주의적 실천이 아니라 총선을 관통하는 계급투쟁이 절실하다.
광화문이나 국회 앞에서 가서 노빠들이랑 탄핵을 규탄할 열정이면, 울산으로 달려가고 명동성당으로 달려가자. 투쟁은 자신의 조건이 된다고 적선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다고 기본적인 것을 내팽개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절박한 요구에서, 가장 계급적인 관점에서, 가장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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