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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도 더 나빠질 것은 없어

이혼해도 더 나빠질 것은 없어

레나테, 33세, 주부이며 청소부, 5남매, 남편은 단순노동자

레나테를 처음 만난 것은 1974년 봄이었다. 전업주부의 일상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러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가족상담소에 들렀는데, 마침 그녀가 거기에 와 있었다. 레나테를 담당하는 상담직원은 그녀에 대해 많은 사항을 알고 있었다.
“레나테는 워낙 사정이 복잡해서요.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몹시 쪼들리지만 그럭저럭 살림은 꾸려 나가는 편이예요. 퍽 강한 사람이죠. 남편한테는 불만도 많지만 심리적으로 너무나 메여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성적 갈등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남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성적인 예속, 바로 그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레나테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그 점이었다. 여성들의 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가 천편일률적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경우에 따라 서로 상반되는 점도 상당히 있을 듯싶어 적절한 사례를 찾고 싶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단순하고 화통한 성품임을 느끼게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도 전혀 감추거나 거리끼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를 소개해 준 상담원은 레나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이 무척 많았다.
레나테는 최근 3년 동안 완전히 불감증이었고, 자신의 삶이 무척 공허하고 도대체 살맛이 안 난다고 했다. 남편과의 잠자리도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부부관계는 파경을 맞은 지 오래이며 회복의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고 했다.
“남편한테 뭐 결정적 하자가 있는 건 아니에요. 집안일도 잘 하고, 사람도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에요. 하지만 다시 그럴 수만 있다면, 설사 아이가 생긴다 해도 나는 결혼만은 안할 거예요. 남자랑 함께 사는 건 몰라도 공식적인 혼인관계는 절대로 맺지 않을 거예요. 여자들한테 결혼은, 남자 손아귀에 들어가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옴짝달싹할 수가 없잖아요.”
결혼이란 게 이런 건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남의 아내가 되고 그저 예쁜 애들 낳아서 열심히 보살피면 되는 건 줄만 알았죠. 무지의 죗값이 이렇게 엄청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인생이 땡 하고 종치는 건데. 죽어라 일해도 끝이 안나요. 전망 없는 노예일 뿐 파트너가 될 수는 없는 거예요. 하지만 난 어디 그런가요. 애들 땜에 꿈도 못 꾸지요. 잠시 한눈 팔 겨를도 없는 걸요. 외출이라도 함께 하면, 난 그저 입 다물고 있어야 해요. 한 마디라도 무슨 말을 하려면 남편은 옆구리를 꾹 찌르며 눈총을 줘요. 그러면 얼른 주둥이를 다물었는데, 요즘은 아예 벙긋도 않고 가만있어요. 밤에 혼자 나가본 지도 오래됐네요. 애들 학교 학부형회에도 가지 못해요. 남편더러 가라면 재미가 없어서 안 간다면서, 늦은 시간이라고 나 혼자는 못 가게 해요. 해만 떨어지면 나는 그저 집에만 죽치고 있어야 해요.“
인터뷰를 위해 나는 아침 아홉 시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얼굴은 독립적인 인상이 짙고, 아이들도 무척 잘 다루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엄마를 불러대며 우리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긴 시간 동안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스런 표시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잠시도 한눈 팔 겨를 없이 하루하루 보대끼며 살고 있는 그녀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레나테는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면서, 비슷한 처지에서도 의붓자매 둘은 제대로 공부를 했다는 얘기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다. 베를린에 살던 레나테는 당시 열 살이었는데, 아버지가 사는 시골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농사도 지었지만 낮에는 근처의 공장에서 나가tu서 집안일은 레나테의 몫이었다. 새어미니가 계셨지만, 아버지와 함께 공장에 가고 안 계셔서 청소와 식사 준비, 가축 돌보는 일도 모두 그녀가 도맡아 했다. 방도 따로 없고 그냥 아버지 침대에서 함께 자고, 새어머니는 데리고 온 딸애와 한 침대에서 잤다.
성에 대해서는 언제 어떤 식으로 교육을 받았는지 레나테에게 물어보았다.
“열두 살인가 열세 살인가, 아버지한테서요.”
“어떤 식으로 배웠어요?”
“이젠 다 잊어버렸어요. 아무튼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만 기억해요. 그래요. 실습을 했어요. 그러다 피가 났지요.”
아버지가 ‘가르쳐’ 주었다는 게 무슨 소리였는지,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어렸을 적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성추행과 강간을 경험한 것이었다.
“이삼 년 그러다 말았어요.”
레나테는 얼른 다른 얘기를 하려 했으나, 나는 그 상황을 좀더 자세히 캐물었다.
“하루빨리 잊고 싶었어요. 아예 없었던 일로, 내 기억에서 싹 지워버리려 노력했죠. 하지만 요즘도 어머니만 보면 그 일이 다시 생각나곤 해요.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야단을 맞았거든요.”
몇 마디 얘기가 오고 가자 금세 진상이 드러났다. 아버지는 협박과 회유로 어린 소녀에게 재갈을 물려 둔 셈이었다.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써가며 말을 듣게 하고, 그리고 아무에게도 그 일을 얘기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했다. 계모는 어렴풋이라도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덕분에 본인의 ‘혼인 의무’가 줄어드니까 함구했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레나테는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자기 몸을 다루었는지 구체적으로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그냥 짐승처럼 덮쳤어요.”
열다섯 살이 되자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아직 베를린에 살고 있는 친어미니한테 편지를 썼다. 어머니는 그 길로 곧장 달려와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여주고는 그녀를 데리고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분노를 아기지 못하고 레나테에게도 여러 차례 화풀이를 했다. 때문에 그녀가 사는 인근에는 쏴 하고 소문이 퍼져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동네의 사내녀석들 눈에 그녀는 내놓은 창녀와 다름없었다. 기왕 버린 몸인데,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우리들한테도 인심 좀 쓰라고 야단들이었다.
그 일로 인해 아버지는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2년을 살고 나왔다. 지나고 보니 공연히 소란만 피웠다고, 이후로 건강이 몹시 상했다고 그녀는 아버지 걱정을 했다. 아버지를 다시 보는 일은 여전히 끔찍하고 치욕스럽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인자한 할아버지 시늉을 하고 딸네 집을 찾아오는 아버지가 애처로워 아무 소리도 안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레나테는 이런 충격을 겪으면서도 처녀 시절 내내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다. 아버지로 인한 끔찍한 사건은 어디에도 결코 있어서는 안될 예외적인 상황일 따름이었다. 늘씬하고 날렵한 용모, 특히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총각들만 보면 그녀는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랑이 전부라고요. 하늘나라에 온 느낌과 같은 거라고요. 우리 부모님의 결혼이 그렇게 불행한 걸 보고 자랐는데도, 어쩜 그렇게 현실을 외면했는지 모르겠어요. 방송이나 잡지에 보면 대부분 순결하고 고결한 사랑 이야기만 나오잖아요.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들인데 가슴을 설레면서 환상만 키웠으니, 나는 참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열다섯 살에 그녀는 제법 큰 가제를 운영하는 어느 집 가정부로 들어간다. 일 년이 지난 후 집주인은 레나테를 자기네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게 해주었다.
“내외분이 참 좋으셨어요. 주인 아줌마가 이제 가게 일은 안 보신다고, 저에게 점원 노릇을 시켜 주셨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 집에서 먹고 자면서 한 달에 30마르크를 고스란히 손에 쥘 수 있었다. 주인 내외가 좋은 사람들이라 그녀를 ‘친딸처럼’ 대해 주었다. 그런데도 레나테는 남자 하나를 사귀게 되자 그들의 호의를 다 물리치고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 남자가 멋있었어요. 그 남자를 사랑한 건 아니었지요. 그 남자를 보자,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 딴 곳으로 한번 가보자. 나도 남들처럼 한번 인생을 멋지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열일곱 살이었죠. 그 남자와 처음 정식으로 성관계를 가졌는데, 곧 임신을 하고 말았어요. 무려 300마르크를 주고 의사를 만나 아이 떼는 수술을 받았어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길길이 뛰었고요. 원하면 바로 결혼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 남자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잖아요. 게다가 그 남자 집이 하노버라는데, 거기서 뭘 하는지도 나는 몰랐어요. 그냥 겁부터 났어요. 또다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지에 가서 살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관계를 정리했지요.“
레나테는 자기가 낙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할머니 말고는 아무한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 남편도 그 얘기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털어놨다가는 얼마나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겠어요.”
그러나 레나테는 곧 또 한 차례 비슷한 이를 겪어야 했다.
“한 반년쯤 지났을까요. 나는 똑같은 잘못을 또 한 차례 저질렀어요. 생각해 보면 나는 어쩜 그렇게 팔푼이 짓만 하고 다녔는지 모르겠어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면 아마 그토록 멍청한 짓을 반복하진 않았을 거예요. 내 신세를 탓하는 건 아녜요. 시행착오를 통해 많이 배웠으니까요. 덕분에 나는 우리 애들과 모든 예길 나눌 수 있어요. 어떤 지독한 상황이 벌어져도 나는 애들을 몰아세우지 않아요. 어떤 예기든 솔직하게 나눌 수 있어야죠. 물론 남편은 아니지요. 남편하고는 그렇게 허심탄회한 대화를 기대할 수 없지요.
그러니까 똑같은 수렁에 또 한 차례 빠진 거였어요. 첫 번째 남자하고 헤어진 후에 새로 만난 남자가 제 첫 남편이 되었어요. 지금 남편은 두 번째예요.
열여덟 살이었어요.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바로 또 임신이 되더라구요. 입덧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다시 의사를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연달아 낙태수술을 하면 안된다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레나테는 신랑과 함께 시부모님의 누추한 집에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시청의 청소과에서 일하는 레나테의 첫 남편한테 시어머니는 심각한 집착 증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결혼 당일, 레나테의 아버지가 달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판결이 났고, 이 사실을 시어미니가 알게 되었다.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모든 비난은 레나테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일 년 후 둘째가 또 태어났다. 이번에도 원해서 생긴 건 물론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피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의사도 셋째를 낳은 후에야 처음으로 피임에 대한 얘기를 알려주었다.
첫 번째 결혼에 대한 레나테 자신의 촌평 :
“저는 마냥 철부지 소녀였어요. 현실 감각이 전혀 없이, 아름답고 달콤한 사랑만 꿈꾸었어요. 남편이 교대 근무를 했기 때문에 새벽에 일을 나가 점심때면 돌아오는데, 잠시 뒹굴다가는 금세 집을 나가요. 술집에 가서 늦도록 소일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곤 했어요. 매일 그렇게 했고, 저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조금 속이 상하더라구요. 남편 얼굴 보는 때가 거의 없으니까요. 함께 누워도 술에 취해 그대로 곯아떨어지거나 간혹 짐승처럼 달려들어 씩씩거리는 게 전부였어요. 사랑이 뭔지... 그런 건 새까맣게 잊어버렸죠.”
이런 식으로 첫 남편과 사는 동안 레나테는 단 한 번이라도 오르가즘을 경험했을까?
“아뇨. 남자하고는 한 번도요. 첫 번째 오르가즘은 열네 살 때였는데, 여자친구랑 함께였어요. 남자애들하고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가슴이 조여서 편안하게 자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글쎄, 어떻게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한 일 년 정도 그렇게 지냈어요. 남들 없는 데 가서 키스도 하고 서로 애무하는 게 퍽 좋았어요. 근데 그건 사랑 어쩌구와는 정말로 아무 상관도 없었어요.
그 무렵이 아마 아버지한테 그런 일 당하던 끝물이었을 거예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치를 떨던 시절이었죠.“
이후 레나테는 여자친구와는 한 번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 열여섯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 잠시 동안 단짝 친구가 하나 있긴 했는데, 얼마 후 둘 다 남자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둘의 관계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이가 둘 딸린 열아홉 살짜리 엄마가 되자 그녀의 남편은 점점 외박하는 일이 잦아지고 술에 쩐 채 집에 들어와 툭하면 주먹질이었다. 그래서 곧 이혼수속을 시작했는데, 벌써 셋째가 들어서 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4월에 이혼을 하고 8월에 몸을 풀어 세 아이의 염마가 됐다. 레나테는 사회복지 기금으로 생활을 했다. 몇 푼이라도 더 벌어볼까 싶어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신문 배달도 했는데, 결국 들통이 나서 몰래 올린 수입만큼 도로 반환을 하고 말았다.
셋째는 사내아이였다. 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첫 남편은 이따금씩 레나테를 찾아 왔는데, 남이 되어 다시 만나니 옛날보다 한결 나았다. 애들 아빠는 예전보다 태도가 다소곳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마마보이를 못 벗어난 상태여서 재결합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아직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헤어진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고 이따금 호된 꾸지람을 듣는 눈치였다.
이 무렵 레나테는 지금 함께 사는 남편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여자를 잘 챙겨주는 바람에” 레나테는 이 남자에게 홀딱 넘어갔다.
“애들을 대리고 어찌나 잘 노는지 감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한테 너무나 잘하는 걸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성적인 요구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옆에 있으면서 소리 없이 모든 걸 돌봐 주는 거예요.
처음엔 너무 좋았지요. 성적으로도 제가 처음으로 어떤 느낌을 갖게 해준 남자였어요. 처음엔 무척 수줍어했거든요.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함께 살았지요. 그 사람은 자기 수입 그대로 유지하고, 나는 애들과 내 몫으로 사회보장 기금 받으면서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벌써 이웃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어는 날은 사회보장국에서도 그러는 거예요. 당장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보조비를 끊어 버리겠다고요. 꼭 십 년 전, 바로 제 생일날 그 일을 당했어요. 정말로 보조비를 한 푼도 안 주더라니까요. 그래서 부fi부랴 열흘 안에 혼인신고를 하고 말았죠.“
당시까지 이 두 번째 남편은 그를 키워준 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혼인신고를 하면 곧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그녀는 미처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남자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했는데, 그렇다고 나온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온갖 불행한 일들이 끊임없이 꾀를 물었다. 살던 집에 불이 나지를 않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해서 간신히 일자리를 구했더니 남편은 얘기도 없이 일을 그만두고 빈둥거렸다. 이 남자와 결혼한 이후 레나테는 결국 일자리만 있으면 당장 달려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찬밥 더운밥 가릴 것 없이 식당에도 나가고 점원노릇도 했지만 주로 새벽에 나가는 청소 일을 많이 했다. 애들이 아직 잠자리에 있을 때 나가서 하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레나테는 둘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넷째와 다섯째 아이를 낳았다. 두 아이는 모두 원해서 생긴 애들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새로운 비극이 시작되었다. 넷째도 사내였는데 두 살이 되자 병치레를 심하게 했다. 살던 집에 불이 나서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상태로 이사한터라 급한 대로 매트리스 몇 개 늘어놓은 살림이었다. 아이가 맹장염이었는데 의사는 편도선 치료만 해서, 몇 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해도 병세는 계속 악화된 채 아이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 무렵 애들 아빠는 오전에만 잠시 일하러 가고 종일 집에서 있었는데도 막상 아이가 아픈 책임은 몽땅 엄마 탓이었다.
“엄마가 된 주제에 아이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고 얼마나 성질을 부리는지. 모두 다 내 탓이라는 거예요. 막상 집안에 죽치고 있는 것 자기였는데,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밖에 나가 일했거든요. 매일 아침 일곱 시부터 다섯 시간씩 일하고 집에 와서 밀린 일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전부 내 책임이래요.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의사가 오진을 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나는 레나테에게 남편이 집에 있을 때 살림은 어느 정도 돕느냐고 물어 보았다.
“잘 해요. 음식도 잘 해 먹어요. 이것저것 알아서 하는 건 몰론 아니죠. 빨래는 전혀 안 해요. 할 줄도 모르고요. 그건 엉망이죠. 남자야 다 그렇죠. 집에서 힘쓰는 일은 남편 몫이 아니잖아요. 집안 살림은 어차피 내 일이죠. 집안 살림이야 내가 해야지 남편한테 뭘 맡기겠어요.
나는 아무리 밖으로 일하러 다녀도 남편한테 소홀해 본 적은 절대 없어요. 남편 말대로 우리 애가 다섯인데, 애들은 엄마가 있어야죠. 남자야 집안일을 돕는다 해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요. 그리고 내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어요. 그냥 둬라, 내가 할 테니까 내버려둬라, 늘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점점 만사가 귀찮아져요. 새벽부터 청소하러 가고 낮에 집에 와서 밀린 일 좀 하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말 몰라요. 그게 지겨워요. 나 자신이 비참하고요.
저녁 시간에 잠깐씩 정육점에 가서 청소도 하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에는 점원 하나가 몸이 아파서 다음날 못 나오겠다고, 대신 일할 수 있겠냐고 주인이 묻더라구요. 그러겠다고 대답했죠. 내가 어디 하루 이틀 그런 장사 해봤나요. 그런데 글쎄 다른 점원들끼리 수근대는 거예요. 청소아줌마한테 어떻게 점원 일을 맡기냐고요. 아, 속으로 얼마나 화가 나던지! 아니, 저것들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청소하는 사람은 모두 바본 줄 아나. 그래서 다음날 따졌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당신네는 참 좋겠다. 직업 교육도 다 끝냈고, 아이도 하나밖에 없고, 그래서 편안한 일자리 꿰차고 있으니 청소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참 좋겠다고 해줬어요.
그래요. 남편이 있으니까 늘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요. 누구한테나 그런 복이 있는 게 아닌데도 그러게 돼요. 내 복이야 그저 닥치는 대로 나가 일하는 복, 쓸데없는 소리 내뱉지 않게 입 꼭 다물고 있으라는 복, 그런 건데... 그러면 또 어떠나 싶더니 요즘은 자꾸 딴 생각이 들곤 해요.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불쑥 들곤 해요. 하고 싶은 일은 참 많은데, 남편은 무조건 못하게 해요. 애들 학교 학부형회에 가 봤더니 사람들이 토론을 하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배울 게 아주 많더라고요. 하지만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다음날 일하러 가기가 힘들고 또 남편이 언짢아 하니까 그 스트레스가 싫어서 관두곤 해요. 남편은 아무튼 내가 밖에 나가는 꼴을 못 봐요. 돈벌러 가는 일 빼고는 다 싫은가 봐요. 욕지거리를 해도 내가 못 들은 척 하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거든요. 며칠 전에는 글쎄 학부형회에서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모임이 취소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요. 그럴 리가 없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애들이나 잘 보라고 난 다녀온다 했더니 글쎄. 자기가 가겠대요. 그리고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술집으로 가는 거예요. 한 달에 두 번 있는 학부형회에 좀 가겠다는데, 그게 싫어서 그렇게 해요.
한번은 학부형회가 끝나고 회식으로 이어졌어요. 토론이 길어져서 밤 두 시나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지요. 그런데 안에서 현관문을 잠가 버렸어요. 아침 5시까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죠. 이웃 사람들이 얼마나 수근댔을지, 생각 좀 해보세요. 여기 다닥다닥 붙어사는 이웃끼리 얼마나 남의 말하기들을 좋아하는데요. 앞집 사는 여편네는 서방한테 매일같이 두들겨 맞다가 외국인 남자랑 눈이 맞아 도망쳤는데, 며칠 전에 돌아왔대요. 남편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애들 볼 사람이 없었다나 봐요. 집에만 처박혀 있어도 소문이 어찌나 잽싸게 도는지. 정말 끔찍할 지경이죠. 엘리베이터에 휘갈겨 쓴 낙서들 보았잖아요. 어느 집 누구가 어디서 작부짓을 했다. 입소문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그런데 글쎄, 다음날 아침 이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나더러 작부라고 욕을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다짜고짜 주먹질이예요.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어요. 내가 사람들 만나고 다니면 자기보다 더 똑똑해질까 봐 겁이 나는지. 그게 무슨 콤플렉스 같은 건가요? 아니면 정말 내가 딴 남자라도 사귈 거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두 가지가 다인 건지... 때로는 그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꼼짝 않고 집에 있기로 한다니까요. 그 남자가 또 무슨 소동을 벌일지 모르니까.
잠자리요? 그게 즐거울 리 있나요. 옛날에는 하루에도 두 번씩 함께 자고 그랬지만, 요즘은 이 주일에 한 번이나 할까. 제가 그냥 싫어요. 너무 간섭이 심하고 사사건건 감시 받는 느낌이라.
첫 남편 때는 그래도 하자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젠 그렇게 안해요. 미안해도 할 수 없죠. 진짜로 아픈 걸 어떡해요. 아무 느낌도 없는 건 벌써 옛날 얘기고요. 아마 제 몸이 원래 너무 비좁은 모양이에요. 얼마 전에는 몇 주 동안 남편이 집을 비웠어요. 일거리가 생겨 다른 도시에 갔다 왔거든요. 덕분에 여기서 풀타임으로 일을 했어요. 저는 점원 일이 맞는 것 같아요.“
아니, 남편이 집에 있을 때도 반일제로 일을 하는데, 집안일은 어떡하고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남편이 없으면 집안일에 신경을 안 써도 되요. 틈틈이 시간이 날 때 해치워도 상관없지요. 애들이 얼마나 착하다고요. 아이들은 으레 집안일을 도울 생각을 해요. 지금은 괜찮은 편이죠. 집안이 말끔하잖아요. 다른 때는 더 엉망진창이예요. 남편이 치운다고 해야, 구석에다 밀어 놓는 식이고, 결국 내 손으로 다시 치워야 해요. 저녁때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마는데, 그래도 남편이 원하면 또 그 옆에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애들하고만 있으면 내가 좋은 대로 일을 나눠 할 수 있잖아요.”
레나테는 요 몇 달 간 과로에 못 이겨 몇 차례나 꼬꾸라졌다. 의사는 그녀에게 일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라며 수면제를 주기도 했다. 청소년보호국의 상담원은 몇 년 전부터 그녀에게 이혼을 권하고 있다. 이혼을 해도 경제 형편은 더 나빠질 게 없다. 그녀의 남편은 한 달에 800마르크를 벌고, 레나테는 청소부로 500마르크, 이웃집 아이들 돌봐주는 값으로 300마르크를 더 벋는다. 그러나 그녀는 변화를 위해 뭔가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남편에게 우선 형식적 이혼만 하자고 제안하였다. 남편이 없다는 증거만 제출하면 사회보장 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길길이 뛰면서 그 따위 얘기 한 번만 더 꺼내면 당장 끝장이라고 소리 질렀다.
남편과 아예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또 막막하였다. 혼자서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덧붙였다.
“우리 사이가 아직은... 그 정도로 못쓰게 된 건 아니거든요.”
점심때쯤 남편이 귀가하였다. 아침에도 잠깐 인사를 나눈 터라서 그는 합석을 하고 우리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오전에 이야기를 털어 놓느라 잊고 살았던 일들이 기억나서 그랬는지 레나테는 아무래도 좀 격앙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속의 갈등을 남편 앞에서 감추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 얘기를 전부 들어준 내가 함께 있다는 게 그녀를 더욱 부추긴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녀 : 난 정말, 다시는 결혼 같은 거 안 할 거야. 정말이지 여자한테 결혼이란 건 백지수표를 남발하는 일이라니까. 결혼은 남자만 득보는 장사라고요. 결혼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안 그런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여자들은 꼼짝달싹 못하게 붙들리는 건데. 남편들은 그러지. 내가 이 집의 주인이다. 내가 돈벌어오는 사람이니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아우, 난 절대로 다시는 그런 계약 안 할 거야. 앞으로 20년 동안은 절대로 그런 거 안 할 거라구.
그녀의 앙칼진 주장에 남편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남편 : 아니, 그럼 나랑 이혼만 하면 네 처지가 달라진단 얘기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냐. 넌 맨날,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 들잖아. 그래, 네 소원대로 사라져 줄게. 그럼 더 이상, 나 좀 나가게 해 달라고 보챌 남편도 없어질 테니 참 좋겠구나. 좋아, 당장 헤어지자구.
레나테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눈짓을 했다. 남편이 먼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악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녀 : 그래요. 나도 제발 잔소리만 늘어놓는 사람한테서 좀 놓여나고 싶어, 여편네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쏘다니려 그래. 나도 그런 소리 좀 안 듣고 살았으면 좋겠어. 내 발 갖고서 내가 돌아다니는데, 왜 내 자유를 빼앗냔 말야.
남편 : 아니, 넌 나랑 사는 게 무슨 감방살이라도 된단 얘기냐?
그녀 : 그렇지 않으면?!
남편 : 좋아, 그럼 가고 싶은 대로 가 봐. 나도 이젠 지쳤으니까.
그녀 : 당신은 왜 맨날 내가 딴 남자하고 달아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
남편 : 평소에 행동이 어땠으면 그러겠어.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 : 그래. 도대체 부부간에 이렇게 믿음이 없으니... 어떻게 함께 살겠어. 왜 그렇게 나를 못 믿는지 그 이유도 알 것 같다구. 내가 점점 뭐든지 혼자서 더 잘 하거든. 옛날엔 안 그랬지.
남편 : 그래, 네가 변한 건 아는구나. 옛날하고 얼마나 달라진 줄은 아니?
그녀 : 그러니까 결혼도 기간이 있어야 해. 5년이면 5년, 10년이면 10년. 그런 다음 형편에 맞게 연장을 해야 한다구, 무조건 평생을 묶어두는 건 정말 미친 짓이야.
나는 그에게 물어 보았다. 저녁때, 누구하고 함께 술 마시러 가는지, 친구나 동료 중에 혹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남편 : 그럼요. 일 끝나고 함께들 몰려가지요. 왜 그런 걸 묻는지 다 알아요. 우리 집사람은 나처럼 함께 어울릴 친구도 없단 얘기죠? 그래요. 하지만 그건 저 사람 탓이예요. 좋은 친구들이 있으면 여자들도 함께 어울려 다닐 수 있죠. 나는 절대로 반대하지 않아요.
그녀가 발끈하며 대들었다.
그녀 : 아니, 어떤 여자들이 그 시간에 노닥거릴 여유가 있어. 정육점에서 여섯 시에 땡 하고 일 끝나 봐. 여자들이야 황급히 집에 가느라고 정신이 없지. 애들하고 남편이 기다리는데, 집에 가서 저녁 식사 준비해야지. 어딜 함께 갈 수가 있어. 그리고 말이 났으니 말인데, 언제 당신이 나더러 나가 다녀도 좋다 했어요. 언제는 학부형회가 늦게 끝났다구 문도 안 열어주고...
남편은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녀 : 함께 갔으면 좀 좋아! 그날 오후 내내 집에서 뒹굴다가 술 먹으러 나갔잖아. 여자는 절대 안 된다면서, 내가 그날 새벽 두 시에 들어왔는데, 세상에 당신이 어떻게 했어! 따귀를 올려붙이고, 나한테 창녀라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자기는 툭하면 외박이면서 ... 도대체 그런 어기가 어디 있어. 나는 여자니까 안 되고, 자기는 남자니까 상관없고.
남편 : 남자들이야 술 먹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기잖아. 친구가 인사불성인데 그럼 어떡해...
그녀 :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안 되는 거지. 내가 그러면 창녀인 거지.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그녀 : 그래. 모든 여자가 사실 남편한테는 창녀나 다름이 없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내가 물었다.
그녀 : 언제라도 대기 상태인 셈이잖아요. 따지고 보면 사실 그래요. 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남편한테 고용이 된 셈이지요. 우리 남편처럼 화통하고 인심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별 수 없지요. 이 남자는 워낙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니까... 딱 몇 가지만 빼고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요.
남편 : 집사람 얘기가 틀린 건 물론 아네요. 하지만 나로서도 내 결점을 고치느라 무던히 애를 쓴다구요. 그래, 피차가 불행한 거야. 다 자기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딴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구.
그녀 집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풀어 쓴 원고를 마무리한 다음 나는 레나테에게 먼저 보냈다. 그녀는 원고를 잘 읽었다고 전화했는데, 목소리에 힘이 쭉 빠져있었다.
“우리 남편은 아직도 안 돌아왔어요...”
무슨 소리냐고 내가 물었다.
“아네요. 괜찮아요. 다 잘 된 일이예요.‘
내가 다녀온 지 며칠 후에 레나테는 또 쓰러져서 자리에 누웠다고 했다. 요 몇 년 새 툭하면 겪는 일이라며, 별일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내가 너무 망가져서 그럴 거예요. 벌써 14년째,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며칠째 밤새 한숨도 눈을 못 붙이고... 그러니 머릿속이 지끈댈 수밖에요.‘
레나테는 며칠째 자리에 누워 있다가, 오늘에야 병원에 가서 약을 타왔다고 했다.

레나테의 경우는 전형적인 극빈층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중산층 여성’의 경우에 비해 그 착취와 억압의 상황이 더욱 지독하고 노골적이다.
아버지부터 벌써 가사 및 농사일분 아니라 잠자리에서까지 딸을 착취하지만, 정작 그 일로 마음이 괴로운 건 가해자인 아버지 쪽이 아니라 피해자인 딸 쪽이었다. 그런데도 세상은 단정치 못하다고 딸을 단죄하며 그녀를 창녀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럼 한번, 경우를 바꿔 생각해 보자. 여러 해 동안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추행했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아마도 이 경우 아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장에 그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가둘 것이고, 아무리 회개를 해도 평생토록 그 죄를 씻어내지 못할 것이다.
레나테가 겪고 있는 성문제는 정도가 심해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뿐, 힐데가르트의 경우와 그 성격은 다르지 않다. 그녀도 처음으로 잠자리를 한 남자에 대해, 자기 ‘인생을 멋지게 바꿔 줄’ 남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임신 때문에 결혼을 했고, 현재 남편으로부터는 너무 심하게 간섭을 받고 사사건건 감시 받는 느낌 때문에 잠자리가 싫다고 했다.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은 몸을 파는 창녀의 신세와 같다는 것이다.
꽉 막힌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달콤한 사랑의 신화를 꿈꾸었다. 공장여공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그것밖에 없어서였는지 모르겠다. 다른 선택이 없으니까.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을 포함해서 성에 대한 연구결과의 자료를 살펴보면, 여자들은 순식간에 착실한 여자 노릇에 자기를 끼어 맞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여자들은 다섯 명에 한 명 꼴로 동성애 경험이 있으며, 셋 중 한 명은 그런 욕망을 의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은 전혀 내색 없이 ‘정상적인’ 관계로 스스로를 조정한다. 레나테의 경우, 사춘기 시절 일 년 가까이 여자친구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만족을 얻었다고 말하지만, 곧 이어 그건 ‘사랑 어쩌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고 굳이 변명을 한다. 엄격히 금지된 사항이니까. 사랑이란 오직 여자와 남자 사시에서만 통용이 되는거라고 세상의 통념이 끊임없이 강조하므로, 동성끼리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꼬리를 내려 버린다.
레나테 역시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자와 마찬가지로, 수줍음을 탔던 남자한테서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권력을 휘두르는 전형적인 남자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여자, 그런 역할을 맡을 경우는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남녀의 전통적 관계에는 남자의 우월성과 여자의 열등성이 전제되기 마련이다. 이 상황에서 여자들은 몸과 마음이 닫혀 버린다. 이 책의 사례들에서는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차단되고 쇳덩어리처럼 불신이 굳어진다. 레나테는 나에게도 서슴없이 하는 얘기를 자기 남편한테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털어놨다가는 그가 가지 권력을 휘두르며 두고두고 괴롭힐 게 뻔하므로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점점 더 함께 할 얘기가 없어진다.
레나테 부부의 경우 더 특이한 점은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의 돈벌이가 신통치 않기로는 누가 더 낫달 것도 없는 형편인데 남편은 여전히 자기가 ‘식구를 먹여 살리는 남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집에서 아내는 최소한 남편만큼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아울러 가사를 도맡고 있으니 일은 두 배 이상 하는 셈이다. 그런데 남편은 여전히 가족의 부양자 행세를 하며 그 권한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레나테로서는 자기도 늘 함께 돈을 벌었으므로 그만큼 떳떳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적어도 남편한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 그녀의 힘은 바로 거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보수적이고 정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레나테도 그렇고 다른 경우도 따지고 보면 여자들은 점점 더 사회의식이 높아지고 정치적으로도 남편들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 확실하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못하는 이유는 가사와 육아에 묶여 시간이 없고 늘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남편과의 관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내가 집안일이 아닌 일에 관심을 가고 밖으로 나가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 남편이 많은 것 같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언제나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상 구경을 하고 스스로의 관심거리를 갖다보면 여자들은 독립심이 강해지고 그만큼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든다.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 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남편에게 의존하는 데 익숙해진다. 이와 더불어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남편들의 폭력에 의해서 사회참여를 제지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 ‘아주 작은 차이’ 중에서, 알리스 슈바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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