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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고해지는 조합주의, 위축되는 현장의 자발성

강고해지는 조합주의, 위축되는 현장의 자발성


노동자도시 울산은 해마다 크고 작은 투쟁들이 쉼 없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도 역시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의 파업투쟁, 금속노조 대덕사 지회의 고용보장 투쟁,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철폐투쟁 등 굵직굵직한 투쟁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투쟁의 연속 속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하는 변화의 흐름이 있다.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면서 투쟁의 폭이 넓어지는 동시에, 노동조합 중심의 투쟁으로 인해 현장의 자발성이 사그러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현재 매우 중요한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후 계급적 노동운동의 재활성화를 위해서도 시급하게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투쟁주체나 투쟁양상에서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는 2001년 화섬3사노조의 파업투쟁과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투쟁을 중심으로 울산지역에서의 투쟁을 비교해본다.

새로운 주체의 확장

울산은 전통적으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동구와 북구지역의 금속사업장들의 투쟁이 지역투쟁을 이끌어왔다. 그런 속에서 현대계열사와 부품사 등으로 투쟁이 확산되어 왔던 것이 90년대까지의 투쟁양상이다. 물론 남구지역의 화섬사업징이나 금속사업장들의 투쟁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핵심투쟁으로 떠오른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효성노조 투쟁을 시발로 한 화섬3사의 파업투쟁은 남구지역의 화섬사업장들이 지역투쟁에서 명확한 투쟁의 주체로 떠오른 투쟁이었고, 이 투쟁은 급속히 확산되어 전국적 핵심쟁점이 되었다. 2005년 전국적 투쟁전선의 중심에 있었던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투쟁 역시 남구지역의 건설업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주체의 확장이라는 성격을 보여준다.
또 2001년 효성투쟁이 비정규직 문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과 울산지역 최초의 비정규직투쟁인 INP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의 투쟁을 시발로 해서 울산지역에서의 비정규직 투쟁의 시작이었다. 이후 2002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위경희 동지의 투쟁과 SK인사이드코리아 노동자들의 투쟁, 2003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결성과 현대미포조선 용인기업투쟁, 2004년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 투쟁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2005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남선 동지의 분신투쟁과 건설플랜트 노조의 투쟁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 또한 새로운 주체의 확장에서 주요하게 보아야 할 점이다.
2001년은 울산지역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어 나오는 초기단계라면, 2005년은 새롭게 형성된 주체들이 조직력을 갖추어 국면을 주도하는 상황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주체가 투쟁의 중심에 떠오르는 것에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모든 업종의 노동자들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서 자발적 대중투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울산지역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대공장 정규직노조 중심의 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한다.

지역연대투쟁의 활성화

2001년 효성투쟁 초기에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간부들이 결합하는 수준이었지만, 박현정 위원장의 구속과 조합원 총회국면으로 이어지면서 지역에서 적극적인 연대투쟁이 이어졌다. 특히 총파업을 선언하는 5월 25일에는 지역의 많은 활동가들이 밤새 자리를 지키면서 새벽에는 용역깡패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고, 경찰병력이 투입되는 6월 5일에는 전날부터 밤새 연대투쟁을 벌인 대오와 함께 새벽같이 야음3거리로 달려간 대오가 합세하면서 격렬한 가두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집회 속에서 격렬한 가두투쟁이 계속되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연행되거나 구속되기도 하였다.
2005년 건설플랜트 투쟁은 초기 연대투쟁이 제대로 이우러지지 못한 채 건설플랜트노조 자체의 힘으로 파업투쟁 전선을 지켜내다가 경찰들의 폭력 등으로 사태가 악화되면서 적극적인 연대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차원의 연대투쟁 지침에 의해 다양한 투쟁들이 배치되어 결합하였고, 타 지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위력적인 울산결집투쟁은 투쟁의 물리력을 배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민주노총의 연대투쟁지침은 외관상으로만 보면 2001년보다 더욱 발전했다. 2001년에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운영위에서 ‘공권력이 투입하면 파업 일정이 정해져 있는 사업장은 즉각 파업에 돌입하고, 나머지 사업장은 잔업거부 이상의 연대투쟁을 결의하고 지역집회에 결합한다’는 지침이 정해졌지만, 2005년 투쟁에서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대의원대회에서 지역연대총파업을 결정할 정도로 연대투쟁지침은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었다.
지역연대투쟁이 이렇게 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해당 투쟁주체들이 파업투쟁을 유지하면서 완강하게 버팀으로 투쟁전선이 점점 확대되어 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속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연대투쟁지침들이 결정되고 내려가면서 외형적 위력은 확대되었다.
이 점은 투쟁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지역차원의 연대투쟁전선의 활성화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이지만, 연대투쟁의 외형적 지침과 달리 현장의 자발적 참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주요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현장 자발성의 상실

2001년과 마찬가지로 2005년에도 민주노총 차원의 다양한 투쟁지침들은 수없이 내려왔고, 외형상으로는 2005년은 지역총파업을 결의할 정도로 연대투쟁의 수위가 매우 높았다.
2001년에는 투쟁이 지역을 넘어서 전국전선으로 확산되면서 전국총파업지침이 결정되기까지 했지만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총파업 철회로 무산되었고, 2005년에는 지역총파업을 조직하는 와중에 발생한 현대자동차 채용비리사건 등의 악재가 작용하면서 지역총파업 지침이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연대투쟁과정에서 현장의 자발성이 급속히 사라져 갔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1년 6월 5일 효성에 경찰병력이 투입되고 옥탑 농성자들이 연행되는 상황과 2005년 5월 18일 건설플랜트 농성장 철거와 정유탑 농성자들이 연행되는 상황에서의 연대투쟁 양상이다.
2001년 6월 5일 이전에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지침을 결정을 하고 다양한 연대투쟁들을 효성농성장을 중심으로 벌이고 있었다. 6월 4일 공권력 투입이 예상되자 저녁부터 지역대오들이 효성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밤을 새면서 연대투쟁을 벌였고, 8월 5일 새벽 경찰병력이 투입된 후에는 현장을 빠져나온 효성 조합원들과 새벽같이 달려온 울산지역 조합원들이 야음3거리에서부터 경찰병력과 맞서 격렬한 가두투쟁을 자발적으로 벌였다. 이어 이 투쟁은 공업탑로타리와 시청으로 이어지면서 계속되었고, 급기야 화염병을 투척하면서 경찰과 대치하는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런 자발적 투쟁이 가능했던 데에는 노동조합의 공식지침과 별도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현장조직들이 활발한 연대투쟁을 벌여왔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힘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이후 연대투쟁실천단을 구성하면서 현장조직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다.
그러나 2005년 5월 18일을 전후로 하여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지역총파업 지침이 있었고, 몇 차례의 격렬한 가두투쟁이 진행되는 등 투쟁양상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지만 정유탑 농성자 연행 이후 민주노총 지역본부로 집결한 대오는 건설플랜트 조합원들을 포함해서 200여 명이었다. 이후 투쟁지침으로 행해진 남부서 항의방문에서도 겨우 400여 명이 결합하여 항의방문을 하고는 해산하였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간부들을 제외한 현장활동가들의 자발적 참여는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현장조직들의 독자적 활동은 거의 없었다.

지역공동투쟁체의 실종

울산은 해마다 중요한 지역투쟁사안을 중심으로 현장조직, 노동단체, 정치조직, 노동조합 등이 공동으로 연대투쟁체를 만들어 활동해온 경험이 많다. 2000년 현대미포조선 해고자 김석진 동지의 복직투쟁과 결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공동투쟁본부, 2001년 화섬3사 투쟁과 결합하여 지역연대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했던 공동투쟁실천단, 2002년 발전노조 파업과 화섬3사 해고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던 공동투쟁실천연대 등이 대표적인 지역공투체이다.
이런 공투체들의 경우 2001년 실천단은 노동조합을 포괄하면서 노동조합과 함께 했지만, 대부분 공식적인 노동조합체계에 포괄되지 않는 현장조직이나 단체들이 공동투쟁을 벌이기 위해 조직되는 경우였다. 이런 연대투쟁체들은 노동조합차원의 공식적인 지침을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기본으로, 노동조합의 지침 없이도 자발적 홍보물 발행이나 출투와 집회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노동조합을 강제하는가 하면, 노동조합이 회피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투쟁으로 노동조합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렇게 노동조합 지침과 무관하게 아래로부터의 활발한 현장활동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동인은 현장조직들의 활동력이었다. 그러나 2002년 공투련 이후 현장조직 활동들이 정체되거나, 급속히 조합중심의 활동으로 한정되면서 지역공투체는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다. 2005년 투쟁과정에서도 이미 구성되어 있던 전노투 울산위원회가 지역공투체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현장조직들의 결합력이 미미해서 유의미한 활동을 벌여내지는 못했다.
이런 지역공투체운동과 별개로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엄호와 사회적 발언력을 강화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노동조합 차원의 활동을 지원하고 강화하는 것이었다. 결국, 민주노총의 지침을 아래로부터 실천하고 지역에서 조직하면서 때로는 노동조합을 견제하는 활동을 사라진 채 노동조합의 지침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엄호만이 있었을 뿐이다.

현장조직운동의 약화

현장 자발성의 상실과 지역공투체의 실종이라는 문제의 핵심에는 현장조직운동의 약화라는 문제가 있다.
울산에서 현장조직운동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노동조합의 성격이 바뀌고 금속연맹에서 제명됨으로서 현장조직운동이 급격히 위축되어 버렸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아직 나름대로의 활동을 벌이고는 있지만 점차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안에서의 활동으로 집중하고, 일상 현장활동보다는 대의원·대의원대표·임원 등 노동조합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활동으로 축소되면서 활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2001년의 경우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현장조직들은 자발적으로 지역의 여러 투쟁에 적극 결합하였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경우는 ‘현장조직연석회의’라는 틀을 통해 효성투쟁과 관련한 공동유인물과 플랭카드 등을 제작하여 현장에 부착하고, 실천단에 결합하는 것만이 아니라, 농성장에도 각 현장조직들이 독자적으로 결합하는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해냈다. 이런 현장조직의 활동이 있었기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도 INP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 투쟁, 정화환경노조 투쟁, 효문지역 부품사업장과 심지어는 언양에 있는 세동산업에 대한 지원투쟁 등 상급단체의 지침이 없이도 매우 적극적으로 지역연대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2005년 투쟁에서 현장조직들의 활동은 현장 내에서 배포하는 홍보물에 투쟁소식을 알리거나, 노동조합의 지침에 소속 간부들이 결합하는 수준으로 한정되었다. 과거처럼 노동조합 간부가 아니더라도 현장조직의 지침에 의해 자발적으로 투쟁에 참여하는 경우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현대중공업 활동가들은 금속연맹에서 제명된 이후 활동이 극히 위축된 상태에서 지역집회 참여마저도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현장조직 활동이 이렇게 약화되다보니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다른 연맹 소속 사업장에 대한 지원투쟁을 고사하고, 금속연맹 소속인 대덕사투쟁에 대해서도 자발적인 연대활동을 벌이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강고해지는 조합주의 질서의 극복을 위해

2001년 투쟁과 2005년 투쟁을 비교했을 때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강고해지는 조합주의적 질서와 현장 자발성의 상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되는 핵심적 기저에는 현장조직운동의 무력화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현장조직들은 이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의 한계와 함께 위기에 처해있다. 그 위기를 적극적으로 돌파하지 못하면서 점점 조합주의적 질서로 수렴되고 있고, 그러면서 활동력이 축소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체들이 활발한 투쟁들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새롭게 형성되는 주체들은 해고자로 있거나, 노동조합의 형태로 묶여 있지만 아직 조합주의적 질서가 강고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불과 4년 만에 나타나고 있는 이런 심각한 변화의 양상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과거가 농축되어 있고 미래의 희망은 안고 있는 현재에서 나온다. 과거 활발한 현장활동과 지역공동투쟁의 경험들을 되살리고 새롭게 재정리하면서 우리의 자산을 되찾아야하고, 그와 함께 새롭게 형성되는 주체들을 조합주의적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새워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되찾아야 하는 자산이 많고, 새롭게 만나야 하는 주체들이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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