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마흔이 된다는 것

 

 

나는 올해 마흔이 됐다.

스물여덟 살에 울산에 내려가서 대공장 현장조직운동을 하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

정말로 쓴맛 단맛 다 봤다.

조합주의운동에 몸서리치며 대공장 활동을 정리한 후 지역에서 또 다른 활동을 했다.

역시 힘들고, 재미있고, 화가 나고, 가슴이 미어지는 과정이었다.

 

이런 저런 경험도 두루 하고, 실무능력도 어느 정도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들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만들어져 있고,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영역도 구축해 있는 나이가 되니 판이 보였다.

‘판이 보인다’는 것은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투쟁을 할 수 있는 지를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고비에서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마련이고 그때마다 내 머리는 뜨거워졌다.

이런 저런 조언을 하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내 조언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내 판단은 틀렸다는 것이 확인된다.

나름대로 진정성을 갖고, 좌익적 원칙 속에서, 충분한 현실적 고려가 있었지만...

나에게 절박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지기 전에 머리가 먼저 뜨거워지는 것

자유로운 상상이 익숙한 현실의 경험에 조금씩 갇혀 버리는 것

관계와 영역은 넓어지지만 사상적 깊이가 줄어드는 것

대중의 절박함보다 개인적 책임감이 더 중요해지는 것

‘판이 보인다’는 것은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

마흔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관료적 작풍이 서서히 몸에 스며드는 과정이었다.

 

내 진정성이 진실 되고, 내 열정이 식지 않기 위해 익숙해져 있는 것들과 멀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울산을 떠났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의 관계들과 기반을 무모하게 정리한 자유로움은 깊은 우울증과 불면증을 선물했다.

또 여러 가지 현실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이 버거운 자유로움과 씨름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듣고 있다.

 

조합주의와 의회주의에 찌든 울산에서 그를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을 할 때 다른 지역과 부문에서의 경험들에 대한 갈증이 정말 심했다.

지역운동, 변혁운동, 대안운동 등을 강조하는 것들은 많았지만 내 구체적인 갈증을 채워주는 것은 찾기 어려웠다.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하소연도 해봤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자유로운 나는 전국을 돌며 각 지역과 부문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는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그렇게 다양한 경험과 자산을 듣고 기록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대중을 신뢰한다는 것, 진정성을 갖고 투쟁한다는 것, 삶에 천착한다는 것, 낮은 곳에서 함께 한다는 것, 대중과 함께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 등 운동과 원칙이라는 것이 뭔지를 다시 배우고 있다.

노동과 장애와 학생운동이 거대한 공동투쟁 속에 승리를 만들었던 경험, 지역거점을 통해 공무원과 철거민과 이주노동자와 통일운동가들이 교류하며 연대투쟁을 벌였던 경험, 노동자가 현장 생산을 통제하는 경험 등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넘쳐났던 자신감이 와해공작 속에서 무너져 내렸던 경험, 폭력에 맞서 싸우면서 깨져나갔던 경험, 가공할 폭력이 깊은 정신적 상처로 남아 있는 경험 등 패배하는 투쟁의 얘기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줬다.

 

조합주의와 의회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흐름은 이미 우리의 경험 속에 풍부하게 녹아있었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함 역시 다양한 지역에서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역과 현장을 중심으로 현실극복의 시도들은 무수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경험은 치열한 만큼 현실적 답답함과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었지만, 그 얘기들이 쌓이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새로운 가능성을 넓혀내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것, 그것이 변혁운동일 것이다.

 

나이 서른이 됐을 때 내 삶의 중요한 목표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나이 마흔이 돼서 내 삶의 중요한 목표는 ‘열정이 식지 않는 것’으로 변했다.

나이 마흔에 나는 힘겹게 운동을 다시 배우고 있다.

 

 

@ 내가 만난 사람들의 얘기는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roadleft)에 올려져 있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