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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134회)


1


꼬마인형이 파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솔직히, 혼자서 방송을 진행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비어있는 자리에 남아 있는 온기가 마음을 건드립니다.


우연히 인연이 닿아서 저와 같이 방송도 진행하게됐는데
처음 이 방송을 시작할 때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걸 주저하는 저에게
꼬마인형은 달래고 채근하고 혼내고 눈물지으며 잡아 끌어줬습니다.
특유의 친화력과 밝은 에너지로 방송이 무거워 침몰하지 않도록 노력했지요.


그렇게 2년여의 세월동안 방송이 이어지면서
저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렸고
저는 밝은 기운과 행복의 에너지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앞으로 좀 더 나가보려는 욕심이 슬며시 생겼고
그 욕심에 발을 내딛다가 돌에 걸려 귀우뚱거렸더니 다시 움추려들었고
그런 제 모습에 꼬마인형은 예상외로 강하게 화를 내면서 반발했습니다.
예전에 같이 방송을 진행하다가 뛰쳐나갔을 때도 비슷했는데
그때는 현실의 냉정한 반응에 질려서 그랬던거라 지금과 반대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열 일곱 살의 나이로 감당하기 너무 힘겨웠던 일들은 겪으면 자살에 성공한 꼬마인형은
자살과 함께 그 고통이 끝난게 아니라 진행이 중단된 채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으로 더 고통스러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새로운 고통이 이어진 것이지요.
“귀신은 육체가 없기 때문에 욕구나 욕망이 없고, 그래서 기쁨이나 슬픔 같은 것도 잘 안느껴져”라며 밝게 얘기하곤 했었는데 말입니다.


가끔씩 꼬마인형이 이렇게 심하게 화를 내며 반발하는 건
냉혹한 현실의 모습이 마음 속의 상처를 건드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처럼 흘려보내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 가능한 덮어두려고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르나 봅니다.
세상에 대한 혐오, 사람들에 대한 불신,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과거는 선명한데 미래는 없는 불안감
이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뒤엉켜서...


이 방송의 원래 취지는
‘진창에서 발버둥치는 이들의 가느다란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물론 ‘발버둥치는 이들’에는 저와 꼬마인형도 포함이 됐지요.
그런데 저의 내면의 소리에만 귀기울이는 방송이 되어가고 있는겁니다.
같이 진행하는 꼬마인형의 소리에도 귀기울이지 못했던 거지요.


다시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2


잘 아는 어떤 5.18 피해자분이 있는데, 그분이 5.18때 고문당하고 감옥에서 10여년을 살았어요. 지금은 간신히 사회생활을 조금씩 하는 정도고요. 그분이 평소에 트위터를 한달에 한두개씩 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갑자기 하루에 30여개씩 매일 올리는 거예요. 그 내용이 다 친구들 만나서 밥 먹은 이야기, 술 마신 이야기, 노래방 간 이야기예요. 제가 그걸 보고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더니 그분이 뭐라고 하느냐면, 사람들이 가증스럽다는 거예요. 자기가 이십대때 5.18을 겪으며 고문당하고 10여년을 감옥에서 살면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어린 학생들이 몇 명 희생됐다니까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그걸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글을 올리면서 엇나가는 거죠. 트라우마가 치유가 되지 않으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피해자가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깊숙이 상처를 주게 되고, 그래서 또 주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게 되고, 그러다보면 더 비뚤어지고 약해지는 거죠.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정혜선, 진은영 지음, 창비)라는 책의 한 부분입니다.
세월호 피해자들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에 대해 얘기하는 책인데요
많은 부분을 배우고 공감하며 읽다가 유독 이 부분에서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거든요.


무덤담하게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속보를 보고 있었는데
한 어머니가 자식 이름을 부르며 어쩌할바를 몰라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 속에서 욱하고 짜증이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아픔은 나몰라라 하다가 자기 자식한테 문제가 생기니까 저렇게 난리지...” 이런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저는 공연을 보러갔습니다.


굳이 일베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이 차갑고 무지막지한 세상에서 그저 견디기만 하며 살아가는 분들
상처 입은 마음이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생긴 생체기에 눈을 감아버리는 분들
냉소와 무관심의 갑옷으로 빈틈없이 무장하며 날카롭게 살아가는 분들


그날의 그 감정이 다시 살아나면서 나를 돌아봤습니다.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행복을 공유하려 하고 있는 제 모습 뒤로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가 쓰라려 눈살을 찌프리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아무 말없이 제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봅니다.

 

3


평일 오후의 한가한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잘못 탔다며 운전기사에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할 때 타신 것 같은데 한참이 지나서야 그 얘기를 하는 것이었지요.
운전기사는 그 버스의 노선을 할머니께 얘기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운전기사에게 자신의 목적지에 간다고 해놓고 가지않느냐는 식으로 따졌습니다.
운전기사는 무덤덤하게 그런적 없다면서 가까운 곳에서 갈아탈 수 있는 버스편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의 목적지로 가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운전기사는 버스 요금을 되돌려주면서 환승 버스편과 시간까지 자세히 알려주더군요.
그리고도 조금더 억지를 부리던 할머니는 몇 정거장을 더 가서야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일부 승객이 할머니의 억지에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운전기사는 인상 한번 쓰지않고 차분하게 운전을 계속 했습니다.


시골지역을 운행하는 버스에서는 운전기사가 노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간혹 보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동작이 굼뜬 노인들은 운전기사의 눈치를 살피며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많이 불편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정반대의 상황을 지켜보면서는 살짝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분명히 짜증스러웠을 상황인데도 차분하게 할머니를 대하는 기사분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예전 같으면 짜증이 확 몰려왔을텐데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저의 모습에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Yanni의 ‘Enchan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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