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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사코의 <팔레스타인>

from 만화 2004/09/16 15:20



 내가 만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친구는 "또 만화책에 영혼을 팔았군!" 이라고 말한다. 영혼을 팔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데, 그러니까 시동거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예열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만화는 그 것이 꽤나 오래 걸린것 같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제목을 보고 짚어들었을때 이책에 팔레스타인 민중의 비참하고 분노스러운 상황, 생생한 분노와 저항을 은연중에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 사람의 이야기 시작은 예상밖이었기 때문이다. 존사코는 담담하다 못해 냉정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팔레스타인을 그려낸다. 

존사코는 객관성을 유지한다. 그 객관성이라는 것은 정치적 객관성이라기 보다는, 동정이나 연민을 가질법도 한데 가지지 않고 증오나 멸시라는 감정을 가질법도 한데 한사코 뿌리치고 있는 객관성이랄까?

그래서 그는 이야기의 시작을  미국의 유대인기업가가  팔레스타인인의 테러에 의해서 죽었을때 자기 이웃이 죽은것 처럼 흥분한 일을 꺼내보임으로서 풀어낸다. 또 자신이 팔레스타인에 처음가서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별것 아닌 관광을 시켜주고 돈을 요구하는 소년들을 만나고 굉장히 화가 났던 사실들을 이야기한다.


이런식으로 그는 팔레스타인은 어떤 곳인가? 과연 야만적이고 미개하고, 테러리즘이 만연한 그런곳인가? 이웃을 죽인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사람들의 땅인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직접 그 땅?보고 자기 자신의 판단을 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이 만화다. 작가의 결론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적나라한 사실들을 던져주듯이 마구 병렬해 놓고 판단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이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나는  아랍인, 이슬람교, 내전, 정착민,테러..같은 뉴스에서 들은 정도의 단어들만 떠올랐다. 사실 지도상에 어디에 위치한지도 몰랐고 말이다. 그리고 문제의 초점이 뭔지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도..그들이 일상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 인지도 그닥 생각해 본일은 없다.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고, 이라크에서 전쟁이 났다는 것 밖에는. 나에게 동기는 없었다.
그러므로 존사코의 이 만화를 만난것은 행운에 가까운것이다.

그에 의해서 나에게 보여진 팔레스타인은..

그가 양동이에 담긴 눈물에 또 한방울을 더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비극의 비극은  '지겹도록' 많았다. 거기에는 마치 거대한 도시만한 감옥을 세운 유대인들이 있었고, 14살짜리 소년에서 부터 감옥에 밥먹듯이 드나든 사람이 길에 널려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압력(고문) - 딱히 고문을 했는지 외형적으로는 모르지만 결국 심장마비로 죽을 정도의 끔찍한 - 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언제나 압력을 받고 있었다.

또한 히잡(팔레스타인 여성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 을 쓴 페미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페미니스트 가 있었고, 단합하고 있지 못했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어있기도 했다.
["우리는 국가적인 과제를 놓고 충돌하게 됩니다. 사회적 이슈를 놓고도 협력하지 못하죠. 우리는 단합된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녀 평등을 규정한 PLO의 헌법에 기대고 있지 않습니다. 이시점에서 여성문제를 일정하게 한정짓는 건 좋지 않아요"

그들은 인티파다(87년 봉기이후 저항을 칭하는말)의 혁명성으로 인해 사회변혁의 논의가 가속화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도 그것으로 여권이 확립되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P.154]

통금이 있고, 그들의 자식같은 올리브 나무(그들의 주요생계수단)는 베어지거나, 조상때 부터 기르던 나무들은 지금은 유대인이 기른다.
지상에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중의 하나인 난민촌...

그곳에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을 그렇게 선량하기만 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 반대도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것이 의외로 놀라웠던것 같다. 사코가 만난 팔레스타인의 엘리트들. 그것 역시 놀라웠다.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과거의 철학교수. 그의 방은 비가새긴하지만 추상주의, 인상주의 그림의 복사본들과 화초로 인테리어가 되어있고, 하지만 난방은 전혀 되지 않고 전기도 끊어진..상태였다. 이런것은 나에게 전혀 새로운 사실이었다고 해야 하나? 왜 나는 아랍인은 대학도 안다닐꺼고 철학 공부도 안할꺼라고 생각한걸까?

안사르라는 거대한 감옥이 만들어지고 엄청난 수의 팔레스타인들이 잡혀 들어왔을때, 그들은 자치질서를 조직해냈다고 했다. 그것은 어떤 직접적인 저항의 조직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단지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아먹고, 차위원을 만들어 차를 순서를 정해 나누어먹고, 교육활동등을 하는 것이었다.이러한 자율적인 질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혐오자로 만들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은 팔레스타인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다. 씻지도 못하고 숟가락도 없이 음식을 먹을수 밖에 없는 짐승같은 생황.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병사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저 혐오감만들기는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성공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민족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 거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역사를 독점하고 있는 1세계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근대이후 저들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배웠고, 그들의 철학을 철학일반으로 여겼으며, 그들의 문화에 우리를 적응시켰다.
우리것을 지키자라는 따위의 왠지 촌스러워지는 말을 하고 싶은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서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그것의 권력관계, 정치성을 가늠하고 자신의 중심을 바로 세울 필요는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서없이 느낌들을 나열했지만,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알고 판단하는 것 외에도 비서양(이 구분도 우습지만)에 위치하는 팔레스타인과 같이 우리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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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1일에 홈嶽訣熾?쓴글입니다.

molot[1993년 오늘(9.13)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 을 보고 생각이 나서 다시 가져왔습니다. 쓰면서도 결론을 잘 못맺어서 슬펐는데, 다시 읽어보니 끝이 영....그렇군요.

 

몇마디 문장으로 자신의 감동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금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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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6 15:20 2004/09/16 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