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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오늘(9.13)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

1993년 9월 13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클린턴이 지켜보는 가운데 PLO의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 라빈이 팔레스타인 자치 협정에 서명했다. 1994년 협정 당사자인 아라파트와 라빈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인 페레스는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그 협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자치는 3단계로 진행하기로 되었다. 1단계는 가자와 여리고, 2단계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이 철군하고 자치의회 선거, 마지막 단계로 자치정부의 최종 성격확정과 동예루살렘 문제, 해외 망명 팔레스타인 인사들의 귀환, 국경 확정과 이스라엘 정착촌 처리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몇 번의 논란과 충돌 끝에 1, 2단계는 실시에 성공했으나 3단계는 아직도 난망한 상황이다.

 

지금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은 베를린 장벽에 버금가는 장벽들로 둘러싸이고 있으며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947년 유엔은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워질 유태 국가와 아랍국가 양국에 소속될 것'을 제안한바 있고 당시 이스라엘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으나 팔레스타인이 거부한 결과 1차 아랍전쟁이 발발한 바 있다. 이후 1967년 이스라엘은 요르단이 통치하던 동예루살렘을 점령, 합병하고 80년엔 '하나로 온전히 통일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발표했다. 이후 점령지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해외 귀환 유태인들을 대거 이주 시켜 인적 물적으로 이스라엘화를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아니 거의 진행이 완료되었다. 팔레스타인 해방전사들 또한 예루살렘을 결코 양보할 수 없음을 천명하며 투쟁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클린턴의 외교적 배후 조종, 이스라엘 인 치고는 합리적인 캐릭터였던 라빈(뒤에 다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최초의 노동당 출신 수상 라빈은 95년 이스라엘 극우파에게 암살당한다), 이스라엘의 공세와 팔레스타인 내 하마스등의 압박을 양측으로부터 받은 아라파트의 돌파구 찾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은 이제 제대로 기억되고 있지도 못하고 별 의미도 없는 실정이다. 제한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물론 팔레스타인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부와 가자지구를 대표하는 합법자치정부이다.1996년에는 입법의회를 구성하고 아라파트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964년 422명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 만큼의 정통성과 지지를 얻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족평의회는 1964년 바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창설했고 팔레스타인 국민서약을 제정했으며 망명자들의 의회로 그 역할에 충실했었다. 1974년엔 아라파트의 유엔 연설에 이어 유엔 업저버 자격까지 획득했었다. 그 빛나는 활약과 의지에 비하면 현 자치정부는 너무도 미약해보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협정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수상이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고위 관료들이 그렇듯 이 사람도 군인 출신이다. 6일 전쟁당시에는 이스라엘 참모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주미대사로있던 67년에 이미 중동평화정책의 일환으로 아랍 점령지에서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주장하다가 이스라엘 내의 강경론자들(지금 수상 샤론이 대표적)로부터 맹공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노동부 장관을 거쳐 이스라엘 본토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수상자리에 올랐다. 이후 국방장관등을 지내다가 다시 수상자리에 올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그 로드맵을 시행했다. 그러던 중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에서의 중동평화회담 지지집회 연설후 극우 유대인청년의 저격을 받고 숨졌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의 탄압도 변한바 없다. 이라크에서 최근 벌어진 미국인들의 고문이나 관타나모 기지내에서의 포로에 대한 인권탄압은 사실 이스라엘 군/정보 당국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시행하던 것을 미국인에게 가르쳐준것에 불과하다. 가히 청출어람 청어람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현재 이스라엘 전역의 교도소에서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집단 단식투쟁을 하고있다고 한다. 요구 조건은 남자 형제에 대한 면회금지 철회, 사식의 반입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단식투쟁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는 반응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가자지구 정착촌의 학교에서 공부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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