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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오늘(9.16) 한국민주당 창당

1945년 9월 16일 자칭 '민족 진영'으로 구성된 한민당이 창당됐다.이승만 믿고 창당된 한민당은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이후 이승만에게 팽당하고 민주당으로 계승되었고 신민당, 평민당, 국민회의 등을 거쳐 오늘의 열린 우리당(민주당은 자신들이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에 이르고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민주당 세력과 개싸움을 벌이며 자신들이야 말로 정통 야당 '한민당-민주당'의 맥을 잇는다고 우기는 걸 보면 참 우습기 그지 없더라. '정통야당' 한민당이 어떤 당인가? 하긴 이승만 자유당이랑 티격 태격 하긴 했지만 그래서 정통야당인가? 대통령하고 사이 안좋다고 정통성 획득 한다면 김대중 정권이래 한국 최고의 정통성은 아마 김영삼에게로 돌아갈거다.

 

그렇다면 한민당은 과연 어떤 집단인지 이야기 해보자.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국회의원 최익승이 나온다. 제헌의원 최익승의 소속 정당이 바로 한민당이다. 해방 정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정통성을 갖고 헤게모니를 장악하며 친일파 척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주, 친일파들이 부랴부랴 '민족진영, 반공'을 내세우며 창당한 것이 바로 한민당인 것이다.

 

한민당의 주요 멤버들은 누가 있었을까? 전라북도 땅 절반이 자기 집안 소유였으며 일제 때 이미 경비행기를 타고 소작지를 둘러보았다는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삼양사, 경방의 사주이자 그의 아우인 김연수는 반민특위 조사 대상이었다.) 경상도 관찰사 출신 악질 지주로 악명을 떨치다가 독립군의 총에 맞아 죽은 친일파를 부친으로 두고 경북 최고의 친일 기업인을 형으로 둔 장택상(장택상은 해방직후 수도경찰청장 자리에 앉아 반민특위 해산, 사회주의 전력자 탄압, 백색테러의 든든한 후견인 노릇을 했다.) 그 외에 경무국장 조병옥등이 한민당의 주요멤버였다.

 

요런 작자들이 모여서 민족진영이랍시고 미군정과 이승만의 딸랑이 노릇을 하며 정부 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하였으니 참 당시 정국도 개판 오분전임에 틀림 없는 듯 하다. 친정체제 구축에 나선 이승만에게 팽당한 한민당은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그나마 이승만 정권의 치적으로 불리는 농지개혁을 늦추고 누더기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훈을 한 것도 바로 한민당인 것이다. 이 자들은 이승만 독재가 강고해지면서 은근슬쩍 정통야당의 가면을 쓰게 되고 일정 부분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내며 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꾸게 된다. 이 들은 3대 대선에서 조봉암의 진보당에 대해 빨간 딱지를 씌우고 협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조봉암이 간첩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고 진보당이 해산당할 때도 콧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방정국에서 온갖 불법적 테러를 자행한 조병옥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이승만과 맞서 민중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코미디인지 비극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419의 수혜를 혼자 받아 안은 민주당의 총리 장면 또한 일제에 협력했던 자로서 동성학교 교장을 지내며 징용에 한 몫을 했다. 장면 정권은 어떤 민주적 정책을 펼쳤을까? 바로 반공법, 데모금지법 제정이라네..게다가 516 쿠테타가 발생했을때는 수녀원으로 도망쳐서 콧배기도 보일 생각도 안 했고...

 

이런 정당의 후예들이 쿠테타 후예 한나라당 더러 '너네의 역사는 쿠테타가 어쩌고 저쩌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며 해산해야 마땅하다' 고 외치는걸 보면 얼굴 두께에도 급수가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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