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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글쓰기, 민중언론

'불멸의 이순신' 을 간만에 봤다. 이 드라마가 시작할 땐 막대한 제작비, 원균에 대한 재평가 등으로 이런 저런 주목을 받았다. 나  또한 원작으로 알려진 김훈, 김탁환의 두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는지라 관심이 꽤 가더라. 거개의 드라마들이 그렇듯 이순신의 청년 시절을 다루는 요즘,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덜 한 듯 하다. 오랜만에 본 이 드라마를 보니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안간힘이 느껴지더라. 재미는 없고 그 안간힘만 느껴지는지라 얼마나 안타깝던지^^

 

생각이 줄기를 뻗어 김훈에게 이르렀다. '화장' '현의 노래' 이후 이 사람은 뭐하고 있을라나? 뒤늦게 김훈의 이름이 값나감을 알아챈 이런 저런 출판 상인들이 그의 예전 글들을 이리저리 묶어 잡다하게 내놓고 있다. 깔끔한 장정과 화려한 사진으로 묶여져 나온 그 책들이 보기 훤칠 하긴 하지만 크기가 작은 활판으로 찍혀 나오던 그 글들에 대한 포장으론 너무 번질거린다. 

 

김 훈...보수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 적자생존주의자, 마쵸, 노땅 등등으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규정에 틀림은 없을게다. 하지만 세상을 온 몸으로 견뎌내는 자세,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 자기 글과 말에 대한 책임과 자신감...을 배우고 싶었고 지금도 꽤 그러하다. 한 때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속으로만 부러워하기도 했다. 인생 개판으로 살았던 부르주아지 발자크를 맑스가 상찬한 것에 빗댄다면 좀 어색하겠지만 보수주의자 김훈의 글들은 꽤 자주 이 세상의 핵심들을 날카롭게 찌른다.

 

보통 김훈은 치노바지에 라운드 니트 티 혹은 굵은 체크무늬 남방을 받쳐 입는다. 짧게 쳐올린 희끗한  옆 머리가 보이는 캡을 둘러쓰거나 아니면 손으로 머리를 움키고 있는 모습이 대중이다. 자전거로, 다리로, 연필로 온 몸으로 글을 쓰는 그의 몸은 글 만큼이나 단단해보인다. 예전 김훈이 한겨레에 의탁하고 있을 때 팔자에 없게 김훈의 팀장 노릇을 하던 권태호가 '김훈이 담배를 왼 손가락에 담배를 낀 채 오른 손에 연필을 들고 앉아 기사를 쓰던 단골 까페의 여주인이 반했' 노라 밝혔던가? 

 

이리 저리 꼽아보니 소설, 기행문, 시평(김훈은 시평 안 썼으면 좋겠다. 아마 앞으론 안쓰지 싶다. 늙은이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날렵한 문장으로 세상의  변화에 대한 질투를 드러내거나 황당한 여성관을 드러낼때면 참....그래도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같은 꼭지들은 빛난다. )은 거진 다 읽었지 싶다.

 

그의 기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몇가지 신문을 읽으면서 바이라인을 확인하며 읽은 글들은 얼마 안되지만 김훈의 기사들은 꼭꼭 읽었었다. 이런 스트레이트 기사가 있었다. 

 

18년만에 아들죽음 밝혀낸 아버지

 

"진실규명만 된다면 다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84년 군 복무 도중 숨진 아들 허원근씨의 사망 원인이 타살로 밝혀진 20일, 허씨의 아버지 허영춘(63)씨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기자회견 장소에 직접 참석했다. 18년에 걸친 힘든 진상규명 여정이 성과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전남 진도의 평범한 농부였던 허씨는 아들의 사망 이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 지회장을 맡는 등 생계를 팽개치고 진상규명에 매달렸다. 청와대, 헌병대 등 각계에 청원서를 수십번 넣었지만 결과는 그때마다 동일하게 자살로 결론이 났다. 허씨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배상보다는 솔직히 진상을 털어 놓을 것을 바라고 있다. 허씨는 규명위의 조사결과가 나온 뒤, 아들에게 맨 처음 총을 쐈던 하사관에게 편지를 보내 “다 용서할테니, 진실만 규명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허씨는 이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납골당에 보관했던 아들의 유해를 정식으로 매장하고 아들을 가슴에 묻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원고지로 따지면 두매 정도 될까? 단문들의 단단함, 그리고 쉼표의 적절한 사용. 요즘 들어 좀 신경을 쓰긴 하지만 한글 97 10포인트 기준으로 두줄을 넘어서기 일쑤이고 잡스런 관계사 안 넣으면 문장 연결이 안 되는 내 글들과는 정말 비교된다ㅠㅠ

 

보수주의자 노땅이 쓴 이런 취재파일도 있다. 함축성과 간접성의 매력을 느껴보시라.

 

철도 노조 위원장의 '눈물'


지난달 27일 오전 10시께, 파업 철도노조원들이 농성중인 건국대 운동장에 김재길 위원장(36·기관사)이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단체협약합의서 내용을 보고하고 직장복귀를 명령했다. 3조2교대는 관철되었지만 `민영화철회'는 합의서에 명시되지 않았다. 일부 노조원들은 `위원장 사퇴'와 `복귀불가'를 외치며 거칠게 항의했다.

김 위원장은 협상과정 중의 `넘을 수 없었던 벽'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거듭 직장복귀를 호소했다. 위원장과 노조원들은 끌어안고 울었다. 먼지 낀 뺨과 덥수룩한 수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의 눈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우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눈물처럼 보였다.

서울지부 노조원들이 위원장의 앞을 가로막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해산불가'를 주장했다. 위원장은 `미래의 승리'를 절규하며 거듭 직장복귀를 호소했다. 한 조합원이 나서서 “이제 감옥으로 가야 하는 위원장의 길을 열어주자”고 호소했다. 조합원들은 눈물을 닦으며 길을 열어주었다. 5천여 조합원들은 깃발을 앞세우고 대오를 지어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27일 오후 6시께 김 위원장은 경찰에 출두했다. 구속영장을 대기하고 있던 위원장은 “작은 것을 발판으로 큰 것을 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웃고 있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1일 김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국경일인 3·1절이었다

 

나도 취재 수첩이라는 이름으로 칼럼 두 번 써봤다. 기사 쓰기 전엔 항상 힘빼야지, 3자적 시선이 더 신뢰를 주는 법이야 하고 되뇌이지만...쓰다보면 감정 과잉과 감정이입이 어찌 그리 시너지 효과를 잘 일으키는지 나 원 참.

 

물론 종이 신문, 잡지의 글쓰기와 온라인 언론의 글쓰기는 분명히 다르다. 일단 물리적 제약에서 자유롭고 논조도 더 분명하다. 아무 의미없는 정론직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진 않다. 게다가  우리는 민중언론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언론에 대한 자임과 격문식 글쓰기는 그리 관계가 많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입장의 분명함과 각종 형용사들의 남발은 무관함도 잘 알고 있다. 기름기 없는 글들의 호소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예컨데 저들이 환호하는 조선일보 김대중의 칼럼들은 그야 말로 직선이다. 

 

내가 비린내 풀풀 풍기는 글들을 민중언론 이라는 이름으로 유포하면 그것은 죄다. 죄. 갈 길이 멀다. 까마득하기도 하고..  김훈 처럼 자전거는 못 타더라도  나다닐땐 많이 걷도록 애써야 겠다. 두 다리가 좀 더 단단해지면 글도 단단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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