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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겹눈으로 바라보기(외부 기고글)

노동자의 힘 기관지 이번 호에 실린 글입니다. 국정감사가 끝나기 일주전 주말이 마감이라 그 때 상황까지 보고 쓴 글인데 국감 전체에 대한 조망글로 봐도 별 무리는 없을 듯 하네요. 미뎌 참세상에도 정리 글 한 번 썼어야 됐는데 어, 어, 하다가 그냥 때 놓쳐버렸네--;; 맨날 이런단 말야 ㅠ.ㅠ

 

국정감사, 겹눈으로 바라보기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사실 그 동안의 국정감사라는 것이 그들만의 리그인데다가 공무원 불러다 놓고 삿대질 하며 고래고래 고함치다가 제 풀에 심드렁해지기 일쑤인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라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 번 국정감사도 마찬가지인 것이 고등학교 교과서가 친북이니 성매매금지법안 때문에 청춘 남성들이 성욕을 풀 기회를 잃어 버렸다는니 하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보수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환경노동위원회를 필두로 재정경제위원회, 교육위원회 등에서 주목할 만한 감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의회전술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깔아놓은 멍석을 본체만체 한다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국정감사를 활용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중이다. 예상 질의 내용을 뽑아 엄청난 양의 답변 자료 준비로 방어하는 관료들 보다 자신들의 싸움을 의회공간에 까지 확장시키려는 노동자들의 노력과 준비는 더욱 성실했다.


국정감사가 시작된 10월 4일 리베라, 풀무원, 성람, 효성 등 20여개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은 상경투쟁을 시작했다. 2박 3일의 상경투쟁을 마치고 10월 6일 해단식을 가졌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0월 7일 서울, 대전, 경인 노동청에 대한 국감을 앞둔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국감을 시작하기 한 참 전부터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집회가 있었다. 지난 10월 7일 환노위 국감장에는 성람재단 이사장, 리베라 호텔의 사주인 신안그룹 회장과 더불어 노조 위원장들이 증인으로 나란히 출석했다.


국정감사를 앞둔 장기투쟁 사업장들의 준비는 철저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우리의 비참한 상황을 굽어 살펴달라’ 는 식의 의원나리에 대한 읍소 전략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투쟁의 전술로서 의회공간을 적극 활용해 냈다는 점이다.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의 “국회는 깡패집단” “야마가 돌아” 발언으로 화제가 된 10월 7일 국감에서 박순석 회장을 몰아붙인 것은 단병호 의원이지만 박순석을 궁지에 몰게 만든 자료는 전부가 리베라 호텔 노조에서 준비해서 제공 한 것이었다. 박순석 회장이나 대전지방노동청장이 어떤 발뺌을 할지라도 노조가 준비한 자료(박순석 회장의 노조 불허 발언 녹취록, 기 합의된 사항을 손바닥 뒤집듯 한 증거자료)를 벗어날 수 는 없었다. 이는 경기지역이 대표적 장기투쟁 사업장인 성람재단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실태가 노동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직후 벌어진 10월 13일 국정감사도 마찬가지였다. 이 날 국정감사에서는 현대중공업에 대한 불법파견과 산업재해에 대한 문제들이 적극적으로 다뤄졌다. 울산지역 하청사업장 노조들의 꼼꼼히 취합한 자료 앞에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나 부산지방노동청장, 울산지방노동사무소장의 변명은 별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특히 노동부가 내놓은 비정규 개악안에 대한 투쟁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법규 아래서도 온갖 불법, 탈법적 파견과 노동탄압이 벌어지고 있음이 의회 공간 내에서 폭로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환경노동위원회 내에서는 심지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의원들 조차 현행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수긍하는 분위기였고 두고 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노동부의 원안이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일등 기업 삼성’ 도 도마 위에 올랐다. 16대 까지는 의회에서 삼성의 ‘삼’ 자는 물론이고 그보다 한 끝발 낮은 이건희의 ‘이’자도 국회 속기록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는 달랐다. 휴대폰을 이용한 불법적 위치추적 문제로 삼성 SDI임원을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단병호 의원의 제안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야합에 의해 무산되었을 때만해도 ‘역시 삼성은 삼성이다’라는 중평들이었지만 국정감사 첫날 삼성측이 총력을 다해 대비하고 있던 환경노동위가 아니라 재정경제위에서부터 삼성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삼성그룹 계열사 간 출자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에 대한 과세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이건희, 이재용 부자의 탈법적 증여와 상속 여부로 까지 확장됐다. 법제사법위 국정감사에서는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위헌이 아니냐는 추궁에 대해 “헌법이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 이라는 서울지검 지검장의 답변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국감을 통해 삼성 저격수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이다. 우원식 의원은 10월 5일 노동부 국감에서 삼성 SDI의 근로기준법 위반과 삼성 SDI 만의 특이한 근무시간 산정을 폭로해 최초로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노동부 차원의 특별근로감독을 이끌어냈다. 연이어 7일에는 삼성전자의 부당노동행위와 위장하도급을 문제를 제기해 경인지방노동청의 특별조사를 이끌어냈다. 물론 삼성의 노동탄압은 널리 알려진데다가 여러 경로를 통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삼성일반노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삼성 내부에 운동주체가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노동운동진영 내에서는 삼성 문제가 소홀히 다뤄진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시민단체나 인권단체 쪽이 삼성 문제에 대해 더 공을 들여온 느낌까지 든다. 물론 투쟁의 단초들이 삼성재벌과 그를 비호하는 공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필두로 삼성 그룹이나 이건희가 한국사회에서 신화화까지 되고 있는 현실이나 전경련이 아닌 삼경련으로 불리는 현실, 해외 순방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재벌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 현실에서 총자본의 상징인 삼성에 대한 공격은 매우 중요하다. 2세 경영을 넘어 3세 이재용에게로 원활한 상속을 위한 여론 정지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에 삼성이 온 힘을 쏟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실체 폭로를 통한 여론화 작업이 필수적일 것이고 의회는 중요한 경로임에 분명하다. 이 지점에 대한 운동진영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진보정당의 의회진출도 처음이고 국감도 처음이라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긴 하지만 지난 수개월간 의회 내에서 민주노동당이 정국 방향타에 대해 유의미한 역할을 했다고 보긴 힘들었다. 물론 그나마 국정감사는 당의 힘보다는 개별 의원실의 역량이 발휘되기가 용이한 장이긴 하다. 그러나 국감 자체의 한계(부산, 울산, 대구광역시와 경남 경북을 포괄하는 지방 노동청 감사에 할애된 시간이 세시간 반에 불과하다)와 그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민주노동당 10개 의원실의 역량 차이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또한 수많은 장기투쟁 사업장이나 불법파견을 비롯한 비정규 사업장들이 자신의 이름을 국회 속기록에라도 올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고 실질적 사주의 어이없는 망발로 모든 미디어에 오르내린 리베라 호텔 노조는 천운을 얻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또한 국정감사에서 지적되고 폭로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리도 만무하다. 국감장에서 공무원들은 ‘시정하겠습니다.’ ‘서면으로 답변하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 란 세 가지를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었다. 노동탄압이 폭로된 사업장의 업주들도 증인으로 출석해선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개선 하겠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이 세 가지 답변을 적절히 섞어가며 대응했다. 개별 의원실의 의지와 역량을 아주 높게 쳐준다손 치더라도 관료집단과 자본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사후 확인 한다는 것은 공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국감장에서 언급이라도 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의회를 통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의회로 모든 요구안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진보정당’ 의원이 국회에 없다고 해서 의회 공간을 활용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깔린 멍석을 못 본 체 하는 것도 그 만큼이나 멍청한 짓 이다. 이제 첫 국감이 마감되려고 하는 시점에서 운동진영이 의회 아니 좁혀서 말하자면 국정감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정확한 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게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를 한 단위는 국정감사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끌어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미 지난 2001년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국회본회의장에 펼침막을 들고 요구안을 외쳤던 선례가 있다.


개별 운동주체들이 국정감사 이후 의회를 지렛대로 어떻게 전술을 펼쳐야 나갈지 제시할 능력이 내겐 없다. 그러나 몇마디 제언을 덧붙여 본다. 물론 개별 투쟁 단위들의 철저한 준비는 기본이다. 그러나 여러 사안들이 개별 의원실로 취합되는 경로가 명확하지 않다. 개별 단위들이 알아서 찾아가 직거래 하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오히려 과도한 의회주의, 대리주의로 수렴되기도 쉽다. 노동자 출신 의원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의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는 것 아닌가?

 

개별 사업장이나 개별 투쟁단위가 개개의 의원실과 손발을 맞추다 보면 당연히 무게 중심도 의원실로 쏠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좀 더 조직적인 경로를 통해 의원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배타적 지지가 현실인 상황에서(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민주노총 중앙의 역할이 좀 더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중앙위원 지분이나 최고위원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의회에 연락관을 파견해 상주시킬 것을 제안한다.  경제부처 관리들과 재벌들은 이미 조직 내 핵심인자들을 서로 교환 근무시키고 있다.  의회 투쟁은 민원이 아니다. 대등한 위치라는 것을 자각해야 하고 또 그 자각과 실천을 위해선 그 만큼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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