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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한 건 쳤다.

국회에 가면 꼭 국회 앞도 간다. 그냥 읽으면 좀 이상한 문장이지만  사실 그대로를 쓴 거다. 왜냐면 국회 앞, 정확히 말하면 구 한나라당사 앞이나 국민은행 앞은 이런 저런 농성 천막들이 많기 떄문에 국회 갈 일이 있으면 항상 일타쌍피로 농성 천막도 다녀오곤 한단 말인게다.

 

오늘도 마찬가지. 며칠전 강제 철거된 국보법, 장애인 이동권, 사학법 관련 천막들이 보란 듯이 다시 국민은행 앞에 쳐져 있었고 농성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 자리들을 지키고 있었다. 나도 혹 아는 얼굴 있나 확인해서 아는 체 하고 그러려니 했지.

 

그. 런. 데 길 건너편 구 한나라당 당사 앞에는 한터 여성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우리를 이 자리에서 죽여라'는 펼침막 아래서. 덥지도 않은 날씨인데 무에가 그리 답답한지 전부 다 천막 밖으로 나와있더라. 열 남짓한 여성들은 마스크와 선글래스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꼭꼭 얼굴을 싸매고 있었던 건 아니고 서넛 정도는 맨 얼굴로 천막 앞에 잎을 꾹 다문채 앉아 있더라.

 

평소의 나 라면 아니 다른 천막이라면 넉살 좋게 다가가서 이렇게 저렇게 말 붙여 보고 예상 답변들을  두 세수 정도 앞서 계산해서 질문을 던지곤 했을텐데 못 그러겠더라. 왜 였을까?

 

호기심, 증오감, 열패감, 분노, 답답함 등이 뒤섞여 나를 쏘아보던 그녀들의 눈빛이 따가와서였을까?

 

늦은 오후 나절 기자실에서 기사 쓰다가 담배 한 대 피러 나왔는데 비가 꽤 오더라. 걱정 되더라. 아스팔트 바닥이 그리 낯설지 않아 솜씨 좋게 쳐진 국민은행 앞 농성 천막들에 비해 구 한나라당 앞 천막은 너무 허접했었거든.

 

다음 주에도 국회 일정은 없을 것이라는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의 간단하고도 단호한 브리핑을 듣고 일간지 기자의 차에 편승해 국회를 나왔다. '진보매체' 기자인 내게 '개혁적 신문사'의 기자가 성매매 특별법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물론 난 쿨하고도 진보적인 모범 답변을 거리낌 없이 내놓았다. 돌아오는 답변은 '아 그게 그런거군요'

 

오늘 사기 한 건 쳤다.   

 

며칠 후 다시 국회 갈 때 까지 그 천막이 있으면 가서 담배라도 나눠 펴야 겠다. 듣는 것이 먼저 아니겠나? 쓰는 것은 나중일이고.  일단 들어 볼란다.

 

그런데 과연 그 한발을 내디딜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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