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경계도시2를 봤다.

경계인 송두율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경계인을 둘러싼

그야말로 경계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엇이 한 인간을 경계인으로 만들었는지

그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

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가치로 인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틀 속에서 규정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한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사실 송두율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는데.

영화는 그것에 대해 전면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경계인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이야기 할 뿐이다.

 

송두율이 어떤 거짓을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를 그렇게 내몰았던 그 상황,

그 도시 한국의 상황이 중요하다.

 

37년만의 조국

그러나 그를 인정하기에

이 조국은 너무나 패쇄적이고

이기적이었다.

 

그 스스로 잘못 했다며 사과할 만큼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북을 방문하고 노동당에 가입한 것?

글쎄.

이미 그는 독일인(!) 이고 조국은 이미 그를 버리지 않았는가.

저 먼 이국땅에 가서야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지 않았는가?

독일인인 그에게

한국은 국가보안법의 혐의를 씌우고 옥중에 가둬버린다.

 

그 지긋지긋한 레드 콤플렉스

경계인을 향해 팡팡 터지는 플래쉬는

마치 식인 물고기들같다.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의 영혼을 쪽쪽 말아먹는 그 찍새들의 모습

 

그리고 그를 둘러싼 소위 운동권들의 모습

다 책임지겠다며 그 먼 독일땅에서 모시고 올때는 언제고

상황이 어려워지니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줄 타격을 고민하라니...

37년만의 조국에서 얻은 그 수모도 견디지 못할 지경인데

운동에 대한 타격을 고민해야 한다고 참 뻔뻔하게 말한다.

 

사실 나는 송두율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는것은

우리는 언제나 억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우리 모두에게 억압되어 있고

이 자유를 조금이라도 사회적으로 표현하면

식인물고기같은 피라미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곧장 철창 신세가 된다.

 

그런데 경계인 송두율과 나의 차이는

그는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자신을 규정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 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활동한다.

나는 때때로 사회의 질서와 국가의 규제에 반대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


경계인,

경계도시

 

어떤 사람의 경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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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00:14 2010/04/0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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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치즈 2010/04/06 14:56

    나는 영화보면서 찰리채플린이 생각났어요. 무국적자로 살았던 찰리채플린...어떤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 동일한 의식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게 지나치게 되면 개인의 창의성?이라고 하는 것을 옭아매기도 하는 것 같네요. 

    • 달성생 2010/04/07 10:25

      컬컬 그러게. 어찌보면 결국엔 인간들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그게 굳이 국적이 아니어도 말이지. 그런 면에서 내가 얼마나 타인에게 유연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