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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번개 후기

 

re님의 [버섯 번개 후기............에 앞서] 에 관련된 글.

말걸기의 [버섯 번개] 에 관련된 글.

 

 

■ 저주

 

버섯 번개 치라고 바람 넣고선 아무런 반응도 없고, 오지도 않은 인간들에게 내리는 저주.

 

"평생 맛없는 것만 먹고 살아라!"

 

평생이라... 너무 심한가? 그럼 앞으로 100년.

 

 

■ 인사

 

re님, 처음 뵈어 반갑사옵니다.

슈아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파란꼬리, 으흐흐.

모두들 추위에도 불구하고 오가느라 고생 많으셨소.

 

 

■ 먹는 즐거움

 

여의도 홍우빌딩의 <가양칼국수버섯매운탕>의 버섯 요리는 기본이 '버섯매운탕'이더라. 버섯이 가득한 매운탕이 끓을 때 익혀 먹을 수 있도록 얇게 썰린 쇠고기 한 접시를 추가할 수 있다. 일명 '샤브샤브'.

 

매운탕의 버섯을 다 집어 먹었다면 칼국수를 넣고 끓여 먹는다. 이 칼국수 면발이 심상치 않다. 알아 보니 직접 손으로 만든 국수란다. 기계로 만든 국수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맛이 전혀 없다. 넙적하면서도 도톰한 면발은 쫄깃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있다. 칼국수까지 건져 먹었다면 밥을 볶는다. 볶은 밥의 맛은 대단하지는 않지만 평균 이상.

 

'버섯매운탕' 하나의 메뉴로 매운탕과 칼국수와 볶은 밥까지 먹을 수 있는데 가격은 6,000원. 가격 대비 양과 질을 따져본다면 ★★★★.

 

'버섯매운탕'과는 다른 버섯 맛을 보고 싶다면 '버섯초회'도 좋겠더군. 두 접시나 해치워버린 이 요리의 가격는 7,000원. '회'라는 이름과 달리 생버섯은 아니다. 살짝 익힌 버섯에 양파 등의 야채와 초고추장을 얹었다. 따뜻한 느낌이 좋다. 먹다보면 계속 집어먹는다. 이 메뉴도 ★★★★.

 

<가양칼국수버섯매운탕>은 명성만큼 요리도 좋다. 각종 언론사에 등장했다며 광고하지만 맛은 하나같이 '괘씸한' 음식점과는 거리가 멀다. 명성에 비해 좁고 평범한 식당이었다. 일하시는 분들도 인상이 좋다. 장사 잘 된다고 뻣뻣하지 않다. 이런 음식점이 좋다. 번갯집으로 잘 찍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있다.

 

* re, 슈아, 파란꼬리, 말걸기 넷이서 먹은 요리.

* 버섯매운탕 2인분 + 샤브샤브 1접시 + 버섯초회 2접시 + 볶은 밥 1 추가(꽁짜) = 33,000원.

(그렇다면 샤브샤브 1접시는 얼마?)

* 추위에 귀찮아져서 사진기 안 가지고 갔다. 어차피 배고파서 찍는 것도 잊었을텐데 뭐.

 

 

■ 수다떠는 기쁨

 

실은, 말걸기는 먹는 데 열중하느라 별로 수다떨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번개에 나와서 수다떨지 않았으면 어쨌을꼬 생각되는 분은 슈아님. 혹시 수다떠느라 요리맛을 제대로 보셨는가 모르겠더군. 슈아님 수다 덕에 상구백에 대한 이해가 약간 깊어졌다. 다음부터는 상구백이 번개에 나오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번개의 즐거움은 먹는 것 이상인 듯.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면 긴 시간도 재미나게 보냈으니 다음에 또 '먹자 번개'를 쳐야겠다.

 

 

■ 특별한 사건

 

슈아님이 직접 서명한 <계속 된다-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 DVD를 선물받았다. 예전에 '요상한 이벤트'의 당첨 상품이다. 왜 요상하냐면 상품을 맘대로 주니까.

 

슈아님이 알쏭달쏭 서명.

 

"안목을 낮추고 행복하게 사세요."

 

남들이 보면 참 다양하게도 해석하게 될 것 같다. 아마도 파란꼬리가 가장 오해를 많이 받을 듯... ㅋㅋ (퍽! ㅡㅜ)

 

 

■ 수수께끼

 

수수께끼 같은 인물 re님이 수수께끼를 내버렸다. 미쳐버리겠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상상만 하게 된다. 수수께끼를 공개하기 조차도 참 거시기하기 때문에 갑갑함이 더하다.

 

 

우익이나 될까부다

 

말걸기[정치성향 테스트] 에 관련된 글.

 

 

말걸기의 정치성향을 테스트해 보았더니,

 

○ Economic Left/Right: -9.88
○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9.08

 

로 나왔다. 1년 전 쯤에 한 테스트이니 지금 다시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결과는 말걸기 내면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럼 내면 말고 외면은 뭐냐?

 

 

말걸기가 사회를 사유하는 기본적인 관점, 정치철학의 근원은 크리스트교에 있다. 말걸기로 말하자면 외가계로 5대째 가톨릭 신자이다. 6대째인가? 외가로는 아무리 촌수가 멀어도 죄다 가톨릭 신자들이다. 조상이 한국초기교회 시절부터 신자였던 것이다. 신실한 신앙심의 소유자이신 어머니 태중에 있을 적부터 말걸기는 성당엘 나갔다. 피도 안 마른 채로 세례를 받았다. 말걸기의 세례명은 '파비아노'이다. 3세기에 교황이었던 파비아노는 로마 황제의 핍박으로 순교를 한 성인이다. 신념과 삶의 일치!

 

중학교 한 때, 다들 말하는 사춘기 한 때 성당 나가기를 거부했었다. 뭐가 그리 괴로웠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 그 심각한 시절을 보내고 난 후에는 진지하고 성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국에서 선교하는 사제를 양성하는 외방선교회를 예비신학생자격으로 드나들었다. 세상 모르고 사제가 되는 건 좀 손해보는 듯해서인지 신학교 준비는 접고 보통 사람들이 가는 대학을 준비했다.

 

모차르트나 헨델의 미사곡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기도를 했던 열혈 가톨릭 신자는 어쩌다가 무신론자가 되었을꼬.

 

 

말걸기가 가톨릭 신자로 배운 가치는 '사랑'과 '정의'이다.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의'는 대단히 구체적이었다. 지랄같은 학교가 지랄같다고 얘기하는 전교조 선생들 죄다 목을 치는 건 '정의'가 아니었다. 할 말 좀 하겠다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눌러버리는 저 경찰들도 '정의'가 아니었다. 그런 사건들이 연속이었던 시절에 '정의'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였다. 그런데, 교회는 '정의'에 침묵하였다.

 

말걸기는 재수하던 시절 부활대축일 미사에 갔다가, 불의에는 눈을 감고서 하느님의 나라를 설파하는 교회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분명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2천년 전 예수는 그러하지 않았지만 교회가 성립된 후에는 교회가 세상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바꾸었다고. 그러니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데 일조하려면 교회에서 도모할 게 아니라고. 그래, '빨갱이'가 되는거야.

 

 

지금은 '말걸기 인생 돌리도'라고 외치고 싶은 청소년 시절에는 말걸기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어차피 점수로 가는 대학, 손해나 보지 말고 대학 가자는 맘을 먹고 재수 끝에, 그것도 제2지망으로 모대학 모학과에 진학했다. 학과 공부에 대한 목표의식이 있을 수 없었다. 열심히(정말?) '빨갱이'가 되기 위해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학과 공부에 재미도 붙이고 등등, 이런 저런 다양한 삶의 가치도 알게 되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빨갱이'로서의 자세였다.

 

주체사상 기초 학습도 받았고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주사파를 선택하지 않았다. 학생운동의 계보로 따지자면 AIAMCPDR(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AMC의 조직원이 되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공개적인 학생정치조직으로 재편되는 과정이었고, 어느 누구도 말걸기더러 조직원이 되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믿을 만한 놈이 못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진보운동한답시고 깝죽대는 건 말걸기밖에 없으니까.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에 다시 돌아오니 개거품 물며 화염병 던지던 새끼들은 다 도망가고, 아직도 87년인 줄 알고 사는 놈들만 어둡고 좁은 구석에서 득시글거렸다. 그 와중에 새로운 학생운동을 모색하는 모임이 생겨서 그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이 모임은 후에 민주노동당 서대문마포은평지부로서 지역당을 창당하는 씨앗이 되었다). 이 모임을 하면서 진보정당에 대한 생각도 정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정치권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당시 말걸기의 사적인 생활은 예술활동이었는데 이 또한 새로운 내면의 감수성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시절, '모든 권력은 아작내자!'라는 슬로건이 말걸기의 정신적-육체적 일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싸, 아나키스트! 그런데... 파비아노의 가르침에 따라 '신념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려다 보니 큰 벽에 부딪혔다. 신념을 실현하려면 현실의 조건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나키즘은 현실 개조에 가장 무능한 신념 체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살아 생전에 사회주의 사회가 올랑가는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빨갱이'로 살기로 했다.

 

 

'빨갱이'로서 '빨갱이 정당'을 만드는 데에 비천한 일조를 하고선 그 정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게 '빨갱이 정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걸기가 민주노동당을 '빨갱이 정당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보통의 운동권들이 개량주의니 의회주의니 따위라며 얘기할 때의 그 뜻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객.관.적.으.로. '빨갱이 정당'이다. 말걸기가 민주노동당이 '빨갱이'답지 못하다고 한 이유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적 절차도 잘 모르고, 일을 일답게 풀어나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똑바로 말할 줄도 모를 정도로 무능해 빠진 정당이다. 일군의 무리들은 주사파들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개떡! 원래부터 그랬다. 6여년 쯤 당에서 일하고 보니 이걸 깨달았다. 어떤 사회주의(사민주의에서부터 장군님 세상까지)가 되었건, 사회주의 하겠다고 나선 '빨갱이'들처럼 살았다가는 현실 개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빨갱이 노선'을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할까 생각 중이다. 요만큼 투여하면 그만큼보다는 조금 많은 결과를 얻는 활동. 길게 보고 꾸준하게 많이 투자해서 왕창 벌어들일 것과 찔끔찔끔 단맛만 짜낼 것을 구별하는 안목. 자기의 이해 타산을 잘 계산하는 태도. 실제로 쓸모가 있는 사업만 하자는 노선.

 

 

Economic Left -9.88, Social Libertarian -9.08이라는 극좌 중의 극좌, 아나키스트의 심성을 갖고 있는 말걸기가 반평생 운동판에 있으면서 얻은 점정 결론이 '실용주의'라니 참 어이가 없다. '실용주의'라도 짭짤한 성과를 얻지 못하면 진짜로 확 우익이 되어버릴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부여받은 '신념에 따라 살다가 뒈지거라!'라는 말씀을 끝내 따를수나 있을까 싶다.

 

 

버섯 번개

 

말걸기[버섯 먹고 싶당] 에 관련된 글.

 

 

버섯 사진 몇 장 올려놓고 버섯 먹고 싶다는 말걸기에게 호응한 블로거들이 있어 번개를 친다.

버섯요리집 기사까지 제공해주신 친절한 블로거도 계시니 더더욱 번개를 치지 않을 수 없도다.

몇 군데 뒤져 보다가 버섯요리집을 낙찰했다.

 

 

■ 버섯 번개

 

 

○ 대상 : <지저분한 일기>를 찾아오는 누구나

- 대부분의 버섯요리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함. 채식하는 자 환영.

 

○ 일시 : 2006년 12월 28일(목) 오후 7시

- 오후 9시까지 주문하면 된다함. 10시까지 영업. 늦게라도 오든가.

 

○ 장소 : 가양칼국수버섯매운탕(여의도 홍우빌딩 지하 / ☏ 02-784-0409)


○ 회비 : 총액 - 20,000 / 참서자수 - ( 1 + 18세 미만 참석자수)

- 말걸기가 2만 원 낼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슈.

 

○ 지도 : 빨간 깃발 꽂힌 곳

 

 

 

 

※ 삼삼오오 찾아오셔

 

 

늦은 시간에 찾아 온 손님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피곤했는지 그날은 일찍 잠들고 싶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방 잠을 잘 것이다.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다.

 

파란꼬리는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의정부라나 어디라나 보건소였다.

보건소?

말걸기가 어디 아픈가?

아닌데...

 

부탁할 일이 있단다.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니었는지 어느새 집까지 찾아왔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보건소가 운영하던 종합병원이 그 근처에 있었는데,

예산 문제 때문에 병원을 없앴단다.

그래서 긴급한 환자(아무래도 저소득층이겠지)가 있었는데 자기들이 살피지 못하고

저 멀리 부산까지 보냈단다.

지금 부산 모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인데 무슨 사정인지 다시 데리고 와야 한단다.

자기들 병원(결국 병동이 없다는 뜻이겠지)이 없어서 서울 저 구석에 있는 병원으로 말이다.

 

이런 일을 말걸기에게 부탁하는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말과 표정에서는 자기들은 다른 일에 치어 할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해 달란다.

 

그들의 부탁이 더 황당한 건,

말걸기는 어떤 교통수단으로 내려가야 하고

그 환자는 어떻게 데리고 와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내려가는 비행기표는 있느냐? 올라올 때는 엠뷸런스 타고 오냐?

이런 질문에, 자기들은 돈 없고 하찮은 신세라는 얘기만 하더라.

예산 지원 안된다는 뜻?

 

그날따라 피곤했기 때문에 저 멀리 남쪽 동네까지 갔다오면 괴로울 듯했다.

더구나 꽤 아픈 환자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그 사람에게도 좋지 못할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걸기의 머릿속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비행기도 없다면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누구차를 빌려타고 갈까?

올라올 때 환자를 그 차에 싣고 올 수 없다면 엠뷸런스는 구해야겠지?

지금의 몇 시니까 언제쯤이면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고... 등등.

 

 

 

말걸기가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단호히 거절하면 안될까?

일을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사정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그 일은 어떻게 풀어가면 되겠군'하는 나름의 '기획'을 하고 있으니

일 부탁하는 상대가 포기하겠냐구.

 

알바도 그렇고 뭐도 그렇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벌여가지구...

언놈들이 또 나타나서는 엮으려고 난리다.

그러니 꿈에서까지 이상한 부탁에 시달린다.

 

 

정치성향 테스트

 

요즘 블로거들이 정치성향 테스트를 한창 하더군.

말걸기는 재밌어서 당게에다가도 소개를 올렸었지.

 

[http://comm.kdlp.org/index.php?main_act=board&board_no=2&art_no=247942&jact=art_read]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

 

 

 

하여튼, 대가리는 진짜 극좌라니까.

말걸기보다 더한 인간 있을라나 몰라.

 

 

덤으로 정치사상가들, 정치인들 성향도 올려주지.

 

다시 쌓이는 스트레스

 

말걸기[일하기 너무 싫다] 에 관련된 글.

 

 

요즘 다시 가슴이 막힌 느낌, 막혔다기보다는 묵직한 알갱이들이 숨길을 막고 있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 찾아왔다. 이건 분명 스트레스의 정도가 상승하고 있는 징후이다. 이런 느낌을 너무나 오래오래 달고 살다가 하던 일도 때려쳤었던 기억도 다시 스믈스믈 살아난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 중에는 다른 스트레스의 요인까지 지배하는 강력한 것도 있을 것이다. 제대로 따져보기는 좀 거북할 것 같고, 표면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알바'이다.

 

 

말걸기가 하고 있는 '알바'는 진보정치연구소 지방정치연구회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간사비를 나름 짭짤하게 받기 때문에 돈벌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일이 끝나면 돈벌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계약직 스트레스'가 조금 있긴 하다. 어쨌든 돈보다는 일을 하기가 싫어서 스트레스가 찬다.

 

일을 하기 싫은 첫번째 이유는, 어떤 형태의 일이든 일이면 다 하기 싫어하는 '겔뱅이 신드롬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때로는 자주, 일을 마쳤을 때의 성취감을 알기 때문에 열심한 척 일하기도 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팍팍 찰 정도로 일을 하기 싫을 때는 다른 이유가 분명 있다. 이번 알바가 싫어지는 이유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지방정치연구회의 이번 프로젝트는 가히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당의 지방정치 활동을 직접 조사하고 실증적으로 분석한 후, 지방정치론을 완성하는 게 목표이다. 물론 될 리가 없다. 그래도 큰 포부와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번에 달성을 못하면 이번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크게 보고 조금씩 조금씩 채워가는 아름다운 프로젝트.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죄다 당직자들이다. 중앙당직자이든 지역조직의 당직자이든. 당일에 치이는 이들이 직접 조사를 하겠다고? 애초에 프로젝트 설계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중간에 지지부진하니까 간사비를 가지고 말걸기를 꼬신 것이다. '약간의 사기'는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낚싯밥을 물긴 했으나 이 정도의 사기일 줄이야.

 

프로젝트를 열성적으로 제안한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도 없고 열정도 없다. 그냥 하기로 했으니까 적당히 마무리는 해야겠는데 그것도 귀찮다는 태도들이다. 그러니까 결국 옆에서 딱 한 사람만 '좀 미안한데 잘해 보자'며 시간 쪼개며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고 나머지는 '어~어~' 하고 있는 꼴이니 말걸기가 일을 하고 싶겠냐구.

 

어떤 면에서는 이들은 자신의 버거운 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 간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에 실망스러운 점은,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 혹은 그 수행에 따른 기능이 당에게는 대단히 필요한 요소라는 점을 외면한다. 냉정히 따져보면 이 프로젝트는 진보정치연구소가 할 일이 아니다. 당의 정책·집행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 당을 이끄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기 빛날 일만 찾았기 때문에 당을 공공히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길고 지난하고 귀찮은 기본 업무는 언제나 외면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는 실무당직자들이 진보정치연구소 지방정치연구회를 통해 당에 거름이 되는 일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면 뭐하나. 지들이 벌여놓은 일 지들이 생까는데.

 

이 상황에서 말걸기가 '일 고만할래' 해 버려도 상관 없을 듯하나,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어 차마 그 말을 못하고 있다. 7개 지역위원회 간부들의 얼굴이다. 프로제트의 일환인 지역정치활동사례를 모으기 위해 인터뷰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역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달고 쓴 이야기를 사심 없이 풀어주었다. 그들의 얘기를 잘 각색해서 옮기기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임감은 확실히 좋지 못한 스트레스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어쩌랴.

 

아마도, 최소한 7개 지역위의 14개 정치활동사례는 정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일은 잘 모르겠다. 그냥 얼른 해치워 버리고 프로젝트 간사 자리 내팽겨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그나저나 다른 스트레스도 상당한데, 언제 죄다 수다를 떨지?

 

 

눈 내리는 밤

 

말걸기 사는 동네, 눈 내리는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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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먹고 싶당

 

요전에 알바 하러 버섯농장에 잠깐 다녀왔다.

그곳에서 버섯 사진을 좀 찍었는데 맛나게 생긴 버섯들이라 혼자 보기 아까와 공개한다.

맛난 버섯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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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KON D200 | Nikkor 18-200mm F/3.5-5.6G ED | 135.0mm | 1/400s | f/5.6 | ISO 100

 


특히 정물 사진 찍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좋은 렌즈가 표현의 폭이 넓다.

한동안은 '싸구려' 렌즈로 찍을 팔자다.

 

 

잼 나는 플래시 게임

 

파란꼬리가 소개해 준 게임.

플래시로 만든 게임인데 잼 나게 했음.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인데 이야기가 있음.

 

힌트를 주자면, 클릭을 하면 반응을 하는데 그 반응의 순서를 잘 조합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결국 문제가 해결 됨. 1편에 비하면 2편은 더 어렵지만 해결하는 방식을 알고 있을 터이니 더 잼이 남.

 

머리 좀 써야 할 듯. 너무 똑똑해서 쉽게 푸는 사람은 재미 없을 듯.

 

 

http://www.samorost.net/samorost1/

 

http://www.samorost.net/samorost2/

 

 

 

* 3편도 있는 듯하나 돈 주고 사야 하나벼... ㅠㅠ

 

 

사진은 과연 '사실적'인가

 

말걸기[일하기 너무 싫다] 에 관련된 글.

 

 

사진이 '사실적'이라고 말할 때, 그 '사실적'이란 말을 '있는 그대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이 얼마나 '사기'에 가까운 지 모르거나 잊거나 눈감는다.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 건 '사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며 '사기'이기 때문이다. 이게 '사실'이다.

 

'사실성'이란 '있는 그대로에 충실한'이란 뜻이라기 보다는 '있을 법한'에 가깝다. 간혹 인간의 눈과는 거리가 멀어도 '있을 법한' 장면을 만들어냄으로써, 사진 또한 '사실성'을 갖는다.

 

 

구례 냉천삼거리에서 찍은 (아마도) 노고단 사진을 소개한다.

 

 

푸른 소나무 숲도 보이고 하얗게 눈이 쌓이 정상 부근도 보인다. 눈발이 날리던 이날, 먼곳에서 사람의 눈으로 저렇게 선명한 푸른색을 볼 수 있었을까? 인간의 눈보다 칙칙하게 찍히는 Nikon의 D200으로 찍었다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다음의 원본과 비교해 보자.

 

 

정상 부근은 해가 들지만 냉천삼거리부터 저기까지 중간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깨끗한 시야가 확보될 수 없는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정으로 녹색을 살리고 정상의 눈도 더 하얗게 만들었다. 그래도 후보정한 사진을 두고 '거짓'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있을 법한' 장면이며 색상이니까.

 

 

사진에 푹 빠져서 사는 사람들이 정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 바로 '사실적'이란 함정이다. 애초부터 하나의 렌즈만을 갖고 있는 사진기(SLR과 같은)라면 대체로 눈깔 두 개를 갖고 있는 인간과는 달리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렌즈마다, 인간의 눈으로 느끼는 거리감과는 다른 거리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색도 다르다. 무엇보다 인간의 시야에서 많은 걸 잘라낸다. 그럼으로써 '왜곡'이 가능하다.

 

그러니, 사진을 꼭 '있을 법한'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만 사용할 이유도 없어진다. 말걸기는 예술에 있어서는 '리얼리즘'은 뻥이라 생각하는데, 사진을 하는 많은 이들은 '리얼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해는 듯해 답답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