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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1/21
    폭력의 순환(3)
    말걸기
  2. 2009/01/20
    파란꼬리(11)
    말걸기
  3. 2009/01/12
    결투 ②(6)
    말걸기
  4. 2009/01/11
    결투 ①(3)
    말걸기

폭력의 순환

 

1.

 

맞아본 사람들이 남을 때리기 쉽다. 그래서 신체를 구속당하고 삶이 피폐해지면 폭력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치 못한 생활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벌이를 위협당하는 상황'이라면 폭력을 휘두르는 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2.

 

국가가 사람들을 갈구면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센 놈이 약한 놈 팰 때 패는 목적을 달성하기 쉬으므로 국가에게서 맞는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더 약한 사람을 찾아 패기 마련이다.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존나 재섭는 새끼들이 엄청 양산된다. 그래서 사회가 뒤숭숭하고 혼탁해진다.

 

 

3.

 

자꾸 맞다 보면 때린 놈한테 '욱' 할 때가 있다. 국가에 대한 간헐적인 절규, 화염병과 쇠파이프는 그렇게 출현한다.

 

 

4.

 

국가는 자기에게 '욱'하는 '짜식들'을 가만히 둘 리 없다. 노련한 국가는 적절하게 괴롭히지만 서툰 국가는 그냥 마구 팬다. 죽이기도 한다.

 

 

5.

 

멍청한 국가는 자신에 대한 폭력을 조직한다. 소요 내지는 혁명을 부른다. 멍청한 국가가 멍석을 깔아준 폭력 혁명은 성공해도 문제다. 왜냐하면 그것도 폭력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세운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6.

 

국가는 언제나 폭력적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폭력을 기초로 존재한다. 국가가 언제까지 존속할 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태어나는 세대의 평생 동안에도 국가는 멀쩡할 듯하다.

 

 

7.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폭력적인 국가가 덜 폭력적이도록 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냐, 아니면 폭력적인 국가를 조낸 조질 것이냐. 어느 경우에도 폭력은 순환한다.

 

 

파란꼬리

 

지난 일요일에 '찰칵찰칵' 출사가 있었다.

이번 출사는 스튜디오였는데 이왕 방문한 김에 파란꼬리 사진 몇 장 찍었다.

홍아가 요즘 잘 큰다. 자고 일어나면 파라꼬리 배가 더 커진다.

 

 

 

 

 

 

 

 

결투 ②

 

말걸기님의 [결투 ①] 에 이어서.

 

 

 

등을 맞대고 섰다. 그의 등이 따뜻한 것은 내 등이 식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순간에는 냉정해야 하는 법이니까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었다. 저쪽에 듬성한 나뭇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었다. 돈을 받지도 않았는데 배심원을 노릇을 하고 있었다. 구경거리를 준 내가 그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감은 약속한 시간이 다 왔음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포기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음을 통보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보석 세공업자는 시작을 알렸다.

“하나!”

나는 오른발을 옮겼다. 다섯에 오른발이 걸리도록.

지난 금요일이었던가. 아내는 오른쪽 발가락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창가에 몸을 기댄 채 희미한 미소를 띠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의도했던 건 결코 아니었는데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아내의 그 표정은 흔적도 없어졌다.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와서 쓸데없는 외출이 잦아졌다느니 내 앞에서는 통 웃지도 않고 특히 내 눈을 피하고 있다느니 등등. 아내도 지지 않았다. 부엌에 빵이 떨어지지 않은 날이 있느냐고 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했고 아내가 그를 만나러 외출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그 그림이며 방금 전 그 미소며 전부 그가 준 걸 안다고 했다. 아내는 딸의 새 구두를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알고 있느냐고 했다. 언성이 높아졌다. 둘 다 흥분했고 결국 그녀는 있었던 일들을 잔인하리만큼 당당하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의 상세한 묘사는 나의 상상력 이상이었다. 그와 관계를 맺는 모습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녀가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모양, 머리에 기계를 씌운 모양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는 내 몸에 손 한 번 대지 않는다구요!”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인 것 같았다. 지난주에 르몽드지에 실렸던 기사가 생각났다. 해외 토픽 기사였다. 동쪽 나라에 어떤 화쟁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림을 팔지 못해 가난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돈을 벌었다. 그의 아내는 대낮에도 남자들을 데리고 왔다. 그 화쟁이는 옆방에서 아내와 낯선 남자를 엿보기도 했다. 아내가 남자를 데리고 오기 전에 돈을 쥐어 주며 그를 내보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화쟁이는 종일 술을 마시며 둘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둘”

나는 사뿐히 왼발을 앞으로 디뎠다. 오른손은 총을 가볍게 쥐고 어깨 높이까지 올렸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아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보이려 했다. 많은 관중을 상상했다.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손에 쥔 총에 눈을 고정시켰다. 한쪽 편에서 움직이는 건 경대 위의 표적에 불과했다.

나는 검은 턱시도와 중절모 차림이었다. 구두도 광을 내어 신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어울리는 망토도 잊지 않았다. 누구의 최후든 그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표정도 근엄하게 지었다. 나의 옷차림은 중후하면서도 깔끔했다. 최후를 위한 싸움이 쓰레기를 치우는 일과 같을 수는 없었다.

나의 아내를 설득하는 게 식은 죽 먹기와 같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일요일 아내는 외출을 했다. 그를 만날 거면서 아이는 왜 데리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맨정신으로 아내와 딸을 기다릴 수 없어 술을 마셨다. 잠이 들었었는데 아내와 딸이 들어오는 소리에 깼다. 딸은 피곤해 보였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를 보자 웃으면서 달려와 가슴에 안고 있는 인형을 보였다. 내가 선물했던 장난감들과는 달랐다. 과장된 눈과 다리를 가진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고양이 다와야 하는데 사실 그 인형은 고양이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그 모양이 너무 우스꽝스러웠지만 딸에게는 티를 내지 않았다. 딸은 자랑하면서 그 인형의 이름이 ‘가필드’라고 했다. 나는 그 이름이 낯설었다. 딸에게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고 물었다. 딸은 그 인형 이름이 원래 ‘가필드’라고 했다. 이름을 짓는데 원래부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인형의 이름은 주인이 지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딸은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면서 또 다시 그 인형의 이름은 ‘가필드’라고 했다. 나는 야단치듯 인형의 이름을 다시 지어 주라고 했다. 남이 지어 준 이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빤 아무것도 몰라! 얘는 ‘가필드’예요, ‘가필드’!”

딸은 엄마가 그랬듯이 소리를 질렀고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언젠가 딸에게 읽어 주었던 동양의 옛날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홀아비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돈 때문에 딸을 바다 밑 괴물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 딸은 원망하기는커녕 키워 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 바닷속을 빠져나와 돈 많은 남편을 얻었고 아버지를 찾아가 평생 모시며 셋이서 풍요롭게 살았다.

“셋”

그의 차림은 상스럽기 짝이 없었다. 푸른색 바지에 엷은 미색 셔츠, 그 위에 긴 코트를 걸쳐 입고 있었다. 코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얇은 그 겉옷은 반질거리면서 붉은 빛을 냈다. 바람이 스쳤을 때 안감에 붙은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버버리’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 사람 이름은 ‘버버리’가 아니었다. 빌려 입고 온 게 분명했다. 내가 상대를 잘못 짚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제 나의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가 자주 들른다는 클럽에 갔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학의 교수도 아닌 게 강의하는 투로 말을 했다. 그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는데 지구의 생명은 지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화성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먼 옛날 화성에서는 생명체들이 번성했었는데 화성에 혜성이 떨어졌다. 그 때 화성의 땅덩이 일부가 운석이 되어 지구에 튀었다. 혜성이 떨어진 화성은 그 충격으로 기상 변동이 심해 남아 있던 모든 생명체가 멸종했다. 화성에서 운석을 타고 생명체가 지구로 옮겨왔을 때 지구가 이제 막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과 산소로 덮인 건 다행이었다. 그는 그의 주장의 근거를 복잡한 운동법칙과 열역학, 화학식과 DNA 구조식, 그리고 최근 우주선에서 보낸 화성에 대한 자료에서 찾았다. 알아듣기 힘든 설명이었고 그는 그걸 노리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발견을 한 양 존경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중 하나가 대학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은 그라고 칭송했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했더라면 이런 이론은 세울 수 없었을 겁니다.”

나는 대학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한 놈이 건방진 소리나 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중얼거렸지만 모두가 들은 모양이었다. 그에게 고정되었던 시선들이 내게 쏠렸다. 그는 앉아 있는 내 앞까지 다가와 섰다. 모두들 나와 그 사이에 벌어질 일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와 그는 생명체 따위 얘기는 할 것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당신에게 경고를 하러 왔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라 했다. 한참이나 서로 떠들었지만 결론은 없었다. 나는 장갑을 오른손에 쥐었다. 어제 같은 빙판길을 걸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았다. 클럽에서 집까지 길은 대부분 응달이었기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빙판 뿐이었다.

“요즘 자네집은 추워서 잠자리도 설칠 판이라며?”

그에게 한 마디 하려고 일어서며 홱 돌아설 때 장갑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의 어깨를 넘어 날아갔다. 지켜보던 모두가 그에게 장갑을 던졌다고 받아들였다. 이왕 던질 거라면 더 멋지게 그의 뺨을 명중할 수 있었는데 안타까왔다. 그 때 옆에서 눈치 보던 보석상 주인이 나섰다. 곧바로 모든 게 결정되었다. 네 시였다.

“넷”

주위가 침묵했다. 내 발자국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도 멎어 있는 듯했다.

아내의 심장은 격하게 뛰고 있었다. 아내는 말리지 않았다.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래저래 설명할 필요도 못 느꼈다. 엄마의 어두운 표정 때문인지 딸은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얼마 안되는 전 재산을 털어 결투 비용으로 보석상 영감에게 주었고 벽에 걸려 있던 총을 꺼내 손질을 했다. 총들은 오랜 잠을 잤으면서도 따뜻했고 화약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의 심장을 뚫었었고, 또 하나는 허공을 가르기 위해 총알을 뱉었었다. 하지만 난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오늘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야만인이나 사냥하는 그의 총 때문에 틀려 버렸다.

“다섯”

나는 날렵하게 몸을 틀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났다.

2.

- 그는 내 몸에 손 한 번……

- 이건 포토예요……

- 아빤 아무것도 몰라……

- 어이 짤순이, 자네에게도……

- 요즘 자네집은……

총성은 가시고 나는 하늘을 보고 있다. 아까와는 다르게 파란 하늘이다. 배심원들이 저 멀리 날아가고 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볼거리가 없어서인가 보다. 베고 누운 것은 차갑고 단단하다. 귀 옆은 따뜻하고 질퍽하다. 손가락은 아직도 방아쇠를 힘껏 당기고 있다. 기억이 떠오른다.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내 손에 있던 총은 진동하지 않았다. 그는 예상보다 가까이 있었는데 양손에 총을 들고 있었다. 총성도 한 번이 아니었다. 저편엔 내팽겨진 크고 무거운 총들이 보인다. 이젠 가져갈 아이도 없는 총들.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날 우리 아버지 얼굴에 닮아 있을까?


 

─── 끝 ───

 


 

결투 ①

 

1.

 

내가 그에게 장갑을 던진 건 어제 오후였다.

 

 

여긴 어릴 적 기억밖엔 없는 언덕인데도 와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회색 하늘과 함께 으스스한 나무들은 소년 시절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한 쌍의 총을 가지고 왔다. 한 손으로 쏠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운 것들이었다. 열 발자국 내에서는 뭐든 맞힐 수 있는 총이었다.

 

그는 그의 사촌이 발명한 총을 가지고 왔다. 그의 사촌은 바다 건너 대륙에서 야만인을 사냥하기 위해 많은 총을 만들었다. 그의 사촌은 총으로 야만인을 사냥할 뿐 아니라 칼로 야만인의 머리 가죽도 벗겨 수집했다. 머리 벗기는 기술은 머리 가죽을 수없이 제공한 야만인들도 배워서 이제는 자기네들 기술인양 수선을 떠는 것에 그의 사촌은 분개하고 있었다. 언젠가 TV 화면에서 본 칼을 든 살인 청부업자의 표정을 떠올랐다.

 

결투를 진행할 사람은 아내의 집에서 몇 블록 건너 있는 보석상 주인이었다. 그는 길드에 속한 보석 세공 장인이기도 했고 한때는 도제도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거느리고 있었던 알부자였다. 그 때는 왕궁 사람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의 가게는 명성이 아직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융성을 잊지 못한 귀족들만 찾아오는 곳이었다.

 

아내의 목걸이를 그 보석상에게 판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영감은 돈이 궁한 사람의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투를 진행할 시간만큼 장사를 못한다기에 돈을 줘야만 했다. 첫눈으로 상대편 호주머니의 돈을 볼 수 있는 그 늙은이는 그가 부탁을 했을 때야 기꺼이 수락했다. 다른 증인도 없이 이 영감만 데리고 온 것이 왠지 석연치 않았지만 이런 일로 돈이 더 드는 것도 싫었다.

 

보석쟁이는 공평함을 위해서는 나와 그가 똑같은 총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가 가져온 총이 현대 과학의 혜택을 입은 첨단 기술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명중률이 내 것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콜트 45구경 권총은 다루기 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보석상의 주장은 결국 결투는 한 번에 결판이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가져온 총은 아버지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가벼웠다. 나는 ‘총알’과 ‘화약’이 한데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봤다. 그는 ‘총알’과 ‘화약’이란 말에 코웃음을 쳤다.

 

“‘탄두’와 ‘장약’이 분리되지 않았다고 해야지.”

 

보석상 주인은 내가 가져온 총은 제쳐 두고서 그가 가져온 총을 들고 나에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괜한 짓을 한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들었다. 그 시간만큼의 돈은 아까왔다. 그 늙은이의 구차한 설명은 마치 화가의 명성 때문에 제값보다 돈을 더 얹어 지불하는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어느 날 외출했던 아내는 그림 한 점을 품고 들어 왔다. 아내는 언제나 볼 수 있게 경대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액자에 넣어진 그림이었는데 파리의 풍경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그림은 여태껏 보던 그림과는 좀 다른 데가 있었다. 선이 보이지 않았다. 천연색으로 그려진 그 그림에는 붓 자국도 연필 자국도 없었다. 색깔도 실제와 똑같았다. 파리에 가본 적은 물론 없었지만 그곳은 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친구한테서 선물을 받았다고 했지만 아내의 친구들이나 친구의 남편들 중에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없었다. 내가 그 그림을 여기 저기 뜯어보며 신기한 그림이라고 했을 때 아내는 내 손에서 그림을 빼앗아 들고는 소리를 질렀다.

 

“이건 포토예요, 포토!”

 

아내는 나한테 이런 건 쳐다 볼 자격조차 없다고 했다. 나보고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뭐냐고도 했다. 그녀의 과장되고 신경질적인 반응은 너무 엉뚱했다.

 

오래 전 그녀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처음 본 순간 나와의 결혼을 결심했었다. 내가 캔버스에 붓질을 할 때면 아내는 자기의 몸이 물든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반응은 언제나 나와 아내의 사이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나의 붓질에 관심이 없었고 얼마 후에 그 그림을 가져왔다. 그 그림은 사격 연습하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보석상 영감은 이번은 사격 연습이 아니니까 각자 총을 직접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는 영감을 의심하는 것은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며 손에 쥐면서도 총에는 눈길도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보석상으로부터 총을 건네받을 때에도 그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자신감 이상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게 뭔지 확실치는 않았다. 영감은 나와 그의 몸을 여기저기 살핀 다음 결투 방식을 설명했다. 등을 맞대고 서서 영감의 구령에 따라 다섯을 셀 동안 한 걸음씩 나아가다 다섯을 세는 순간 돌아서서 상대편을 쏘는 방식이었다. 너무나 흔한 방법이었고 경험은 없었지만 이런 장면을 천 번도 더 상상해 왔던 나로서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내의 인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건 아내가 그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들었을 때였다. 아내가 하루가 멀다 쫓아다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시 외곽에 별채가 여럿 있는 큰 저택에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곳에는 그런 중세의 성 같은 집들이 꽤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도시인 이곳에 회사를 차려 놓고 보통 사람은 셀 수도 없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곳까지는 지하철도 노선 버스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사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두려울 만큼 부끄럽게 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곳에서 살 리가 없었다. 어쨌든 사람들을 피하는 그들의 수치스런 생활을 전혀 수치스러울 게 없는 내가 구경할 이유는 없었다.

 

 

지난 주 동네 술집에 갔을 때, 세탁소 친구가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돈 세탁업자라 했다. 돈을 빨아 준다니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동전이야 문질러서 광을 내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지폐는 물만 묻혀도 냄새가 고약해지는데 그걸 빨아서 어쩌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전이든 지폐든 깨끗하게 닦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대가를 얼마나 지불할 지도 의문스러웠다. 그런 일로는 그는 부자일 수 없었다. 그는 실제로 백만장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어이 짤순이, 자네에게도 세탁하라고 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세탁소 친구는 화를 냈고 그날 심하게 다투었다. 어리석은 농담이었다.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돈을 세탁할 세탁소 주인은 없었다. 다음에 갔을 때 그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등을 돌린 채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척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