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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누가 잘났나?

"현실적으로 정책위원회의 정책역량이 의원단에 못 미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 경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정감사에서 당이 소외되었다'는 표현이 잘 보여주고 있다.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의원단의 정책역량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정보의 축적과 민중.사회단체와의 정책네트워크도 당 정책위원회를 앞서기 시작했다."

 

위에 인용한 문구는 최의원실 홍수석이 당 기관지 <이론과실천> 12월호에 기고한 <당은 정치적으로 미숙한 '거대한 소수'였다>의 일부이다. '원내진출 이후, 민주노동당은 무엇을 이뤘는가'를 주제로 실린 특집 코너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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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수), 여섯 명이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원래 가고자했던 식당에 자리가 없어서 그 식당 옆 중국집에 갔더니 정책위 사람들이 왕창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여섯이 한 데 모인 이유를 알면서도 무슨 일이냐고 하니, 여섯 중 하나가 '6자 회담'이라 농을 던졌다.

 

최의원실 홍수석과 홍보좌, 의정지원단 이실장과 강실장, 그리고 교육담당 정책연구원과 내가 '6자 회담'을 했다. 위 글에 대한 홍수석의 해명을 듣기 위함이었다. 홍수석의 글(정확히 말하자면 위에 인용된 문구)이 정책위 내에서 돌려 읽혀지면서 한순간에 분노가 정책위를 감쌌기 때문이다.

 

지난 주 위 문구가 회람된 후에, 보건의료담당 정책연구원 하나가, 최의원실과 함께 준비하던 학교보건법 개정 공청회 준비를 못하겠다고 선언한 일이 있었다. 7일에 열린 공청회에 최의원이 발제를 맡기로 해서 6일 저녁에 의원에게 하기로한 내용 브리핑을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보건의료담당 정책연구원이 이런 반응을 보인 건 맥락이 있다. 그냥 자존심 상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사연이 있다. 보건복지위 현의원실에서 발표하는, 제대로 된 내용은 전부 3정조 보건복지 담당 연구원들이 다 만들어 줬다. 때로는 현의원실 어느 누구도 못알아 들어서 연구원들이 사업을 진행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단다. 6개월 동안 이런 경험을 한 정책연구원에게 위의 문구는 분명히 '모독'이다.

 

6일 오후에 전화가 왔다. 회의원실 이보좌였는데, 홍수석의 글이 최의원실 공식입장도 아닌데 학교보건법 브리핑을 거부하는 건 문제 아니냐는 항의였다. 타당하다. 열받은 보건의료 담당 연구원은 예정대로 브리핑을 했고, 최의원 상임위 일정으로 발제를 하지 못하게 되자 발제까지 담당했다. 공무 진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위의 문구는 지난 주 4정조 회의에서 교육담당이 거론했다. 정조위원장은 이런 표현은 문제가 있다며 정책위 의장에게 보고했다. 의장과 부의장은 홍수석을 불러다가 해명을 듣고 주의를 주려고 했다. 강실장과 나는 좀 견해를 달리했다. 의장까지 나서면 의원실과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으니 실국장들이 해명을 듣고 잘못을 지적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6자 회담'이 열렸다.

 

 

위 문구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인 게 아니다. 물론 사실도 아니다. 정책위원회와 의원단(결국 의원실들의 집합)을 '정책역량'이라는 기준으로 둘 관계를 파악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설정한 게 문제다. 정책역량을 비교해 버리면 정책위원회와 의원단은 '누가누가 잘났나'를 판가름해야 하는 경쟁관계가 되어버린다. 정책위원회와 의원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책 사업을 펼치는 기관들이다. 정책역량을 앞서니 뒤서니 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노동당에서는, 정책위와 의원단의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것이다. 이는, 홍수석은 모르겠으나, 나머지 다섯은 전부 명시적으로 동의했다.

 

정보수집 면에서는 당연히 의원실이 앞선다. 앞서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보좌관을 싸그리 다 갈아치워야 한다(당내 해고불가 신화를 깨자!). 의원실이 앞장서서 확보한 정보를 정책위에 전파하고 양자가 함께 정리하여, 정책위는 당론의 방향과 정책의 줄기를 마련하고 의원실은 의회에서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정책역량'을 따지자면 정책위와 의원실은 각기 다른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소위 민중.사회단체하고의 관계로 다르다. 의원실은 로비의 대상이 되기 싶상이다. 민원성 정책 제안이, 그 취지는 타당하지만 당의 현실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역할을 정책위가 담당해야 한다. 이는 정책위가 전략을 가지고 민중.사회단체와 사업을 함께 함으로써 가능하다.

 

 

홍수석은, 정책위와 의원단(실)의 역할이 바람직하게 조정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하면 될 뿐이었다. 위의 문구를 표현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물론, 홍수석의 글 전반은 의정과 관련하여 당내 각 기관의 역할을 평가하고 있다. 결국, 위 문구를 쓰지 않았으면 되었을 걸 괜히 집어넣은 것이다.

 

근데, 실수였을까?

 

홍수석은 우리가 자기의 의도와 달리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문구가 오해를 살 여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표현이 잘못되었고, 이런 표현은 정책위와 의원실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경고는 된 듯싶다.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홍수석이 점심값을 낸 것도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