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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된 뒷북 - 부유세로 상징되는 조세개혁정책의 수난

11월 30일 오후 2시,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실 회의 테이블에서는 정책조정회의가 있었다.

지난 11월 9일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조세관련 법률 개정안들에 포함된 '간이과세제 폐지'가 또 다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1>

 

11월 9일에 발의한 10개 법률 개정안들은,

민주노동당의 조세개혁 프로그램의 1단계로서 부유세로 대표되는 당의 슬로건,

'부자에겐 세금을, 서민에겐 복지를'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한 것들이었다.

 

부유세 정책은 민주노동당이 이 사회에 던진 하나의 화두이다.

이로써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전파했다.

당의 조세정책에서 부유세가 전부는 아니지만 부유세가 사회화된 상징임은 분명하다.

부유세가 도입되려면 그 이전에 여러 사전 장치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세개혁 프로그램을 '부유세 도입 3단계'로도 표현한다.

 

부유세 정책은 사실 이 땅에 태어나지도 못할 뻔한 정책이다.

예전에 당은, 조세개혁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민주노총과 참여연대와 협의한 적이 있었다.

민주노총도 참여연대도 부유세 도입 정책을 반대했었다.

그래도 당 정책위는 부유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부유세 정책은 당의 수많은 정책들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뭍힐 뻔 하기도 했다.

2002년도 대선에서 부유세를 공약에 넣었을 때,

선본 안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대선 후보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부유세 얘기를 꺼내니까,

나름대로 경제전문가라는 기자가

부유세 얘기를 하면 대선에서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충고'를 했단다.

후보는 인터뷰 후, 인터뷰 내용에서 부유세는 빼달라고 기자에게 요구했고

다음 날 기사에는 부유세 얘기는 실리지 않았다.

또한, 공약으로 내건 부유세의 과세 기준은 순자산 10억이었지만,

어느 순간 30억으로 보도되었다.

가진자들의 조세저항은 세련되었고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까지 흔들었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공약은, 논쟁거리가 되면서 히트쳤다.

 

이런 일을 겪고서 부유세 정책은 당의 상징이 되었다.

부유세를 걱정하던 그 누구도 당당히 부유세는 도입해야 한다고 큰 소리치기 시작했다.

 

 

<2>

 

부유세로 상징되는 조세개혁정책은 세번째 수난을 맞이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은 국회에 진출했고, 법안발의 하한선인 10석을 차지했다.

당은 마땅히 조세개혁입법을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그 첫 선을 11월 9일에 보였다.

하지만 이보다 발의가 늦춰져서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다루어지지 못할 운명을 맞이할 뻔했다.

당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고위원회의 다리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위원 다수가, 조세정책은 치밀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은 타당했다.

그러나, 당이 수년 간 준비했던, 그리고 국회진출 후 세세하게 다듬어졌던 정책이,

그것도 대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던 부유세 도입 등 조세개혁 프로그램이

검증받지 못한 정책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1가구1주택 소유라고 해도 양도차익을 2억 이상 얻은자에게 세금을 걷는 게

무슨 중산층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인가.

투명과세를 위해 소득을 투명하게 하는 간이과세제 폐지가,

영세 상인만을 당의 적으로 만드는 정책인가.

 

당의 상징인 부유세 도입과 조세개혁정책을 지키라는 당내 여론으로

최고위원회는 11월 9일 입법발의를 허했다.

 

 

<3>

 

이것으로 당의 정책은 수호된 줄 알았다. 근데 뒷북이 울렸다.

간이과세제 폐지의 취지는 타당하지만, 연 매출액 7,200만원 이하 사업자에게 부담되는

"세부담 증가액은 전액 세액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한 합리적이고 충분한 보완장치들이 마련되지 않는 경우, 일정한 형태의 정치적 결정을 해야할 중요한 사안"이라는 주장이 당 정책위 내에서 제기된 것이다.

상인단체들도 공문을 보내와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래서, 11월 30일 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법제실장, 조세담당 정책연구원, 의정정책실장, 정책기획실 정책연구원, 심의원실 정책수석, 송실장, 경제민주운동본부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는 당이 발의한 원안대로 결론을 내렸다.

당론이 정해져 법안발의까지 했어도 여전히 문제제기가 있으면,

다시 점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나는 이번 과정을 심각하게 여긴다.

당에서 조세정책은 제2정조위 소관업무다.

문제를 제기한 송실장은 제2정조위 실장이다. 말하자면, 정책조정 실무책임자다.

조세담당 정책연구원이 구체적으로 법안을 작성할 때,

초안 작성을 마친 후 의원실과 협의를 할 때,

그리고 발의하기 위해 마지막 마무리를 할 때, 즉 정책위의 안을 확정하기까지

실장은 모든 걸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그땐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법안이 발의된 후에 문제를 제기하는가.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기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한들,

최종안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30일에 정책조정회의를 하기로 해 놓고선,

29일에 당 사이트 게시판에 "간이과세 관련 입법발의안 - 심각한 문제있다"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자기주장을 펴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뒷북은 진압되었다.

주의장은 잘 된 일이라 한다.

문제가 보이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도 포함해서 합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웬지 부유세로 상징되는 조세개혁정책의 수난은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