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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노르 피니.


 

Gorgone

Format : 61 x 46cm

Year : 1988

캔버스 위에 기름으로 그림

 

 


 

L'Entracte de l'apothéose

 64 x 45 cm

1938 - 1939

캔버스 위에 기름으로 그림

 

 

서구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욕망 해방에 관심이 많은 듯 보인다. 그나마 초현실주의라는 미술운동?에 여성들이 많았던 것, 또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등이 관심을 보였던 것도 그런 면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초현실주의는 그들 내부의 성적행위의 자유에만 지나친 관심을 쏟은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했던 여성미술가들은 남성미술가와 다른 길을 선택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초현실주의 (남성미술)운동의 일원으로 머물기를 멈추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 것이다. 레오노르 피니 또한 그런 강인한 여성들 중 하나이며 또한 진정 자유롭고 싶었던 퀴어 중에 하나였다. 그녀의 그림 속 여성들 혹은 고양이들은 이야기와 판타지의 중심으로 그려지지만, 모델로써 박제되지 않았다. 규격화된 몸짓이 아니라 자유롭게 감정을 드러내며 그녀 자신의 마음 만큼이나 다양하게 변모한다. 여성퀴어가 꿈꾸는 자유란 것이 있다면 아마 그녀 작품에 그려진 무엇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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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노르 피니 Fini, Leonor (1908-1996)

 

양성애자 아티스트인 레오노르 피니 Leonor Fini의 작업은 범주화에 저항한다. 종종 초현실주의와 결합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작업은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여성에 의해 다스려지는, 신비롭고도 상상력을 일깨우는 세계를 나타낸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아르헨티나 혈통을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레오노르 피니는 190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생해 이탈리아의 트리스테 Trieste에서 자라났다. 독학한 예술가라고 할 만한 그녀는 십대 시절에 유러피안 박물관 European museums에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양식을 배우고 트리스테 자료실에서 해부학 책을 보며 미술을 공부했다. 열세 살 무렵에 자료실에 출입하면서 그녀는 삶과 죽음, 부패와 재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녀의 예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그림 속에 보이는 해골과 뼈의 이미지는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립심과 자신의 직관에 대한 신뢰를 가졌던 그녀는 절친한 친구였던 레오노라 캐링턴 Leonora Carrington과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등 초현실주의 경향에 연관되어 있던 다른 여성 미술가들과 유대를 맺게 된다.

 

자신의 삶과 예술을 통해 피니는 아름답고 오만하면서 ‘열정에 의해 지배되는’, ‘자율적이고 완전한 여성’의 이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많은 구혼자가 있었지만 결혼을 거부했다. 그녀는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호했으며 종종 두 남자와 함께 지내기도 했으며, 양성애와 같은 성적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하지만 피니는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과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했다. 1982년 휘트니 채드윅 Whitney Chadwick과의 인터뷰에서 동성과의 사랑의 경험을 자유롭게 언급했지만, 레즈비언 정체성을 택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나는 여자이고 ‘여성적인 경험’을 했지만 레즈비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적인 현실과 외적인 현실을 연결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피니의 강한 전념은 그녀를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앙드레 매종 Andre Masson, 한스 벨머 Hans Bellmer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과 함께하게 했다. 1936년 그녀는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가졌고 이들과 제휴하게 되었다.

 

피니는 초현실주의의 관념들 중 일부를 공유했으며 충격적인 행동과 극적인 제스처에 대한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보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그녀는 추기경이 입는 빨간 예복을 입고 나타나서 여자의 몸을 전혀 모르는 남자의 옷을 여자가 입는 불경스러움이 좋다고 설명한 것은 그 한 예이다.

 

하지만 남성 미술가들과의 이러한 제휴는 많은 부분 사회적인 것이었다. 피니는 앙드레 브레통 Andre Breton의 청교도주의나, 남성을 해방시키는 ‘척 하면서’ 여성의 자율성은 존중하지 않는 초현실주의자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또한 채드윅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피니는 여성의 이미지를 남성의 욕망에 예속시키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사실상 피니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의 가부장적 가정에 대한 응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피니는 그녀 자신을, 혹은 다른 여자들을 여성의 힘과 자율성의 이미지로 그림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그녀는 세밀하게 묘사된 현실과 판타지에 의해 고안된 극적 공간을 상징적으로 결합시킨다.

 

피니는 자신의 작품에 개인적인 토템인 고양이를 자주 그려 넣으며, 이는 종종 마술적인, 성적인 힘을 가진 여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삶의 특정한 인물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림에 나타난 모습이 지배적인 여성과 복종적인 남성의 추상적 원칙으로 읽히도록 의도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피니의 첫 단독 전시회는 1939년 뉴욕의 줄리안 레비 화랑 Julian Levy Gallery에서였다. 2차대전 동안 그녀는 몬테카를로와 로마에서 살았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 무대디자이너로, 화가로 일해왔으며, 유럽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았다. 그녀는 1996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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