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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에로티시즘의 마술적 힘, 레오노르 피니

응시만하다가는눈이빠질거같아
여성 에로티시즘의 마술적 힘, 레오노르 피니

 
“나는 여자이고 여성적인 경험을 했지만 레즈비언은 아니다”

레오노르 피니, 당신은 대체 누구요?

LesCarcans_19841982년, 휘트니 채드윅(Whitney Chadwick)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여성들과의 성적 경험들은 있었지만 레즈비언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하려 들자, 자신은 초현실주의 운동 그룹에 가담하는 것을 거부 했을 뿐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보다 ‘나는 무엇이 아니다’라고 식의 발뺌을 서슴지 않는 그녀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편히 닿을 수 있는 말(word) 안에 그녀를 데려다 놓을라치면, 자꾸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간다.
그리고서는 세이렌의 거부할 수 없는 노래마냥, 대중들 앞에 매력 넘치는 피안의 세계만을 툭툭 던져 놓을 뿐이다. 그러니 우린 그녀를 가깝게 당겨 오지도, 그렇다고 멀리 보내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거리를 둔 채 눈치를 살피는 수밖에. 레오노르 피니 양반, 도대체, 당신은 뭐요?

나는 초현실주의 화가가 아니다.

situation_1985그녀의 정체는, 출신 성분에서조차 딱 부러지는 게 없다. 1908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머니는 이탈리아 인,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출신인데다 스페인 혈통도 지녔다. 또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한 탓에, 이름 있는 유명 미술학교 근처에도 못가 본 그녀를 설명할 수 있는 지연이나 혈연 학연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피니가 1931년에 파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부터 그녀를 초현실주의 미술가 그룹에 묶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서들을 발견하게 된다. 막슨 에른스트나 살바도르 달리, 앙드레 브르통과 같이, 그 이름도 무척 익숙한 초현실주의 대가들과 같이 어울려 다녔다는 문서, 사진들이 남아 있고, 초현실주의와 관련한 기념비적 전시란 전시는 모두 다 참여했다는 사실들이 그것이다. 1930년대에 런던과 파리에서 열렸던 『초현실주의』전,『초현실주의와 다다』전과 같은 초현실주의 그룹의 활동에 피니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만약 피니가 ‘나는 초현실주의자도, 초현실주의 작가도 아니오’라고 그토록 강력하게 말만 하지 않았어도 레오노르 피니, 이 여자는 거장의 반열에 안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피니는, 초현실주의의 수장인 브르통이 청교도주의를 두둔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살바도르 달리나 파블로 피카소 같은 남성화가가 남성 안의 여성을 찾는답시고, 여성을 뮤즈로 대상화 하는 것에 반대했다. 또 초현실주의 남성그룹 안에 존재하는 호모포비아는 레오노르 피니가 이들과 함께 하는데 방해요소가 되었다.

어느 글에서처럼 피니는, 성의 해방을 사칭하며(-.-) 여성 섹슈얼리티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 (남성)초현실주의자들에게 적대적이었다. 반면 프리다 칼로, 레오노라 캐링턴과 같은 여성화가들과 함께 깊은 유대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 노선을 굳건히 해 나간다. 피니의 작품들은 이를 예시해 준다. 작품 안 여성들은 신이 되어 되어 잠자는 남성을 넌지시 바라보거나, 동물과 한 몸이 되어, 신화 속 남성 주인공들의 자리를 꿰차거나 강력한 성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피니를 초현실주의 화가 반열에 올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저토록 ‘안’ 해방적인 성해방을 이야기하는 초현실주의 안에 그녀를 처박아 놓는다는 건 굳이 독자 노선을 걸으며 여성의 성해방을 이야기한 피니에게 정말 억울한 일일 테니까.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다.

Leonor_Fini_Ileria_1972그렇다면 그녀를 레즈비언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 우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춰 진위를 따져보자. 내가 집착적으로 수집하는 여성화가들의 여성편력들 안에 피니의 것은 많지가 않다.
다만 주변의 숱한 남성들이 피니에게 구혼을 하였으나, 거부하였고, 일대일 관계보다는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 젠더와 관계없이 인간을 두루 사랑하는 것을 선호했다고 것 정도? 이것 말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라곤, 레오노라 캐링턴과 피니가 함께 살았다는 그 일년여의 기간 동안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있었기를 소망할 수밖에...
어쨌든, 여성미술가들을 내 맘대로 짝 맞추어 보는 개인적인 백합물 콜렉션과는 별도로,레오노르 피니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단한가지는 ‘레즈비언이 아니다’라는 본인의 진술이외엔 확실한 증명꺼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가 초현실주의 남성화가들의 집단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이유들이나 작품에서 나타난 여러 면모들은 그녀를 레즈비언 미술가로 이야기할 만한 충분한 증거들이 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금기시 되었던, 여성 화가의 여성 누드화를 최초로 감행한 여성화가이고, 그 안에 기존의 남성 화가들의 여성누드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감수성을 선보였고 고양이라는 상징을 통해 여성 에로티시즘의 세계와 힘을 구성하려 했으며, 여성의 성적 에너지와 해방을 일관 되게 재현했다. 피니는 기존 미술이라는 영역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성들의 에로티시즘을 특유의 판타지로, 전면에 드러냈는데 이는 분명 레즈비언의 경험과 욕망을 가시화하는 것과 연관된다.

레오노르 피니는 레즈비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의 작품은 레즈비언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까지 그녀의 요망한 작품들은, 수많은 레즈비언을 포함한 여성들에게, 여성 에로티시즘의 마술적 힘을 환기하고 있다.







 
* 소개된 그림의 제목과 제작년도는,

1_LesCarcans_1984

2_situation_1985
3_Dimanche apres_midi_1980
4_gorgone_1988
5_Le Couronnement de la Bienheureuse Felline_1974
6_LEntracte de lapotheose1938_1939
7_Leonor_Fini_Ileria_1972

피니의 더 많은 작업을 보고 싶다면,

http://www.leonor-fini.com/ 

칼럼니스트 소개
모변
응시만 하다가는 눈이 빠질 것 같아.
여성 퀴어, 페미니스트 퀴어 예술가들의 작품을 맛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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