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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1. 

새벽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면 

모름이가 묻힌 곳이 보인다.

달빛이 밝고 별도 많다.

개들도 자는 조용한 새벽.

개들 자는 소리에 깼다.

뭔가 무서워하는 듯한.

모름이가 온 건 아닐까.

모름이는 아직 여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몸은 땅에 묻혔지만

너무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여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 때 무의도병원 주차장에서 모름이를 앞자리에 싣고

강서구에 있는 24시 동물병원에 데려가면서

숨을 놓을 것같아서

하은과 함께 "야옹, 야옹" 말을 걸던 그 새벽으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수요일 밤,

나는 뒷좌석에 아직 따뜻한 모름이를 뉘여놓고서

모름아 아직 너 거기 있는 거지

니가 왔던 그 길들이야.

자꾸 말을 걸었다.

4개월 전 새벽처럼.

 

처음 서울병원.

사흘동안 입원해있었다.

모름이를 돌보고 싶었지만 병원에 입원해있는 하은의 분리불안이 심해서

나는 모름이를 서울병원에 맡기고 하은의 병원에 있었다.

하은이 퇴원하는 날, 하은이가 먹고 싶어했던 쌀국수집에 있었는데

서울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밤이 고비다"라고.

전화를 끊고서

아이들한테 "기도하자"라고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서울병원으로 갔다.

불은 꺼져있었고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선생님은 "저희가 집이 강화가 아닙니다"라고.

그러면 모름이는 혼자 병원에 있는 건가요? 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나는 그 밤에 후회했다.

동물병원에 입원을 시킨 후에

좋았던 적이 없었다.

매번 100만원에 가까운 병원비를 치르고도

순돌이도, 나비도, 살아나지 않았다.

기도하면서도 나는 절망했고

아무도 없는 병원, 그 컴컴한 곳에서

모름이가 떠나게 하다니, 후회했다.

방금 전 쌀국수 집에서 의사선생님께 집으로 데려가야겠다고 말씀드릴걸.

하지만 기회는 그렇게 흩어져버렸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나는

서울병원 창 아래에서

모름아 힘내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었다.

 

그리고 수요일 밤

이제는 죽어버린 모름이와 함께 

다시 서울병원의 불꺼진 창을 바라봐야했다.

모름이가 어떻게 살아났는데.

모름이를 어떻게 살려냈는데.

 

4개월 전 그 밤에 나는 후회했었다. 

그 창 아래에 서서도 후회했고

돌아오는 동안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도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 때 무의도 한방병원 수풀에 두고 올걸.

아니, 그냥 둘 걸. 

내가 모름이와 죽은 모름이의 형제를 발견하던 그 순간.

모름이의 형제들과 엄마가

쓰러져있는 두 고양이를 둘러싸고 있었던 그 순간.

내가 했던 일은 

주차장 가운데에 있어서 

시신들이 자동차에 상할까봐

수풀 쪽으로 옮겨놓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고양이들은 나를 피해 숨었고

그리고 하은과 함께 모름이의 곁을 지키는 동안

모름이의 가족들은 모름이 가까이 오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결국 저 병원, 어두운 방에서 혼자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는

그냥 무의도의 숲에 뒀어야했다,

라고 나는 후회했었다. 

 

다음 날 한의원에서 하은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느리고 차분한 목소리

어쩌면 침통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반쯤은 포기하고 듣고 있는데

모름이가 밤새 잘 싸우고

살아났다고

그러면서 지금 들리는 이 목소리가 모름이 목소리라고 알려주셨다.

멀리서 야옹야옹 소리가 들렸다.

살면서 그렇게 기뻤던 순간은 몇 번 없다.

그건 뭐랄까

기적을 보았다는 느낌.

포기하고 실망하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모름이가 밤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헤매다가

살아온 것이다.

선생님은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병원에 들러 모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작업실 컨테이너에 모름이를 두고

젖은 사료와 물에 불린 건사료를 번갈아 주는데

모름이는 먹지 않았다.

손도 대지 않은 사료들을 보고

책장 속에 숨어있는 모름이를 안아서

사료 앞에 놓고 입을 대주면

모름이는 그제사 조금 먹었다.

 

외출하고 돌아와서 모름이가 잘 있나 보면

이렇게 누워있곤 했었다. 

힘없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깥 바람을 쐬라고 문을 열어주면

밥 먹으러 왔다가 눌러앉은 무니가 나타났다.

모름이의 밥을 먹으려고.

모름이가 조금 먹고 남은 캔은 늘 무니 차지였다.

어느 날 무니의 야옹 야옹 소리를 듣고 

조용히 일어나서 문 밖을 내다보던 모름이.

외부에 반응을 보이던 모름이의 첫 반응.

그게 기뻐서 찍어두었던 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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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집에 있을 때엔

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어느 날, 스스로의 힘으로 밖으로 나왔던 모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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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모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서울병원 선생님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바늘을  빼라고 하셨다.

늘 조용하고 힘없던 모름이는

붕대를 자르고 바늘을 뺄 때

그 때 바둥거렸다.

아플세라, 그래도 빼야해서 망설이며 가위질을 하고 바늘을 뺐다.

뭔가를 잘못 건드렸는지 왈칵 쏟아지던 모름이의 붉은 피.

나는 내 잘못으로 모름이가 또 아플까봐

바둥거리는 모름이를 꼭 안고 방금 뺀 바늘 자리를 솜으로 눌렀다.

그 모든 순간들이 이토록 생생한데.

 

붕대를 빼고나자 모름이의 쩔뚝거림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힘이 없었다.

가끔 밥을 먹이고 나면

모름이는 왼쪽으로 뱅뱅뱅 돌았다.

독약이 모름이의 어떤 기능을 손상시켰나보다.

모름이는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안쓰러워했었다.

모름이는 늘 무표정했고 늘 숨어있었다.

어떤 날은 모름이가 없어져서 깜짝 놀라 온 방을 뒤지며 찾기도 했었다.

책장의 틈새에 조그맣게 숨어있던 모름이.

 

그리고 jp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기간 내내 서울에 있던 나를 

부산에서 올라온 동생 부부가 보러왔다.

동생부부는 모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모름이가 장애를 갖고 살지도 모른다는 것,

독약이 몸 어딘가를 상하게 했을지도 모르니 어떻게 안좋아질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다 얘기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 너무 좋지.

모름이는 몸이 약해졌으니 실내에서 생활하는 게 좋으니까.

나중에 차를 가져와서 모름이를 데려가기로 했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보니 모름이는 잘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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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고

새집에 적응시키기 위해

무니, 까미, 그리고 모름이를 사흘동안 욕실에 넣어두었다.

사흘동안은 가둬두어야 그 곳으로부터 조금씩 반경을 넓히는 게

장소애착이 강한 고양이의 특성이니까.

모름이는 그렇게 조금씩 고양이 친구들과

그리고 사람 친구들과 친해져갔다. 

 

오빠 승진축하를 위해 모이는 날

동생은 차를 가져온다고 했고

그래서 가족모임에 가기 전에 모름이를  씻겼다.

순한 모름이는 약간 버둥거렸지만 그래도 비교적 목욕을 잘했다.

드라이어로 말려주니 깜짝깜짝 놀라던 모름이.

 

장례식장에서 동생부부가 모름이 입양 의사를 밝혔을 때

나는 집에있던 가족들과 합의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모름이를 부산에 보낸다는 것에 대해서

아이들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가족회의와 투표 끝에 결국 모름이는 남기로 했다.

그 순간이 너무 후회가 돼.

내가 좀더 강하게 보냈어야 했다.

모름이는 몸이 약하니까 실내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내 주장에 대해서

둘째는 모름이가 가는 곳이 도서관이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면

모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크다,

그리고 이제 이만큼 적응했는데 또 새로운 장에서 또 새롭게 적응하는 게 모름이한테 힘들다,

뭐 이런 의견을 보였고

내가 "그래도 고양이들은 추위에 약한데 모름이는 독약후유증 때문에 더 약하니 꼭 실내에서 생활해야 한다"라고 하니 남편이 자기가 고양이 거처를  따뜻하게 꾸며주겠다고 했다. 

결국 3대 2로 모름이는 남게 되었다.

나도 모름이와 헤어지기 싫었다.

그 때 내가 좀더 모질게 마음을 먹었어야 했다.

 

모름이는 사람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는 고양이였다.

현관문을 열면 모름이는 얼른 뛰어왔다.

차에서 내려도 얼른 뛰어왔다.

나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러는 건 아닌 것같았다. 

옆집 할아버지가 어느 날 놀러오셔서 말씀하셨다.

"저 고양이가 나를 따라와. 그래서 집에 가라 했더니 집에 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엄마도 "저 까만 건 예쁘다" 하셨다.

 

모름이는 다른 두 고양이들과도 잘 지냈다.

그래도 모름이에게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추운 날,

모름이를 현관에 들여놓았다.

천가방을 깔아주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모름이가 어디있나 보니 

모래를 넣어둔 화장실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다 살아나서

모름이가 떠나버려서

기억들은 더 생생해진다.

거실에서 작업실로 오다가 현관을 지나칠때면

거기 신발들 사이에 모름이가 있을 것같아서

설레다가 슬퍼진다.

모름아 너 너무 보고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46362

서울병원 선생님께 모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은 마음이 아프겠다는 전화를 걸어오셨고

나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했다.

선생님은 "인력으로 안되는 일인데 어쩔 수 없죠"라고 했고

나는 "선생님께서는 인력으로 안될 것같은 일을 해주셨잖아요" 했다.

좋으신 분이다.

강화에 와서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수요일 이후로 밥을 먹지 못하면서 한의원 선생님께 미안했다.

내가 일상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그런 미안함이 든다.

대학시절, 안암사거리에 있는 치과를 다녔는데

늘 사람이 없었다.

선생님이 양쪽 어금니를 정성스레 치료해주셨는데

씌우기 전에 오징어 먹다가  깨졌다.

선생님은 깨진 어금니를 빼면서

아까워했고 나는 너무 미안했다.

 

그런 기분을 이번에 비슷하게 느꼈다.

모름이가 죽었을 때.

밥을 먹지 않으며 지냈을 때.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수요일 한예종 학생식당에서 학생과 먹은 게 마지막 밥이었다.

 

수요일 밤을 울다자다 보내고 다음 날,

나는 정말 쉬고 싶었지만

네 개의 교육을 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노인복지관으로, 삼량고등학교로, 신길6동으로, 그리고 다시 강화 다루지로.

쉴 새 없이 움직여야했다.

동생이 저녁에 전화를 걸어왔다.

 

누나, 너무 무리하지 마. 내가 매달 생활비로 일이백이라도 보내줄테니까 좀 쉬어.

동생하고 전화하다가 울음이 나왔다.

나는 수요일 밤에 러시아의 언니랑 카톡을  했었다.

몇 년 전에 내가 모아둔 돈, 벌금으로 한 번에 다 털리게 하더니

내가 그렇게 힘들게 살려놓은 모름이, 남편이 치어 죽였어

나는 슬퍼할 겨를도없이 그냥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하는데

이 생활이 끝날 것같지가 않아.

우리 모름이 죽은 게 무슨 메시지 같아.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남편은 그냥 한 번에 무너뜨려버려.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번다고 내 앞에 미래가 있을까.

또 남편이 한 번에 무너뜨릴 것같아.

 

러시아언니는 나와의 대화를 동생과 공유한 것같았다.

00야,내가 버는 건 생활비가 아니야.

한 달에 일이백 벌자고 이렇게 움직이는 게 아니야.

지난 몇달간 몇 천을 이렇게 갚아왔어. 

내가 절망스러운 건 이 상황이 끝이 안 날것같다는 거야.

 

모름이의 죽음으로 나는 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금요일, 기숙사에서 하은이를 데려오는데 하은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는 이제 엄마한테 아빠랑 헤어지지 말라고 말을 못하겠어

아빠는 매번 그렇게 엄마가 쌓아온 것을  무너뜨렸고

이번으로 끝날 것같지 않아.

근데 엄마, 엄마가 떠나면 아빠가 자살할 것같아.

모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서 울었고

엄마 아빠 생각하면서 울었어.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엄마 곁에 남을께. 

 

하은이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었고

하은이가 먹고 싶은 것을 사러 가던 차 안에서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은과 한별은 모름이 이야기를 하며 울다 웃다 했다. 

한별이가 했던 말이 재미있었다.

"엄마, 모름이는 진취적이었잖아. 

그래서 자동차랑 벽 사이가 좁은데 한 번 들어가볼까 한 건 아닐까"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밥을 먹었다.

퀴즈를 내고

각자가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많이 웃었다.

 

다음 주가 시험인 하은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공부계획을 세우면서 이 시간은 빼두었어"

하은이가 많이 컸다.

집에 와서 모름이가 죽어갔던 곳의 흔적과

내가 모름이를 안고 뛰는 동안 흘렀던 핏자국을  보면서 

그리고 모름이가 묻힌 곳 앞에서 한없이 울던 하은이는

서울병원 선생님과 무의도한방병원 간호사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말하고 나와 함께 밥을 먹었다.

 

새벽에 일어나 모름이가 묻힌 곳을 보고

하늘의 별을 보고 

달을 보고

그리고 미뤄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일은 시작하지 못했다.

세 편의 글을 써야하는데

그러자면 내 마음 위에 떠있는 이런 생각들을 털어내야 한다.

슬퍼도 힘들어도 외로워도

할 일은 해야 하고 갈 길은 가야한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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