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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에 술을 마시네

1. 기록하려고 했던 어느 밤

그날 나는 회의를 끝내고 서울에 있는 무의도 병원에 갔다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차를 세운 곳과 무의도 병원이 걸어갈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버스를 잘못 내렸는데 도무지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헤매고 있었다.

 

한참을 걸으며 헤매다 보니 목이 말라서 마트에 갔다.

나는 물 한 병만 사면 되는데

내 앞 사람들이 사는 물건이 많아서 오래, 아주 오래 서서 기다렸다.

내 또래거나 나보다 젊어보이는 아버지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계산대 앞에 있었다.

 

계산이 오래 걸렸던 이유는

결제수단이 체크카드인지 현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이 모자라서 모자란만큼 물건을 한 개씩 빼보고 있는 중이어서 그랬다.

물건 한 개를 빼도 돈은 여전히 모자라 한 개 더 빼보고 또 한 개 더 빼보고

부녀는 그러고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가만히 서있자 점원은 물병이 단 한개이므로 얼른 계산해주었다.

마트 문을 나서면서 돌아볼 때까지 부녀는 여전히 계산대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서 마트 앞에서 물을 마시고 나는 다시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기 위해 걸었다.

걸으면서 울었다.

마신 물이 다 눈물로 나오니 물을 또 사야 하나 생각하며 나는 울면서 걸었다.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금요일에 돌아오렴'에 보면

딸과 아주 친했던 아빠가 딸이 죽은 후에 밥도 못먹고 울면서 지낸 얘기가 나온다.

시장을 같이 보러 왔다가 돈이 모자라 물건을 한 개씩 빼고 있던 부녀를 보자

그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리워하는 딸과 생전에 그렇게 마트도 같이 다녔다.

아주 친밀한 부녀였다. 

그 부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울며 걸었다. 

 

2. 회의 이야기

서울 무의도병원에 가기 전에 나는 세월호 미디어팀 회의를 했다.

JP와 초보감독과 나. 회의의 멤버는 세 사람이었다.

아니, 더 많이 있었는데 먼저 돌아가고 셋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상영은 몇 일 안남았는데

초보감독의 작업이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JP는 JY와 내가 긴급투입되어서 작업을 마무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초보감독은 어떻게든 자기가 해보겠다고 하는 중이었다.

 

큰 작업이었다.

큰 극장에서 상영이 예약되어있었고

그것을 위해 텀블벅 모금까지 한 상황이었다.

JP는 "이건 너의 개인작업이 아니야. 이건 책임을 져야하는 작업이야" 설득하고 있었고

초보감독은 "그래도 제가 마무리는 하겠습니다" 하며 뜻을 꺾지 않았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것같았다.

아니 머리가 차게 식는 것같았다. 

JP의 화가 너무 크다고 느꼈고

화가 난 JP가 초보감독을 때릴 것만 같았다.

정말 때릴 것만 같았다.

'안돼, JP! 그렇게 되면 너의 명예는 훼손될 거야. 절대 안돼'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JP를 바라보았으나

JP의 분노는 너무 커서 나의 무언의 애원 따위는 가닿지도 않았다.

 

나는 중간에 나서서 중재를 했다. 

하루만 더 시간을 주는 것을 JP에게 호소했고

초보감독에게는 하루가 더 지난 후에도 진전이 없으면 

프로젝트 전체에 해를 끼치므로 

그 때엔 우리들의 긴급투입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중재가 끝나고 나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병원에 갔다. 

 

나중에 JP를 만나서 말했다.

"그 날 초보감독을 때릴 것같아서 무서웠어" 

JP는 말했다.

"때리고 싶었어. 참을 수가 없었어"

 

그러면 절대 안돼.

시대는 변했고 우리는 어느새 기성감독이 되고 말았어.

형이 그런 행동을 하면 

우리의 명예는, 도덕성은, 크게 훼손돼.

이제는 그런 위치가 되어버렸어.

세상은 바뀌었고 분위기는 예전같지가 않아.

오래전 감수성으로는 곧 밀려날거야.

조심해야해.

 

JP와 나는 명예욕에 대해서 오래 얘기를 나눴고

초보감독의 의욕은 어쩌면 명예욕에 근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계속 그런 식이면 그 사람은 다큐계를 떠나야한다고 JP는 힘주어 말했다.

다행히 영화는 가까스로 완성되었고 상영도 잘 끝났고 평가회의를 했다.

평가회의 자리에서 나는 JP가 했던 말을 내 말인양 했다.

내가 최고수위의 주장을 하자

JP는 초보감독을 감쌌고 그렇게 그 날 회의는 끝났다.

내가 악역이 되었더라도 경고는 확실히 날릴 수 있었다.

그런 언행들이 평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JP의 뜻을 실현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초보감독에게 명예욕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꼭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만드는 영화는 개인작업이 아니야.

세월호 미디어팀이 만드는 영화는

부모들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쓰이는 영화들이므로

개인의 미학적 성취가 영화의 실천적 함의에 우선할 수 없어.

그것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3. 내가 선 자리

내일이 지나면 평화가 올 수도 있고

내일이 지나면 더 큰 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

나는 어제부터 공들여 사과문을 쓰고 있다.

JP의 정치적 생명을 걱정하며 머리가 차가워졌던 것같은 긴장을 느꼈던 그 밤이 떠오른다.

JP, 나는 그렇게 너를 지켰는데

JP, 네가 유언으로 잘 부탁한다며 남기고 간 사람과의 문제 때문에 너무 힘이 든다. 

나는 어쩌면 도덕적 지탄을 받을지도 모른다.

상대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인간에 대한 낙관과

자기가 선 자리에서는 우세종이 되어야하는 영토주의자의 전술 속에서

나는 어쩌면 도덕적인 결함을 가진 인간으로 패싱될지도 모른다.

 

어제는 사무실에 갔다.

나의 첫 제자이자 10년지기가 어제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선생님, 10년을 알아오는동안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이렇게 겁이 나있는 상태는 처음이예요.

사무실 동료들을 만나서 지지를 좀 받으세요"

나는 그래서 아침에 서울에 갔다가 점심에 강화에 왔다가 다시 서울에 갔다.

서울에 가서 적당한 지지를 받고

주파수가 맞는 사람과 적당한 교류를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지쳐 잠들었다. 

 

오늘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하루종일 글을 썼다.

어제부터 쓰던 사과문을 수십번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다가

다 완성하지 못한 채 교육을 하러 갔다.

사람들 속에 있으니 신체의 감각이 살아나서

보람과 함께 국수를 먹었다.

돌아와서 사과문을 완성해서 담당자에게 보내고

또 글을 쓰다가

술을 마신다.

술을 마셔야한다면 그나마 과일주가 낫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받들어

와인을 마시기 위해 막내랑 낑낑대며 와인마개에 오프너를 돌려넣고

마개를 열다가 부서져서 코르크조각이 둥둥 떠다니는 와인을 마시면서

이 글을 쓴다.

 

안녕 JP 

너는 지금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지.

며칠 전에 임종까지 함께 했던 Y에게

나와 JY가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JP가 하루감독한테 얼마나 의지했는데.

JP가 JY를 얼마나 아꼈는데.."

Y는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집에 와서 그 말을 전했더니

남편 눈가가 빨개졌다.

 

"네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죽였다해도 나는 네 편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JP, 나는 그런 너를 잃었다.

때로는 네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힘든 사람을 왜 내게 맡긴 건가.....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 사람도 그런 말을 썼더라. 

그 문장을 보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아프고 어둡고 추접스러운 방식으로

너를 떠나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JP, 지금 어디를 여행하고 있어?

내게 와줘.

그리고 그에게 가서 이제 그만 분노를 거두라고 말해줘.

 

나도,JY도

당황스럽고 힘든 마음을 다스리느라

삶이 너덜너덜해져버렸다.

JP, 네가 아끼던 나와 JY가

아주 힘든 상황에 처해있어.

뭐라도 좀 해줘라 형.

 

형이 좋아했던 노래.

그래서 우리가 추모영상에 썼던 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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